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 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은 월요복생반 모임이 있습니다.
새로운 반원을 두 명이나 더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함께 생명의 길을 갈 때 서로 격려하며 기쁨으로 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아들의 이름을 힙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로 덮어 정결케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 하니라
14.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
16. 그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18.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19.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20.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21. 모압의 모든 사람은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서 있더라
22.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23. 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24.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 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26.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27.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본문 주해)
13~14절 : 세 왕이 엘리사를 찾아온다.
엘리사가 북이스라엘 여호람에게 ‘당신 부모가 섬기는 우상의 선지자나 찾아가라’고 빈정거리며 냉대를 한다.
여호람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모압의 손에 넘기려고 한다’고 한다. 그는 자기 멋대로 전쟁하려고 하면서 여호와를 들먹이고 있었다.
그때 엘리사는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아니라면, 여호람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면박을 준다.
그런데 엘리사가 여호사밧의 얼굴을 보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주겠다고 한다.
여호사밧은 선한 왕으로 분류되지만,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우상숭배를 한 아합을 돕고, 그와 결혼동맹을 맺음으로 남유다가 마음 놓고 우상 숭배하도록 길을 열었다. 또 무역을 위해 아하시야와 결탁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상숭배하는 두 나라의 왕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은 채 모압 원정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엘리사가 ‘여호사밧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여호사밧 그 개인의 경건과 신앙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는 그 언약, 바로 남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 때문인 것이다.
15~19절 : 엘리사가 거문고 탈자를 불러 오라고 하는 것은 음악으로 분위기 고조하여 예언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엘리사를 찾아온 세 왕은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해결하려고 선지자를 찾은 것이다..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물이 없어서 다 죽을 지경이 되었으니, 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만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엘리사는 여호와를 찬양하기 위하여 거문고 연주자를 부른 것이다.
그 응답은 ‘물을 주실 뿐만 아니라, 모압 사람도 그들의 손에 붙일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엘리사는 예언을 하기 시작하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계곡에 도랑을 많이 파라.'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바람이 부는 것도 보지 못하고, 비가 내리는 것도 보지 못하겠지만, 이 계곡은 물로 가득 찰 것이며, 너희와 너희의 가축과 짐승이 마시게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런 일쯤은 주님께서 보시기에는 너무나 가벼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모압을 임금님들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임금님들께서는 요새화된 모든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실 것이고, 모든 좋은 나무를 쓰러뜨리며, 물이 솟는 모든 샘을 막을 것이며, 모든 옥토를 돌짝밭으로 만드실 것입니다."”(16~19절, 새번역)
20~25절 : 세 개국 연합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모암 왕 메사가 전 국민 소집령을 내리고 방어하기 위하여 그 경계에 선 것이다.
그런데 아침에 모압 사람들이 적의 진영을 보니 개천에 물이 가득한 것이 햇볕에 반사되었는데, 그것이 모압 사람들 보기엔 피처럼 보였던 것이다. 연합군들과 짐승은 그 물을 마시고 살게 되었는데 모압 사람들에게는 연합군이 서로 싸워 피가 그득하게 흘린 것으로 보인 것이다.
그래서 모압은 약탈하러 가자고 달려들게 된다. 전쟁하기 위하여 가는 것아 아니라 약탈하러 간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적의 진영에 도착하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는 이들에게 공격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연합군이 모압을 치면서 19절의 말씀대로 이루어가고 있는 것을 25절에서 말씀한다.
26~27절 : 이제 곧 적들은 다 섬멸될 것인데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모압 왕이 아무리 봐도 이길 수 없음을 보고 칼을 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연합군을 돌파하여 도망가려고 한다. 연합군 중에 에돔 왕이 가장 약하니 그곳으로 돌파하여 가려고 해도 이미 전세는 기울어졌기에 불가능했다.
“그래서 모압 왕은, 자기를 대신하여 왕이 될 장자를 죽여, 성벽 위에서 번제로 드렸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크게 당황하여, 그 곳을 버리고 고국으로 돌아갔다.”(27절, 새번역)
그러자 모압 왕 메사는 자기 왕위를 이을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 것이다.
연합군들이 이 인신 제사를 드리는 것을 보고 질려버려 각각 고국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연합군은 메사의 지극정성에 놀라서 다 이긴 전쟁인데도 전의를 상실하여 돌아가 버린 것이다.
(나의 묵상)
두 가지를 묵상한다.
