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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숨은 주역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의 산파였던 현순(玄栒·1880∼1968) 목사. 임정의 주미 전권대사로 미국 정부로부터 독립승인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옛 소련으로 건너가 레닌과도 담판을 벌였다.
그러나 광복 후 미군정을 거부하고 한국의 즉각적 독립을 요구했던 그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미국에서 숨을 거뒀다. 현 목사의 맏딸 앨리스 현(1903∼1955)은 1924년 미국으로 건너가 재미교포 의사와 결혼했다가 이혼한 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미군 장교(중위)로 복무한다.
그러다가 광복 후 미군정 장교로 다시 한국 땅을 밟지만 아버지 때문에 미군정에 의해 강제 전역당한 뒤 1948년 북한행을 택한다. 그는 훗날 간첩 혐의로 박헌영과 함께 북에서 처형된다. 맏아들 피터 현(1906∼1993)은 1946년 미군정 소속 미 육군 소령으로 모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인으로선 최고위급 장교였다.
그러나 그 역시 누나와 함께 강제 전역당한 뒤 미국 연극계에 투신한다. 한국현대사와 맞물려 파란만장하게 살았지만 그 역할이 잊혀진 미주 한인 1세대 독립운동가 현 목사와 그 가족들.
최근 한국을 찾은 현 목사의 막내아들 데이비드 현(87·미국 로스앤젤레스)이 20일 아버지가 남긴 1만5000쪽 분량의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모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 자료들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통해 한국 정부와 학계가 독립운동사의 가려진 부분을 밝혀내고 아버지 현 목사의 공을 정당하게 평가해 달라는 것.
“아버지는 광복 직후 건국준비위원회의 초청을 받고 귀국수속을 밟다가 미군정을 지지하겠다는 서명을 거부했기 때문에 미국 정부로부터 출국비자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승만 전 대통령은 비자를 받고 귀국해 대통령이 됐습니다.”
독립운동가 현순 목사의 4남3녀 중 여섯째이자 막내아들인 데이비드 현(위). 현 목사 부부 사이에 앉은 장남 피터 현은 고국에서의 활동이 좌절되자 미국으로 돌아가 연극인이 됐다.
-신원건기자 현 목사가 남긴 대표적 기록인 ‘현순자사(自史)’는 90년대 후반 이후 국내에 입수돼 독립운동 연구자들 사이에서 상하이 임정과 미국 내 독립운동의 전모를 밝혀주는 실물자료로 주목받아 왔다. 로스앤젤레스 시내 ‘리틀 도쿄’를 설계한 유명 건축가이기도 한 데이비드씨는 특히 이 전 대통령이 현 목사 공의 상당 부분을 가로챘다고 주장했다.
“아버지는 임정의 주미 전권대사로 1921년 미국 정부의 임정승인을 거의 성사시키는 단계에까지 갔죠. 그러나 임정 내에서 이승만이 미국 정부에 위임통치를 청원했다는 사실로 탄핵 위기에 몰리자 갑자기 아버지를 해임함으로써 그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어요.”
중국 상하이에 머무르던 시절(1919∼1924) 여운형과 박헌영으로부터 동시에 구애를 받았던 앨리스 현과 외아들 윌리 정의 단란했던 한때.
-사진제공 데이비드 현 그는 그 증거로 이승만이 자필 서명한 ‘주미 전권대사 임명장’ 사본을 제시했다. 그는 “3·1운동과 임정 설립을 주도한 아버지의 자리가 독립기념관에조차 마련되지 못한 것은 너무도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이중간첩 논란에 싸여있는 누이 앨리스에 대해 “누이는 월북할 때도 가족들에겐 체코 프라하에 있는 아들을 보러간다는 말만 남겼을 뿐”이라고 말했다. 데이비드씨는 “아버지에게 1963년 뒤늦게 건국훈장이 수여되긴 했지만 그 증언과 기록이 제대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