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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일
오늘 기쁘고 반갑고 즐거운 하루라 해도 되겠지 싶다.
안동지회 법회 날이다.
동생이 가고 아침에 우사장께서 유황을 종숙하고 따리게 되었다고 우리 따리라고 식전에 오셨다 가신다.
어젯밤에 우리가 먼저 내일 따리고 영구네 따리라 하지요 했더니 사돈께서 마침 오셔서 그래서 오늘 따리도록 하시고 제수씨께 아버지한테 준비 하시라고 그랬다.
그래노코 제수씨는 용개아제 아지매 집에 끄으럼 날아온다고 뭐라 그런다는 소리 두 번이나 들었다.
그래도 벌써 솥을 걸어 놔쓰니 올해 따리고 다음부터 다른데 가서 따리도록 하지요 하고 그런 소릴 들으면 기분이 좀 찝찝하다.
소는 응음 하여 소가 새끼를 낳을여나 십떠니 소죽을 주어도 잘 안 먹고 힘을 주며 돌더니 4시반경 송아지를 순산했다.
머리가 나올 때까지 무척 힘이 들어 보이더니 머리만 나오니까 두 번 힘주니 쑥 빠져 나왔다.
나올 때 나는 죽은 송아지처럼 휜 보자기를 덮어 씌고 있는 것 같아 놀라으나 낳아서 어미가 할타 먹으니 5분도 안데서 캑캑 하면서 일어나려고 움직인다.
아버지 오시라하여 발톱을 깎고 보니 황송아지였다. 기쁘다.
암놈보다 수놈이 가격이 배나 가니 두 마리 놓은 셈이다.
나는 머리도 깜고 소죽도 다시 끓이고 제수씨와 아버지 유황 따리고 1시까지 한통 따려 놓고 오후 나도 갔다.
7시까지 다 끓여다.
술은 제수씨 걸러 와서 숙모 감자 삶아 먹고 가지고 왔다.
도목 할배 미나무 할배 영구와 부모 오환모 아지매 이질녀 이혼여 반장모 등이 모여서 술과 감자를 먹고 얘기하다 가신 후 제수씨 소죽 끓이고 나는 놀다 와서 법당 청소하고 불을 밝히고 저녁 먹고 영구모 향을 사가지고 오셨다 가시고 日記쓰고 하양 김정희 답장이 왔다.
기도 좀 하고 오늘하루 부처님께 감사하면서 취침을 한다.
4월 2일 토요일 맑음
오늘 감자를 심을까 했더니 소가 어제 송아지를 낳았으니 며칠 더 쉬었다가 해야 할 것 같아서 아버지 오전 솥갑나무 가리고 후 감자 거름 저 넣으셨다.
뒤에 올라가 나무가리는 것을 보고 앉아 저 앞산을 바라보니 모두 들로 나가서 열심히들 하신다.
시목이네 장 담는다고 모두 모여 있다.
弟嫂氏도 빨래 해놓고 시목이네 집에 가셨다.
아버지 혼자 높은데 힘들어 술 한 잔 잡수고 거들어 드리게 선례야 엄마 큰아버지 오시랜다 하렴 하니 시목으네 집에 가서 그랜 는 모양이다.
제수씨 오셔서 술을 가다놓고 덜렁 들어 올려드리니 쉽게 가린다.
낮에 쑥을 뜯어 감자와 함께 쪄서 먹는데 영구모 숙모 오시라하여 함께 먹고 사돈댁 가시고 권기팔씨 돈5만원 꿔갔는데 돈 달라하니 시목이 뒤산에 불내는 것 고발한다는 소리에 화가 나서 당장 불러 물어본 즉 그런 일 없다고 했다.
나중에 숙모 돈을 달라고 가서 화를 내고 달라니까 없다고 해서 받으라고 했다면 산불 고발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말 하면 저 말로 능청 떨며 능구렁이 담 넘어가는 소리 자꾸 한다.
그 말을 해서 말한 네가 잘못이다.
처 덮어놓아 버리면 그만인테 2월초 하루 계돈 앞집 할매내 가지고 나누어 썼다며 무엇에 썼는지 확인해야 한다.
뒷집 할매, 앞집 할메 큰집형수 기팔씨 그 부인 용개아제도 왔다 갔다.
