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4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한 목적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일명 시내산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장도(長途)를 내딛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반역을 하는 등 하나님의 영광과 이적을 보고서도 열 번이나 시험하고 불순종하였습니다.
언약의 한 편 당사자인 이스라엘은 불의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실 수 없어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맺은 언약을 깨트리지 않으시고 모압 땅에서 그들과 다시 언약을 갱신하셨습니다.
(신 29:1)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모압 땅에서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은 이러하니라.
하지만 이들은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쉐마하지 않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서자마자 가나안의 대표적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에게 추풍낙엽처럼 우수수 다 넘어지고 맙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넌 여호수아와 함께 다시 한 번 세겜 언약으로 갱신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은 가없으십니다.
나 또한 순간순간 주님의 은혜를 벗어나 내 맘과 뜻대로 행하려는 이스라엘임을 고백합니다.
나를 주의 공의로 심판하사 주의 거룩으로 인도하소서.
내가 죽어야 새로이 거듭날 수 있사오니 나를 주의 무덤으로 이끄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오늘부터 열리는 일본 성서학원 복음생명세미나 위에 성령으로 기름부어 주옵소서.
비록 몇 명 되지 않는 소수이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숫자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사오니 그 소수가 일본의 영적 지도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일꾼들이 되게 하소서.
말씀으로 섬기는 이들과 듣는 이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3:13-27
제목 : 여호와의 말씀이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
16 그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18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19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20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21 모압의 모든 사람은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서 있더라.
22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23 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24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 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26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력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 찬 군사 700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27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 나의 묵상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 여호람을 대할 때 굉장히 냉담하게 대한다.
왜냐하면 그가 비록 그의 부친이 섬기던 바알의 우상을 제거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살아 있어서 우상을 섬기고 있으며 그 선지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말은 나와 당신 사이에 공통적으로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여호람은 우상숭배자이고 나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공통점이 전혀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엘리사는 여호람더러 당신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섬기는 신에게로 가서 그 선지자들에게 물으라고 하는 것이다.
엘리사는 여호람에게 말하기를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라고 한다.
유다 왕 여호사밧은 여호와 하나님과 평소에 아주 친밀한 관계이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쉐마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람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살기에 엘리사가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지만, 여호사밧의 얼굴을 봐서 들어준다고 한다.
이어서 엘리사는 세 왕에게 말하기를 거문고(현악기) 탈 자를 데려오라고 한다.
엘리사는 왜 뜬금없이 거문고 타는 사람을 데려오라고 했을까?
거문고 자체에 무슨 능력이 있다거나, 아니면 거문고를 탈 때 성령의 능력을 공급 받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지금 엘리사는 굉장히 흥분한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전혀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여호람이 와서 신탁을 요구하는 것에 대하여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마음이 상당히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에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또 한 가지는 세 왕을 향한 시험의 차원이 있다.
그것은 연목구어, 즉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격이며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지금 상황에서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은 요구를 하지만, 세 왕이 엘리사의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지 안 듣는지, 즉 쉐마를 하는지 안 하는지에 대한 시험인 것이다.
마치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가루와 기름으로 마지막 떡을 만들어서 자기에게 먼저 가져오라고 하는 것이나, 엘리사가 가난하여 아들이 종으로 팔릴 위기에 있는 수넴 여인에게 그릇을 빌리되 그것도 많이 빌려 오라고 하는 것과 흡사하다.
도무지 현재의 상황과 전혀 무관한 명령으로서 순종하기에 결코 쉽지 않은 명령이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을 때 순종할 수 있지만, 그저 단순히 사람의 말로 듣게 되면 순종하기가 어려워진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가 얼마나 겸손히 낮아지느냐를 말하는 것이다.
제사는 외식적으로도 얼마든지 행할 수 있다.
하지만 순종은 그렇지 않다.
즉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말씀에 쉐마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엘리사의 기상천외한 요구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이곳 골짜기에 작은 개천을 많이 파라는 것이었다.
군사들이 많이 있으니까 개천을 파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왕들이 이러한 명령에 이성적으로 수긍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지금 물이 없어서 군사들과 짐승들이 죽어갈 판인데, 작은 개천을 파라니 이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이다.
그러나 엘리사는 세 왕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전한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순종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순종은 하기 쉬운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이성에 맞지 않아도 행하는 것이 순종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쉐마를 요구하셨다.
쉐마하여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물게 되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된다고 하신다(출 19:5).
그러나 그들은 끊임없이 계명을 어기며 쉐마하지 않았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보내신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히 8:9b)...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시내산 언약에서 모압 언약으로, 모압 언약에서 세겜 언약으로 계속 언약을 갱신하시면서 그들을 언약 백성 삼으셨다.
사람들은 불의하나 하나님은 불의하실 수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처럼 언약을 갱신하시면서 까지 그들을 언약 안에 머물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불의한 백성들은 끝까지 쉐마하지 않으므로 해서 결국 바벨론에 넘기셨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내시는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새 언약을 약속하신다.
그리고 이제는 내 법을 그들 안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새기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이제 누가 누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법 곧 성령을 통해서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각각 하나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야다’로써 사귐과 교제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속에 새겨주신 법, 즉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 새 언약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다.
(눅 22:20)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새 언약 안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고후 6:16)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성전은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자리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이런 언약 안에 거하는 새 언약 백성은 새로운 언약 공식이 적용된다.
(고후 6: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언약 안에서 순종, 즉 쉐마하는 것은 이처럼 중요하다.
여호람을 비롯한 세 왕은 엘리사의 명령에 순종하여 거문고 탈 자를 데려오고, 또한 군사들을 시켜 작은 개천을 파게 한다.
다음날 아침 그들의 순종의 결과가 나타난다.
모압 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스라엘 연합군이 있는 쪽을 바라보니까 온통 핏빛이다.
이것은 밤새 파놓은 개천에 햇빛이 비쳐서 마치 핏빛처럼 보인 것이다.
그러면 그 파놓은 개천에 언제 물이 채워졌단 말인가?
물이 없어서 모두 죽을 판인데 물은 도대체 어디서 왔단 말인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들이 개천을 파고 있을 때 에돔 남쪽에서 큰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 빗물이 강을 이루어 파놓은 개천을 가득 채운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 상상을 초월한다.
전쟁에서 군사들에게 물은 생명이다.
그런데 출정 7일 만에 물이 없어서 위기 상황을 맞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쉐마하므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이다.
결국 물이 떨어지게 만드신 것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머무르면 위기와 고난이 와도 그곳이 가장 안전한 자리이다.
순종이 불가능한 자리에서 순종할 때, 그곳에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한다.
그 영광 앞에 사람들은 겸손해지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를 새 언약의 백성, 새 언약의 자녀로 삼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언약 안에 있기에 내게 닥치는 환난이 두렵지 않습니다.
어떠한 고난이나 환난의 태풍이 올지라도 나는 가장 안전합니다.
그 자리는 바로 주님의 품속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입애굽을 하는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었지만, 그는 항상 주님의 품속에 있었기에 가장 안전하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를 해치려는 형들까지도 안전한 길을 걸을 수 있었나이다.
한 사람의 순종은 주변의 모든 사람을 생명으로 이끄나이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요셉이 그러했으며 여호사밧이 그랬습니다.
오늘 제가 바로 그런 순종쟁이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원하며, 오늘 제 안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나의 순종이, 하나님을 향한 쉐마가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또한 내 주변을 안전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