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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6일 맑음 토 반가운 이야기
오늘이 음3월 초하루 도목 할배 오셔서 고란 밭에 돌을 포크레인 오면 빼는지 물으신다.
그럼요 와서 작업 하여 주신다면 하고 말고요 하니 도목에 와서 하고 있는 포크레인 일을 참 잘 하드라 면서 오라 하면 온다 하더라 하여 오라고 전화 하여 사장이 직접 와서 돌아보고 내일 안 오면 3일후에 온다고 하고 가셨다.
상명이네 벌크집 짓는데 가서 참 먹고 얘기 하다 집배원이 금화 앞으로 노태우 대통령이 보낸 편지와 삼촌 앞으로 온 박해충씨아들이 보낸 편지 인사장이 왔다.
집에 와서 읽고 제수씨 아버지와 품무골 밭에 가서 돌을 좀 주네고 오시고 오후 낮잡을 저녁때 까지 자버렸는데 낮에 하계 아지매 왔다 가고 큰집 큰 엄마 왔다고 했다.
안동 법회 갔다가 미제네 집에서 놀다 오신다더니 몸이 아파 큰 형수 오시라 하여 병원에 다녀서 어제 왔다고 했다.
나도 몸이 올치안은데 그런 이야기 자꾸 들으니 신경질이 난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 부모도 나이 들고 근력이 없고 아프다 하면 죽기만 바라고 부모가 죽을까봐 혼을 내고 병원으로 모시고 다닐 생각은 않고 좋은 것은 보기 어렵고 배우기도 어렵지만 모든 본 보기는 누구든지 쉽기 때문에 착한 제수씨 그런 본 듣고 배울까 닮을까봐 가까이 하는 것 못 마땅하나 본시 착한 사람은 남에 잘못을 보고 들으면 교훈을 삼아서 나는 그렇게는 하지 않으리라고 맹세 하면서 복 받을 선을 행한다.
선행을 하면 복 오는 것 보이지 않으니 화는 멀어지고 악이 쌓이고 쌓이면 금방은 나타나고 보이지 않으나 복이 점점 멀어 져서 필경애는 가슴을 도려내듯 괴롬과 고통을 받을 일이 서서히 오게 마련이며 생긴다.
천지신명이 일월같이 살피고 알기 때문에 사람은 속일지라도 하늘은 속이지 못한다.
귀신 눈은 번개 같아 어두운 곳에서도 맘을 알고 부처님은 화복을 점지 하신다.
소죽을 끓이고 정성드려 지은 저녁상을 대하니 웅동생이 장가는 참 잘 갔다는 생각이 든다.
웅동생 덕에 아버지 나는 잘 대접 받으나 동생이 혼자 밥을 끓여 먹으니 마음이 늘 안됐으나 그렇게 하여 효자 효부가 되는 길이 열리기 바라며 부처님 전에 염원하고 기도 발원한다. 경사스런 일 있으리라.
4월17 맑음 3. 2 장 담 은 날
오늘 아침 식전에 장을 담았다.
제수씨께서 20여일 전에 오늘 담을 여고 날을 정해 놓았다.
2월 달은 담는 날이 좋은날이 없으무로 이제까지 미루었다.
또한 메주를 소가 먹어버려서 더 사다 보테가지고 담기 위함 이였다.
이제 나는 그런 것에 관여하지 않으려 하지만 자연히 관여하게 된다.
재수씨가 알아서 잘하시니까 예전 동생들과 살 때처럼 가정살림에는 신경을 안 써도 된다.
아침 먹고 마당을 쓸고 방도 쓸고 하다니 큰엄마 나왔다 가시고 영봉내 담 밑에까지 내 힘으로 걸어갔다. 집까지 돌아왔다.
오환네 집에 온 손님 아줌마 기성이 선례한테 관심을 가지고 애들을 어르고 아지매 하고 그런다.
자식을 남편을 버리고 이혼까지 한 아주머니 남에 자식이라도 보면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집에 와서 전국 노래자랑을 보며 점심 먹고 자다 가위에 눌린 것 내가 겨우 깨다.
