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가 지나 한마음체육관 주차장에서 현식 형을 만나 충의사로 간다.
이미 일식형과 금식형은 와 계신다.
판식 회장님도 곧 오신다.
존경문으로 들어가며 현판 글씨를 본다.
존경문과 영사재 현판은 석촌 윤용구의 글씨다.
이 분은 일제의 관작을 사양하고 남쪽만 돌아다니셨나?
영사재기는 12대손 승구근기가 끝에 보이는데 담인 좌모 할아버지의 2남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청주에서 나고 자라 벼슬하신 분들로 좌모 할아버지가 화수헌기를 쓰시고, 그 아들이 영사재기를 쓴 것도
어색한 일은 아닐 수 도 있겠다.
모현재 방은 따뜻하다.
금식 형님의 대종보 편집 설명에 이어 만회헌집과 춘담집 번역발간에 따른 협의가 이어진다.
난 송철현씨가 구해 소장한다는 고령신씨유적과 세보록?에 관심이 간다.
밖으로 나오니 눈이 펑펑 쏟아진다.
다시 들어가도 문중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다.
옆방에 가 글씨를 찍고 신문더미 아래서 농산학술대회 2차자료집을 챙긴다.
마서 박현주씨의 모친이 금식형님의 고모라고 그 고모부인 태삼씨의 글씨라고 말해 주신다.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고 일어나 나오며 눈 속에서 사진을 찍는다.
모두 차로 한마음체육관으로 이동해 일식 형의 새 차를 타고 마서로 간다.
금식 형이 마서이장 진호족장한테 대사간 직모 할아버지의 묘소를 안내해 달라고 했다 한다.
족보에 의하면 마서마을 뒤라고 되어있었는데 그 동네를 잘 안다는 나도 알지 못한다.
회관을 지나 이장과 통화하더니 날 바꿔준다.
죄송한 마음으로 유식 친구의 집앞에서 기다리는데 근호족장이 나오신다.
서산정 오르는 입구에 주차하고 송씨쌍충정려로 오른다.
그 앞을 지나 상수집수통이 있는 가파른 대숲 사이를 눈길을 밟으며 조심스럽게 오른다.
묵전이 되어 잡초와나무가 가득한 옛논자락이 나타나고 조금 경사를 오르자 대사간공의 묘소다.
나란히 서서 묵념을 하고 묘지 주변을 둘러본다.
왼 윗쪽에 그의 부 성록공의 묘도 보인다.
모두 조심스레 내려와 마을 입구 회고정에 올랐다가 대사간공의 사적비를 본다.
만회헌집에 싣는다고 사진을 찍어보지만 형편없다.
나만 보호수와 회고정을 여러번 찍는다.
밥먹을 장소를 찾다가 현식의 제안으로 뱀골재아래 한우식당에 가 차돌된장찌개를 먹는다.
금식 형이 계산하겠다는 걸 내가 하겠다니 판식 회장이 그러라 한다.
건너 찻집에 가 금식 형이 차를 산다.
나이드신 옛민주당원 몇이 들어와 금식 형 등과 인사를 나누지만 난 잘 모르는 이들이다.
고흥타임즈 금식 형께 고흥의 산과 역사유산에 대해 기고하고 싶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그의 다방면에의 해박한 지식과 왕성한 취재력이 부럽다.
마륜지에 어떤 도움을 주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