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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일 화요일 맑음.
우리가 묵고 있는 Pinewood Lodge Motel 은 퀸즈타운에서 제일 실용적인 모텔이라고 나와 있다. 도시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걸어서 5분정도인 곳에 있는 값싼 모텔이다. 가격은 이 도시에서 둘이 머물기에는 가장 싼 모텔이다. 시설은 주방과 샤워시설이 있지만 모텔이라고 하기보다는 Backpackers 수준이다. 워낙 오래된 탓인지 좀 낡았다. 시내 외곽이라 터는 넓은 편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찬밥을 끓이고 고구마를 반으로 잘라서 삶았다. 오늘의 점심이다. 아내가 너무 알뜰해 허기질 정도다. 체크아웃 시간이 7시 30분이라 기다렸다. 주인이 사무실 문을 여는 시간이다. 키 보증금 10$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일정이 좀 멀어 일찍 출발하려 했는데......... 밀포드 사운드와 테아나우의 반딧불(동굴) 투어를 하는 것이 할 일인데 좀 거리가 멀다.
퀸즈타운 시내에서 길을 헤맨다. 할 수 없이 차를 세워두고 택시기사에게 물어, 겨우 6번 도로를 찾았다. 시내만 벗어나면 도로는 쉽다. 다른 곳으로 빠질 염려가 없다. 길고 커다란 와카티푸 호수를 왼쪽으로 끼고 달려간다. 호수와 어우러진 경치가 멋있지만 돌아올 때 보기로 하고 계속 달린다. 도로는 한가하지만 꼬불꼬불한 길이 호수가 끝날 때 까지 계속 되다가, 호수가 끝나는 킹스톤이라는 마을부터는 직선 길이 이어진다.
100km 속도 판이 있는데 110정도로 달린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교통 경찰관이 있었다. 라이트를 켜고 따라오더니 차를 세우란다. 할 수 없이 차를 세우고 차에서 내렸다. 110km를 달려 속도위반이란다. 딱지를 뗄 땐 떼더라도 사정은 해봐야지......... 앞에 가던 자전거를 추월하기위해 110으로 갔다고 인정하고, 100으로 대부분 달려 규정을 준수했다고 했다. 면허증을 보여주고 처분을 기다리니, 천천히 가라는 말과 함께 면허증을 돌려주었다. 무슨 이유일까? 봐주지 않느게 뉴질랜드 경찰이라고 들었는데, 일단 즐거운 마음으로 차를 다시 몰았다. 처음 만난 경찰이라 놀랬다. 100km 이상 밟지 않고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러고 보니 이 도로에는 교통 경찰관이 제법 보인다. 사고가 많이 나는 지역인가 보다.
오전 10시에 테 아나우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호수를 끼고 있는 작고 예쁜 마을이다. ⓘ에 가서 반딧불 동굴 투어에 참석하려고 알아보니 벌써 첫팀이 출발했고, 다음 출발은 11시 30분이다. 1시간을 넘게 기다리는 것보다 밀포드 사운드에 가서 피요르드 크루즈를 먼저 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여기서 두 가지를 모두 예약했다. 밀포드 사운드의 배는 오후 1시에 출발하는 투어를, 이곳 동굴 투어는 오후 7시 것을 예약했다.
다시 차를 몰고 밀포드 사운드를 향해 달린다. 길이 좁고 곡선이 많아 속도 내기가 어렵고 추월도 쉽지 않다. 1시까지, 적어도 12시 30분까지는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달린다. 경치는 멋진 곳이 많다. 오면서 들리기로 하고 열심히 달려간다. 멋진 곳에서는 관광버스를 비롯한 차들이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쉬어간다. 우리는 여유가 없었다. 험한 산을 넘어 힘겹게 가더니 커다란 바위산 아래 앞서 가던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터널이다. 1차선 터널이라 반대편에서 출발한 차들이 모두 지나가면 우리가 간다. 10분 정도를 기다린 후에야 우리가 터널에 진입했다. 곧 무너질 것 같은 좁은 터널이 무척 어둡다. 거기에 내리막으로 경사진 터널이다. 정말 무섭다. 물이 뚝뚝 떨어진다. 별일 없기를 기도하며 앞차를 조심스럽게 따라간다. 이 터널은 산 중턱에 있는 것 같다. 무사히 빠져 나왔다. 험한 산길을 S자를 그리며 내려간다. 겨울에는 어떻게 다닐까?