제수씨 오전에 강실네 집에 갔더니 품무골 밭에 명년에는 3백주고 산다고 하드라며 얘기 하였단다.
저녁에는 강월스님 해동사에서 전화 하셨다.
류돈우 국회위원 출마 하신분 운동 하로 신도 회장님과 내일 저녁에 오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분회장님하고 논의하여 우리 집에서 배나들 안마 대밭골 전화로 연락 다 하였다.
금화한테서 오전에 전화 온 것을 선례가 받았다고 했다.
저녁에는 제수씨 어제 부인회로 류돈우 운동원이 주고 간 돈 6만원을 고기와 술을 사고 담배 사고하여 오환네 집에서 먹고 빵과 담배가지고 왔다 .
돈이 너무 흔하여 돈을 뿌리고 국회의원을 돈으로 사고 있는 실정이다.
기도 염불 좀하고 일기도 쓰고 하는데 1시 넘어서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다.
나무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4.18 오전9시까지 약 20미리 비가 온 후 바람이 강하게 불고 갬
오늘이 음3월3진날 새벽 단비가 내리더니 강한 바람과 함께 10시경부터 날 맑아지며 황사 현상이 심하게 일어났다.
안골 등에 길을 닦을여고 아버지 삼촌 영봉 세이 갔다.
힘이 들어 못 딱에다며 돌아 왔다.
해충에 돈우씨 국회의원 입후보 술 나온 것을 어른들 잡수시고 나는 해동사 신도회장님 구용 권만 정산이동 강상락 어른 댁에 태 곡 권동일 댁에 전화를 하여 정산오락실에 모여 달라고 했다.
선물을 논아 드린다고 한이까 저녁때 큰엄마한테 옥신네 엄마 한테 얘기하여 함께 나오시라고 했다.
제수씨는 우리 집에 모이는 것이 못마땅한지 길수네 집에 모이지 머하로 우리 집에 모이는 데요 하며 반문 하신다.
나는 오래 만에 신도 회장님을 만나 뵙고 싶은 마음으로 또한 함께 모이던 가사2동 신도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소망이었다. 다행이 절호의 기회라 틀림없이 돈이나 물품을 나눠 드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에 기왕 나눠 주는 선물 신도님들이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우리 집에서 정산 동생 집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내 것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틀림없이 여당후보로 군지부로 출마하여 당선 가능하기 때문에 함께 동참하고 합심하였다.
네사 선거 하로 못 갈지라도 다른 사람들이라도 많이 지지하도록 하는 것이 도릴 것 같다.
저녁9시 넘어서 정산도착 했다는 동생 전화가 왔다.
거기 16명 들렸다 올 때 정산 아이들이 운전기사를 패가지고 지소에 들렸다 오시느라 11시 거의 넘어서 온 것 갔다.
반갑게 인사하고 대밭골 소천 어른 네외 동장과 모친 승학댁 부포댁 원환모 상철모 병철 조모 병탁모 혁창모 미산댁 큰엄마 둘 시목 부모 길수 부모 영구모 하계댁 내외 우리4명 이렇게 모여서 만원어치 사다가 빵과 음료 맥주 논아 먹고 갔다.
12시 넘어서 모두 가시고 해동사 경리 아가씨 권처사댁 입니까? 회장님 계세요? 하여 조금 전에 출발했다 하였다.
부처님 이런 분들과 만나 뵙 올수 있으무로 감사합니다.
자비와 사랑을 두루 갖춘 관세음보살 화신들이여 시방에 두루 널이 베푸시고 소망 하시는 모든 일 뜻대로 성취하시길 삼보 전에 축원합니다.
4월19일 화요일 흐림
오늘은 날씨가 흐리고 비가 조금씩 내리고 하여 들일은 못 하고 제수씨 장에 갔다 오시고 나는 애들 보며 선거 공보물 온 것을 읽어보고 길수모 왔다 가시고 잤다.
점심 먹고 있다니 제수씨 장에 갔다 경운기 타고 오셨다.
포크레인 언제쯤 도착 하는지 알아보니 삼사일 후에 올수 있다하고 갔다.
