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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말하였다. "할 말이 있으면 해도 된다." 바울이 손을 뻗치고 변호하기 시작하였다.
26:2 "아그립바 임금님, 오늘 내가 전하 앞에서 유대 사람이 나를 걸어서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변호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26:3 그것은 특히 임금님께서 유대 사람의 풍속과 쟁점들을 모두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내 말을 끝까지 참으시고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26:4 내가 젊었을 때부터 살아온 삶을 모든 유대 사람이 알고 있습니다. 곧 그들은 내가 내 동족 가운데서,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처음부터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26:5 그들은 오래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으므로, 증언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들은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격한 파를 따라 바리새파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26:6 지금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서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26:7 우리 열두 지파는 밤낮으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전하, 나는 바로 이 소망 때문에 유대 사람에게 고발을 당한 것입니다.
26:8 여러분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을 살리신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일로 여기십니까?
26:9 사실, 나도 한때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반대하는 데에, 할 수 있는 온갖 일을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26:10 그래서 나는 그런 일을 예루살렘에서 하였습니다. 나는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었고, 그들이 죽임을 당할 때에 그 일에 찬동하였습니다.
26:11 그리고 회당마다 찾아가서, 여러 번 그들을 형벌하면서, 강제로 신앙을 부인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에 대한 분노가 극도에 다다랐으므로, 심지어 외국의 여러 도시에까지 박해의 손을 뻗쳤습니다."
26:12 "한번은 내가 이런 일로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과 위임을 받아 가지고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습니다.
26:13 임금님, 나는 길을 가다가, 한낮에 하늘에서부터 해보다 더 눈부신 빛이 나와 내 일행을 둘러 비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26:14 우리는 모두 땅에 엎어졌습니다. 그 때에 히브리 말로 나에게 '사울아, 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면, 너만 아플 뿐이다' 하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26:15 그래서 내가 '주님, 누구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주님께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이다.
26:16 자, 일어나서, 발을 딛고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목적은, 너를 일꾼으로 삼아서, 네가 나를 본 것과 내가 장차 네게 보여 줄 일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26:17 나는 이 백성과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너를 건져내어, 이방 사람들에게로 보낸다.
26:18 이것은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서, 그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고,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또 그들이 죄사함을 받아서 나에 대한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들게 하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 주해
1. 예루살렘에서 복음전파는 실패하고 유대인들의 오해는 깊어지지만 주님은 “용기를 내고 예루살렘에서 나를 증언했듯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한다”며 위로하며 격려하신다.
1) 벨릭스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 바울에게는 돈을 받을까 하여 그를 2년간 구금한다.
2) 베스도 총독이 부임하자 유대인들은 다시 바울을 고발하였고, 바울의 무죄를 알면서도 베스도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 예루살렘에 가서 공회와 자신 앞에서 재판을 받자고 한다.
3) 바울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가이사께 상소하였는데, 이것이 주님이 말씀대로 이끄시는 방법이었다.
2.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 앞에 바울을 세운다. 자신은 바울에게서 악행을 찾지 못하였고, 그가 예수가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 문제로 고발당하였다고 말한다.
1)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였기 때문에 바울을 죄수로 로마에 보내야 하는데, 그의 죄목을 제시하기 위하여 이 자리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2) 바울은 공의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중요시하는 벨릭스, 베스도 총독에 이어서 아그립바 왕 앞에 서게 된다.
3) 주님은 바울에게 소명을 주실 때에 임금들 앞에서 내 이름을 가지고 가는 택한 그릇이라는 부르심을 받았기에, 공정한 재판을 위한 변호와 함께 복음을 전한다.
3. 아그립바는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허락한다”고 하면서 선심을 쓰는 척 말한다.
1) 이미 베스도가 유대인들에게 고발당한 것은 종교 문제라고 하였으므로 바울은 정치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유대교와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변론한다.