저녁때 모두 간 후 세수하고 보리밥 실컷 잘 먹고, 일기도 쓰고 기도하고 오늘을 반성하면서 내일을 위하여 잠자리에 든다.
금화 전화가 오후에 왔다.
사진 표창 때 찍은 것 보냈다.
낮에는 대구 자봉 최재근이 동생 생일 축하겸 안부 전화 했다.
복학을 한다고 여름에 놀러온다고 했다.
4월 3일 일요일 맑음
아침에 일어나니 매우 포근하였다. 안개가 끼는 것 같았다.
오전에 설 쉬고 처음으로 기탁으네 집까지 나갔다 돌아왔다.
서울 오열이 전화가 왔다. 진정 눈물이 나도록 반가운 전화였다.
신도회 공양금을 오열이가 늦어도 5월 말까지 보내 준다고 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어떻게 표현할까 다시 분회가 활발하게 잘되게 도와주시옵기를 부처님께 기원합니다.
아직도 마음을 헤아려보니 뜻같이 펼쳐지기는 좀 이른 것 같아 때가 되면 잘 되겠지 누구라도 부처님을 진심으로 바로 믿는 마음 내는 분은 내 모든 정성 기울여 도움 부처님 가피력 반드시 받도록 하지만 어떤 사람 말 한마디 잘못하여 오던 복도 달아나고 여러 가지 괴로움을 또다시 받는 것은 하나하나 지켜보았으니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사나운 말, 도둑질 사음한 마음, 살생, 이간질, 잡말, 헛된 욕심, 원한, 어리석음, 이와 같은 죄업, 탐진치 삼독 번뇌 날마다 짖고 어느 때 해탈할지 父 방아 찧으러 가시고, 오늘이 내가 구인사를 다닌지 만 17년이 되는 날이다.
그래서 집을 마음껏 쓸고 닦고 진영 앞에 불을 밝혔다.
대조사님 신력을 이 중생이 염원하는 소원이 하나하나 이뤄지고 동생들 사업이 잘 되어 동생들이 원하는 대로 사촌도 원하는 대로 신도님들이 원하시는 대로 가피력이 내려지기를 빌고 또 빌고 기도합니다.
오후 기성이 끌고 다닐 구루마 만들어주니 고마워 좋아라고 들여다보고 있으니 기특하고 귀엽다.
소죽을 안쳐주어 불을 넣고 뒤지 밑에 어설픈 것 쓸어내고 저녁을 맛있게 먹은 후 반야심경 쓰고 일기 쓰고 계영실씨께 편지를 썼다.
염불도 조금하고 오늘을 반성하며 오전에는 염불기도 2시간 하였으며 돌아가신 숙부님과 오열이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 나도 몰래 주루욱 흘러내린다.
왕생극락하시고 사촌동생 오열이 건강과 행운과 행복을 부처님께 기도한다. 틀림없이 운 받으리라.
4월 4일 월요일 맑음
장날 발동기 수리한 걸 싣고 와야 하는데 삼촌 소금 사러 리어카 간다 하여 싣고 오시라 했으나 수리가 안 되서 못 싣고 오시고 불 광 4월호와 이길자한테서 제수씨 앞으로 나 앞으로 2통 등기가 왔다.
전화료도 나왔다.
뒷집 할매 길수엄마가 오셔서 앉았다 가시고 반가운 소식 읽고 불광 책을 읽다 라디오 상담 11시 10분, 법률 상담 권영상 변호사님이다.
삼촌 빈숫골제 밭을 작은 아버지 한테 돈 주고 샀었다.
큰 백부님 오걸이 앞으로 이전 등기를 하신다고 하여 자세히 알아보니 삼촌 경작 하고 있으므로 하자가 없다.
좋은 말로 타협하다가 아니 되면 돌려달라는 청구소장을 쓸 수도 있으며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큰아버지 욕심을 부려도 되지 않을 일이다.
아버지께서는 감자를 집터에 심었다.
오후 3시경 장에서 돌아온 제수씨 온상에 여러 가지 모종씨를 심고 감자를 거들어 놓고 빨래를 모아서 다 빨았다.
애들이 너무 옷을 더럽힌다.
하루에 3,4벌씩 버린 옷 빨아 입히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 듯싶다.
