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내 '전직 운동권'출신들의 못 말리는 '나르시시즘' : 제왕논객으로 자리해서 한나라당 단결을 철저하게 저해하나? -[웃찾사] "우리아빠를소개합니다"의 옛날 도취 정주리 스타일에서 웃을 수 있는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
"전직 운동권 출신으로"
"전에 민주화(민족해방)운동했다는 사람으로서"
"예전에 반독재운동 했던 사람으로서"
번번이 우파 주장은 '나르시시즘' 팔아먹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 이러한 나르시시즘을 장착한 제왕논객이 우파 단결을 막고 있다. 나르시시즘을 장착한 제왕논객은 웃찾사 우리아빠를 소개합니다의 '정주리'가 2006년의 관객에게 "손지창과 오연수가 결혼할 수도 있겠네?"하는 생각에 빠진 바와 같다고 여겨진다.
결코, '우익의 전통적 아젠다'로 회귀하는 입장이 아닌 차원에서, 나르시시즘 빠진 전직 운동권 어르신의 모습을 비판하려 한다.
[웃찾사] 우리 아빠를 소개합니다('누구야' 김범용 한지형의 최신 코너)에서 '정주리'가 손지창과 오연수가 결혼할 수 있다고 하는 정주리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보자. "제가 너무 느려 서요"라고 하는 바에서는 정주리의 1990년대 초반과 2006년의 시간감각이 고도로 헷갈리게 섞이는 측면이 틀림없이 정확하게 맞다는 직관적 확신이 자리하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손지창과 오연수가 결혼한 지 10년 넘게 지났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서, 손지창이란 [마지막 승부]의 영웅과 [춤추는 가얏고]로 데뷔한 청순한 오연수의 결혼이란 20대에 기억이 멈춰진 정주리가 충돌하는 게 왜 웃음을 가져다 주나?
[웃찾사]의 관객들은 정주리의 기막히게 '느린'직관적 확신이 '의미'를 창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연예인에 일찌감치 20대에 '필'이 꽃혀서 강산이 바뀌어도 모르는 나르시시즘과, 젊은날의 '사회운동'에 '필'이 꽃혀서 '좌익인기'가 추락함과 동시에 '우익봉사'하고 있다는 '자기자각'도 잊어버리게 되는 나르시시즘이 도대체 뭐가 다른 것인가?
마땅히, 청춘스타로서 '똥값'으로 전락하여 '조연'으로 변신함을 서서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될 '손지창'과, 청순 처녀 역에서 아줌마(노처녀-초딩 아이 둔 어머니) 전문 배우역으로 변신한 '오연수'를 이야기해야 하듯이,
전직 운동권이란 '나르시시즘' 말할 차례에서 자기를 죽이고서 드러나는 사회상에 대하여 있는 그 자체로서 드러내며, 한나라당의 적대 정당들이 무너지도록 경계선을 효과적으로 긋고 대결하도록 말했어야 한다.
열린당과 싸우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보수 세력 과거를 향해서 싸우던 시절'에 나르시시즘의 필이 딱 꽃혀 버리니, 이렇게 군중들을 욕망을 만들면 구체적 변화의 열정이 가능할까?
예전에 뭐 했나가 나쁜 게 아니라,
이 판국에 우익 운동 하면서 [웃찾사] 정주리 개그 할려나 싶을만큼의 생뚱맞은 나르시시즘이 나쁜 것이다.
요새, 좌경 철학 대학생들은 마르크스를 넘어선 지 오래다. 질 들뢰즈에 빠져 있다. 들뢰즈가 가타리를 만나기 전에 좌파 혁명기조의 발생 가능성에 대하여 탐구하던 [의미의 논리](한길사)를 생각해 보자.
[웃찾사] 정주리식 나르시시즘에 빠진 주체의 '명명법'이 사회와 사물을 구분하지 않는다. 사르트르 이후 철학세대인 프랑스 좌익 사상가 들뢰즈는, 사르트식 주체성을 가져다주는 [웃찾사] 정주리식 나르시시즘을 철저하게 공격한다. 의미는 사물의 배치와 계열화에 따라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대선 구도'에서 박근혜 이명박 연대론을 내세운다. 그리고, 손학규마저도 국가안보를 미세하게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대선전에서는 우파의 이름으로 감싸주려는 이들 조차도 있다.
손학규가 우파로서의 의미를 받을 수 있음은 손학규의 자기 자각성에도 불구하고, '반 한나라당 연합전선'의 '적'이 된다는 배치 속에서 의미가 솟아나는 것이다. 이명박 전 시장에는 '최장집'에 대하여 '동지적 관계'를 구체적으로 청산하여 '적'이 되는 주장을 하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반 한나라당 연합전선'에 구체적 '악마'로서 열린당에 인식되는 것이, 우파라는 의미를 부여 받는 것이다.