마당을 쓸고 소죽을 끓이고 큰어머니 숙모 종숙모 오셨다가고 저녁 먹고는 티브이 시청하며 이런 저런 얘기 제수씨와 하고 일기 쓰고 기도하고 취침했다.
미니시리즈를 보는대 눈물이 나왔다. 많은 느낌을 주었다.
여섯살짜리 선예도 아버지 나 울지 안는데 눈물이 나와 하며 눈물을 글썽이며 나와 함께 잤다.
귀여운 질여 어린 것이 무엇을 느낀 모양이다.
4월 20일
오늘이 제 8회 장애자의 날이다.
어디서 편지 한 장이라도 오지 안을까 하고 기다려 진다.
집배원이 왔다.
삼촌 보험료 독촉장을 가다 주고 갔다.
금화한테서 전화가 왔다 안부를 물었다.
고추묘종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마당을 쓸고 새벽 소죽을 요즘 내가 불을 넣고 끓인다.
아버지께서는 전밭골 논을 갈고 오셨다.
제수씨는 외양간을 치시고 오후는 안골에 가서 소꼴을 뜯어 오셨다.
오후 온상에 두 번째 살피러 갔다.
아직 깨끗하고 모종이 잘 자랐다.
어린아이를 돌보듯 제수씨와 아버지께서 전후로 알뜰히 돌보신 정성이라 생각하며 손이 모자라는 곳에 풀을 모두 뽑고 집에 왔다.
저녁에는 TV를 보며 오늘 하루가 조심스러웠다.
영구모 왔다 가시고 뒷집 아지매 왔다가고 도목 할배 흑 멀칭 한마끼 갖다 주시고 상명 할매 솔 두 갑 빌리로 오셨다 가지고 가셨다.
일기 쓰고 해동사 전화를 했다.
경주 사장댁 천식 약 처방을 문의했다.
염불도 하고 오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갔다.
건강 확인 스스로 자행 발기10여일 만이다 능역 있다.
4월21일 황사계속 목요일 맑음
오늘 국민학교 동창 신승목 친우가 앞집 택기네 집에 17일 날 왔다며 반갑다며 놀러왔다.
아버지는 품무골 밭을 다베고 제수씨는 안골 밭에 풀을 뽑으로 갔다 올 때 정기사 포크레인 배나들 왔다 하여 안골 길을 닦아서 밭을 다듬을까하고 전화로 알아보려니 아지반님 내가 정기사 온다니까 하지 안는다더니 왜 그 사람께 시키려 합니까?
이유 없이 화난 목소리로 말한다.
그때는 고란에 밭을 포크레인 오면 하기로 도목 와서 일하는 분을 한다고 하여 와서 현장을 확인하고 갔는데 어찌 다른 사람이 온다고 시킬 수 있느냐.
안골에 길은 그때 사람이 닦으려 했더니 아버지 삼촌 영봉 셋이 가시더니 힘들어 못 닦는다고 와 버렸으니 고추 밭을 장만하시면 하루빨리 누구 한테라도 먼저 오는 분께 닦아야 한다.
저녁에 알아보고 토요일날 일 할수 있을 것 같다.
저녁 상명 할매 내일 제수씨 사람 하러 왔다.
승목이도 와서 놀다가고 낮에는 숙모 삼촌이 왔다가고 박해충씨 선거 홍보물도 왔다.
계영실씨께 안부 편지도 한통 쓰고 TV보고 일기 쓰고 기도하고 오늘 하루도 부처님 자비와 가피력 아래 감사히 잘 지냈습니다.
22일
오늘은 아버지 오전 전밭골 논 못자리 하러 가시고 제수씨 앞집 복숭아 밭 김 매로 가셨다.
오후 포크레인 안골 등까지 길을 닦았다.
정산 동생이 와서 시키고 왔다 갔다. 애를 먹었다.
나는 그동안 동주 할배 주진동 박무욱 어른께 산을 길을 좀 닦도록 승낙을 얻었다.
그러나 영구네 한테 이야기하지 않았더니 사장어른 중장비로 길을 닦으면 밑에 산소도 있고 한데 이야기 해야지 그러면 못쓴다 하여 듣고 보니 말씀이 옳았다.
