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106]아름다운 사람(33)-시인 신경림
‘시인 신경림’하면 지금의 정서情緖로는 어림 반쪽도 없지만 1983년에 발표한 <농무農舞>라는 시가 맨먼저 떠오른다. 소생하고는 일면식도 없는 원로문인이나, 그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해선 쪼금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분이 어제 세상을 뜨셨다. 향년 89세. 언론은 ‘한국 문단의 거목’ 또는 ‘거인’이라고 약속이나 한 듯 제목을 달지만, 나는 이런 지칭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 ‘거목巨木’임에는 틀림없으나 천박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 돌아가셨구나. 참 조용한 성품에 쉬운 시에 민중을 사랑했던 진짜 시인이셨는데’ ‘저그(레거시언론)들이 언제 신경림을 거목 취급하며 비중있게 띄워본 적이 있나?’ 중얼거리며 묵념을 했을 뿐이다. 그분은 민중시인이라 해야 맞다.
책꽂이를 뒤졌다. 창비에서 펴낸 『농무』라는 시집은 없어진 듯하고,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정지용에서 천상병까지 22명 시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적확하게 풀어쓴 해설서. 신경림 저, 2002년 10쇄 펴냄)와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신경림이 해설한 『농민시선집』(1985년 발행)이 있는데, 그의 <농무> 등 5편의 시가 실려 있다. 탈농화脫農化가 진행 중인 시대에 쓴 <농무>를 지금 읽으니 전혀 와닿지 않는다. 징이 울리고 막이 내리는 시골 동네 민속잔치가 전멸하다시피 했고(그 대신 별 개떡같은 '축제'가 빈 농촌지역에 6000개가 넘는다한다), 꽹과리를 앞세워 장거리로 나서도 따라붙어 악을 쓰는 쪼무래기는 눈을 씻고 봐도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그분의 대표작이라 할 <가난한 사랑 노래>는 지금도 울림이 크다<사진 이미지로 감상하시라>.
책을 좋아하다못해 책방까지 차린 어느 정치인은 “민족의 삶과 아픔을 노래한 많은 시편이 지치고 힘든 일상을 살아내는 이들에게 큰 위로와 힘을 주었듯, 선생님이 두고 간 시들은 우리의 마음을 오래도록 울릴 것”이라고 썼지만, 지금, 오늘날, 여기, 누가 한갓지게 시나 소설 나부랭이를 읽으며 이런 감상에 잠긴단 말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또 한 신인 정치인은 “군홧발 세상에서 사람의 이야기를, 삶을 질박하게 노래한 분. 내 형제자매와 우리 부모가 밥상머리에서 하는 말을 시집으로 채운, 물 말은 밥에 짠지같은 시를 남기셨다” 며 시인을 애도한 후 "그 세상이 지나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입을 틀어막는 주먹이 있다"며 정치가다운 여운을 남기기도. 군홧발 세상을 시로 이겨낸 깨끗한 시인. 시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려고 조용히 분주했던 시인의 시를 한마디로 ‘물 말은 밥에 짠지 같은 시’라고 했다. 정치가도 되려면 이 정도 멘트는 날릴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이건 인문학적 소양 문제가 아니고 인간(시인)에 대한 깊은 애정의 발로가 아닐까. 하하.
그렇다. 시인 신경림은 진짜 ‘짠지 같은 시’를 썼다. 절친인 문학평론가는 “노인(1935년생) 속에 아기가 들어있는 (시인이 아닌) 사람. 권위주의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분. 시만큼이나 인품이 진짜 훌륭한 분”이라며 슬픔을 토해냈다. 안동의 은자隱者 전우익 선생의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현암사 발행)를 읽고 두 분이 심우心友라기에 부러워한 기억이 뚜렷하다. 한 문단 후배의 추모칼럼(한겨레 게재)이 너무 아파 링크를 걸었다. 참조하시압. https://v.daum.net/v/20240523142006815
내가 지적知的으로 선악을 분별할 수 있은 후부터, 존경하고 따르며 삶의 멘토로 삼고 싶었던 분들이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가슴이 먹먹하다. 김구, 장준하 선생까지 거스를 필요도 없다. 김대중 선생, 함석헌 선생, 문익환 목사, 백기완 선생, 신영복 교수, 홍세화 선생, 이어령 박사 등의 빈 자리는 오래도록 클 것이다. 글로써만 만나뵐 수 밖에 없는 일은 슬프다. 좋은 사람과 이별도 슬픈데, 영별永別은 어쩔 것인가? 시로써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려고, 평생 조용히 웃으시며 애쓰던 ‘참 시인’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