2) 그는 먼저 아그립바에게 예를 갖추고 왕이 유대인들의 모든 관습과 시비를 잘 안다고 말하며 자기 말을 주의 깊게 들어줄 것을 바란다(3절).
4. 바울은 먼저 자기를 소개한다. 유대인들도 아는 것은 자신이 다소에서 태어난 소년 시절부터 예루살렘에서 자라면서 유대교의 가장 엄한 종파를 따라 바리새인으로 살았다(5절).
1) 바울은 자신이 왜 심문을 받는지를 밝히면서 아그립바와 베스도에게 복음을 전한다.
행 26:6 지금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서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행 26:7 우리 열두 지파는 밤낮으로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전하, 나는 바로 이 소망 때문에 유대 사람에게 고발을 당한 것입니다.
5.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재판을 받는다.
1)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음”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다(신 18:15; 삼하 7:12).
2)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성취는 12지파가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바라는 것이다.
3)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약속에 대한 소망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취하셨다(행 3:22-24). 바울은 이 소망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여 고발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4) 바울은 직접 “메시아”라는 말 대신에 선지자들에 의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것이라고 하면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그들에게 거슬리지 않게 말한다.
6.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직접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지를 묻는다.
행 26:8 여러분은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을 살리신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일로 여기십니까?
1) 아그립바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자극하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그분의 부활로 이스라엘의 소망은 성취되었는데도” 이 약속을 못 믿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한다.
2) 바울은 가는 곳마다 “구약 성경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구약 성경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였고, 예수가 그 약속대로 부활했음을 전하는 것이다.
3) 바울은 성경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함과 동시에, 지금까지 공회와 총독 앞에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여 왔기에, 아그립바 앞에서 자신이 증거한 부활은 성경대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임을 밝힌다.
7. 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지를 안타까워한 바울은, 자신도 예수님과 그의 부활을 믿지 못하여 기독교를 박해하였다고 하면서, 그들을 이해한다는 입장도 표현한다.
1) 바울도 이전에 나사렛 예수의 이름에 대항하는 일들을 많이 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9).
2) 그러면서 자신이 얼마나 극심하게 예수와 교회를 박해하였는지를 밝힌다.
행 26:10 그래서 나는 그런 일을 예루살렘에서 하였습니다. 나는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었고, 그들이 죽임을 당할 때에 그 일에 찬동하였습니다.
행 26:11 그리고 회당마다 찾아가서, 여러 번 그들을 형벌하면서, 강제로 신앙을 부인하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들에 대한 분노가 극도에 다다랐으므로, 심지어 외국의 여러 도시에까지 박해의 손을 뻗쳤습니다."
행 26:12 "한번은 내가 이런 일로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과 위임을 받아 가지고 다마스쿠스로 가고 있었습니다.
3) 바울은 자신을 고발하기 위하여 가이사랴까지 쫓아온 대제사장,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 않겠다고 맹세한 40명과 같은 열심을 가지고 기독교를 박해했었다.
8. 바울은 자신의 아픈 과거를 마음에 늘 간직하고 있었다.
1) 그는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죽임을 당할 때에 찬동하였다.
- 바울의 말을 통하여 스데반만 순교한 것이 아니라 여러(많은) 성도들이 순교를 하였고, 그 때마다 바울은 찬동한 것을 알 수 있다.
2) 그뿐만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각 지역마다 교회가 세워졌는데, 각 지역의 회당마다 찾아가서 여러 번 성도들에게 형벌을 가하였고, 강제로 신앙을 부인하게 하려고 하였었다.
- 형벌하다(티모레인)는 매질했다는 것을 말하고,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를 모독하도록 강요하였다.
9. 이런 박해를 하면서도 바울은 “성도들에 대한 분노가 극도에 달하여” 심지어 외국의 여러 도시에 가서 박해하기로 한다.
1) 바울의 목표는 다메섹에 가서 성도들을 잡아오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여러 도시를 가서 박해하는 것이었고, 그 첫 도시가 다메섹이었다.
