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식물 이름들은 언제 누가 붙였을까 ?대학 시절 우연한 기회에 식물생태학 전공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한 적이 있다. 주로 교수님의 강의준비나 대학원생들의 논문연구를 위한 허드렛일을 돕는 것이었다. 어느 날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대학원 선배를 따라 경기도 천마산으로 처음 식물조사를 나갔을 때의 일이다. 줄자로 일정 면적을 정해서 그 안에 있는 식물 전부를 조사하는 것이었는데 식물이름을 숫자와 같이 불러주면 야장수첩에 적는 일이었다. 불편한 자세로 앉아서 하자니 힘도 들고 끝도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점현호색, 앉은부채, 노루귀, 산자고, 노린재나무....", 정말 한 종도 빼놓지 않고 일일이 이름을 알고 있는 그 선배를 보면서 존경심과 경외감마저 느꼈다.
조사 중에 이름을 잘 모르거나 애매한 종이 발견되면 조심스럽게 채집해 연구실에 돌아와 도감을 뒤져가며 식물을 동정(생물의 분류학상의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했고, 표본을 만들기 위해 신문지 사이에 식물을 펴서 눌러 놓는 작업까지 끝내면 새벽이 됐던 기억이 난다. 피곤함을 모르던 때였던 것 같다.
당시 식물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성경처럼 보던 도감이 이창복 교수가 쓴 '대한식물도감'이다. 이 도감은 약 1000 페이지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인데, 페이지마다 4종의 식물에 대한 설명이 흑백그림과 함께 빼곡히 채워져 있고, 4000여종이 넘는 서로 다른 이름들이 식물마다 붙여져 있다. 며느리배꼽, 도둑놈의갈고리, 개불알꽃, 붉은참반디... 참 다양하고, 독특한 이름을 누가 언제부터 기록해 부르기 시작했는지 궁금해 했던 적이 있다. 교수님께는 여쭈어볼 엄두가 나질 않았고, 그 선배에게 물어봐도 대충 이야기 해주거나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았다. 인터넷도 없고, 정보의 공유가 워낙 느렸던 때라 과학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 이해된다.
최근 우리나라 식물 이름의 유래에 대한 논쟁이 온라인을 달구고 있어 식물 이름에 대한 그때의 궁금증도 해결할 겸 당시의 문헌과 기록들을 찾아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식물의 이름에는 세계 공통으로 통용되는 학명과 나라마다 자국어로 쓰는 국명(일반명)이 있다. 학명은 라틴어로 표기하며 속명과 종명을 병기하는 이명법을 쓰는데 주로 학술적인 목적으로 쓰이며, 학술지 등에 최초로 유효 출판된 것에 우선권을 부여하므로 '국제식물명명규약'에 따라 한번 붙여진 학명은 변경이 불가능하다. 국명도 역시 유효 출판된 최초의 기록에 우선권을 부여하지만 가장 널리 부르는 이름을 채택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표준식물목록'으로 식물명(학명과 국명)을 관리하고 있으며, 하나의 학명에 복수의 국명이 있고, 그중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이름에 추천명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약 4200종의 식물이 자생하는데 학명은 대부분 19세기 이전 외국에서 보고된 학명이며, 이들 중 686종의 우리나라 특산식물의 학명은 일제시대 일본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에 의해 붙여졌다. 우리나라 특산종의 학명에 일본학자의 이름이 전부 붙어있다는 점, 특히 울릉도 특산 식물의 종명에 일본인이 독도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다케시마(竹島)에서 따온 'takesimana' 혹은 "takesimensis"를 전부 붙인 점 등은 분하고 원통할 따름이다. 나라에 힘이 없고, 국제적 흐름을 따르지 못한 당시의 위정자들은 그래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일본에서는 벌써 1784년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툰베르기(Carl Peter Thunberg)에 의해 '일본식물지(Flora Japonica)'가 발행되었는데 이때 일본 고유종에 대한 학명의 종소명으로 일본을 의미하는 'japonica'를 많이 붙였다. 그래서인지 툰베르기를 '일본의 린네'로 칭송하고 있다. 또 1900년대 초반 마키노 도미타로(牧野富太郞)가 600여 신종이 담긴 4권 분량의 '대일본식물지'를 발행하면서 세계적인 대학자가 된다. 특히 그가 발행한 '마키노일본식물도감(牧野日本植物図鑑)'은 1940년 발행이후 최근까지 60판이 넘게 재발행되는 등 세계적인 명저로 꼽힌다. 그런 연유로 인해 우리나라 식물이름에는 Thunb., Nakai 혹은 Makino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꽃 이름조차 우리가 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국명(일반명)으로 쓰는 식물 이름은 과연 누가 언제부터 붙여준 것들일까? 현재 우리가 부르는 우리나라 식물이름의 기준이 되는 문헌은 1937년 정태현, 도봉섭, 이덕봉, 이휘재가 저술한 '조선식물향명집'과 1949년 정태현, 도봉섭, 심학진이 새로 약 1000여종을 추가해 발간한 '조선식물명집 I, II'을 들 수 있다.
