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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내가 이토록 주님으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는 존재인데...
예수님 시대 유다 사회 안에서 공공연하게 무시당하고 멸시당하던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으니, 세리, 창녀, 죄인들이었습니다.
특히 거룩함과 불결함을 항상 명확하게 구분하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그들은 벌레만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대놓고 무시하고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천국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땅에 강생하신 예수님께서는 허리를 굽히시고 자세를 낮추신 후, 세상 자상하고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시고, 어쩔 수 없는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셨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그들도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는 귀한 존재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의 실추된 품위와 가치를 되찾아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셨습니다.
오늘의 비유 말씀, 아흔아홉 마리 건강한 양들보다 한 마리 길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양치기, 등불을 밝히고 집안 곳곳을 샅샅이 뒤지며 은전 한 닢을 찾는 부인의 스토리는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 죄인들을 얼마나 극진히 사랑하시는지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누구에게도 듣지 못했던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세리와 창녀, 죄인들은 너무나 감동을 받은 나머지 삶의 근본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내가 이토록 주님으로부터 극진한 사랑받는 존재인데,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는가? 하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성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분이야말로 내 남은 인생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실 주님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간 종사해왔던 어둠의 직업을 뒤로 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사방에서 몰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말씀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제일 앞쪽에 세리와 창녀, 죄인들이 초집중하며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은혜로운 복음 대목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하느님께서는 방황과 타락의 길,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절대로 무가치한 존재나 실패작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구치소나 교도소에 한 번 다녀왔다고 인생 낙오자로 낙인찍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당신의 뜨거운 사랑과 한없는 자비를 통해 그들이 당당히 일어설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자극하시고 격려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자비는 나락으로 떨어진 한 인간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믿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여 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 세리, 창녀, 죄인들은 비로소 지신의 비참한 처지를 진지하게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세심하게 성찰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있는 죄인인 우리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 주시고, 이해해주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시고, 어떻게든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자 안간힘을 쓰시는 우리 주님의 자비로운 모습입니다. 그 주님 모습으로 인해 우리는 참다운 회개를 하고 새롭게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오늘 복음은 회개한 양이 되라는 말씀이 아니다>
복음: 루카 15,1-10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는 투덜거립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목자와 은전 하나를 찾아 마을 사람들에게 함께 기뻐해 달라고 말하는 어떤 부인의 비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한 사람의 회개는 하느님을 정말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1967년 8월에도 온 국민이 한 사람의 생명이 살아난 것 때문에 기뻐했던 적이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한창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새마을 운동을 강조하던 시절 충남 청양 구봉 광산에서 김창선 광부가 수직갱도의 붕괴로 120미터 아래에 갇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곳에는 전화가 있어 그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온 나라에 퍼지게 됩니다.
언제까지 버틸지도 모르는 한 사람을 위해 열악한 장비로 수많은 사람이 투입되어야 하고 막대한 돈이 들어야 하는데 구조를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냐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에 전 국민에게 그 가족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남편이자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빌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제쳐놓고 구출작업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2,200여 명이 구조작업에 투입되었습니다.
김찬선 씨는 떨어지는 물방울을 옷에 묻혀 그 옷을 씹으며 15일을 버텼습니다. 그가 절망에 빠질 때 가족들은 온 국민이 기도하고 있다고 힘을 주었습니다. 16일째 극적으로 구조되었고, 이는 갱도 밑에서 세계에서 가장 최장 시간을 버틴 기록이 되었습니다. 구출 당시 김 씨는 건강도 정신도 또렷한 상태였습니다.
이 일로 대통령은 물론 온 국민이 기쁨을 누렸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서? 그럴까요? 그래서 기쁠까요? 애초에 대부분은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사실 4일째 되는 날 김창선 씨에게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그를 포기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면 왜 기쁜 걸까요? 내가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2,200명과 엄청난 돈을 투입해 살려낼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기쁜 것입니다. 나도 저런 처지가 되면 나를 똑같이 구해줄 나라에 산다는 것이 기쁜 것입니다.