2) 바울은 대제사장의 권한과 명령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다(12절).
10. 바울이 얼마나 흔들리지 않은 견고한 확신을 가지고 성도들을 박해했는지를 알 수 있다.
1) 바울은 결코 자신의 확신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여겼고, 극도에 달하는 분노로 인한 열심을 가지고 미친 듯이 교회와 성도들을 박해하였고, 그 일을 멈추지 않을 작정이었다.
2)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의 개입으로 바울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11. 부활의 주님이 바울을 찾아오심으로 말미암아, 바리새인인 바울은 자기 조상들과 바리새인이 가졌던 소망이 예수님의 부활로 이미 성취되었음을 알게 된다.
1)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중 한낮에 하늘에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바울과 그의 동행을 둘러 비추었다(13절).
2) 바울이 그 앞에 엎드러지자, 히브리 말로 음성이 들렸다.
행 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새번역]“사울아, 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면, 너만 아플 뿐이다”
12.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였는데, 주님은 바울에게 “나를 핍박했다”고 하신다.
1)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도들은 그 지체이기 때문에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은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것이다.
2) 그러면 핍박하는 자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그는 가시 돋친 채찍을 발길로 차는 자다.
- 주님은 교회를 박해하는 바울을 주인의 지시를 거부하느라 가시가 박힌 채찍을 발로 차면서 도리어 자기 몸에 상처를 입고 있는 어리석고 고집센 황소와 같다고 하신다.
3) 바울은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분노가 극에 달하여 핍박하러 가고 있다. 그런데 바울에게 핍박을 받고 계시는 주님은 “너만 아플 뿐이다, 네게 고생이다”라고 하신다.
4) 분노가 극에 달한 바울보다 더 극한 분노로 바울을 핍박하고 책망해야 하는데, 주님은 바울에게 “너만 아프게 하는 고생”이라면서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심으로 찾아오신다.
13. 바울은 “주님 누구십니까?”라고 물었고 주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라고 하시며 바울을 종과 증인으로 부르신다.
행 26:16 자, 일어나서, 발을 딛고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목적은, 너를 일꾼으로 삼아서, 네가 나를 본 것과 내가 장차 네게 보여 줄 일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1) 바울은 기독교에 대한 극도의 분노로 박해하려고 가는데, 주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면서 그에게 나타난 목적은 자신의 일꾼으로 삼아서 나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2) “네 발로 서라”라는 표현은 구약시대 예언자가 소명을 받을 때 사용되었다(겔 2:1).
14. 부활하신 주님은 전능하신 여호와다. 그에게는 극적인 간증자, 극적인 전도자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 학문이 뛰어나야 하고, 바리새인이고, 로마 시민이 필요한 분이 아니다.
1) 예수를 핍박하고, 예수에 대하여 극도의 분노에 달하여 그의 백성을 박해하는데 혈안이 된 바울을 부르시는 주님의 그 마음과 사랑과 뜻을 바울은 결코 알지 못한다.
2) 다만 바울이 아는 것은 주님이 자신 같은 죄인 중의 괴수, 교회의 훼방자와 핍박자인 자신을 “종과 증인”으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15.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면서 2가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1)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가 부활하신 주 하나님인 것과 그분이 자신에게 분노하며 나타나 진멸하는 대신에 자신을 “일꾼과 증인, 즉 구약으로 말하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선지자”로 부르셨다는 것이 충격이었을 것이다.
2) 그래서 바울은 다메섹에서부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증거하였다. 그리고 복음을 전할 때마다 죄인을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한다.
3) 로마서 5장 8-10절에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확증했다는 말씀과 로마서 8장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증거는 진리이면서 바울의 체험이기도 하다.
16.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울에게 구체적인 소명을 주신다.
행 26:17 나는 이 백성과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너를 건져내어, 이방 사람들에게로 보낸다.
행 26:18 이것은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서, 그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고,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며, 또 그들이 죄사함을 받아서 나에 대한 믿음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 들게 하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 주님은 먼저 바울의 눈을 열어 주셨다. 그래서 그를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얻게 하셨다.