큰산소 옆으로 길을 닦는데 큰집 종형 안마 4종형님한테 이야기 있어서 저녁에 닦았다는 이야기 닦도록 허락 해달라는 이야기를 전화로 미나무 할배한테 등등 다 하였다.
그러다가 다른 일이 생겨 다섯시 반경부터 다른 일 하러 가고 나는 온종일 애들 데리고 놀면서 마당과 방안을 쓸고 일을 하도록 동생과 기사한테 각각 이야기하고 참을 시켜가지고 삼촌아버지 함께 가시고 계영실씨께 편지 써둔 것 제수씨를 시켜 갖다 넣었다. TV보고 일기 쓰고 기도하고 잤다.
몸이 왜 이리 피곤하며 눈이 침침하고 골이 힝하다 부처님 도와주소서.
4월 23일 맑음 토 안골까지 포크레인 길을 다 닦았다.
오늘 날씨가 해는 나는 대도 쌀쌀 한게 추워서 방안에 열시까지 있다 나가서 방과 처막 쓴 후 마당을 쓸다니까 금화 전화가 와서 제수씨 받았다.
한 10분간 얘기 하고 나 바꿔 달라고 하는 것 마당 쓴다고 아니 받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부엌 가시고 웅동생 포크레인 일하고 언제 온다더냐고 전화 온 것을 오후 2시경 전화하던 연락하기로 하고 제수씨는 된장단지 샌다고 옮긴다고 할 텐데 점심 먹고 아버지 거름실고 가셔서 장비 일하고 왔는지 확인하러 가시더니 4시경 일하고 오신다고 하여 다시 실고 제수씨는 큰집형수 와서 얘기 하다가 가신 후 참을 가지고 가신 후 조금 있다니 숙모 선희모 정부 쌀 연금타 놓은 것 사러 와서 쌀을 찾으니 먹던 것은 다 먹고 포대 헐지 않았던 것을 헐어나서 팔아 쓴다고 얘기 했더니 끊어서 어제부터 두 번 해 먹었다 하시더라 돈이 하도 아쉬워서 팔라고 둔 것을 얘기 해더니 내일 또 타온다고 제수씨는 새 포대를 헐었다고 했다.
어제 오늘 정부 쌀로 밥을 지었다고 하신다.
쌀농사 지어서 떡쌀로 이리저리 썩거 먹는다 하시는데 왜 일반미가 방아 찌은지 10여일 되었는데 거의 두말씩 축이 나고 제수씨를 나무랬다. 그런 것까지 간섭한다고 지꺼린다.
내가 좀 너그럽게 이해하고 참으면 좋을 걸 제수씨와 한바탕 싸움 말다툼 했다.
싫던 좋던 잘 되나가다 우습게 소문이 또 괴상하게 날 것이다.
나는 아무소리도 말란다.
왜 내가 말 못하는 아버지처럼 벙어리 대어야 하나? 아버지 목까지 내가 챙겨야 하는데 말이다.
어제밤 꿈이 고약하더니 끝내 이런 꼴이 생겼다.
저녁 무렵에 도목으로 포크레인 내일 일하로 온다고 도목 할메네 집으로 전화가 왔다고 할메가 오셔서 그래주고 가신다.
저녁에 전화 도목으로 하고 베나들 할베 하고 하게아제 하고 미산아제께서 오면 한다고 하면서 앞장서서 오라고 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앞집 할베 한테 얘기 하니 아침 일찍 마중 간다고 얘기 하여 부탁하고 제수씨 저녁 잡수라고 하니 나 먹으라하여 먹었다.
참 좋은 제수씨 내가 잘해 드리지는 못할망정 내가 신경질 나고 생각하면 화만 나고 하여 제수씨한테 쌀 때문에 그래는 것은 미안하나 기왕 함께 사는 것 인상 안 쓰고 복 받을 수 있도록 하시면 저절로 복이 올 텐데.
금화는 잘 살아서 효녀상 탔지만 제수씨는 그렇게 못한다고 금화와 같도록 바라지 말란다.
정말 제수씨가 오시고부터 내가 할말도 하지 못하고 얼마나 참고 살았다. 집안에서 그렇게 만들었다.