이들 문헌에는 작약, 삽주, 반하, 삼백초와 같이 '동의보감', '제중신편', '향약채취월령' 등에 기록된 생약명과 당시 많이 부르는 이름들을 채록하여 표준명으로, 지역별로 다르게 불리던 지방명이 종합 정리돼 있다. 이름이 없었던 식물들은 저자들이 중심이 된 조선박물연구회 식물부에서 새로 정해 기록했다. 당시 우리나라의 식물학자들은 대부분 일본 유학을 했거나 수원고농(서울대 농대의 전신) 등에서 일본인 교수로부터 교육을 받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새로 붙인 식물이름 일부에는 일본이름을 우리말로 바꾼 것으로 보이는 것도 있다. 이를 두고 당시 우리식물 이름들이 '창씨개명'됐다고 분개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본이름 '오오이누부구리(おおいぬぶぐり)'를 직역하여 국명을 붙인 큰개불알풀. / 페이스북 동호회 ‘야생화를사랑하는사람들’의 양남희 제공
▲일본이름 ‘마마코노시리누구이(의붓자식밑씻개·繼子の尻拭い)’에서 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며느리밑씻개. / 페이스북 동호회 ‘야생화를사랑하는사람들’ 최동기 제공
일부 식물이름을 붙인 과정에 대한 아쉬움은 공감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어떻게 이런 책이 발행될 수 있었는지 의아해질 정도다.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 결성 이후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일제에 의한 한글사용에 대한 감시와 검열도 심할 때였으며, 이외에도 여러 가지 사정들을 고려해볼 때 저자들의 노고와 고민을 지금의 우리가 폄훼하는 것은 삼가해야할 일이다.
이 책이 발간된 1937년은 일본에 의해 중일전쟁이 개전된 시점으로 내선일체를 주창하며 민족말살정책을 펴던 시기임을 생각해본다면 한글로 된 우리나라 식물이름에 대한 자료를 발간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937년 이책의 저자 중의 한분인 이덕봉 선생이 잡지 '한글'에 기고한 '조선산 식물의 조선명고'를 읽어보면 당시 '조선식물향명집'에 기록한 식물들의 이름을 어찌 붙이게 되었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우리나라 식물 중 가장 많은 종류를 차지하는 국화과 식물의 종류를 나열하고, 이름을 붙인 근거문헌과 출처를 밝혀두었으며, 지방마다 다르게 부르는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 중 가장 많이 쓰이는 이름을 추천명으로 표시했다. 이 논문 구성의 단순함과 표현의 조심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이덕봉 선생님의 불안한 심정이 눈물겹도록 행간에서 비춰진다. 논문의 범례를 제외한 본문에는 완성된 문장이 없다. 그러면서도 내용전달은 충분하며, '조선식물향명집' 저자들의 노고가 8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느껴질 정도다.
최근 등산과 같은 야외활동 인구가 증가하고, 휴대폰으로 찍은 야생화사진을 SNS로 공유하거나 사진동호회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우리 꽃과 나무의 이름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아졌다. 인터넷이나 SNS을 통해 확인되는 야생화동호회 자료들을 보면 그 전문성과 열정이 대단한 경우가 많다. 꽃과 식물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커진 만큼 이름과 정보를 정확히 알릴 필요가 있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이엽우피소는 식물이름이 아니라 박주가리과의 넓은잎큰조롱이라는 식물의 뿌리를 부르는 말이다. 미국자리공의 뿌리를 도라지로 착각하고 먹은 사람 중에는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몇몇 투구꽃 종류의 뿌리나 새싹은 초오, 부자라는 생약으로 쓰이지만 진하게 달이면 옛날 사약으로 쓰던 맹독성 추출물이 된다. 그래서 사람이름 뿐만 아니라 식물의 이름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중요하다.
필진 서효원 박사는 건국대 식물학 박사로 네덜란드 와게닝겐UR 국제식물연구소 방문연구원과 북극다산과학기지 하계연구단 고등식물연구책임자로 역임한 바 있습니다. 건국대, 강원대, 강릉대 강사를 지낸 서효원님은 현재 농촌진흥청장 비서관으로 한국원예학회, 한국식물생명공학회, 도시농업연구회 이사를 겸임하고 있으며 한국식물학회, 한국육종학회 정회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