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_겉표지_단상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만의 의문일까? 언제부터인가 책들이 전반적으로 겉표지가 얇은 한 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책의 크기나 두께에 상관없이, 그리고 책의 분류에 상관없이!
무게 때문이라고 한다고 하여도, 누가 얼마나 철학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다고!
반면에 들고 다니며 읽는 책일수록 더 잘 다듬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선악의 저편>을 읽고 나면 다음 책으로 <차라투스트라> 그 다음 책은 <즐거운 학문>..., 이어서 <즐거운 학문> 등을 주문 했는데, 책 겉표지가 이렇게 바뀌어서 조금 내 표정이 난처해졌다.
<선악의 저편>이나 <차라투스트라> 등은 예전에 사둔 책이라서 책을 볼 때마다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이번에 주문해서 받은 책의 겉표지가 정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책 겉표지 형태에 따라서 사람의 마음도 달라지는 것일까. 패스트fast 시대에 책 겉표지도 패스트화 되어 간다. 이건 요즘 추세가 그런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책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책을 읽고 난 후 종이책이 금세 회전한다 하여도, 오래 두고 볼 수밖에 없는 책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무리 책을 안 보는 시대라고 말하여도 책을 읽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사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반면에 책은 한 번 사면 두 번 사기는 또 쉽지만은 않다. 패스트 시대이고 패스트화 된 책 소비라고 해도 말이다.
무엇보다 두꺼운 책은 책 제본이 양장본으로 만들어져야 책이 갈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책이 제 힘으로 서 있으려면 두꺼운 책들은 겉 표지가 단단해야 한다.
양장본으로 되어 있는 책은 쉽게 이별하지도 못한다. 크기가 작다면 이토록 단정하게 정제된 느낌으로 손안에 만져지는 단단한 책, 크기가 크다면 그토록 큰 침묵이 주는 묵직함이 압도하여 어느 날 그 앞에 다가가 열어 보게 하는 책과는 쉽사리 이별할 수 없다.
양장본이 장식용 혹은 한정판 형태로 기획된다고 하는데 나는 정말이지 양장본 책은 장식용이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의 영혼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 느낌은 공기에 별 이상이 없으면 모르지만, 공기가 이상하면 바로 알게 되어 표가 나는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이런 두 개의 조건이 서로 대조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런 느낌이기도 하다. 또한, 양장본은 목적은 책의 견고성에 있다. 두껍고 자주 보고 오래 보는 책은 책 겉표지의 힘으로 책이 버틴다. 아무리 제본에서 마감을 사철 제본으로 한다 하여도 책 내용이 적힌 종이들은 낱장이고 얇아서 힘이 없다. 책 겉표지 힘으로 오래도록 책장에 꽂혀 있어도, 반복해서 페이지를 넘겨도, 여기저기 들고 이동해도 책이 흐트러지지 않는 이유다.
책 제본 방식으로는 양장본, 반양장본, 떡제본 방식이 있다고 하는데, 대체로 요즘은 마지막 방식이 많은 것 같다. 검색해 보니, 어느 분이 양장본(또는 반양장본) 형태를 로마네스크 방식, 떡제본을 고딕 방식으로 분류해 놓았는데, 나 역시 이런 명칭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나는 떡제본을 패스트제본이라고 이름을 추가해 본다.
패스트fast로 만들어진 책을 보니 이 두꺼운 책들을 패스트로 소화시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연습용 책 같은 느낌이어서 그럴까? 이다음에 양장본으로 다시 구입하게 될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손때 묻은 책이 그래도 더 나에겐 필요하고 좋은 것일 테니까. 이러면 나에게 때를 모르고 시류를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굳이 거기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시대와 시류가 그렇게 흘러버리면 결국 그렇게 소비하게 된다. 어쩌겠는가...손에 들어 오는 형태를 내가 정할 수 없는데 말이다. 그러니 이리 글로 남기는 것이다. 이건 그러니까...일말의 아쉬움이다.
#책_겉표지는_장식_역할만_있는_것이_아니다
#두꺼운_책은_양장본_해야_한다_이런것은_굳이_시류를_따라가지_않아도_되는_것이_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