한 나라가 하느님 나라가 되는 방법은 한 영혼을 구할 수 있는 목자들이 많게 하는 일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사람들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체’를 영합니다. 우리가 모두 하느님을 모실 성전이 될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만약 내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가 되지 못한다면 나는 하느님 나라에 사는 게 아닙니다.
의인 아흔아홉은 적어도 하느님 나라에 있는 게 행복한지 아는 회개한 신앙인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주인에게 사명을 받은 목자만이 주인을 기쁘게 합니다. 우리는 돌아오는 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회개한 사람들입니다. 세례를 받아서 파견받는 목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회개하라는 뜻으로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냥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목자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에 머무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회개는 양이 아니라 목자가 되게 합니다.
내 생명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생명도 소중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양이 되면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창선 씨도 1982년 매몰 14일 만에 생존한 태백 탄광 사고 생존자들을 찾아가서 힘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김창선 씨의 사례를 보고 버틸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김창선 씨는 말합니다.
“죽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겠죠. 하지만 내 목숨 하나가 그토록 소중한 거라곤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한 이야기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복자품에 오른 바로톨로 롱고(Bartolo Longo)의 이야기입니다. 바르톨로는 나폴리 대학에 다니는 동안 가톨릭 신앙에서 멀어졌습니다. 반 가톨릭 교수들에게 둘러싸인 그는 교회에 대한 그들의 회의주의와 경멸을 흡수했습니다. 그의 호기심으로 인해 그는 강령술에 참여하게 되었고 결국 사탄 숭배에 가담하게 되었고 심지어 강신술의 ‘사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길은 그에게 명확성이나 진실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괴로운 환상과 악몽과 함께 끊임없는 공포, 어둠, 깊은 슬픔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신비술 수행을 계속했고 점점 더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폼페이에서 일어났는데, 그곳에서 바르톨로는 절망과 자살 충동에 압도되어 사탄과의 계약의 결과를 반성했습니다. 그는 가톨릭 신부가 하느님께 봉헌된 것처럼 사탄의 신부로서 마귀에게 속박되어 있다고 느끼면서 자신이 영원히 저주 받을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이 절망적인 상태에서 그는 자신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믿음과 씨름했습니다.
바르톨로가 갑자기 묵주기도에 관해 들었던 약속, 즉 “묵주기도를 전파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입니다.”라는 약속이 기억난 것은 바로 이 강렬한 암흑의 순간이었습니다. 이 기억은 그에게 희망의 불꽃을 가져다주었다.
감동에 사로잡힌 바르톨로는 땅에 엎드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그녀의 약속이 참이라면 묵주기도 신심을 전파하는 데 일생을 바치겠다고 간청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오랫동안 느꼈던 고통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깊은 평화의 느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삼종기도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여 이 은총의 순간을 더욱 확증해 주었고 바르톨로는 자신의 진정한 소명을 찾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즉시 도미니코수도회 신부인 알베르토 라덴테(Alberto Radente) 신부를 찾았고, 그 신부는 그에게 영적인 지도를 제공했고 결국 그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정기적인 모임과 기도, 참회를 통해 바르톨로는 묵주기도에서 자신의 구원을 위한 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신비주의의 위험을 피하고 그리스도를 믿도록 돕는 사명을 발견하면서 교회와 화해했습니다.