서울대 철학과 출신일지라도 김대중에 컨텐츠가 없으며 아무 생각 없다는 비난을 많이 들었지만,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식 사고를 가장 실전 정치에 적용한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의 우익 언사를 하면서, 1989년 이전의 논리로서 나르시시즘에 빠지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 지를 철학적인 현학 개념 없이도 상당히 인식했다. 그렇다고, 지지자들을 모으기 위해서 '과거의 기억'을 상기하는 일을 멈출 수도 없다. 늘, 그래서 <과도하게 두리뭉수리하게> 짧게 짤막하게 하고서는 일년 내내 "나르시시즘"적 도취를 최대한 억제한다.
20대에서 좌파책을 안심하고 공부해도 된다는 바로 분위기 만드는 바에서, 결코 사회가 망가져도 책임을 전가만 할 뿐 책임을 지는 어떠한 구체 방안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망과 반감이 들지만, 훗날에 쓰여질 '정치학사'에서는 '입지'를 위해서 자신의 속내와 많이 맞아 들어가지 않는 정당에 들어와서의 행동에서의 '에이 학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물론, '고건' 불꽃이 조기에 화르르 사라지게 되는 일이 되겠지만 '고건'이 좌파 지지자 심리를 얻으려 했다면, 한나라당 공격에 선봉장이 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우익 대통령'으로서의 에이학점은 아니다. 자신의 속내의 코드와 다른 정당에 들어와서, 다른 정당 지지자들을 '자기 식'으로 길들이는 바에서의 '에이학점'인 것이다. 김종필의 디제이피 연합과 고건의 열린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줄타기에서, 벤치 마킹 대상은 '김영삼대통령'이다. 說로 도는 '노명박' 논리에서도 벤치 마킹 대상은 '김영삼 대통령이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의 성공은 박정희 대통령의 좌파 서적 이념 통제 기반을 이용한 '사기극'에 가까웠으며, 후발 주자 성공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한나라당의 극도의 정체성 혼란은 '한나라당 내부에 우익적 가치'를 투쟁 속에 전선이 생기고, 그러한 과정에서 고정되는 것 없이 떠나니게 된다는 식의 좌경 철학을 우익정당에 적용한 '개혁보수' 이데올로기의 파탄 때문에 기인한 바가 크다.
위장 우익(좌파정당에 눈치 봤던 본래 코드가 우익)과 위장 좌익(우파 정당에 눈치 봤던 본래 코드가 좌익)이란 말이 돌 수 있음은, 하나님의 존재같이 명확하게 나뉘어지는 '원리'로서의 '우익'과 '원리'로서의 좌익의 구분을 인정하는 바이다.
일단, 나르시시즘은 한나라당 대선 승리하고서 '제왕적 논객' 자리 은퇴하고 마음껏 각자의 공간에서 했으면 한다.
지금 현재의 초점은 1987년 체제를 가능하게 한 <역사적으로 형성하게 된 권력 블럭>의 해체와 다른 것으로의 교체이다. 그렇다면, 1987년 체제를 형성하게 했던 자기는 잊어야 하는 것 아닌가?
좀, 토끼처럼 영리하고 꾀돌이가 되고서 나르시시즘은 나중으로 미루는 게 그토록 어려운가?
[군더더기]
논객 으로 활동하는 이들 중에 '아주 드문' 문학인으로서 소설가 오정인씨의 운동권 지식은 남 앞에서 가르칠 만한 수준이 전혀 되지 못한다. [독립신문]의 오늘의 글이 옳다 그르다 비판은 하지 않겠다. 박근혜와 이명박 둘 중에서 행동으로 꾸준히 자기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것은, 정치인의 몫이다.
그러나, 소설가 오정인의 생뚱맞은 엽기적 지식 결여는 지적하고 싶다.
논객으로 글을 대단히 많이 쓰는 분 중에서 '좌익'에 대하여 지식이 거의 없는 분들이 많다. 그만큼, 좌파에 반박이 나오지 않는 상태와 우익 내부는 경로우대식 침묵에 빠진 공간을 즐기는 자가 많다.
요즘의 7차 교육과정은 '문학'을 최종 목적으로 하지 않고 '독서'를 궁극 목적으로 하고 있다.
소설가 오정인이 '이명박'이 엔엘계열이라는 지적이 생뚱 맞다.
고려대 운동권 중에서 '피디계열'이 왜 없는가?
고려대 6.3 은 [6.3 학생운동사]의 대자보 상으로서 주체사상 공부 흔적이 전혀 없다. 서울대 엔엘이 주체사상 공부흔적이 노골적이다.
엔엘과 피디 구분법으로서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과 '신식민지 국가독점 자본주의론'의 구분은, 민청학련 사건 이후의 좌파 학계에서 발생한 개념이다. 이명박 운동권 시대는 엔엘과 피디가 미분화된 상태이다. 무림과 학림이란 엔엘과 피디의 원조의 맹아가 민청학련 이후의 좌파 학계에서 솟아났지만, 역사가의 눈에는 6.3 동지회가 펴낸 [6.3 학생운동사]만으로 넉넉히 판정이 가능하다.