2) 그리고 바울에게 사명을 주신다. “이스라엘과 이방 사람들의 눈을 열어 주어라.” 그래야 그들이 복음을 믿어 어둠에서 빛으로 돌아서고, 사탄의 세력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3) 그래서 바울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여 그들의 마음 눈을 열었고, 모든 성도들의 마음 눈이 열어지기를 기도하였다.
엡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7. 바울은 평생 다메섹에서 만난 주님을 잊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사도행전에서 이 사건을 3번이나 자세히 언급되고, 그의 말년에도 핍박자였던 자신을 고백하였다.
1) 전에 그가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던 것은, 믿지 아니할 때 알지 못하고 한 것이라고 고백하였다(딤전 1:13).
2) 주님은 주님께 분노가 극에 달한 자신에게 분노로 나타나지 않았고, 주님을 박해하는 자신에게 박해자로 나타나지 않으셨다. 도리어 그런 자신을 긍휼히 여기셨다.
3) 도리어 주님께서는 바울에게 은혜를 넘치게 부어 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믿음과 사랑을 누리게 하셨다(딤전 1:14).
4) 바울은 평생 그 복음과 그 사랑에 감격하였다. 그래서 만물의 찌꺼기 같고, 예루살렘에서 매 맞고 감옥에 갇히는 긴 여정에서도 변함없이 그리스도를 증거한다.
18.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그리고 모두 주님을 박해하는 자다.
1) 다윗의 고백처럼 주님께 죄를 짓기도 하고, 성도들을 괴롭게 함으로 주님을 괴롭게 한다.
2) 그런데 주님과 바울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래도 바울처럼 주님과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서 극도로 분노에 달하여, 많은 사람을 옥에 가두고 죽이는데 찬성하며 채찍질하며 강제로 주님을 모독하게 할 정도로 “반역하는 죄인”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신다.
3) 만약 그 보다 더 해도 주님은 “니가 나를 박해하느라 고생이 많다, 네가 더 아프단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긍휼과 사랑으로 찾아와 나의 일꾼과 증인이 되라고 하신다.
4) 하늘에 속한 복음과 이 놀라운 사랑이 감당하지 못할 죄인, 고집 센 인간은 없다.
- 가시 박힌 채찍을 발로 차면서 고집을 부리는 황소 같은 자, 바울 같이 고집이 세고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여도 주님의 복음과 사랑과 주권은 그를 새롭게 한다.
◈ 나의 묵상
너무나 유명한 다메섹 사건이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3번째 다메섹 사건이 나오고서야 내 마음이 찡하다. 주님이 바울을 찾아오신 사건이 나와 모든 성도들을 위한 복음임을 본다. 창조주요 여호와요 전능하신 주님이 바울을 찾아오신 것은 그가 헬라와 유대에 탁월한 지식인이거나 달변가이거나 바리새인이거나 열정이 많거나, 로마 시민이기 때문에 택한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바울은 탕자의 비유를 봤을 때, 일만달란트를 탕감받은 말씀을 들었을 때, 세리와 죄인의 친구이신 주님을 들었을 때.....그 모든 사랑과 용서와 긍휼과 자비를 들어도...자신을 찾아온 주님의 사랑이 더욱 크고 진하여서, 그런 비유나 예수님의 삶은 너무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탕자처럼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탕자는 너무 고상하다. 탕자는 아버지의 집을 무너뜨리려고 난봉꾼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집을 불태우지도 않았고, 아버지의 종들을 채찍질하거나 죽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바울 입장에서는 탕자는 자신보다 1000배나 더 나은 자다. 그런데, 자신이 받은 사랑은 탕자보다 더하다. 탕자는 아버지의 잔치에 참여하지만, 자신은 용납과 하나님의 잔치는 물론이고, 그 놀라운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가 가는 곳마다 부활의 주님이 역사하여 주셨다. 그러니, 탕자의 비유는 착한 죄인들을 주님이 사랑으로 만나 주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가 복음에 미쳤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미쳤던 이유는 분명하다. 황소고집보다 더한 바울의 마음을 녹인 사랑, 극도로 분노에 달한 자신을 온유하고 겸손하게 만든 그 은혜를 바울은 노년까지 잊지 않았다. 긍휼로 찾아오시고 마음 눈을 열어 복음과 사랑을 알게 하신 그 은혜를 영원히 찬양하며 복음을 전한다.