힘들게 밀포드 사운드 주차장에 들어섰는데 주차할 공간이 없다. 다시 돌아 나와 동네를 돌면서 주차 공간을 찾아 겨우 건물 앞 주차된 차량 뒤에 겹쳐서 차를 세웠다. 서둘러 달려왔는데도 거의 2시간이 걸렸다. 12시 20분이다. 300여 m를 걸어서 배를 타는 선착장으로 갔다. 여객 터미널은 깔끔하다. 두 회사가 있다. 파란색의 Real journeys와 빨간색의 Southern discoveries 다. 우리는 Real회사 크루즈를 예약했다. Real회사는 여기뿐아니라 남 섬의 테 아나우, 퀸즈타운, 북 섬의 로토루아 등 전국에 사무실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크루즈 회사인 것 같다.
시간이 다 되니 사람들이 모여든다. 동양인이 반 이고 서양인이 반이다. 동양인은 주로 중국, 일본, 한국 단체 관광객이다. 배에 올랐다. 시간이 점심때라 선내에서 판매하는 식사와 함께 배표를 끊는다. 단체 관광객들을 위해 음식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 우리는 배 값만 지불했기 때문에 빈자리에 앉으면 된다. 배에 오르자마자 모두 식사를 하기에 우리도 식사를 꺼냈다. 아침에 삶아온 고구마다. 커피는 무료로 제공해 준다. 커피와 뉴질랜드산 고구마,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갑판위로 올라가서 주변을 둘러본다. 느낌이 노르웨이의 피요르드에서 배를 탈때와 비슷하다. 그때는 스페인 사람들의 수다 때문에 심심치 않았는데, 여기서는 중국 사람들이 설치는 것이 좀 거슬린다. 경치는 너무 멋지다. 웅장한 기암절벽, 수직으로 세워진 높은 바위산과 여러 모양의 폭포들이 파도와 함께 모두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배는 출발해서 좁은 협곡을 간다. 오른쪽에 보웬 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뉴질랜드 총독 보웬경의 부인인 보웬 여사의 이름을 따서 지었단다. 별로 높아 보이지 않는데도 높이가 16m란다. 10시 방향에 솟아있는 산이 마이터 봉이다. 천주교의 주교가 쓰는 모자를 Mitre라고 하는데, 산 모양이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높이가 1682m, 이렇게 바다에서 솟아오른 산 중에는 세계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라고 한다. 필립 산맥에 속한 봉우리이고 옆에는 Sinbad Gully(협곡)도 있다.
1시 방향에는 사자산(The lion)이 버티고 있다. 버티고 있는 모양이 사자모양이다. 1301m의 높은 산으로 빙하작용에 의해 긁혀진 줄무늬가 거대한 암벽에 보인다. 배는 태즈먼 해 까지 15km 정도를 간다. 주변에는 1200m이상의 다양한 절벽이 버티고 있다.
밀포드 사운드라는 말은 1812년 존 그루노 라는 물개잡이 선장이 이곳을 발견해서 그의 고향인 영국 웨일즈의 밀포드 해븐 을 생각해서 이름을 붙였단다. 이 후 존 로트 스트록스라는 다른 선장이 밀포드 사운드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지역은 연간 강수량이 7000mm~8000mm로 세계에서 가장 습한 거주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우기에는 1000mm가 넘는 양이 내리는 곳도 있다.
배는 드디어 넓은 바다에 도착했다. 좁은 협곡을 나오니 약간 허무한 느낌도 들고 수평선 넘어가 단순해져 재미가 없다. 이 바다가 호주와 뉴질랜드 사이의 태즈먼 해다. 1800년대 이후에 계속 사용되어 온 St Anne Point(성 앤 곶)에는 하얀색 등대가 아주 작게 보인다. 움푹 들어간 애타나 만은 마오리 족이 녹옥(green stone)을 찾아서 들리던 장소란다. 배는 다시 돌아 협곡을 향한다. 데일 포인트(Dale Point)가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밀포드 사운드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이 데일 포인트가 튀어나와 있어, 멀리 바다에서 보면 막혀 있는것 같이 입구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란다. 이제 길을 알게된 사람들은 밀포드 사운드로 들어가는 표시로 삼고 있다.
