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위와 남조는 사이가 별로 좋진 않았습니다. 특히 사소한 일로도 트집잡아 싸운 적이 있는데, 그게 바로 고구려 사신 때문에 서로 얼굴붉힌 일입니다.
오랑캐의 元會원회에서 고[구]려의 사신과 나란히 앉게 하였다. 이에 幼明유명이 僞朝위조(北魏북위)의 主客郞 裵叔令주객랑 배숙령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은 중국 임금의 명을 받들고 경의 나라에 왔소. 우리 나라와 겨룰 수 있는 나라는 오직 魏위가 있을 뿐이오. 다른 외방의 오랑캐는 우리 騎馬기마가 일으키는 먼지조차 볼 수 없소. 하물며 東夷동이의 조그마한 貊國맥국은 우리 조정을 신하로서 섬기고 있는데, 오늘 감히 우리와 나란히 서게 할 수 있소?”
하였다. 思斅사효도 僞朝위조의 南部尙書남부상서 李思沖이사충에게,
“우리 聖朝성조는 魏위나라의 사신을 대우함에 있어 작은 나라와 나란히 서게 한 적이 없음을 그대도 응당 알 것이오.”
이 남제서 구절을 봐도 알다시피, 북위가 자기들 사신과 고구려 사신들을 나란히 앉게 한 일을 트집잡아서 예의도 모르냐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 남조 사신은 고구려를 맥국이라고 칭하며 공격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다만 맥국으로 칭했다는 사실은 한가지 의미하는 바는 있습니다. 바로 고구려를 중국이 맥국, 즉 맥의 나라로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입니다.
고구려의 구성은 예와 맥이었으니, 중국도 이를 알고있던 눈치였나 봅니다. 다만 예와 맥이 별개인지, 아니면 동일한 민족을 다르게 부른 건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이상입니다. 빈약한 글 뵈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남조측의 기록이라 남조중심적 입장으로 이 사건이 서술될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건의 과정에 대한 남조측의 주관적 편집 구성이 작용하였을 것이지요
사실 뭐...남조와 북위 사이도 안좋은지라, 의도적으로 남조가 고구려와 북위를 깎아내리는 기록을 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ㅇㅇ
북한에는 고구려 사료들이 있을까요?
유적이라 하면 안악 3호분, 덕흥리 고분군 등이 있고, 그외에 고구려 관련 유물들이 많이 있는 편이긴 합니다. ㅇㅇ
다만 남한에서도 고구려 성곽과 보루들과 유물들이 종종 발견되긴 하니, 고구려의 흔적을 단지 북한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죠..ㅇㅇ
@천손강림 유적보다는 기록의 사료들은 없을까요?
@역사초보생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역사초보생 아무래도 그 부분에서는 김 소장님께 따로 질문하심이 좋겠습니다
@역사초보생 고구려 당대에 작성된 사료 기록은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