혼자 똑똑한 척 잘 난 척 친정에 잘 산다고 얼마나 과시하고 우리들을 짖밟으려고 하나?
서로 인격적으로 대해주어야지 기분 내키는 대로 제수씨 비위 맞추어 가면서 살자니 골치가 터지는 것을 누가 알까?
부처님이나 알지 왜 아프나요? 얼굴이 젊으니 뭐니 하지만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할까?
내가 행하는 일은 간곳없이 저희들 덕에 먹고 사는 것처럼 나대는 것을 왜 내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야지.
못자리 하는 날 하필이면 찰밥은 못할망정 일반미라도 해놓고 가시지.
앞집 일 간다고 정부 쌀을 해놓고 가더니 오늘 또 정부 쌀만했다고 했다.
일을 심하게 할 때는 배고프지 않게 잡수시고 일하도록 하면 될 텐데.
큰아버지나 누가 오면 술을 걸러 내놓고 혼자 있을 때는 어쩌다 한 주전자 걸러 놓으면 아버지 술안주도 없이 따라 잡수신다.
불쌍한 아버지 죽을 때까지 일만 해야 하며 이러니 뭐라 하나 저러니 뭐라 하나 애들은 별난데 몸은 아프고 방안과 마당은 어지럽히지 3번 4번 쓸고 치우고 피곤하다.
그래도 동생 혼자 두고 떨어져 시부모 시숙 밥해주고 빨래해 주고 한다고 표창 받도록 글을 써 달라고 하는 분도 있다.
단점은 없애고 장점만 추려서 적어 보내면 된다.
그게 쉬운 일인가! 나 아니면 누가 할까!
4월 24일 맑음 일요일
오후부터 고란밭 포크레인 돌을 빼냈다.
오늘은 식전 앞집 할베 오셔서 하계 아제네 밭을 옆에꺼 우리 사가지고 함께 하라고 했다.
동생하고 의논해 보고 한다 하고 제수씨는 정산 갔다가 안동 율산스님 맏딸 결혼식에 가셨다 오시고 나는 마당 쓸고 청소하고 애들 데리고 상명이네 논에 포크레인 일하는데 구경하고 아부지는 혼자 벼씨 치러 가셨다.
오후부터는 우리 고란 밭에 돌을 파네서 거두어 내는데 참 신난다.
그 많은 돌을 오후 다 빼냈다. 내일은 파뒤져서 고루려고 한다.
돈은 없어도 품무골 안골 골안에 새 군데나 일을 하고나니 토지는 옥토로 변한다.
내일 제수씨 경주 가신다고 한다. 투표하고 27일 날 오신다고 한다.
저녁은 배나들 할베 허걸 기사님과 함께 먹은 다음 6시 반경에 내려왔다.
반장아제 오시고 얘기 하고 땅콩자금 깨자금 둘 집다 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5집 포기하면 모두 써도 된다고 했다.
저녁 큰 집 형수 하계 아지매 앞집 할메 오시고 놀다 가신 후 TV보며 일기 쓰고 오늘 하루를 잘 보내고 제수씨 큰일 본 이야기 듣고 포그레인 기사와 함께 잤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도와주시고 살펴주시는 것은 모두 부처님의 도움이시라 늘 감사기도 드립니다.
아무 사고 없이 평생을 뜻대로 소원하시는 일 이루어지도록 인연 있었던 모든 분들을 도와 주소서.
부처님이시어 지극한 마음으로 축원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4월 25일 맑음 월요일 제수씨 친정 고란밭에 포크레인 끝냈다.
어제밤 허걸 포크레인 기사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하며 11시 넘도록 얘기하다 자고 6시경에 일어나서 기사는 밭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작업하다 와서 아침을 손수 아버지 내 것까지 떠주고 제수씨는 첫차로 애들 데리고 친정 갔다.
아버지는 소물을 썰었다.
나는 마당을 쓸고 방안도 쓸고 참은 술 한주전자와 계란 쿨피스 1통 과자 1봉 가지고 가서 점심 때까지 작업하는 것을 보고 있다. 배나들 할베 집에 점심 부탁 했더니 해 주셨다.