아, 그래서 바울이 보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정죄함을 당하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양심의 가책으로 복음을 흐리는 것,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그 큰 하나님의 사랑은 바울같은 박해자도, 다윗같은 범죄자도 진실로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고 용납할 뿐 아니라, 깊은 사랑으로 영접하시는데 정죄함에 갇히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바울이 나에게 뭐라고 할까? 아마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너도 참 죄인이고 악하고 교만하고 정말 고집이 센 바로와 같구나. 그런데 말이야, 나를 만나 주신 주님을 너가 안다면 너는 결코 정죄당하지 않고, 자신을 자책하지 않고, 자격 없다고 말하지 않고, 그 사랑에 함몰되고 말거야, 니가 마음 눈이 열어져서 십자가로 확증된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가 어떤지를 정말 알기를 기도할게”
바울에게 “내가 고생이구나, 네가 아프구나” “나는 너를 나의 일꾼과 증인 삼으려고 찾아왔다”라고 하시는 주님 앞에 선다. 극도의 분노로 진멸하러 오셔야 하는 주님은 도리어 나를 긍휼히 여기신다. 고생이라고, 니가 많이 아프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복음을 전하는 일꾼 삼겠다고 하신다. 바울은 염치없게(?) 이 부르심에 응답한다. 나는 바울보다 더 염치가 있어서(?) 그 사랑에 응답하지 못한다. 너무나 교만하여 그 큰 사랑에 마음 눈을 열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이 주권과 사랑과 은혜의 손길이 바울 같은 고집을 꺽고 사도가 되게 하셨으니, 나의 고집도 사랑으로 꺽으시고, 주님의 소망과 생명안에 거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생명으로 섬기는 자로, 이 죄인을 일꾼으로 세울 것이다. 전적인 은혜, 일방적인 은혜, 그 큰 사랑을 노래한 바울이 이해된다.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한다.
◈ 묵상 기도
주님, 실패한 베드로를 부르시는 주님의 사랑이 참으로 큰데, 바울을 부르신 주님을 보니...더더욱 그 사랑이 참으로 큽니다. 사도행전이 크게 베드로와 바울의 이야기인데, 두 사도를 부르신 주님의 사랑이 절절합니다. 그 사랑은 나의 선입견보다 참으로 큽니다. 바울이 똑똑하고 열정이 많고, 복음 전파에 유능해서 부른 것이 아니라, 가장 큰 죄인이기에 부르셨음을 봅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기준은 어쩌면 누가 더 큰 죄인인가인지요. 믿음의 선진들이 자신들을 죄인 중의 괴수요, 가장 연약한 자요. 나귀 턱뼈와 같다고 한 것은 그런 이유인이죠. 주님의 그 놀라운 복음과 함께 주님의 그 큰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제 마음 눈을 열어 어둠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온전히 벗어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게 하여 주십시오. 그 큰 사랑을 성령으로 알게 하사,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큰 사랑, 그리고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 죄로 인하여, 악함으로 인하여, 고집으로 인하여 고통하는 영혼들에게 이 복음과 이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도리어 바울처럼 주님의 증인 되게 하여 주십시오. 청년부와 청년들에게 주의 이 복음과 사랑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바울보다 더한 자를 전도자로 부르신 은혜에 새삼 감사하는 나눔입니다.
이곳 삿포로 영혼들도 생명의 복음을 사모합니다.
목사님을 복음 전도자로 세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