사장 댁께서 바람도 쏘이고 지황씨도 한 20근 큰집 것 사고 다니러 내일 오실 것 같다는 얘기를 제수씨가 하신다.
딸네 집이라고 오시면 시아버지 시숙 모시고 사위는 혼자 밥 끓여 먹고 이렇게 살고 있는 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
가슴이 답답하고 괴롭지 않으실까 한편 두렵다.
오늘 미나무 할배께서 집 앞에서 내 얼굴 수염 깍지 않고 두면 보기 좋으니 깍지 말고 길러라 하신다.
서울 영실씨께 답장을 써서 둔 것을 선례를 시켜 갖다 넣었다.
소죽 부엌에 불을 넣고 피마자 껍질을 벗기고 했다.
머리를 깍으니 상쾌하고 저녁식사가 끝나고 제수씨가 정성스럽게 다려준 생강 물을 마시니 감사한 마음 무어라 말할 수 없다.
일기를 쓰고 감사기도를 드리며 나에 염원 소망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건강을 지켜야 하며 새로운 인생과 삶을 만들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살리라.
도우소서 부처님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천수천안관세음보살
4월 5일 화요일 맑음
식목일 父 미질 할배 산소 가토 오전 하시고 오후 묘펀달 산소 축대 쌓고 제수씨 옥신네 지황씨 사가지고 경주 친정에 보내려고 다듬어 두었으며 오후 5시경부터 상명아빠와 물을 4통 실어다 놓고 왔으며 나는 아침에 용개 아제 오셨다 얘기하고 가신 후 아침을 먹은 후 마당을 쓸고 세수하고 들어와 방을 청소하고 불광 교양지 읽다가 잠이 와서 누워서 보다 눈을 조금 붙이고 일어나니 애들 둘이 방을 엉망으로 바닥도 엉망으로 어지럽혔다.
제수씨가 다시 다 쓸고 청소한 후 점심 먹고 책보다 기탁이네 집인데까지 갔다 와서 편지 정리를 하고 소죽을 끓이고 장단지 깨어진 것 씻어 놓고 고기를 다듬어 구워놓았다.
저녁 상명이와 아빠가 와서 함께 저녁 먹고 가고 상명모도 할매 할배도 왔다 가시고 숙모도 순이가 승민이 하고 발동기 수리하고 과원에 동생과 함께 가다 놓고 와서 놀다 갔으며 TV보고 일기 쓰고 취침했다.
4월6일 수요일
좀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은 후 유황을 치로 삼촌 리어까로 아버지 싣고 제수씨 웅동생 애들 모두 준비하여 가지고 간 후 텔레비전을 보며 불경을 읽다가 집배원이 왔다 가서 문을 열고 보니 대구 총무 한태서 답장이 왔다.
부회장님 30일 귀국 하시고 2백만원 후원금을 대구로 보내주신다 하고 현숙씨는 동생 취직 때문에 온다 간다 말없이 서울로 이사를 갔다고 했으며 한약복용 식이요법 등에 대한 자세한 안부가 전해 왔다.
오후 2시가 되니 숙모 애들 데리고 왔다.
뒤집 할머니 놀러 와서 놀다 가시고 4시경 점심을 먹고 누었다가 소죽을 끓이고 저녁에는 텔레비전을 보다 기도하고 일기 쓰고 웅동생이 새농민지에 수필 쓴 것이 채택되어 원고료 찾아가라고 통지 왔다는 전화가 왔다.
오늘도 나는 부처님께 감사하며 금화안부 전화도 해왔다.
오전에 저녁 길수 모 숙모가 와서 놀다 가셨다.
4월7일 목 맑음
어제부터 목안이 쐐하면서 목젖이 내려진 것처럼 춤을 삼키니 편치 않았는데 오늘 제수씨 안동 지황종자를 가지고 사장댁 마중을 가는데 약을 시켰더니 사오셨다.
저녁에 먹은 떡도 해와서 딸기와 진영 앞에 인사올리고 먹었으며 사장댁은 오시지 않고 바로 돌아가고 큰집 형수 나와 놀다가 가고 상명 아빠도 왔다가고 저녁 길수 부모 숙모 하계 아지매 영구모 상명모 왔다 가시고 해동사 율산스님 울진으로 가시고 새로 오시는 부전스님과 경리 아가씨도 새로 왔다고 했다.