해발 2014m의 펌프로크 산이 묵직하게 버티고 있고 그다음은 코끼리 봉우리(1517m)가 이어져 협만의 좁은 입구를 찾기 어려웠단다. 쿡 선장도 여기서 입구를 찾지 못해 돌아갔단다. 배는 Seal Rock 이라는 커다란 바위 위에 쉬고 있는 물개를 만나러 간다. 15마리정도의 물개들이 나름의 폼을 잡고 쉬고 있다. 배가 접근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여기서는 펭귄도 보인다는데 찾을 수 가 없다.
배는 또 Stirling Falls를 향했다. 앞에 가던 배가 조심스럽게 폭포 밑으로 들어가 선상에 있던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폭포 물을 맞으면 장수한다는 말에, 우리 배도 들어간다. 시원하게 폭포물이 날려 얼굴에, 얼른 카메라를 감췄다. 이 폭포는 영국 군함 클라이오 호의 함장이었던 스털링의 이름을 빌려 명명 했단다.
해저 12m 아래 세워진 수중 전망대가 있는 Harrison Cove(해리슨 내포)에 도착했다. 수중세계를 볼 수 있는 전망대는 선착장에서 따로 투어를 신청해야 갈 수 있다. 검은 산호, 발이 11개 달린 불가사리, 섬세한 아네모네 피쉬(니모), 검은 산호 주변을 감도는 스네이크 스타 등을 볼 수 있단다. 이곳은 피요르드 협곡에서 가장 온화하고 안전한 정착지란다. 다량의 비와 그림자 덕분에 심해와 비슷한 환경을 형성하고 있는 신비의 장소, 해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마치 깊은 바다 속에 들어와 있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단다.
15km의 긴 피요르드 협곡을 왕복하는데 3시간이 걸린 것 같다. 피요르드에서 최대 볼거리 중 하나인 밀포드 사운드는 빙하에 의해서 주위의 산들이 1000m이상 거의 수직으로 깎여서 바다로 밀려들었다는 장대한 경관으로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풍경으로 자주 소개될 만하다. 배를 타고 해면의 높이에서 올려다보는 단애는 압도적이다. 18세기에 뉴질랜드를 탐색한 캡틴 쿡도 밀포드 사운드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불과 200년 전까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던 이 신비스러운 곳을 지금은 연간 25만 명이나 되는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단다. 노르웨이의 송네 피요르드를 연상케 하는 곳이다. 웅장한 산과 단애 절벽, 빙하 녹은 물이 흘러 폭포를 이루고 그 사이에 깃들어 사는 생물들과 독특한 자연 현상을 만들어 내는 정말 멋지고 감동적인 장소를 뒤로하고 아쉽지만 선착장을 나온다.
다시 차를 몰아 테 아나우로 돌아가야 한다. 이 길은 120km의 여정으로 깊은 산골짜기를 뚫고 나가는 변화가 많은 산악 노선이다. 10km 정도를 달려가니 The chasm 이라는 작은 간판이 보인다. 이곳은 20분 정도가 걸리는 산책로인데 Cieddau 강의 급류에 의해 침식작용으로 생긴 기암괴석을 볼 수 있다.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친다.
급경사를 두려움을 갖고 올라간다. 뒤로 미끄러질 것 같은 느낌으로 앞차 뒤에 차를 세운다. Homer 터널이다. 더런 산맥을 통과하는, 길이 1270m, 높이 3.81m 의 터널로, 무려 18년 동안의 어려운 공사 끝에 개통되었다. 지금과 같은 건설 장비가 없었던 1950년대에 인부들이 일일이 땅을 파고 암반을 폭파시켜서 완공한 것이다. 지금도 터널안은 어두 컴컴하고 경사가 급하며 아무런 조명장치도 없다. 게다가 차선이 복선이 아니라 15분 간격으로 일방통행이라 스릴감보다는 두려움을 주는 길이다.
터널공사는 세계경제의 불황속에서 경기를 활성화 하고자 뉴질랜드 정부가 마련한 자구책의 일환 이었단다. 그리하여 1953년 호머 터널의 개통과 함께 밀포드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알려지게 되었단다.