바르톨로의 개종은 너무나 심오하여 남은 생애를 묵주기도에 바쳤고, 궁극적으로는 폼페이에 유명한 묵주기도의 성모 성당을 짓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고아들을 위한 자선 사업에 헌신했습니다. 그의 삶은 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 하느님 은총의 구원 능력에 대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작곡한 존 뉴턴 사제는 처음엔 노예상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깨닫고는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제가 되어 인간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 알려주는 목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목자가 되기 전까지는 아직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구원받아 내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면 죽어가는 이들을 두고 풀만 뜯는 양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우리를 양이 되는 것을 넘어서서 이젠 길 잃은 양을 살리는 목자가 되게 합니다.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루카 15,1-10: 죄인을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마음
오늘 복음에서는 잃어버린 양의 비유,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에서 목자는 크나큰 인내를 보인다. 길 잃고 헤매는 양을 찾아 나서 결국 찾아내고야 마는 목자의 인내이다. 참을성이 없으면 양 한 마리쯤 쉽게 포기했겠지만, 목자는 참고 견디며 끝까지 찾아다녔다. 그러고는 그 양을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시다. 그분의 양 어깨는 십자가의 두 팔이다. 거기에 우리는 우리의 죄를 얹어 놓았다. 길 잃고 헤매지 않는 이들을 남겨 두고, 착한 목자는 우리를 찾아 나서신다. 우리가 마음을 고치고 돌아오면 그분은 등을 돌리지 않으실 것이다. 오히려 친절하게 우리를 자기 어깨에 태우고는 잃었던 양을 찾았다며 기뻐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10절)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에서 그 은전은 우리 자신을 의미한다. 그 은전은 하느님의 초상이 새겨진 것이기에 그렇게 소중하다. 바로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을 입은 존재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타락하여 길을 잃은 우리가 다시 그리스도께 발견되어 그분의 모습을 되찾았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은전이다. 그러니 그 값을 잃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녀들이다. 그러니 언제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한다. 잃은 것을 찾기 위해 부인은 등불을 밝혔다. 길 잃은 자들이 그 불빛 덕분에 구원을 받게 되자 하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을 그렇게 기뻐한다면,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된다면 하늘의 천사들이 얼마나 크게 기뻐하겠는가? 우리는 하늘의 천사들에게 기쁨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을 항상 하느님의 뜻으로 되돌아가는 삶을 살도록 하여야 한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갑곶성지에 있을 때의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부활 시기였는데, 한 순례객이 물어볼 것이 있다면서 제게 오셨습니다.
“성지까지 왔으니 십자가의 길을 하자고 일행에게 말하니, 한 분이 부활 시기에는 예수님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시기라서 십자가의 길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세요. 전에도 부활 시기에 와서 십자가의 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잘못한 것인가요?”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전례 주년은 신자들의 신앙을 위한 것으로, 한 해를 보내며 구원의 사건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도록 돕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 삶은 과거의 일을 기억하며 지금 열심히 살아서 다가올 종말을 향해 신앙의 여정이기에, 부활 시기에도 주님 고통과 죽음을 묵상하고, 사순 시기에도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 자매님이야 제게 물어봐서 해결되었지만, 많은 분이 모두 사순 시기에만 십자가의 길을 해야 한다는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앎이란 정말로 중요합니다. 자기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반대편에 있었던 사람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바로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은 전혀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자기들의 관습만이 옳다면서 하느님의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님인데, 그들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음식을 먹는다면서 죄인 취급을 합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양과 은전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비유 말씀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과 되찾은 뒤에 이루어지는 기쁨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이렇게 죄인 한 사람의 회개를 크게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인간의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으니 심지어 하느님을 단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앎은 과연 어떤가요? 하느님의 사랑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 사랑에 반대되는 말만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께서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잔치를 벌인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겸손의 마음으로 사랑에 집중하면 하느님 나라에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내일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자정이 되면 내일은 매우 깨끗한 상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매우 완벽한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와 우리 손으로 들어온다. 내일은 우리가 어제에서 뭔가 배웠기를 희망한다(존 웨인).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카 15,10)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스스로
인간의 죄를 입으셨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옷을 입었네.
그러므로
우리의 회개는
하늘에 계시는
모든 이들의
간절한 기다림이요
기쁨이라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3,3-8ㄱ
형제 여러분, 3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4 하기야 나에게도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있기는 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적인 것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5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7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10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