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는 반가운 햇님이 오랜만에 얼굴을 내밀었다.
봄부터 유난히 비가 많은 한 해를 보내고 있는지라, 반가운 햇살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웠다.
그래서 아내의 오랜만의 외출을 서둘렀다. 힘든 일이지만....
온몸이 경직된 아내가 한 번 외출하기란 대사라할만하다.
먼저 옷을 갈아입히고 (이것부터가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출입문까지 휠체어에 태워 옮긴 뒤, 거기에선 업어 차에까지 다시 이동해야한다. 차 뒷자석에도 단번에 들어가기란 불가능하다. 마치 몸이 통나무처럼 경직되어 있기때문이다. 업은 채로 간신히 몸을 굽혀 뒷자석에 들여보낸다. 그러면 아내는 누운 자세가 된다. 다음엔 다시 차안에서 일으켜 똑 바로 세우는 일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고도 주행하다보면 몸이 밑으로 혹은 옆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기때문에 안전벨트를 매 주어야한다.
어디엘 가고 싶은지를 아내에게 물으니 송도엘 가고 싶다고 한다.
그곳까지는 차로 부지런히 달리면 대략 1시간 걸린다.
추석을 앞두고 도심의 체증이 평소보다 더 심했다. 방향을 틀어 뒷길로 들어서다보니 재래 시장이 보였다. 아내의 입이 심심할 것 같아 정차해 포도를 샀다. 아내는 그래도 감사하게 경직된 손으로 포도를 곧잘 먹었다. 가면서 두 송이나 먹는 것을 보면서 나도 흐뭇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은근히 걱정이 마음 한 구석에 스며들었다. 혹시 소변 실례를 하면 어쩌나하고...... 요즈음 들어 부쩍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졌기때문이다.
송도는 뒤로 아담한 청량산이 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훤한 곳이다.
차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아내에게 난 바다를 보여주고 싶어 청량산 중턱으로 난 도로를 따라 차를 몰았다. 중간에 차안에서도 나무 사이로 바다가 보이는 곳을 찾아 정차했다.
오랜만에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일었다.
앞 바다 상공엔 이름을 알 수 없는 큰 새 한마리가 공중을 빙빙 날고 있었다. 아내도 저 새처럼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존재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랐다.
길가엔 코스모스,분꽃등이 줄지어 피어있었다. 분꽃을 꺽어 아내에게 갔다주자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의 미소는 더욱 커지고 곧이어 그 미소는 나에게도 옮아왔다. 그곳에서 우리는 한참을 머물렀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멈추지 않는 통증은 아내를 계속 괴롭혔다.
그래도 난 한번 나오기 힘든 기회라 더 있게 하고 싶은 욕심으로 그의 통증을 외면했다.
바다가 석양으로 붉게 물들기 시작할 즈음 아내에게 저녁을 먹고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무엇을 먹고 싶은지 그에게 물었다. 식당에 들어 갈수는 없지만 식당에서 음식을 포장해 달라하여 차안에서 먹을 요량이었다. 몇 차례 뭐든지 먹고 싶은 것을 말해보라는(비싼 것이라도) 나의 말에 그는 겨우 순대국밥을 내놓았다.
겨우 그거냐고 하며 웃었지만 자신의 입에 당기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순대전문점을 찾았다. 그러나 비닐봉지밖에 포장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일회용 그릇에라도 담아줘야 차안에서 먹을 수 있을텐데...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렸다. 그래도 그냥 뚝배기에 담아 달라하여 차안에서 먹고 다시 그릇을 갖다줄 걸 하는 생각이 지금도 든다. 결국 아내는 다시 재첩해장국(올갱이)이 먹고 싶다고 하여 그것을 포장하여 집에 갖고 와 끓여 먹음으로 오랜만의 외출의 막을 내렸다.
흐뭇하면서도 우울한 그런 날이다.
첫댓글 가슴이 찡하면서 콧날이 시큰해지는군요.장차 나의 모습이 아닐까 두려워지네요. 우리 모두 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