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을 위한 銀行 ♡♡
1976년 어느 오후 방글라데시 '치타공 대학교' 경제학(經濟學) 교수(敎授) "무함마드 유누스"는 캠퍼스를 벗어나 인근 마을 조브라로 걸어갔다.
강의실에서 경제(經濟) 이론을 가르치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無意味)
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바로 1년 전 방글라데시는 대기근으로 150만 명이 굶어 죽었다.
대학 담장 밖에선 사람들이 죽어 가는데 그는 칠판에 수요와 공급(供給) 곡선(曲線)을 그리고 있었다.
마을에서 그는 대나무 의자를 만드는 "수피아 베검" 이 라는 여성을 만났다.
하루 종일 일해도 그녀가 버는 돈은 2센트에 불과했다.
이유가 기막혔다.
대나무를 사려면 중간 상인(商人)에게 돈을 빌려야 하는데 그 대가로 완성된 의자를 헐값에 넘겨야 했다.
그녀는 평생(平生)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유누스"는 마을을 돌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조사했다.
놀랍게도 42명 전체가 필요(必要)로 하는 돈은 고작 27달러였다.
"유누스"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자신(自身)의 돈으로 42명에게 빌려준 것이다.
담보(擔保)도 계약서(契約書)도 없었다.
동료 교수(敎授)들은 그를 미쳤다고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절대 갚지 않을 거요.“
하지만 몇 주 후, 42명 모두 돈을 갚았다.
"유누스"는 깨달았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거나 무책임한 게 아니다.
단지 기회가 없을 뿐이다.
그는 은행(銀行)을 찾아가 이렇게 요청(要請)했다.
“이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주세요. “ 은행장(銀行長)은 웃으며 거절(拒絶) 했다.
“담보가 없잖습니까. 글도 못 읽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돈을 빌려 줍니까?”
"유누스"는 다른 은행(銀行)들을 찾아 다녔지만 결과(結果)는 같았다.
가난한 사람들은 은행 시스템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은행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1983년 '그라민 은행'이 탄생했다.
'그라민'은 벵골어로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 은행은 세상의 모든 은행과 반대(反對)로 작동(作動)했다.
부자(富者)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돈을 빌려 줬다.
담보를 요구(要求) 하지도 않았다.
대신 5명이 그룹을 만들어 서로를 보증(保證)했다.
이자율은 전통 은행보다 훨씬 낮게 책정(策定)했다.
놀랍게도 상환 율은 98%를 넘었다.
전통 은행보다 훨씬 높았다.
가장 혁명적(革命的)인 것은 대출 대상의 97%가 "여성" 이었다는 점이다.
방글라데시 같은 보수적(保守的)인 사회에서 여성들은 재산권(財産權)도, 결정권(決定權)도 없었다.
하지만 "유누스"는 발견(發見) 했다.
여성들이 돈을 빌리면 술이나 도박(賭博)에 쓰지 않고 아이들 교육(敎育)과 가족의 미래(未來)에 투자(投資)한다는 것을.
한 여성은 소 한 마리를 사서 우유(牛乳)를 팔아 생계를 꾸렸고 그 돈으로 딸을 학교에 보냈다.
그 딸은 나중에 의사(醫師)가 되었다.
은행가들과 경제학자들은 '그라민 은행'을 비웃었다.
“자선 사업이지 은행이 아니지. 곧 망할 거야.”하지만 '그라민 은행'은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장(成長)했다.
2006년 무렵에는 700만 명 이상에게 대출(貸出) 했고 방글라데시 전역(全域) 8만 개 마을에서 은행(銀行)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있었다.
"유누스"의 통찰(通察)은 단순 했지만 강력했다.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이 만든 게 아닙니다.
우리가 만든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만든 것입니다.“
그는 자선(慈善)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믿었다.
구걸(求乞)이 아니라 기회를, 시혜(施惠)가 아니라 권리를, 믿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동정(同情)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능력(能力)을 발휘할 기회가 필요(必要) 합니다. “
2006년 10월 유누스와 '그라민 은행'은 노벨 평화상(平和賞)을 수상(受賞)했다.
노벨위원회는 하층 계급으로부터 경제·사회 발전을 만들어낸 공로(功勞)를 인정(認定)했다.
시상식(施賞式)에서 "유누스"는 이렇게 말했다.
“빈곤은 평화(平和)에 대한 위협(威脅) 입니다.
빈곤 퇴치가 곧 평화 건설입니다.“
"유누스"의 소액 대출 모델은,
전 세계(世界)로 퍼져 나갔다.
100개국 이상에서 1억명 이상이 소규모 대출(貸出)로 사업을 시작(始作)했다.
한 여성은 재봉틀 한 대로 시작(始作)해 작은 봉제(縫製) 공장을 만들었고, 한 남성은 릭샤(인력거) 한 대로 시작해 운송(運送) 사업(事業)을 일궜다.
이들은 더 이상 구걸(求乞)하지 않고 당당한 사업가(事業家)가 되었다.
"유누스"의 혁명(革命)은 돈이 아니라, 신뢰(信賴)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믿었다.
그들의 성실(誠實)함을, 그들의 꿈을, 그들의 가능성(可能性)을 믿었다.
27달러에서 시작(始作)된 그 믿음은 수억 명의 삶을 바꿨다.
첫댓글 가난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만든 것이다.~ 감사합니다.~
2006년 10월 유누스와 '그라민 은행'은 노벨 평화상(平和賞)을 수상(受賞)했다.
감사합니다.~
성실(誠實)함을, 그들의 꿈을, 그들의 가능성(可能性)을 믿었다.~ㅜㅜ
믿음 최고의 신뢰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