기사는 거기 가서 점심 먹고 아버지 나는 집에 와서 12시 반경 점심 먹었다.
영구와 영구모 그리고 영구 아버지와 함께 짚가리 옮기라 하지 않고 흐트러다고 기분 나빠하여 미안하게 생각하고 점심 먹고 아버지 가서 몽땅 가려 주었다. 가 보라하더니 사장어른 좋아했다.
뚝 다리 무너진 것도 꿍꿍 그랬다. 상명이네 집에 포크레인도 갔다.
오후 2시 30분까지 우리 것 모두 다 하고 영봉네 것 하러 올라갔다.
쿨피스 한 통 더 가지고 와서 여러 어른들 대접하였다.
오후 다섯시까지 하고 선거한다고 나갔다.
나는 집에 와서 숙모 안처 준 소죽을 끓이고 큰 집 형수 빵떡 가지고 와서 소죽을 눌리고 머리 깜을 물을 넣어 주었다.
마당 청소하고 길수모 물을 내주어 머리 감고 피곤하고 잠이 와서 10시경 잘라 하다니 대구 오열이 전화가 왔다.
잘 있다고 안부 전화 했다.
오열 전화 온 이야기와 제수씨 친정 갔다하고 잘 있다하고 끈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길수모 조금 있다가 가셨다.
4월 26일 맑음 화요일
13대 국회의원 선거 나도 리어카 타고 가서 찍었다.
오늘 13대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내가 태어나서 통일주체 국민회의 때 처음 투표하고 이번 두 번째 날씨가 따뜻하여 소달구지를 타고 가서 기호 1번 류돈우 의원을 투표했다.
신인물이 집권당이기 때문에 군부에서는 당선 한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13대 국회에서 최고득표 하여 우리 안동군과 예안면 에 더 많은 발전 있도록 일하여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므로 지지하였다.
삼촌과 부 함께 가서 투표를 하고 이발하고 11시반경 집으로 와서 도착하니 13시 조금 넘었다.
점심 먹다니 전화가 왔다.
언니 만나자고 했다면서 어제 갔다하고 다 잘 있다 하고 부인 회장 차비라도 오고 갈 때 것을 주어야 하는데 미안하게 됐다면서 리어카 타고 투표 하로 갔다 오시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감사하다면서 당선되면 국회의원 부인께서 찾아오시면 모시고 한 번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내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여 내 도리를 다하였을 뿐이라고 했다.
한참 전화를 하고 끈어다.
부께서는 고란 밭에 돌을 자냈다.
나는 자고 일어나 소죽을 끓이고 머리 감고 걸레를 빨아서 방4칸을 쓸어내고 닦았다.
옷도 갈아입고 저녁을 먹고 TV 개표실황을 보면서 일기를 쓰고 잤다.
4월 27일 맑음 수요일
삼촌 고란 밭에 돌 주어내는데 도와 주었다.
오늘 아침은 밥을 아버지가 하였다.
반찬은 제수씨가 다 해 놓아서 그걸 먹고 삼촌 고란에 걸음 내는데 하루 거들어 달라 했더니 한참 되어서 오셔서 도와주었다.
아버지 거름 네시고 종일 나는 마당과 방안을 청소하고 고란에 가서 일하는데 놀다 왔다.
큰엄마 와서 이야기 하는 것 들어보니 가엾다.
나이 많으면 그렇게 되는 모양인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말 할 수 없이 비통하다.
저녁 소죽을 끓이고 저녁을 라면 삶아 먹었다.
그런데 오후 밭에 갔다오니 오계닭이 농약 썩어 뿌린 모이를 주어 먹고 죽었다.
누구 소행인지 무어라고 말 할 수 없다.
예전에 내가 병아리 몇 마리 때려 잡았던 죄가 생각 난다.
저녁 먹고 제수씨 정산 오셨는지 전화를 물어보니 오시지 않은 것 같다 하여 왜 안 오셨을까 별 생각이 다 든다.
며칠 전에 쌀 때문에 내가 너무 심한 말을 하여 제수씨 속이 상해 이제 오지 않으려는 생각으로 아주 친정에 머물러 있을 생각은 아닐까?