첫째, 엘리사가 여호사밧의 얼굴을 봐서 기도해 주고, 예언도 한다는 내용이다.
나는 어제 묵상에서 선한 왕 여호사밧에 대한 아쉬움을 늘어놓았었다.
그것을 통해 부족한 여호사밧, 더 부족한 나의 믿음을 점검하며, 그 부족함을 하나님 앞에 들키는 은혜에 대해 묵상했었다.
그런데 오늘 엘리사가, 여호람은 아예 대하기도 싫은 인간이지만 여호사밧 때문에 기도하고 예언해 준다고 하니 약간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이장우 목사님 주해에 그것은 연약한 인간의 개인 신앙과 경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 언약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의문이 풀리고 속이 시원하다.
믿음 좋은 여호사밧을 감히 나같은 존재가 어쩌구저쩌구 한 것이 아주 미안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호사밧은 그저 다윗 언약 가운데 있는 남유다의 왕이었다.
더 나아가 유대인들이 그렇게 존경하고, 지금 우리도 성경의 인물 중 위대한 자로 꼽는 다윗 역시 간음하고 살인한 자이니,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설 자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언약에 성실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남유다의 왕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끝까지 붙드시는 것이다.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는 그 언약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창세전 영생을 주신다는 그 약속이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이어져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악한 여호람이 전쟁을 치르고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여호사밧 덕분이 아니다.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 때문이다.
악한 내가 죄를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나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영원 전에 하신 그 약속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성령을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언약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누리게 된 영생의 은혜이다.
예수님 얼굴을 보아 내게 죄 없다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께 찬양을 올려드린다.
둘째, 전쟁의 미진한 승리에 대한 찝찝함이다.
“그러므로 임금님들께서는 요새화된 모든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실 것이고, 모든 좋은 나무를 쓰러뜨리며, 물이 솟는 모든 샘을 막을 것이며, 모든 옥토를 돌짝밭으로 만드실 것입니다.”(19절, 새번역)
엘리사가 예언한 내용이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이루어졌음을 25절에서 보인다.
“그들은 또 성읍들을 파괴하고, 옥토에는 모두 돌을 던져서, 돌로 가득 채웠다. 물이 나는 샘을 모두 메우고, 좋은 나무를 모두 쓰러뜨려서 길하레셋의 돌담만 남겼는데, 그 곳도 무릿매꾼들이 포위하고 공격하였다.”(25절, 새번역)
그런데 엉뚱한 대반전의 일이 일어난다.
모압의 메사왕이 자기 장자를 그모스 신에게 번제로 드리는 인신제사를 한 것이다.
아들을 인신제사로 드리는 것만큼 ‘인간의 정성’이 지극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 정성 앞에 연합군은 당황하고 사기가 떨어져 각각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것이 이긴 전쟁인지, 패한 전쟁인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이 어리버리한 결말의 전쟁이 되고 말았다.
엘리사의 예언대로 됨으로-성읍 파괴, 모든 좋은 나무를 쓰러뜨리고, 샘을 막고, 옥토를 돌짝밭으로- 적에게 상당한 피해를 주긴 했는데 끝장에 가서는 적의 기세에 눌려 흩어지고 말았으니 승리한 듯한데 패배한 모습 같기도 한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분명히 승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지만, 우상에게 바치는 지극 정성의 기세에 마음이 함몰되고 만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평소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들 역시 우상숭배의 종교성에 푹 젖어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바라지만 도저히 할 수 없는 그 일을 해내는 메사 왕의 종교성에 기가 죽어버린 것이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자들은 타고난 종교성, 특히 우상숭배와 관련된 인간의 종교성을 따르기 마련이다. 거기에 인간의 열성이 보태지면 엄청난 믿음의 소유자가 된 것인 양 스스로도 착각하고, 남들도 우러러보게 된다.
매일을 생생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때, 그 말씀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그 거짓을 구별할 수 있고, 그러한 것에 기죽지 않는 것이다. 오직 십자가를 붙들고, 풍요와 다산의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게 오히려 생명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것이다.
(묵상 기도)
영원전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에 죽게 하신 아들,
예수님 때문에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생명을 가진 자,
하나님 아버지와의 영원한 교제를 함으로 생명의 삶을 살아갑니다.
구원은 받았다고 하지만 흐지부지한 인생으로 끝내지 않도록
성령님을 보내셔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더 이상 종교성에 속거나 끌림을 받지 않도록,
십자가에 연합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