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가 잘 안 된다
노병철
설거지를 잘해야 한다. 밥 먹고 난 뒤 그릇 헹구는 것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혼난다. 밥알이나 고춧가루가 그릇에 묻어있으면 더 혼난다. 골프 치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말에 ‘설거지’라는 것이 있다. 마무리를 말한다. 제아무리 장타를 쳐서 비거리를 늘린다고 해도 마지막 퍼팅에서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면 “말짱 황”이다. 장타도 한 타이고 퍼팅도 한 타이다. 그런데 사람은 뭐가 더 중요한지도 모르고 힘주어 공만 날린다. 나같이 덩치 큰 인간형들의 특성이다. 넓은 잔디를 보면서 한껏 치솟는 공을 보면서 쾌재를 부른다. 이게 골프 맛이라며 무한한 비거리를 가진 자신의 괴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막상 퍼팅에서 움직이지 않는 작은 구멍에 공을 넣지 못해 주변의 웃음거리가 되고 상대에게 진 타수만큼 돈을 낼 땐 입에서 욕이 나오기 시작한다. 아까 장타를 날릴 때 그 기분은 온데간데없다.
문협 회장인 분이 답답함을 호소한다. 사진과 시가 같이 있는 작품, 일명 ‘디카시’가 너무 좋아 뽑았는데 정작 이 작품을 흑백으로 인쇄하니 모든 것이 다 무너져버렸다는 것이다. 사진 구도도 좋았지만, 색이 주는 시각적 요소도 무시 못 하는 터라 진퇴양난에 빠졌다면서 난처해한다. 수필도 요즘 비슷한 것이 뜬다. 영어로 하면 ‘포토 에세이’ 우리말로 하면 ‘사진 수필’이다. 솔직히 난 이런 부류의 글이 수필인지 아니면 또 다른 장르인지도 묻고 싶다. 사진이 실리면 글은 원고지 다섯 장 분량으로 써야 한단다. 이미 규정까지 생긴 모양이다. 공부 못하는 난 정말 배울 게 많다. 심지어 왜 ‘디카 에세이’가 아니고 ‘포토 에세이’일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그래서 난 지금도 배가 고프다.
수필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산문집이라고 책을 낼까? 김훈 작가나 김홍신 작가의 책도 수필집이 아닌 산문집으로 되어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의 ‘밤이 선생이다’도 산문집으로 책을 냈다. 산문은 운문과 대비되는 말이고 산문 속에 소설, 동화, 그리고 수필이 있다고 배웠는데 그분들은 왜 수필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요즘 수필가들이 내는 책에 수필이라고 하지 않고 산문집이라고 찍어낸다. 수필이라고 하기엔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어 살짝 겸손의 의미가 내포된 것인가?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 따위를 일정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기술한 글로써 나름대로 수필이란 글 틀에 맞춰 형상화되어 있고 묘사나 은유가 적절하게 표현되어 있어야 수필이고 이런 주요 요소가 없으면 수필이 아니지.”
어느 수필가가 나에게 제대로 지적해 준다. 나도 그렇게 배웠다. 수미상관, 기승전결을 통한 글의 흐름과 맥을 놓지 않은 글, 그 글 속에서의 수필적 기교가 가미된 문학적 표현을 말하는 것이리라. 그럼,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칼럼 부류의 중수필은 수필인지 아니면 수필이 아닌지 의문이 간다.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단 수필, 장(掌) 수필, 낭송 수필로 일컬어지는 원고지 5매 정도의 분량인 산문이 수필로 칭해질 땐 이게 수필 문학에 들어가는지가 궁금해진다. 어떤 대학 교수는 단 수필은 수필이 아니라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반박하는 칼럼을 썼다. 한때 실험 수필이란 말이 있었다. 자기 수필도 제대로 못 쓰는 사람이 실험적 글에 도전한답시고 카톡 내용을 수필이라고 우겼다. 어떤 이는 이상(李箱) 정도 되는지 시도 아니고 수필도 아닌 말장난에 불과한 글도 수필이라고 내놓는다. 이게 수필의 확장 화를 꾀한다면서 그럴듯하게 가져다 붙인다. 문학판은 제대로 자리 깔고 있으려면 얼굴이 두꺼워야 할 것 같다.
내가 쓰는 글이 수필인가? 아닌가? 내가 쓴 글이 수필이 아니라면 그럼 난 수필가가 아닌가? 산문가인가? 산문가가 수필가협회에 들어와 수준 낮은 글을 수필이랍시고 도배해도 되나? 어느 공모전 심사위원이 심사평으로 써놓은 글 중에 수필은 수필형식의 틀에 맞아야 제대로 된 수필이라고 했다. 난 아직 정확한 수필형식이 뭔지 헷갈린다. 정의 내린 사람들도 많지만, 각자 제 입맛대로다. 이런 난국에 제대로 설거지할 인물은 없나 모르겠다. 겨우 5개밖에 남지 않은 수필 신춘문예를 보면서 독자 없는 수필에 대한 진심 어린 충정으로 깨끗한 설거지를 상정해 본다. 이런 걸 설거지라고 하지 않는다고? ‘가르마 탄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지엽적인 글귀에 토를 달지 않으면 싶다. 내가 지금 퐁퐁이나 포마드 성능 이야기를 하고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난 정말 내가 수필가인지 산문가인지 알고 싶다.
“네 책이 수필집이든 산문집이든 아무 상관 없어”
“내 딴엔 아주 심각한 문제야.”
“미친놈, 독자들은 그런건 구분하지 않고 읽어. 너네들이나 그런 걸로 머리 싸매지.”
“!!!!!!!!!!!!!!”
“읽히지도 않는 책, 팔리지도 않는 책, 독자를 무시하는 책을 언제까지 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