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 땐
산으로 올라가 소릴 한번 질러봐
나처럼 이렇게 가슴을 펴고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럴땐 나처럼 노래를 불러봐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고
좌절과 용기가 교차되고
만남과 이별을 나누면서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
마음먹은 대로 될 때도 있어
다 그런 거야 누구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니까
다 그렇게 사는거야
희비가 엇갈리는 세상속에서
내일이 다시 찾아오기에
우리는 희망을 안고 사는 거야
마음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하던 일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봐
바다를 찾아가 소릴 질러봐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
빠빠빠빠빠 빠빠빠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
빠빠빠빠빠 빠빠빠
우울한 날이 계속 이어질 땐
신나는 음악에 신나게 춤을 춰봐
나처럼 이렇게 리듬에 맞춰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누구나 괴로운 일은 있는 것
한가지 생각에 너무 집착하지마
그럴땐 나처럼 툭툭 털면서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고
좌절과 용기가 교차되고
만남과 이별을 나누면서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
마음먹은 대로 될 때도 있어
다 그런거야 누구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니까
다 그렇게 사는 거야
희비가 엇갈리는 세상속에서
내일이 다시 찾아오기에
우리는 희망을 안고 사는 거야
마음대로 일이 되지않을 땐
하던 일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봐
바다를 찾아가 소릴 질러봐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
빠빠빠빠빠 빠빠빠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
빠빠빠빠빠 빠빠빠
클론(CLON)
96년 '꿍따리샤바라'로 대박히트를 치며 데뷔했던
2인조 댄스가수. 멤버는
백댄서 출신의 강원래와 구준엽으로 이뤄져 있었으며
구준엽은 클론으로써 활동하기 3년 전인
93년 이탁과 '탁2준2'라는 듀오로 활동한 바가 있다.
강원래는 데뷔 1년 전인 95년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에 랩 파트로 참여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고,
뭔가 저지를 듯한 조짐을 보여주고 있었다.
1996년에 그들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냐 하면
당대 최고의 가요프로 가요톱10에서 조용필 이후 4년 연속으로,
정규앨범 4장 연속으로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 김건모의 4집곡 '스피드'가
골든컵을 수상하는 것을 저지시킬 정도였다.
그것도 김건모의 5주 연속 1위를 눈앞에 둔 시점에.
당시 김건모가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던 솔리드, R.ef, 신승훈 등과의 경쟁을 뚫고
4주 연속 1위를 하고 5주 연속 1위에 도전하던 것을
사실상의 신인가수이던 클론의 '꿍따리 샤바라'가 저지시킨 것이다.
첫 등장에서는 40위권이었던것이 아무런 홍보도 없었고,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방송된 이후
바로 1위 후보곡에 올랐다면 믿겨지겠는가?
아직도 이런 현상이 되풀이 되지 않고 있다는게 더 놀랍다.
만약 김건모의 '스피드'가 골든컵 수상에 성공했다면
김건모는 가요톱10 1990년대 처음으로 4년 연속 골든컵,
정규앨범 4장 연속 골든컵 수상곡 배출 이라는,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을 수립했을 것이다!!!
그 대기록을 저지시킨 클론은
가요톱10 첫 1위가 확정되자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야구에서 상대팀 투수의 퍼펙트 경기를 9회 2아웃에서
저지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반면 대기록 수립을 눈앞에 둔 김건모는 바로 전년도까지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라인음향(김창환사단) 소속의 클론이
1위를 하는 것을 겉으로는 축하했지만
속으로는 아쉬움을 참아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김건모 선배의 대기록을 저지시킨 클론은
그 여세를 몰아 '꿍따리 샤바라'로 골든컵을 먹어버린다!!!
당시 한국 가요계가 유례없는 대혼전으로 1996년 그 해
골든컵 수상곡이 단 2곡뿐 이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꿍따리 샤바라'다.
성공적인 1집 데뷔 후 '난', '도시탈출', '초련', '사랑과 영혼' 등의
각종 히트곡을 쏟아낸 것은 물론
(펌프 잇 업 게임 때문에 Funky Tonight도 꽤 인지도가 있는 편.)
그 인기가 국외까지 퍼져
아시아권의 원조 한류가수라고도 불린 바 있다.
대만에서는 '빙빙빙'이란 노래를 히트치면서
당시 故마이클 잭슨급의 인기였다고 하니...
지금도 클론을 기억하는 대만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중 구준엽의 인기는 대단해서, 몇년 연속으로
대만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1위에 선정되며,
대만 톱스타 '서희원'(대만판 꽃보다 남자의 주인공)과 사귀기도 하였다.
2000년도에도 대만에서 초대형 콘서트를 준비 중에 있었으나
후술하는 강원래의 안타까운 사고로 인해 무산되었다.
2000년 강원래가 오토바이를 타던 중 불법 유턴한 차량과 충돌,
하반신을 쓸 수 없는 몸이 되어 활동을 중단하게 됐으나
2005년 강원래의 휠체어 투혼으로 5집을 내고
'내사랑 송이'라는 타이틀곡으로 활동했었다.
5집을 마지막으로 둘은 클론이라는 이름으로
더이상 활동을 하지 않고 있으며
강원래는 라디오 DJ로,
구준엽은 'DJ KOO'란 이름으로 솔로 가수 및 클럽 DJ로 활동 중.
그래도 4년에 한번 월드컵시즌이 되면
TV에 함께 얼굴정도는 비춰준다.
지금봐도 세련된 파워풀한 댄스와 터프한 퍼포먼스를 앞세워
큰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강원래는 이주노, 박철우, 양현석, 현진영 등과 함께
대한민국에 흑인음악, 흑인댄스를 도입한 이태원 춤꾼 1세대로
당시 개인 댄스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었다.
지금 가요계의 유명 아카데미 단장들이나 댄스 스승들은
강원래 밑에서 시작했던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신승훈, 김건모, 박미경 등과 함께 라인음향 소속으로
90년대 초중반 가요계를 휩쓴 김창환 사단의 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