어두운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와서 왼쪽 공간에 무조건 차를 세웠다. 터널을 빠져나오니,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풍광이 펼쳐진다. 구불구불 내리막길이 이어지며, 비라도 오는 날이면 빙하 녹은 물이 마치 눈물처럼 흘러 장관을 연출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자연이 하나의 생명체처럼 위대해 보이는 경험이다. 눈을 9시 방향으로 돌리면 멋진 폭포가 보인다. 호머 터널을 향하는 도로를 건너 3시 방향에는 빙하가 그대로 있다. 절벽으로부터 떨어지는 물에 의해 커다란 얼음 터널이 만들어졌다. 눈 위에서 사람들이 눈싸움을 하며 놀고 있다. 얼음 터널은 시퍼런 빙하의 모습은 없지만 터널이 제법 크다.
차를 다시 타고 달려간다. 서든 알프스에서 제일 낮은 The Divide(531m)가 나온다. 이곳이 유명한 투르번 트랙을 출발하는 곳이다. 밀포드 사운드 트랙과 함께 가장 인기 있는 트래킹 코스다. 전체 길이는 39km이며 사람들은 대개 2박 3일 일정을 선택한다. 산악 풍경을 즐길 수 있는 트랙이다. 퀸즈타운과 연결되는 트랙이라 많은 사람들이 도전한다.
밑에는 Key Summit(해발 919m)라는 표시도 있다. 체력만 있다면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간단한 1일 트래킹 코스다. 트루만 트랙 도중에 있는 경치가 아름다운 키 서미트와 그 주변을 걷는 코스다. 전 여정이 3시간 남짓한 트래킹 이지만, 날씨만 좋으면 그곳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그야말로 절경이란다. 360도의 파노라마를 즐기면서 먹는 점심도 최고란다. 주변에는 작은 연못이나 습지가 펼쳐져 있고 그곳을 지나면서 다시 전망 좋은 곳을 만나기도 한다.
다시 차를 타고 달려가는데, 배가 출출하다. 한적한 휴게소에서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가스도 있고 버너도 있고 물도, 라면도 있다. 차를 도로변 잔디밭에 세우고 라면 끓일 준비를 했다. 바람이 불지 않아 불 피우기가 쉽다. 사람도 없는 한적한 숲이 옆에 있다. 차 문을 몇 번 열고 라면을 끓여 맛있게 먹는데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 공격해 온다. 샌드 플라이다. 파리 모양인데 크기는 초파리처럼 작다. 모기가 아니고 파리인데 피를 빨아먹는 고약한 놈이다. 후다닥 서둘러 라면을 먹고 쫓기듯 차에 탔는데, 차로 들어온 몇 마리가 다리를 공격한다. 모기에 특히 약한 아내의 다리는 그 후 3일이 넘도록 뻘겋게 붓고 가려워 괴로워하였다. 일단 물렸다하면 견딜 수 없는 가려움과 뜨겁게 부풀어 오르는 피부는 기본이고, 심할 경우 진물과 함께 6개월 동안 흉터가 남는다고.......물린 후부터 아내는 상비약으로 가져간 호랑이 연고를 가려울 때 마다 바르기 시작해 연고 냄새가 코끝에 저장되었다. 오죽했으면 18세기에 뉴질랜드를 여행한 제임스 쿡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되었을까?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유해한 생물 중 하나인 샌드 플라이의 무차별 공격에 놀랐다. 가려움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괴롭고 그 수 또한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다’ 샌드 플라이는 습지를 좋아 하기 때문에 남 섬 에서도 비가 많이 오는 서해안에 특히 많이 서식한다. 그 중에서도 밀포드 사운드 지역은 그 놈들의 맹위가 극에 달하는 곳이다. 맑은 날 보다는 흐린 날에 더 많고, 낮 보다는 아침, 저녁으로 더 극성을 부린다. 되도록 피부 노출은 삼가고 반드시 방충제를 바르란다. 신기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져간 물파스나 버물리 같은 것으로는 도저히 진정되지 않던 가려움이 현지에서 구입한 약을 바르면 조금 진정 된단다. 물린 곳에 오이를 붙이면 열과 가려움이 진정된다고 하지만 비싼 오이를 살 정도는 아니고, 오직 호랑이 연고로 해결했다.