스님께서 풍수지리 책을 보라고 갔다 주셨다.
오건이 이사하고 전화번호도 가르쳐주고 안부전화가 왔으며 박해충 국회의원 인사장도 오고 포항제철 주식 매입 하려면 11일까지 돈을 예치하라고 조합장 안내장도 왔다.
염불 좀 하고 오늘을 마무리 한다.
일기도 쓰고 장부도 정리했다.
4월8일 금요일 맑음
꽃샘추위인지 기온이 아침 1도까지 내려가서 그런지 몸이 오실오실 춥고 편치 못했다.
아침 먹더니 백무님 오셔서 전화하고 가시고 길수부 오셔서 아무도 없으니 논의하는데 제수씨에 아름다운 선행 시부 시숙을 모시고 살아가는 미담을 원고로 작성하여 주면 군에나 언론 기관에 알려 많은 분들에 귀감이 된다고 워낙 바빠서 마음은 있으나 직접 작성 못하니 내가 대신 길수 부친 역할을 하여 아무도 몰래 자세한 사연을 써달라고 했다.
참 고마운 말씀을 하신다.
있는 그대로 때를 봐가며 써드리겠습니다.
제수씨가 우리 집에 오셔서 많은 괴로움을 참고 살아온 것을 이제 세상에 알려지게 할까?
처음 찾아 왔을 때 나는 10년을 기한하였으나 내가 마음 정한 것이 그래도 실현 될 길이 열릴지 부처님 뜻에 따르리라.
동리 아지매내 여러 명 왔다가고 저녁 대구 총무 전화 왔으며 오병이 서울서 전화 왔다.
경주사형 전화 왔으며 나는 오후에 누웠다.
약을 먹고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며 일기를 쓰고 염불하고 취침했다.
4월9일 맑음
어제 밤 11시경부터 약 5mm 정도 비가 한 두 시간 뿌리더니 아침 안개가 뿌옇게 낀 것 같다.
봄 날씨가 너무 가뭄이 심한 것 같다.
제수씨 애들 데리고 첫차로 넘어 가시는데 돈이 없어 한 푼도 못 드려 내 마음이 안됐다.
돈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잇느냐? 우리 집에 와서 좀 따라다오.
쓸 일도 많고 할일도 많은데 너 돈이란개 없어 인심도 못쓰고 참 안됐다.
아버지와 아침을 차려서 먹고 들로 가시고 나는 방을 쓸고 청소하고 고추장 단지를 접착제를 붙이고 테이프도 붙여서 철사로 동여더니 든든하게 쓸 만 하였다.
뚜껑도 테이프로 붙이고 고무 너레기도 길수모 오셔서 연탄불 꺼내다 주어서 못을 달구어 뚫어서 상명아빠 도와주어 쉽게 걸어 매고 테이프로 딱 부치니 든든한게 좋앗다.
오후에는 몸을 검사 관찰하고 소죽을 아버지께서 안쳐놓고 끓이고 장 냄비도 부엌에 갔다 넣고 매 끓였더니 장이 뜨거운게 맛이 난다.
된장은 싱겁게 하여 많이 끓이면 맛이 더욱 좋으며 밥은 보리쌀을 끓여 쌀을 뒤우로 씻어 넣어 끓여서 뜸이 들어야 구수한 밥맛이 더욱 난다.
3일 만에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나 제수씨 애들 데리고 가고 없으니 집안이 조용한 게 허전하고 쓸쓸한 게 무엇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함께 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모양인데 떨어져 따로 살 수 있을까?
나는 결혼을 만약 한다 해도 함께 산다면 좋을 것 같다.
제수씨 급히 화를 네서 말해도 나는 좋다.
세상에 우리 제수씨 같은 분이 어디 또 있을까? 한편 가엾고 불쌍하다.
우리 집에 와서 옷도 못해 입고 돈 실컷 못쓰고 일만 여기저기 다니며 해야 하니 신경질 날 때도 많으리라.
그래도 노래를 부르고 음악을 들으며 테이프를 틀어놓고 빨래하고 할 때는 다행스럽게 나도 즐겁고 기쁘다.
