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주 비엔날레 구경 갔습니다. '비엔날레'는 2년마다 이루어지는 대규모의 미술전시
행사를 말합니다. 1995년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 작가의 조력에 의해 탄생한 광주 비엔날레는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미술행사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런데 불만이 있었습니다.
뭔가 하면, 한국과 아시아의 미술 수준을 보여주는 비엔날레라고 하면서도 항상 서구의 유명
큐레이터가 전시 진행을 도맡아 해온 것이었습니다. '큐레이터'란 미술관이나 비엔날레에서
전시를 진행하는 미술전문직으로서 '학예사'라고도 합니다. 아마 국내에 이 용어가 널리 알려진
것은 신정아 사건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광주 비엔날레는 평가가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미술계는 질적인 부분을 중시하는데,
평가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올해만큼은 서구의 유명한 큐레이터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거꾸로 말해서 올해는 아시안의, 아시안에 의한, 아시안을 위한 비엔날레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라운드 테이블>이란 제목의 올해 비엔날레는 6명의 아시아 큐레이터가
전시 준비를 했고, 둥근 테이블 주변에 둘러앉은 그들끼리의 알력(?)과 갈등(?)의 과정 속에서
좌우간 "아시아는 세계다" 라는 가치를 보여줬습니다. 이것은 질적으로 우수해야 하는 부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입니다.
우리는 왜 우리 자신으로서 말하지 못하고 서구의 눈치를 보는 것일까요. 그런 면에서 이번 광주
비엔날레는 서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담대하게 진행된 전시로서 그 첫번째 발걸음을 떼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각에 어울리는 작품이 광장에 있었습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것은 바로 광주
비엔날레 입구의 광장에 설치된 14대의 탁구대입니다. 은빛으로 반짝 반짝 빛나는 표면을 가진
이 탁구대에서 실제로 탁구를 칠 수 있었습니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지만, 옆에 있는 천막에서
탁구 라켓과 공을 대여해줍니다. 라켓을 준비해간 저는 친구과 함께 탁구를 쳤습니다. 하늘이
맑아서인지 그 탁구대 속에 푸른 빛과 구름이 담겼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러나 곧 알게 되었습니다. 야외탁구장이라 바람이 부는 것은 그렇다쳐도 탁구공이 잘 튀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바운드가 낮았는데, 그 이유는 은빛의 표면을 위해 탁구대 상판에다가
크롬강 금속판을 입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그랬냐고 어셔 - 미술관에서 안내원입니다 - 에게
물으니, 작가의 의도라고 했습니다.
탁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보수적인 데가 있습니다. 탁구대는 정격이어야 하고, 공의 바운드는
일정해야 하며, 바닥은 마룻바닥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광장의 은빛 탁구대는 그런 사항들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면 갈수록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 오랜만에
치는 탁구인데, 이렇게 환경이 안 받쳐주나 하는 원망 아닌 원망을 했습니다.
태국 출신의 세계적인 미술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는 이 작품을 통해 탁구대 표면에 가없는
푸른 하늘을 담고, 그 하늘을 가르는 탁구 네트 그리고 양편에서 핑퐁을 하는 탁구게임으로
남북한의 나누어진 현실을 그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크롬강 표면에 담긴 하늘빛은 DMZ
위로도 펼쳐져 있는 자연 그 자체로서의 하늘인 셈입니다. 탁구 네트는 DMZ를 상징하는 것이고,
탁구를 치는 모든 사람은 남과 북으로 갈려진 현실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체감하기 힘든 작품이었습니다. 왜? 우리에겐 모든 것이 익숙해져 버려서
이런 작품을 통해 다시 각성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외국인들이 보는 한반도의 현실과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한반도의 현실은 다릅니다. 우리는 이 현실 속에 있기 때문에 나무를 볼
수 있지만 숲을 볼 수는 없습니다.
