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젠타가 바꾼 메콩강 삼각주 동아시아의 옥수수 창고로
이동훈 기자
베트남 남부의 최대도시 호찌민(옛 사이공)에서 차를 타고 동남쪽으로 3시간 달려 차우둑이라는 농촌 마을에 도착했다. 바리어 붕타우성(省)에 있는 지역이다. 차우둑에 3.8㏊(약 1만1000평)의 밭을 가진 트란 킴 투엔(44)씨의 얼굴이 까맣다. 영락없는 농부다. 실제 나이보다 10살은 더 들어보였다. 10월 말인데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는다. 그는 이곳에서 형제와 일가친척들과 함께 옥수수 농사를 짓는다.
트란씨의 옥수수밭으로 들어가자 어른 키보다 높은 옥수수 줄기가 눈앞을 가렸다. 낚시대만 한 옥수수 줄기에는 1~2개씩 옥수수가 달려 있었다. 트란씨는 0.8ha를 제외한 3ha에 옥수수를 심어 3~4개월에 1차례씩, 1년에 2차례 수확을 한다. 2년 전만 해도 옥수수 농사는 만만치 않았다. 이름 모를 잡초가 더 높이 자라 옥수수가 태양을 쬐는 것을 막았다. 천공충 등 병해충이 창궐해 애써 가꾼 옥수수잎을 좀먹었다. 우기가 되면 비바람에 옥수수 줄기가 쓰러지기 일쑤였다. 기계 대신 옥수수를 일일이 손으로 따고, 반(半)포장도로를 이용해 호찌민까지 운반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2년 전인 2010년부터 스위스계 다국적 농업기업인 신젠타로부터 옥수수 종자와 제초제, 살충제, 살균제를 무료로 지원받고 농업교육을 받은 뒤 트란씨의 생활도 바뀌었다. 초보적 육종기술을 적용한 옥수수는 병충해에 강했다. 제초제를 적절히 사용한 결과 광합성이 활발해졌다. 옥수수알은 탱글탱글하고 여물어졌다. 물러터진 예전 옥수수와는 촉감이 달랐다.
결과적으로 트란씨 옥수수밭의 옥수수 수확량은 2년 전보다 ㏊당 약 0.25t씩 늘어났다. 단백질 함량이 높은 찰지고 탱글탱글한 옥수수가 시장에서 환영받았음은 물론이다. 옥수수는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었다.
트란씨처럼 신젠타로부터 농업교육을 받은 베트남 농민은 7만6500명에 달한다. 가구당 인구를 4명씩만 계산해도 약 30만명의 농촌인구가 혜택을 입은 셈. 트란씨와 같은 농부는 베트남 전역 12곳의 신젠타 농업교육센터에서 배출된다. 이들은 농업교육센터에서 어떤 종자가 토양에 적합한지, 병충해가 왔을 때 살충제와 살균제를 어찌 처방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분무기를 사용해 제초제를 칠 때 안전하게 뿌리는 법도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다.
베트남 메콩강 삼각주의 변신
현재 다국적 농업기업이 교육한 농업기술이 적용되는 논밭은 베트남 전역에 900여곳에 달한다. 두 살배기 아들을 둔 트란씨는 “소득이 늘어나 행복한 것도 있지만 농약뿐만 아니라 농사와 관련한 여러 해결책을 배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베트남 메콩강 삼각주가 급변하고 있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 인도차이나반도를 관통하는 메콩강은 동남아의 젖줄. 과거 쌀을 주로 경작하던 베트남 메콩강 삼각주에서는 옥수수와 커피 등 상품작물 재배가 급격히 늘고 있다. 각종 신농업기술을 적용한 상품작물 재배가 늘면서 농가소득도 늘었다.