저녁 먹고 상명 할매 왔다 가시고 길수모도 왔다 가셨다. 뒤집 아지매도 왔다 가셨다.
품무골 길 문제로 배나들 신식사형 안호사형 정산 영록씨 중서사형 영봉집 할배 하계 아제하고 의논 전화를 해보았다.
미제네 집에도 전화해 보았다.
반장 아자네 집에는 앞집 할매 전화를 했다.
부처님 오늘도 이렇게 텔레비전을 보고 듣고 일기를 쓰고 있었던 모든 것을 생각하고 느끼며 이런저런 일을 연구 검토하며 설계하며 살아 있다는 것을 항상 감사드립니다.
천수천안 관세음 보살 대자대비 관세음 보살 관세음 보살 관세음보살
4월10일 맑음
개꿈 꾼 것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이 상쾌하지 못하다.
세수하고 있으니 제수씨 기성이 선례 함께 첫차로 넘어 오셨다.
하루만 넘어오지 않아도 모두 보고 십퍼지고 기다려지니 이것이 한 가족에 사랑인가 보다.
웅 동생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보내고 혼자서 밥을 끓여 먹으며 생활하고 있으니 참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내가 이렇게 된 입장이면 쉽게 응할 수 있을까?
동생이 형과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하고 제수씨 또한 따뜻한 사랑이 다른 것이 아니고 이런 것이 바로 따뜻한 사랑의 실천이 아닌가?
요즘은 제수씨가 너무너무 고맙고 감사하며 사랑스럽다.
무엇이라도 드리고 십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도와주고 싶다. 그러나 마음뿐이다.
내색도 하지 않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냥 그대로 대화하고 즐겁게 편안하게 생활한다.
어제 장을 가셨다가 애들 데리고 안동가서 목욕하고 오셨다고 하고 5일날 물을 싫을 때 힘겹게 퍼 올렸더니 허리가 아프고 몸이 좋지 않아 약을 지어왔다고 했다.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얼마나 고생하고 수고해야 한다는 것이 한편 마음이 아프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금화가 얼마나 고생하고 수고하는 소처럼 부려먹은 그 힘든 일 물을 싣고 적과를 혼자서 다하고 또 다른 일 비닐을 씌우고 깨를 속고 하면서도 힘들다는 소리 별로 없이 약 한 봉지 안 사먹었다.
23년 함께 살다가 시집을 갖지만 아버지나 나는 몰랐다.
여성이 필요한 물건을 혼자만 필요로 사 쓰는 물건도 많은데 돈도 한번 여유 있게 준일 없으니 이 얼마나 오빠와 가정이 원망스러웠을까?
가엾고 불쌍한 것 전화를 매부와 함께 해왔다.
도라지 씨를 구해 달라하여 두루 알아보니 구할 수 없으며 품무골 밭에 돌을 빼고 길을 닦아 보려고 권영록씨께 포크레인 맞출 여 고 전화하니 내일 넘어오셔서 상의 한다고 하셨으며, 주진 강실네 집에 전화하였더니 박무여 어른이 술을 잡수고 밖에서 타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불쌍하고 가엾은 영혼 명복을 빌어주어야지 집에 오신 분들 하계댁 청기 할매 할배 상명모 숙모 형수 오셨다 가시고 숙모네 밭 때문에 종숙한테 내일저녁 제사 지내로 모이면 큰아버지와 종형 이야기하여 바른 이치 말씀을 드려 달라고 했으며 집 앞에서 도목 할배와 포크레인 이야기하고 저녁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일기를 쓰고 염불 좀하고 취침했다.
4월11일 맑음
아름다운 오늘 화창한 봄 아침 공양이 끝나고 권영록 아제 넘어 오시기로 하여 고란 밭에 가 있다니 배달부가 왔는데 대구 이종사촌 미경이 편지 답장 왔다.
이모부 어머니와 이모 호적을 정정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여러 가지 서류상 복잡하니 그냥 두자고 했습니다.
한 네 통 편지가 왔다.
낮에는 신학대학 여호와 교도들이 찾아와 성경을 읽으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간 후 점심을 먹고 자다가 일어나서 소물 부엌 불이 안 들어 선풍기로 제수씨 부쳐서 소죽 끓였다.
