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6일 연중 제13주간 (토) 복음 묵상 (마태 9,14-17) (이근상 신부)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둘 다 보존된다.”(마태9,14-17)
예수님께서는 좋은, 착한, 순한, 인내심있는 양성자, 양육자다. 그는 제자들의 성장속도에 관대하다. 미리 짜여진 양성의 때가 아니라 성장하는 이들의 때, 그들의 고유한 때를 믿고 기다린다. 큰 믿음이 필요한 일이다. 때를 놓치면 영영 사람되기 힘들 것같은 조바심을 이긴다는 것. 실로 숱한 경험들이 말하는 바대로 인간이란 다그치고 서둘러 가르쳐야 할 바를 가르쳐도 배우는게 별로 없는 존재이기에... 반쯤 희망을 두고 쏟아부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버리는 걸 양성이나 교육이라 여기기 십상이다. 성격이 급한 나같은 사람이 너무나 쉽게 빠져드는 함정이다.
남들에게만 그런게 아니다. 나 좀 내버려두라고 세상을 향해서는 악다구니를 써보지만 실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관대하게 대하는 법을 모른다. 인간은 단순하여 남을 비난하는 방식 그대로 자신을 비난할 수 밖에 없다. 후자가 오히려 더 깊고, 깜깜하여 자기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
예수께서는 그러나 참 느린 시간을 사는 법을 아신다. 아니 견디고 믿는 법을... 아니지 그런 법이 어디 따로 있는게 아니지... 느리고 느리게 믿고 또 믿어주는 삶의 선택을 하신다. 그때에도 지금도...
그에게 새 술, 그러나 우리 하나 하나를 담는 새 부대란 참 느린, 너무 관대하여 듣도 보도 못한 방식. 인간이라는 이 고유한 존재, 새 술이란 늘 새로운 부대에 담겨야 익어간다고 터지지 않는다고 주님께서 알려주고 계신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2zrRq8TX6kZRU3bGqjEy71w9SvswcbFMugTPvzNGQKqKihpE53DTN9JUqScWiLu7f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