소득이 늘면서 과거 빈곤에 허덕이던 베트남 농가의 모습도 일변하고 있다. 옥수수 같은 상품작물은 과거 벼농사 위주였던 메콩강 삼각주의 풍광을 바꿀 정도다.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에 따르면 지난 2001년 73만㏊에 불과하던 옥수수 재배면적은 2011년 112만㏊까지 늘었다. 지난해 옥수수 생산량은 479만t에 달했다.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 작물보호과의 팜 반두 부국장(박사)은 “옥수수 생산량 증대에도 불구하고 매년 100만t 이상의 사료용 옥수수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신젠타 같은 다국적 농업기업은 메콩강 삼각주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농업교육을 통해 트란씨 같은 농업기술로 무장한 신(新)농민들을 베트남 전역에서 배출시키면서다. 현재 신젠타로부터 교육을 받은 농부(7만6500명)는 오는 2015년까지 13만8500명까지 늘어난다. 신농업기술이 적용된 논밭 역시 현재 900곳에서 오는 2015년 1600여곳까지 늘어난다.
실제 베트남 붕타우에서 진행 중인 농업실험은 극명한 결과를 드러냈다. 제초제를 적절히 사용한 옥수수와 그렇지 않은 것과의 차이는 기자가 보기에도 극명했다. 잡초는 옥수수의 광합성과 수분흡수를 방해해서 옥수수의 생장발육에 치명적이다. 신젠타의 옥수수마케팅을 담당하는 하딥 그레월 박사는 “제초제 구입용으로 ㏊당 30달러의 추가비용을 들이면 120달러의 추가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해 베트남에서 제초제 등 농약 사용도 매년 20% 이상 급증하고 있다. 제초제와 살충제 사용이 베트남 농가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제초제와 살충제, 살균제 등이 효과적으로 쓰이며 작물 수확량이 대폭 늘었다. 인근 마을 농가들끼리 작물 수확량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도 생겼다. 어른아이와 일가친척 할 것 없이 총동원돼 잡초를 메던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었다. 수입이 늘어난 농민들은 자녀를 논밭 대신 호찌민이나 하노이의 학교로 보낸다.
베트남전쟁 때 미국의 몬산토와 다우가 생산한 제초제의 일종인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가 베트남 농촌을 황폐화시킨 것과는 정반대 효과다. 베트남에 가기 전 서울에서 만난 신젠타 동북아솔루션개발담당 김용환 사장(농학박사)은 “최근 베트남 농촌의 변화는 과거 한국의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방불케 할 정도”라며 “개도국에서 제초제나 살충제의 효과는 세탁기나 냉장고가 불러온 변화보다 더 크다”고 단언했다.
- ▲ 잡초관리 제초제를 살포한 옥수수밭과 그렇지 않은 옥수수밭(왼쪽).
1986년 도이모이정책으로 변화
베트남 농업이 대변신을 시작한 것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6년 베트남 공산당과 정부는 베트남판 개혁개방정책인 ‘도이모이정책’을 채택한다. 베트남의 농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베트남은 전형적인 동남아의 농업대국이다. 약 9000만 인구 가운데 48%가 농업에 종사한다.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4%에 달한다. 특히 비옥한 메콩강 삼각주를 끼고 있는 베트남 남부는 벼농사에 적합한 기후로 이론적으로는 일년에 삼모작도 가능하다.
하지만 “1986년 ‘도이모이정책’을 펴기 전만 해도 베트남 농촌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는 것이 베트남 농업과학대학 응우옌 반투앗 교수의 설명이다. 사회주의 정책에 따라 농부들은 분배된 땅에서 분배된 식량만 재배했다. 먹거리는 인민위원회에서 일괄적으로 나눠주는 배급표를 받아 해결했다. 당연히 더 많은 농산물을 생산코자 하는 생산동기가 유발될 리 없었다.
탁월한 기후조건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굶주렸다. 반면 “1986년 도이모이정책을 도입하면서 작물을 스스로 선택하고 잉여농산물을 처분할 권리를 농가에 되돌리자 쌀 대신 옥수수 같은 상품작물의 재배가 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응우옌 교수의 설명이다.