제수씨 뜻사준 물에 머리 감고 보리밥을 맛있게 하여 배불리 먹었다.
조금이다니 상명 할매 손국수를 많이 하셨다며 갖다 주어 두 그릇은 넘을 것 같은데 조금 맛 만보고 내일 먹기로 하고 제수씨 가다 치우고 동장도 전화료 전달 얼마 써는지 조사하러 와서 적어가고 숙모 형수 상명 할배 길수모 놀러 오셔서 놀다 가시고 강서방 전화 와서 받았다.
포크레인 매부내가 오전까지 다했으니 이틀 더하면 마칠 것 같다고 했다.
금화한테서 도라지 씨앗 구했는지 전화가 왔으나 없다고 했다.
외가서 큰 외숙부님 전화를 하셨다.
등본, 큰 외숙부 이북으로 가시고 안계시고 여기서 필요하다면 띠서 보내 주신다고 전화가 왔다.
아버지 기열내 집 제사 지내로 가시고 큰 집 종형한테 큰아버지한테 빈숫골 밭 구렁 삼촌 앞으로 분할 이전해 주도록 얘기 좀 하시라고 하였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얘기하고 나는 행복하다.
제수씨와 격의 없이 대화하고 형수 이웃 아줌마 할매내 오셔서 얘기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가운데 많은 것을 느끼며 배운다. 상명 할배와 모 고부간 트러블로 인하여 할매 아제 중간에서 많이 심적으로 어려운 모양인데 우리 제수씨는 상냥하게 얘기도 잘하시고 나와는 수숙 간이지만 친남매처럼 대화하니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고생은 되지 않아 너무 행복하며 부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제수씨 신앙심을 보려고 성경 찬송 책 좀 읽어 보게 되었다.
그것 보는 시간에 불경 책 한자라도 더 읽어요 하신다.
존경하며 사랑하는 제수씨도 불심이 많이 돈독 해 진 것을 알 수 있다.
금강신과도 같은 불심으로 이 가정 모든 불행 제수씨께 몰아내시고 행복을 주시는 자비의 화신 관세음 보살님이라 생각한다.
꼭! 관세음 보살님 되소서
4월 12일 자정이 넘어서 비가 내림 20mm 정도 오후 갬
오늘은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단비가 내려 봄 가뭄을 해소시켜 주는 농사 못자리 물 가두기에 힘썼다.
등태와 소 마스크를 부친 만들고 오후 논 뚝 하로 가셨다.
나는 인천 할배 한테서 답장이 왔다.
반갑게 받아 읽어쓰며 대구 미경이 이종 동생한테 답장 엽서에 쓰고 이길자 자봉한테도 답장 쓰고 서울 천태종보사 김인수 기자님께도 금화 수기 출간문의 편지을 썼다.
소죽을 끓이고 제수씨는 기성이가 우물에 무엇을 많이 집어 넣어서 깨끗이 처내고 소여물을 썰고 빨래도 하고 내일 동리 부인회 놀러 간다.
함께 가기로 하여 김밥도 싸고 준비 한다.
차비는 아버지한테 만원 얻어 주었으며 나는 구경하고 오는데 드는 돈을 만원 드렸다.
병원에 가려고 찾아둔 돈이 있으나 이렇게 제수씨 놀러 가는데 드리니 내기분이 더 좋다.
많으면 더 많이 드리면 좋을 텐데 조금이나마 많은 돈으로 생각하며 잘 놀다 오시기 바란다.
앞집 할배 길수모 놀러 오셔서 놀다 가시고 길수부 안동에서 전화 하셨다.
내일 처 차로 들어오니 집에 별일은 없는지 길수모 놀러 오시면 전해 달라고 하시고 낮에 숙모 상명모 놀러 왔다 가시고 나는 tv보다 일기 쓰고 염불하고 감사한 하루를 보냈다.
제수 기열네 집에 가서 떡 가지고 오신 것도 먹었다 .
나와 아버지 선례 기성이를 위하여 애쓰는 사랑하는 우리 제수씨 부처님 아픈 것은 나 혼자 만족 하옵니다.
제수씨는 건강하게 다른 식구 건강을 지켜 주소서 아프지 않게 하소서.