Gunn 호수 주변을 도는 트래킹 표지판은 그냥 지나쳤다. 화장실이 있는 Knobs Flat 도 그냥 통과했다. 다란 산맥의 험준한 모습은 이제 보이지 않고 깊은 너도밤나무 밀림이 이어진다. 이 일대를 Avenue of Disappearing Mountain, 즉 ‘산이 사라지는 길‘ 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계속 달려가니 Mirror Lakes 푯말이 보인다. 주차장도 있다. 차를 세워두고 거울 호수를 찾아간다. 나무판자로 걷기 쉽게 길을 잘 만들어 놓았다. 유리처럼 맑고 깨끗한 호수라 ’거울 호수‘인데, 이곳에서 만난 호수나 강이 모두 깨끗해 별로 특이해 보이지는 않지만 발상이 재미있다. 나무판자가 깔린 길을 5분 정도 걸어간다. 재미있는 것은 호수 가운데 거꾸로 세워둔 Mirror Lake 글씨다. 호수에 비친 글씨가 진짜인지, 불 밖이 진짜인지 헷갈리게 한다. 테 아나우에서 58km 지점이다.
다시 차를 타고 가니 관광버스가 많이 섰던 넓은 벌판이 나온다. 초원 끝에 하얀 설산, 다란 산맥의 준봉들이 병풍처럼 이어진 모습이 가관이다. 모두들 여기서 내려 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차를 세웠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고 우리 둘뿐이다. 어린아이같이 허공으로 뛰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시간을 보냈다. 워낙 배경이 멋진 곳이라 셔터만 누르면 작품이다. 아내는 도로 중앙에서도 뛰는데 오는 차 대문에 얼른 옆으로 피했다. 점프 하는 것이 처음이라 숨 차는 시간이다.
한참 놀다가 차를 몰고 가니 테 아나우의 Downs가 나온다 .여기에서 그 유명한 밀포드 사운드 트랙이 출발한다. 밀포드 트랙은 100여 년 전에 테 아나우와 당시에 항구였던 밀포드를 연결하기 위하여 개척된 길이 지금은 전장 54km의 아름다운 트래킹 코스로 유명해졌다. 이 길을 걸어서 여행하기위해서 전 세계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투어 객들이 많다. 이곳의 특징은 철저한 관리체제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입산은 정원제로 되어있고, 사전에 예약 신청을 해야 한다. 산행에도 개인 트랙과 가이드 딸린 트랙이 있다. 시간이 나면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코스다.
우리는 테 아나우에 도착했다. 6시20분이다. 7시에 반딧불 투어에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에 호숫가에 앉아서 기다렸다. 이 호수는 북 섬의 타우포 호수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호수다. 그냥 보기에는 별로 커 보이지 않는다. 도시의 규모는 작지만 피요르드랜드 국립공원의 중심지로서 많은 투어 객들로 붐빈다. 유명한 밀포드 트랙을 비롯하여 주변에는 몇 군데 트래킹 루트가 있어서 산행장비를 갖춘 사람들의 모습이 도시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테 아나우라는 말은 마오리 언어로 ‘비처럼 물이 쏟아지는 동굴’ 이라는 의미란다.
호숫가를 걸어본다. 소박한 차림의 동상이 있다. 맥케논(1851~1892)이다. 그는 1888년 처음으로 테 아나우에서 출발하는 밀포드 트랙을 개척한 유럽 사람이다. 호수 주변에는 예쁜 집들이 호수를 바라보며 나란히 지어져 있다. 송어를 들고 있는 그림판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갈매기들이 많다. 7시가 다 되어 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한국 청년들 3명을 만났다. 모두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일하고 있단다. 잠시 시간을 내서 여행 왔단다.
배는 출발했다. 조금 작아 보이는 보트인데 제법 속도가 있다. 멋진 풍경을 보여주려고 둥그런 섬을 사이에 두고 서쪽 지역으로 간다. 왼쪽에는 럭스모아 산(1478m)이 버티고 있다. 호수 끝 멀리 보이는 산이 너무 멋지다. 산 넘어가 다우트풀 사운드이다. 1770년 캡틴 쿡이 서쪽 해안에 도착했을 때에, 그는 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피요르드의 모습에 “ 이 뒤에는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 이곳을 나가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라고 하여 이 앞의 진로에 의문을 품었다. 그 때문에 이 후미는 의심스러운 후미 즉 다우트풀 사운드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투어에 참석해보면 신비스러운 모습과 박력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 이란다.