최근 7%를 웃도는 초고속 경제성장과 함께 육류 소비가 급증한 것도 옥수수 재배를 촉진하고 있다. 옥수수는 밀, 쌀과 함께 세계 3대 작물의 하나다. 대개 소, 돼지의 동물용 사료로 쓰인다. 베트남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현재 45㎏ 정도지만 전문가들은 오는 2020년경에는 1인당 육류 소비가 68㎏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베트남전쟁 때 미군과 맞서 싸운 베트남에는 “몸에 좋다”며 아침부터 스테이크를 써는 사람도 상당하다.
옥수수 재배면적 확대 목표
실제 베트남 최대 유제품 기업인 비나밀크의 매출은 전년 대비 25% 폭증했다. 우유와 치즈 등 서구식 유제품의 수요가 늘면서 비나밀크는 호찌민 북부 빈증성(省)에 4조동(약 2000만달러)을 들여 연간 8000만L의 유제품 생산이 가능한 유제품 가공공장을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우유를 짜낼 젖소를 먹일 옥수수 사료의 수요 역시 폭증하고 있다.
쌀이나 밀을 소나 돼지, 닭을 먹이는 동물사료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옥수수만큼 효율적이지는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소나 돼지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으려면 사람이 직접 섭취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곡물이 사료용으로 공급돼야 한다. 통상 1㎏의 소고기 생산에는 8㎏의 곡물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젠타의 그레월박사는 “옥수수는 쌀보다 키우는 데 드는 수고도 적은 반면 더 많은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어 최적의 사료”라고 했다.
게다가 옥수수는 가뭄과 같은 기후변화에도 덜 민감한 특성이 있다. 그레월 박사는 “벼를 1㎏ 생산하는 데는 약 3000~5000L의 물이 필요하지만 옥수수를 재배하는 데는 2500L밖에 안 든다”며 “우기에는 벼를 심고, 건기에는 옥수수를 돌려 심으면 산출량과 농가소득을 동시에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베트남 정부도 최근에는 주곡인 쌀보다 옥수수 같은 상품작물 재배를 권장하고 있다. 오는 2020년까지 옥수수 재배면적을 120만~130만㏊까지 늘리고, 생산량은 500만~580만t까지 늘리는 것이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가 세운 1차 목표다. 농업금융에 특화된 네덜란드 라보뱅크의 아담 톰린슨 식량농업연구부문 이사는 “베트남의 경우 쌀이 주곡이지만 옥수수 재배가 최근 급증하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며 “베트남이 사료용 옥수수 재배를 늘릴 경우 수요가 급증한 동아시아의 옥수수 센터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바이오작물 식량안보 신(新)대안?
베트남 모델은 식량위기 극복에 새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지난 10월 29일부터 31일까지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지속가능농업 관련 세미나에서도 베트남 모델은 식량위기를 타개할 대안으로 떠올랐다. 주간조선을 비롯 호찌민에 모인 아시아태평양지역 주요 언론은 식량위기와 식량안보를 화두로 놓고 각종 토론을 벌였다.
식량안보 분야 연구의 권위자인 싱가포르 난양(南洋)공대의 폴 텡 교수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옥수수의 39%, 콩의 69%, 밀의 27% 이상을 수입에 의존한다”며 “생산량 증대가 시급함에도 일본과 한국 등 일부 아시아 국가들은 농부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령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위 ‘유전자변형(GM·Genetically Modified)기술’로 불리는 바이오기술(BT)을 작물재배에 적용하는 것도 아시아 농업혁명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 전 세계 면화의 경우 82%, 콩은 75%, 옥수수는 32%, 유채는 25% 이상이 바이오기술을 적용한 작물이다.
베트남 정부도 최근 바이오기술 도입에 전향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베트남 농업농촌개발부 작물보호과의 팜 반두 부국장(박사)은 “현재 8종의 작물에 관해 바이오기술(BT)을 적용한 현장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며 “산출량과 생산량, 효율성 등을 고려해 바이오작물을 가까운 시일 내에 도입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농업 관련 비정부기구(NGO)인 크롭라이프 아시아의 바산트 L 파틸 박사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농업 관련 인프라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통해 식량안보를 강화하고 기후변화와 같은 장기적인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며 “바이오기술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