나 아픈 것은 괜찮으나 다른 사람이 아프면 특히 제수씨가 아프면 아니 됩니다.
부처님 우리 제수씨 아프지 않게 해죠요.
감사기도 드리며 간절히 기도 합니다. 관세음 보살 관세음 보살 관세음보살
4월 13일 수 맑은 제수씨 여행 가신 날
새벽부터 제수씨 놀러 간다고 상명 할매 오셔서 상명엄마와 함께 가라고 이야기하는 소리에 잠을 깨서 새로 잠이 들어 자다 제수씨 갈 때 6시경 일어나지 않고 잘 갔다 오라하고 잤다.
7시경 일어나 방안 청소 하다니 앞집 할배 오셔서 박무화씨 아들이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 하시고 아버지 집터 닦은데 하루 거들어 달라고 하여 거들어 들이기로 하고 나는 아침 먹고 마당 쓸고 애들 보며 놀다 선례를 시켜 편지 3통 써 놓은 것 우체통에 갔다 넣으라고 시켰다.
kbs 안동 방송국에서 시청료 두달치 받은 것 등록증을 보내왔다.
영봉아버지께서 고란에 포크레인 와서 일하도록 하는 이야기 하여 웅동생한테 전화하여 왔다 가고 점심 먹다니 앞집 할배 밥 한 그릇 갖다 주어 잘 먹었다.
저녁때 고추 종판에 가보니 고추 묘종이 많이 좋아 졌는데 두문 두문 있어 묘종이 많이 모자랄 것 갖다.
오전에 금화한테서 전화가 왔다.
뒷집 할매 길수모 길수부 놀러 오셨다 가셨다.
오늘이 동생 춘희가 이 세상을 떠난지 17년이 된 것 같다.
큰엄마 제사도 오늘 든다.
불쌍하게 오빠와 집을 위하여 스스로 결심하여 목숨을 단축한 가엾은 동생 춘희에 령혼 앞에 명복을 빌며 왕생극락을 부처님 전에 기도 한다.
부디 원한을 풀고 오빠를 용서하고 구천지하에서 왕생극락 국토에 머물러 편히 쉬어라.
동생에 영혼이여 나도 때가 되면 너의 영혼이 머무는 곳으로 가게되리라.
아직은 나에게 주어진 책임이 남아 있기에 머물러 있노라.
제수씨 11시경에 무사히 도착하여 수원 자연농원 충주 댐을 거쳐서 왔다고 하며 음료 빵 등을 먹지 않고 가지고 와서 논아 먹었다.
아버지 담배 1갑 하고 애들 총과 입으로 불어치는 풍금과 공 두개를 사 가지고 왔다.
tv보며 일기 쓰고 염불 좀 하다 취침한다. 대자대비 관세음 보살
4월 14일 맑음 수
포크레인 품무골 밭에 길을 닦고 돌을 뺀 날
아침에 6시경 영봉 아버지 오셔서 포크레인 기사를 중서씨 집에 가서 만나는데 아침 먹고 오기로 했다며 고란에 먼저 하고 가는 길에 품무골 하기로 해더니 영봉이가 아침 먹오 기사를 데리고 고란으로 올라가 현장을 보고 장비 들어 갈수가 없어 못해 준다며 나가 버렸다고 했다.
온 김에 품무골이라도 해야만 하는데 장날이여서 제수씨 장에 반찬사로 일한다고 넘어가고 깨도 2만 6천원씩 두당 팔았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기사를 설득하여 일을 할까?
우선 정산 영록씨한테 전화하니 어디 가시고 없다.
오시면 연락 해달라고 아지매 한테 그래 놓고 웅동생 제수씨 한테 전화 해서 넘어와 이야기 하여 일 하도록 하라니 아지매 일 꺼리 많아서 아직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더니 넘어 와서 점심 먹고부터 우리 밭에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길을 닦고 돌을 빼고 2시부터 7시까지 작업을 하여 밭을 멋지게 하여 놓고 와서 저녁을 먹었다.
고란에 내려와서 하도록 하려니 우리가 답답게 그럴 필요 없다고 옆에서 그래부니 오기 실턴 차에 그만 잘 되다 시퍼 기사가 처음은 길 닦아 가며 들오는 시간을 누가 책임지느냐 셋집이 책임진다니까 또 만약 들어와 일하다가 사고 나던지 뒷집어 지면 누가 책임 지느냐며 이유를 달아서 억지로 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보냈다. 장비와 수고비 7만5천원 주어서 보냈다.