사장댁이 많이 편찮으셔서 그런지 나와 있었던 이야기 친정 가서 다 하였으면 어쩔까?
아유 쪽팔려 제수씨가 없으니 온 집이 텅 빈 것 같다.
선례와 기성이 눈에 아롱거려 잠이 오지 않았다.
이틀째 오지 않아 내가 오만 걱정을 다했다.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부처님 도와주세요. 내가 잘못했습니다.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참았으면 될 것을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 하면서 부처님께 용서를 빌었다.
자정까지 앉았다 거울 앞에서 신체변화를 점검하고 취침 했다.
4월28일 목요일 맑음
밭에 돌맹이 주어냈다.
내가 오늘 식전에 영봉이 한태 부탁했더니 고란 밭에 로타리 반을 쳤다.
아침은 아버지가 밥을 지어놓고 논에 가셨는데 밥이 죽밥 쐐기 밥이 되어 버렸다.
제수씨께서 친정 가셨다 오늘이나 오실까 내일이나 오실까 이렇게 기다려지고 보고 싶어지고 그리워진 적은 처음이라 기성이와 선례를 데리고 선거하러 간다고 갔으나 나와 말다툼 좀하고 가서 더욱 그러하다.
어서 돌아와야 마음이 놓일텐데 집 청소 해놓고 아버지 밭에 돌을 주어 모으란다.
내가 숙모와 함께 로타리 친데 있는 돌을 다 주었다.
참 다행한 일이라 내 힘으로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만도 부처님께 감사드린다.
하루 종일 다 주워내고 저녁 소죽을 숙모가 앉혀주어 끓이고 저녁 전에 매부가 안부 전화를 해주었다.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조금 있다니 제수씨한테서 전화가 또 왔다.
제수씨 전화하였다. 거기 어딘데요 했더니 정산인데요 했다.
잘 왔습니다. 제수씨 며칠 사이 보고 싶었고 그리웠어요. 했다.
덮어놓고 실례인지도 모르고 마음에서 나오는 데로 지껄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대강 안부를 묻고 고추 모종 이야기를 잠깐 하고 그간 이야기 잠깐하고 내일 집에 와서 이야기 합시다 하고 끈 어다. 참 기뻤다.
제수씨가 오셔주셔서 혹시나 내가 싫고 미워져서 친정에 오래 오래 있으면 올해 일을 어떻게 할까 여러 가지 궁리도 해보았다.
그러나 틀림없이 꼭 오시리라 믿었더니 돌아와 주어 무어라 말할수 없이 기뻤다.
도망간 사람이 다시 찾아온 기분 같다.
TV보며 반장아제 내일 한나절 고란 밭에 골 좀 지워 달라고 전화로 사정했더니 도와준다고 하셨다.
기도 조금 하다 취침하였다.
4월29일 맑음 금요일 제수씨 친정 갔다 오신 날
오늘 아침은 기탁조모 생신날이어서 부께서 아침은 종숙모 댁에서 잡수시고 나는 집에서 한술 먹었다.
집 청소 하고 뒷집아제 고란 밭에 골을 좀 잘 지어 주시기를 말씀드렸더니 오셔서 한나절 다베고 골을 반을 지어 주었다.
삼촌도 오셔서 비료를 져 올려서 치고 돌을 주어내고 도랑을 치고 골고루 종일 하셔서 하루 종일 다 할 수 있었다.
밭을 그렇게 장만하여 일을 하니 일하기가 얼마나 좋은지 소를 두 마리 몰아너어 다베고 골을 지우고 멋지게 되었다.
점심은 큰엄마도 오시고 함께 먹었다.
11시경 제수씨 장에서 반찬 사가지고 아이들 데리고 무사히 오셔서 기쁘기 한량없다.
세상에 어디 우리 제수씨 같은 분이 또 있을까?
힘이 있다면 업어드리고 싶을 정도로 고마운 나의 제수씨를 마음으로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
금화처럼 믿으며 흉허물 없이 지내고 싶다.