엔엘과 피디계열을 칼로 무자르듯이 별개로 보는 소설가 오정인은, 김영삼 정부의 '잘못되어서 틀려 먹게 된' 90년대 판 반공서적에 기초한다.
피디계열 대모 강금실은 송두율을 감싼다.
김영삼정부는 국민을 기만했는데 피디계열이 깨끗하다는 바이다.
이명박이 부정하다며 꼭 엔엘로 모는 바는 좌익 공부의 등한시이다.
피디계열 이론가로 1980년대에 20대에 전국적으로 휩쓸었다고 자랑하는 이진경교수(본명 박태호)의 경우에는, 최근 저작이 '김대중의 3단계 통일안'의 철학적 번안에 가깝다는 것이 의미있게 드러난다.
지금 친북좌익의 '한 마당'을 자리하게 했던 오세훈의 경우도 명백히 '피디계열'이다.
김영삼은 국민을 속였다. 주체사상을 비판하는 피디계열이 깨끗하다고.
90년대 김영삼 집권기 때 분명히 기억난다.
소설가 오정인은 [웃찾사] 정주리식 나르시시즘 가지지 말고서, 피디계열 대모 강금실이가 송두율 감싼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주체사상을 가지지만 않으면 좌경철학도 된다는 가닥이, 입지 강화를 위해서 우익 정당에 온 좌경인물들의 입지강화용 거짓말이었고,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흐리게 했음을 알아야 한다.
소설가 오정인씨.
식민지 반봉건사회론과 신식민지 국가 독점 자본주의론의 구분을 할 줄 아세요?
고려대 6.3은 신식민지 국가 독점 자본주의론 기반에서 6.3 회담을 반제 사상으로 반대했다는 대자보가 명확합니다.
서울대 6.3이 식민지 반봉건사회론 기반입니다.
엔엘과 피디 구분의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해서 아는지 궁금합니다.
그 구분이 결국은 의미 없이 '강금실'이나 '노무현'이나로 빠진 차원을 알아야 하는, 김영삼의 거짓말도 사랑하는 나르시시즘 탈피는 두번째로
나르시시즘이 꺼진 사람은 '전향'입니다. 글의 핵심을 보셨으면 합니다. '나르시시즘'이 남아 있는 한 '비전향'입니다. 되돌아갈 수 있죠. 종교에 입문할 때에도, 과거의 자기를 벗어두라고 하죠. 우익의 '입'의 대부분은 전직 좌경 아닌가요? <비겁한 우익>과 <위장된 좌익>이란 피장파장의 오류는 넘어서서,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오늘 이 시점에서 '새 청춘'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 과거의 자기 것들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는 열린 인식 없이는, 결코 새 역사를 만들 수가 없죠. 운동권 과거 경력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나르시시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난 요즘들어 운동권 출신 의원 가만이보면 다들 믿음이 안갑니다,정치인은 책임이 따르는건데 뭐하나 책임지는 자새가 안보입니다,툭 하면 남탓, 예전 탓만 합니다. 운동권 출신들 보면 잔머리만 너무 잘 굴리는것 같어 소글퍼 집니다.본인이하면 정책이고 남이하면 헐뜯기나하고,.한나당에더 이런 의원들 4~5명 있읍니다.뭉쳐서 대선 이길 생각은 안하고 ,탓만합니다 자기의 의견이 좋다고하하고,,이래가지고 뭐하겠읍니까.밖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겁니다.재발 적이 좋아할일은 하지 말아주세요 ..
첫댓글 운동권의 피는 못속입니다. 언젠가는 돌아설 사람들이죠.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나르시시즘이 꺼진 사람은 '전향'입니다. 글의 핵심을 보셨으면 합니다. '나르시시즘'이 남아 있는 한 '비전향'입니다. 되돌아갈 수 있죠. 종교에 입문할 때에도, 과거의 자기를 벗어두라고 하죠. 우익의 '입'의 대부분은 전직 좌경 아닌가요? <비겁한 우익>과 <위장된 좌익>이란 피장파장의 오류는 넘어서서, 지적하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오늘 이 시점에서 '새 청춘'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 과거의 자기 것들을 무효화시킬 수 있다는 열린 인식 없이는, 결코 새 역사를 만들 수가 없죠. 운동권 과거 경력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나르시시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난 요즘들어 운동권 출신 의원 가만이보면 다들 믿음이 안갑니다,정치인은 책임이 따르는건데 뭐하나 책임지는 자새가 안보입니다,툭 하면 남탓, 예전 탓만 합니다. 운동권 출신들 보면 잔머리만 너무 잘 굴리는것 같어 소글퍼 집니다.본인이하면 정책이고 남이하면 헐뜯기나하고,.한나당에더 이런 의원들 4~5명 있읍니다.뭉쳐서 대선 이길 생각은 안하고 ,탓만합니다 자기의 의견이 좋다고하하고,,이래가지고 뭐하겠읍니까.밖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겁니다.재발 적이 좋아할일은 하지 말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