제수씨는 오후 6시까지 오락실 보다 넘어와서 7시가 넘어 저녁을 했다.
처음은 라면을 삶는다 하더니 내가 왜요 해떠니 너무 저물어서 그렇다 하더니 그래도 밥을 다행이 하여서 반찬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들라서 고맙게 생각 하였다.
라면 삶아 들라도 할말은 없찌만 남을 그런 일을 씩히고 라면 삶아 저녁 대접하면 우리 집안 꼴이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아 나의 마음은 좀 난감 했으나 말과 뜻은 다르게 밥을 해드려서 다행이 고맙고 감사 했다.
그 정도는 알만한데 제수씨 네 마음을 보려고 그런 말씀했는지 나는 모르겠다.
장에 갔다 금방 오실 때는 기분이 좋지 않는 표정이더니 금방 달라저서 마음이 좀 노였다.
기도 10분정도 하고 잤다. 부처님 감사 합니다.
4월 15일 맑음 금 호랑나비를 처음 본 날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갠다.
저녁에는 매일 같이 아부지께서 이부자리를 펴고 간혹 제수씨께서 펴 주실 때도 있다.
그래서 아침에 이불 개는 것은 내가 갠다.
가끔씩 아버지나 제수씨 갠 날도 있지만 차 간 뒤에 손드는 격 자다니깐 하계아제 포크레인 있나 없나 일 식히려고 오셨다.
어제 밤에 가버렸다 하니깐 아직 일 하는 것이 서투르다며 다음 기회로 미루고 가신후 아침을 먹고 웅동생은 넘어 가고 나는 마당을 깨끗이 청소 하고 아버지는 뒤에 거름을 뒤배었다.
나는 뒤산에 앉아서 올라가 할미꽃 핀 것도 보고 호랑나비가 내가 앉은 앞에 내려와서 앉아다 날아 간다.
점심 먹고 누었다니 재종 형수가 나왔다.
못 자리 논 우리 것 함께 뿌리자고 이야기 하고 나간 뒤 식전에 큰집 형수도 왔다 갔다.
포크레인 일하는 것 알아 보로 왔다 갔다.
제수씨 벼씨를 다듬어 침종하고 형님 못판 하는데 갔다 와서 소죽을 안쳐주고 내가 불 넣었다.
옆에 앉아서 13일날 놀러 갔다 온 이야기 하다가 선물 사온 이야기 큰집 형님 담배 한 갑 6백원짜리와 구두도 사다 드렸다 하더라 그 소리 들으니 기분이 좀 그랬다.
내가 놀러 갔다 오라고 드린 돈 만원은 안 썼다 하더니 내 선물은 살게 없어 안 샀다 해 놓고 큰집 형님 선물을 사 드렸다.
말이 될 소리를 해야지 모르면 병 안 들으면 약 내가 물어나 사드려도 내한테 이야기 말 안하면 될 걸 왜 하는지 큰집 형수가 놀러가서 사드릴 만한게 있으면 사 드릴 테지 사촌 시숙 선물을 사드리면서 내 선물을 연필 한 자루만 사와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으리라.
물론 종형이 선물을 받으면 마음에 부담이 간다.
이 세상에 남에 것을 받으면 베풀 줄도 알아야 한다.
내가 제수씨 아무것도 못해 드리니 본래 바라지도 않으며 무엇인가 자꾸 사다 주면 오히려 돈 쓰고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진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괴롭고 슬프지만 이것도 나에 수양이며 이런 마음 저런 마음 모두 없애고 오직 자비와 사랑으로 모든 사물을 대하고 보면 나에 괴로움은 없어지며 울적한 마음도 없어지지 내 외로운 마음은 누가 이해할까?
부천님이나 아실태지 나무대자 대비 관세음보살.
저녁에 주진 박무욱 어른께 전화로 안골 등에 리어카 길을 닦으려고 이야기 드리니 닦도록 하자고 했다.
안호댁 산으로 길을 넓게 품무골 닦아서 미안하다고 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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