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0812)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시 68:5~6).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오늘날 세계 교회의 중요한 관심사는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존(약칭 JPIC)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이 가운데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정의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오늘의 세상은 의로운 자가 형통하기보다는 돈 많고 힘 있는 자가 득세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정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 실현을 위해 먼저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구약 시대 고아와 과부는 이방인과 나그네와 함께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곤핍하고 소외당하기 쉬운 자들을 대표하는 자로서 보호의 대상이었다. 이에 모세 율법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에 누구든 이들을 도와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신 16:11, 14). 따라서 하나님의 정의는 이처럼 곤경 속에 처해 있는 선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바로 죄에 깊이 빠져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는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에서부터 정의는 출발한다. 성경은 밭에 떨어진 이삭은 가난한 자들의 양식으로 남겨두라고 했고(레 19:9,10), 노예를 해방시킬 때도 그들이 가난 때문에 또 노예가 되지 않도록 재산을 주어 놓아 주었다(출 21:2). 반면에 고리대금으로 가난한 자들을 등쳐먹는 일을 저주하고 있다(시 109:11).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들은 가난한 자들을 돕고 사랑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정의는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정의가 타락한 사회일수록 돈 없고 힘없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한 정의의 재판장이 되시기를 원하신다(시 82:3).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심이라’(눅 4:18)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한 마디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 되시는 정의의 하나님께서는 약자를 돌아보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시며, 인간의 정당한 권리를 회복시키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이러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을 몸소 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우리도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실현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혹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이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기는커녕 그들을 알게 모르게 무시하고 압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약하고 소외되고 힘이 없는 이들을 항상 보살피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의 기도 :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 날이 갈수록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온갖 부패함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지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이들을 돌아보시기에 하나님의 자녀된 크리스천들이 더욱 이들을 돌보고 도와주는,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앞장서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