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유홍준
막막하다, 가늘고 길다
어떤 굵은 목숨의 모가지라도
목 매달 수 있겠다
질기디질긴
이 명줄
끊어버릴 수 있겠다
봐라 저 수평선 끝 한 토막 잘라 머리 동여매고 한 사흘
이 무거운 머리 밑에 아주 작은 섬 하나 고쳐 베고
나 이렇게 즐겁게 앓아 누울 수 있겠다
이것이 정말 죽었나
살았나
이름 모르는 조개들
내 얼굴에 달라붙어 살점을 파먹어도 뜯어먹어도
(손진은 시인)
수평선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의외성과 돌발성으로 시를 쓰는 뚝심이 대단합니다. 수평선을 “굵은 목숨의 모가지”를 목매다는 거나, “질기디질긴” 명줄 끊어버리는 막막하고 가늘고 긴 줄로 본 건, 한 사흘 앓아누울 때 “한 토막 잘라 머리 동여매”는 줄로 본 건 (수평선의 선 자가 줄이란 뜻이라고 해도) 기존 시의 문법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때 “이름 모르는 조개들이 죽었나 살았나 얼굴에 달라붙어 살점을 파먹고 뜯어먹더라도” 그럴 수 있겠다 하는 것도 그렇지요. 이는 생이 죽고 싶을 만큼 괴롭고 한 사흘쯤 앓아보고 싶도록 피로하다는 게 아니고 뭐겠어요. 돌발성과 의외성의 이미지는 삶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특이하고 그로테스크합니다.
새삼 시는 아름다운 말의 잔치가 아니라는 사실, 깨닫습니다.(참고로 이 시는 시집 ‘나는 웃는다’ 26-27쪽에 있는데, 한 줄이 한 연입니다. 줄을 띄워서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