모든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오니, 6시가 넘었습니다. 전시 자체는 정글처럼 상당히 엉켜있었고,
관람자 스스로 그 정글의 망그로브 숲을 손도끼로 헤쳐가면서 길을 가는 형국이었습니다.
어두운 방에 설치해둔 비디오 작품들도 대체로 다큐멘터리가 많아서 하루로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무엇보다 6명의 아시아 큐레이터끼리 조화롭게 교통정리를 하지 않아 서로 마구
충돌하고 경쟁하는 그런 모양새가 여과없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역설적으로 이것이
아주 좋았습니다. 서구의 영향력을 뿌리치고 최초로 새로운 길을 가는데, 그런 정도의 거친
진통이 없을 수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광장에는 탁구대 14대가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그 탁구대들 곁을
지나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탁구대를 온전히 작품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작품이 아닐까?"
리크리트 티라바니자는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태국의 수프를 끓이는 간이 식당을 미술관
공간 내부에 만들어서 화제가 되었던 작가입니다. 처음에 관람자들은 어느 모퉁이를 돌자,
나타난 간이 식당 앞에서 어리둥절했습니다. "왜 작품이 아니라 이런 따위가 미술관 전시공간에
들어차 있는 거지?" 당연한 어리둥절이고 당연한 반문이었습니다. 미술관이란 본래 회화나 조각,
아니면 설치, 아니면 비디오아트를 보는 것인데, 그런 시각적인 작품이 아니라 스스로 참여하는
작품이 등장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관람자들은 그것이 어떤 상황인지 눈치채고는
웃으면서 그 수프를 떠서 탁자에서 나눠먹었다고 합니다. 누구와? 처음 보는 다른 관람자들과
더불어.
이것이 소위 관계미학이라는 장면의 출현이었습니다. 관계미학이란 이러한 관계맺기 자체를
하나의 예술로 취급하는 새로운 조류의 미학입니다. 관계를 맺는 사건, 그것 자체가 물질적인
작품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두워진 광장에 놓인 탁구대에는 이제 아무도 탁구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푸른 하늘이 담기던
탁구대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낮 동안 불평하면서 탁구를 쳤던 그 시간 동안,
우리는 탁구를 통해 관계를 맺었던 것입니다. 깨달음은 항상 뒤늦게 찾아와 뒤통수를 칩니다.
그렇습니다. 탁구야말로 말없는 관계, 그러나 더 돈독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게임이며, 그런 점에서
작가는 매우 영특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맺고 있는 관계의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다시
그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서는 그 관계가 깨어진 이후에나 간신히 어떤 계기를 찾을 수 있을까요.
탁구를 친다는 것은 공을 주고받는다는 것이고, 공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언어를 뛰어넘어 어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고, 언어를 뛰어넘어 어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완전한 만남을 꿈꾼다는
것입니다.
티라바니자는 세계 최초로 탁구대를 가지고 작품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남과 북이 탁구라는 게임을 통해 완전한 만남을 꿈꿀 수 있을지는 관람자들의 참여로 대신 꿈꿔
본 것이었습니다. 그는 한반도의 불화하는 남과 북이 탁구를 칠 수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는 남과 북이 '코리아'라는 단일팀을 구성해서 세계선수권대회 단체전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를 맺기를 기원한 것입니다.
탁구와 미술이 만났을 때... 무엇이든 가능한 세계가 있었습니다.
첫댓글 拈華微笑로군요.
그냥 순수한 작품 해설이긴 한데 좀 안 어울리긴 하네요.^^
신선한 이야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소중한 경험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탁구대로 예술 실행을 한다는 발상이 재미있었어요. 좋게 봐주셔서 제가 되레 고맙습니다.
사진과 글 감사하게 보았습니다 ~
광주에 살고있지만 정작 비엔날레를 가보지않았었네요...ㅋ 정말 아쉬운 기회이군요ㅠㅠ...ㅋ
그 탁구대 작품은 광장에 무료로 노출되어 있었어요.^^ 사실 미술 전시에 관심 갖기가 쉽지는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