둥근 섬을 돌더니 테 아나우 동굴에 도착했다. 먼저 방문한 팀의 사람들이 배를 타려고 줄지어 서 있다. 한 번에 40명 정도 씩만 들어가는데 하루에 7번 있다. 대부분 매진되어 하루 전이나 아침 일찍 신청해야 원하는 시간에 참여 할 수 있다. 가이드가 나와 우리를 안내해 준다. 동굴 입구의 차나무를 소개해 준다. 잎이 작은 특이한 나무다.
마오리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이곳은 1948년 이후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무척 습하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뒤 굴로 들어간다. 별천지다. 동굴 속으로 떨어지는 폭포에 움푹 파인 바위들이 신기하다. 지하에 사는 물고기도 보인다. 칠 흙 같은 천장위로 청백색의 하늘이 보인다. 엄청 쏟아지는 물은 굉음을 내고 사라진다. 가이드를 따라 조심스럽게 가다가 칠 흙 같이 어두운 곳에서 모두 배를 탄다. 모두 말이 없다. 배는 어둠속을 천천히 가는데 손에 닿을 듯 한 천장에 반딧불이 별처럼 빛 난다 .환상적인 모습이다.
이 동굴은 남 섬에서는 가장 큰 반딧불 서식지다. 날아다니는 반딧불이 아니고 Glowworm 이라는 애벌레다. 호주에서 동부에 있는 내이츄럴 브릿지가 있는 동굴에서 본 것과 같다. 기대했던 것 보다 구경하는 시간이 짧아 아쉬웠다. 습한 동굴 속을 나오니 춥다. 입구에 있는 휴게소에서 무료로 커피와 우유를 준다. 커피 조금에 우유를 잔뜩 부어 두 잔을 마셨다. 휴게소 안은 따듯해서 좋다. 휴게소 코너에는 Glowworm의 생태환경과 일생이 잘 전시되어 있어 구경할 만 했다. 특히 늘어뜨린 액체를, 거미줄 같은 방법으로 벌레를 잡아먹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휴게소에서 보여주는 Glowworm에 대한 동영상을 본 후 다시 배를 탔다. 호수와 어우러진 설산들이 정말 멋지다. 호수에 비친 하늘색과 구름도 특이하다.
테 아나우 선착장에 도착하니 해가 넘어간다. 호수위에 있는 수상비행기도 오늘은 끝인지 기둥에 묶어둔다. 멕케논 동상 뒤에 있는 DOC 비지터 센터가 있다. Department Of Conservation으로 우리나라 환경청 같은 공공기관이다. 그렇지만 내용적으로 매우 달라 야외활동의 보급이나 지도 등을 말한다고 한다. ‘디오시’ 또는 ‘도크’ 라고 통칭하며 각지의 안내소를 설치하고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단다.
옆에 있는 테 아나우 홀리데이 파크에 주차를 했다. 장기 주차할 수 있는 곳이다. 주변에는 싼 숙소도 있다. 여기에서 비박을 하기로 했다. 밤늦게 까지 호수 주변을 돌다가 차에 와서 잠을 청했다. 두 번째 비박이다. 왠지 처량한 신세라 생각되지만......... 불편하니 밤이 길고 춥다. 가끔 시동을 걸어 히타를 틀고 추위를 몰아낸다. 도둑질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럽다. 아내는 뒤에서 새우잠을 잔다. 호수도, 커다란 미류나무도, 수상비행기도, 멋진 설산도 모두 어둠속에 묻혀버렸다. 동굴속에 들어간 기분이다.
밤 11시가 되어야 어두워진다. 남극에 가까워 백야현상이다. 노르웨이는 북극에 가까워 백야현상이 있는데, 참 지구는 신기한 현상이 많다, 별 생각을 다 하다가 잠이 든다. 이리 뒤 척 저리 뒤 척, 불편하다. 날이 밝아오 길 소망한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피요르드 랜드 국립공원은 남섬의 남서부에 펼쳐진 뉴질랜드 최대, 세계에서 다섯 번째 크기를 자랑하는 국립공원이다. 이번 여행에서 쿡 산과 비교할 만큼 멋진 여행지였다. 험하고 뾰족한 산과 빙하시대의 모습이 남아있는 U자형 계곡, 깊은 골짜기에 바닷물이 들어와 생긴 피요르드, 동굴 속의 반딧불까지, 칠 흙 같이 어두운 밤에 영화처럼 머릿속에 펼쳐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