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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3일(주)
* 시작 기도
주님...
어제 미국에 있는 제자에게서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제자는 15-16년 전에 미국의 교포 2세와 결혼하여 지금까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어렵지만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 하면서 자그마한 사업도 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1주일 전에 자기들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플로리다에서 전시회가 있다고 그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그의 남편과 제자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지 1주일 만에 남편이 사고로 하늘나라에 갔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듣고 나의 마음도 진정이 되지 않았지만 당사자인 아내의 마음은 오죽 했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행하심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음을 말하고 주를 잘 믿는 부부였기에 주님의 뜻하심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위로하였습니다.
나의 위로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는가마는 분명한 것은 이 땅에서 아무리 돈이 많고 부요한 삶을 산다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부르신 그 영혼을 주님이 받으시고 당신의 품에 안아주실 때 그 기쁨과 희열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겠지요.
한 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이 종도 소망이 있다면 우리 주님의 품에 빨리 안기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삶의 연습을 오늘 이 시간 이어갑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정결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3:1-12
제목 :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
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
2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 하였음이라.
3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4 모압 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10만 마리의 털과 숫양 10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비치더니
5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6 그 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 온 이스라엘을 둘러보고
7 또 가서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는지라.
8 여호람이 이르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하니 그가 대딥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하니라.
9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과 에돔 왕이 가더니 길을 둘러 간 지 7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가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
10 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 하니
11 여호사밧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2 여호사밧이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 하는지라. 이에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 나의 묵상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왕이 되었을 때는 유다 왕 여호사밧이 다스린 지 18년이 되던 해이다.
그런데 왕하 1:17절에서는 이스라엘 왕 아하시야가 죽고 아들이 없어서 그의 형제 여호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는데 그때가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제2년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왕이 된 해를 오늘 본문과 왕하 1:17절이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성경이 잘못 기록된 것이 아니라 남유다 왕인 여호사밧과 그의 아들 여호람이 공동으로 다스리는 시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그 당시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선왕이 후임 왕과 함께 공동 통치를 하는 중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 악을 행하긴 하였지만 그래도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아버지 아합이 만든 바알의 우상을 없애버린 일이었다.
한편 당시 모압 왕 메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공물을 바치는 속국이었다.
그런데 아합 왕이 죽자마자 모압 왕 메사는 이스라엘 왕을 배반하고 말았다.
그러자 여호람은 여호사밧에게 함께 모압을 치러 갈 것을 요청하였고 여호사밧은 기꺼이 응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유다 왕 여호사밧, 그리고 에돔 왕 셋이서 함께 군사들을 모아 모압을 치러 출정을 하였다.
출정한 지 7일째 되던 날, 병사들과 가축들에게 먹일 물이 다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여호람이 비탄에 빠져 하는 말이 “참으로 비참하구나. 하나님이 우리 세 왕을 모압의 손에 넘기시려는가 보다.”라고 한다.
그러나 유다 왕 여호사밧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없는지 묻는다.
그때 여호람의 신하들이 엘리야의 사환이었던 엘리사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그때 여호사밧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말씀해 주실 것이라는 말을 한다.
그래서 3명의 왕은 함께 엘리사를 만나러 내려갔다.
사람은 인생 중에 누구나 위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 위기를 대처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전쟁 중에 보급 물자가 떨어진다는 것은 위기다.
그것도 물이 공급되지 않는 것은 위기 중의 최대의 위기이다.
지금 이스라엘과 남유다 그리고 에돔의 3개국 연합군이 모압을 치러 가다가 물이 떨어지는 위기에 직면하였다.
이런 위기 앞에서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비탄에 젖어 탄식한다.
“하나님이 우리 세 왕을 불러 모아서 모압의 손에 넘기시려는가 보다.”
그러나 유다 왕 여호사밧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없는지 묻는다.
똑같은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전혀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여호람은 하나님이 우리를 모압의 손에 넘기시려고 하신다면서 낙심과 절망에 빠진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는다.
여호와의 선지자 엘리사가 여기 있다고 하자,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말씀하실 것이라고 하면서 함께 엘리사에게 가는 것이다.
참된 믿음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것은 내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게 되어 있다.
그럴 때 그의 믿음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떠한 자인가?
바로 불신과 절망에 잘 빠지는 여호람과 같은 자가 아니던가?
인생의 고비 마다 하나님을 찾기는커녕 낙심과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였다.
결혼하고 경기도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큰 아들 은수를 낳으면서 직장을 그만두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사실 아무런 대책이 없이 내려왔기 때문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과외였다.