오후 앞집 할배 큰집형님 배나들 할배 함께 오셔서 포크레인 일한 품값 계산을 하는데 앞집 할배께서 갈바리처럼 약삭빠른 수단으로 돈을 덜 내려고 야단이다.
여기저기 3군데 끌고 다니면서 일을 시키고 한나절 품값도 안주려고 우리 일 식힌데 떠넘길여고 하여 우리하고 15000원 배나들 할배 5000원 2만원 추가로 보태 드렸다.
더 줄 필요 없으나 우리 한 시간 더한 요랑하지 뭐 큰집형님도 돌3개 빼고 만삼천원 냈다.
오후 고란 밭에 모두 마치고 피곤하여 밤에 일찍 잤다.
4월 30일 맑음 토 과수원에 두 번째 약을 쳤다.
식전 제수씨 아버지 상명 아빠 저걸에 가셔서 물을 싣고 과수원에 갖다 놓고 왔다.
소죽을 끓이고 마당을 쓸고 아침식사를 한 후 삼촌과 모두 3집 식구 과수원에 총출동 나는 리어카를 타고 처음으로 과수원에 갔다.
처음 기계 발동이 잘 걸리더니 한참동안 기계가 제힘을 내지 못하더니 웅동생이 손을 쓰더니 잘 돌아가서 제수씨도 약대들고 아버지와 둘이서 쳤다.
12시까지 약을 다 치고 정리하고 집에 오니 1시가 조금 넘었다.
웅동생은 바로 정산에 갔다.
점심 먹고 잊자니 동장이 뒷집에 왔다 가는 것을 불러 이야기 조금 하다가 가고 안골에 고추밭 장만하러 제수씨와 아버지 리어카에 비료 7포와 쟁기를 싣고 갔다.
다 못하고 왔다고 했다.
금화한테서 내일 법회 간다고 전화가 왔다.
숙모 삼촌 거들어서 기계도 잘 돌아가 주어 약을 잘 쳤다.
2~3일만 빨리 쳤으면 좋았을 텐데 사과꽃이 너무 많이 핀 것 같은데 결실이 잘 되 주어야 할텐데 좀 걱정된다.
애들 보면서 놀다가 오후에 3시간을 잦다.
저물어서 시목이를 시켜 소죽을 안친 후 끓이고 길수모 파를 한 단 정도 고추밭에 것을 많이 뽑았다며 갖다 주고 가셨다.
그런대로 행복한 생활이다.
남들한테 비하면 우리가정 같은 데서도 제수씨가 알뜰히 살아 보려고 열심히 노력하시는 모습과 오늘 처음으로 약대 들고 약을 쳐보았다며 힘은 들지만 할만 하시다고 했다.
사랑스런 나의 제수씨 지금보다 더 잘도 못하지도 않게 이정도 우애로만 우리 함께 살다간다면 인생이 서로 불행하지 않고 중도의 생활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부처님 이 가정을 살피시어 웃음꽃 활짝 화목한 가정이 되게 하소서.
경주에서 전화가 왔다. 안부전화 왔다. 일기 쓰고 책상정리하고 염불 조금하다가 취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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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하루도 일기를 쓰씨는 권오웅 형님이 네가 보기에는 으뜸이네요.
형님의 이 일기는 살아있을 때 그렇게도 돈을 들여가며 파일로 입력하느라 애썼으니
정리해서 올려 드리는게 도리가 아닐까 해서 꽤 시간이 걸리지만
읽을거리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올리고 있다.
더러더러 시목이 이야기가 자주 나오더라..
먼길가신 님을 생각해보니 그저 짠함을 느끼고 햇살님에 정성에 그저 고개 숙여집니다..
형님의 일기를 대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직도 형님께서는 제 주변에 그대로 계시는 것만 같습니다.
저도 7,80년대에는 일기를 꼬박 썼었는데, 금춘가족을 발행하고 부터는 그 시간이 여의치 않아 일기는 따로 쓰지 않습니다만, 일기 이상으로 많은 댓글을 달고 있으니...
그것으로 제 삶의 흔적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런저런 인연들로 하여금 오늘 이 새벽에는 한번도 뵌적없는 물망초님을 생각도 해 보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