당시 부산 모라에 있는 주공아파트는 신축 아파트로 입주민들이 막 입주하기 시작하였다.
과외 전단지를 써서 붙이고 모집을 하였는데 불과 한 달 만에 70여명이 모집이 된 것이다.
그렇게 1년 남짓 과외를 하다가 외부 학원들의 강압에 의하여 과외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그 순간 아내는 낙심하여 울고불고 절망에 빠졌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아내에게 욥기를 펴서 읽어주었다.
그리고 힘을 내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시간이 며칠 지나면서 아내는 진정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에게서 나타났다.
며칠간 잘 참는다 싶었는데 내 마음에 낙심과 절망이 엄습해 오더니 한 순간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급기야 아무런 힘도 없고 의욕도 없이 자리에 누워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아내가 나를 위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내의 위로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때부터 원망과 불평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과외 문을 닫게 만든 사람들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부모들은 한 달을 채우지 못한 아이들의 회비를 돌려달라고 하는 것이다.
말없이 돌려주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분노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물에 빠져 가는 사람 건져 주었더니 내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이었다.
이는 지난 1년간 자기 아이들 잘 가르쳐 준다고 좋아하던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변하여 남은 회비 돌려달라고 할 때 낙심은 배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도무지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는 복음을 전혀 몰랐다.
복음을 알았더라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앞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옳습니다’ 하고 인정하며 무덤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인지도 몰랐을 뿐더러, 무덤으로 들어가 장사된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낙심과 절망에 빠져 비탄에 젖은 탄식소리만 내뱉는 여호람과 같이 되고 만 것이다.
아내가 힘들어 할 때는 믿음이 있는 듯 보였지만, 사실 그것은 믿음의 행동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척 한 것이다.
며칠 후에는 아내보다 더 낙심과 절망에 빠져 헤어나오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결혼하기 이전부터 복음을 통하여 생명으로 살기까지 지나온 수십 년의 인생 속에서 얼마나 많이 낙심과 절망에 빠져 비탄에 젖은 모습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았을 지를 생각하면 그저 얼굴이 화끈거릴 뿐이다.
신학을 하고 사역자가 되고 목사가 되었으면서도 나의 소망을 하늘에 쌓아두지 않고 땅에 쌓아둠으로 해서 흔들리는 믿음 앞에 낙심과 절망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은 나의 일상이 되고 말았다.
신앙의 근거가 땅에 있는 한 믿음이 흔들리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일은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나에게 복음이 찾아왔고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어 지금까지 날마다 영생의 삶을 누리며 살고 있다.
이제는 이러한 위기 상황이 닥친다 한들 낙심과 절망에 빠지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덤 속으로 나를 초청하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옮음을 인정하며 잠잠히 그 무덤 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서 나를 기다리시는 주님과 함께 말씀으로 교제한다.
그 자리가 주님을 만나는 성소요 새 생명으로 일으킴을 받는 산실이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복음은 나의 인생을 송두리 채 바꾸었습니다.
땅의 것을 바라보며 그것이 나의 소망이던 삶을 이제는 오로지 주의 얼굴을 구하며 하늘에 소망을 둠으로 땅의 것으로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내 삶의 근거요 내 집이요 현 주소입니다.
조금만 삶이 팍팍하고 힘들어도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던 지난날의 모습은 죄의 세력에 지배를 받던 옛 사람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아들의 생명으로 새 사람을 입은 자답게 비록 땅에 두 발을 딛고 살지만, 내 영혼은 하늘을 디디며 사는 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으로 초청하신 주님의 뜻을 발견하고 주님과 함께 거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오니 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십자가를 지시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주님은 그것을 피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뜻을 받으셨나이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신 주님은 오늘도 저를 그런 주님의 삶으로 이끄시나이다.
주님을 따라가는 따라쟁이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이끄소서.
주의 신실하심으로 믿음으로 그 나라를 바라보며 사는 주의 자녀들이 되게 하소서.
하여 영적, 정신적, 육체적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발견하며 그 안에서 말씀 앞에 나아가 주님과 깊은 교제로 성소를 짓게 하소서.
그리하여 새 생명으로 일으키심을 받는 부활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제자의 남편분이 어찌 그리 황망하게 떠날줄 알았을까.
내 인생도 우리네 인생도 안개같은 것을...
나의 삶의 근거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있기를 기도하는 하루네.
삿포로 잘 도착했소^^
그러게 말예요.
그래도 매일 주님과 교제하는 신실한 제자예요.
마음은 아프지만 무엇보다 하나님 품에 안겼으니 거뜬히 감당하리라 믿어요.~~*
삿포로에서 성령의 일하심을 보여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