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Trine Soundtrack - 04 Dragon Graveyard
출처: 피키캐스트 "Curious Park"님
기원 전 4세기 경, 스웨덴 영토 인근.
장차 인류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길 한 민족이 출현합니다.
그들은 후일 '게르만 민족'이라 불렸으며 그들의 후손들이 현대 서양 문명의 근간인 영국, 독일, 네덜란드, 미국, 프랑스 등의 국가를 형성했죠.
오늘날 세계를 주름잡는 서양 세계의 뿌리가 된 게르만족. 그러나 세상 이치가 그러하듯, 이들의 시작은 매우 미약했습니다.
고대 유럽 대륙의 깡패는 게르만족이 아닌 '켈트족'이었습니다. 켈트족은 철기 문명을 일찍부터 받아들인 덕분에 강력한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죠.
켈트족은 이탈리아 반도와 지중해를 지배했던 '고대 로마제국'에게도 엄청난 위협이었습니다. 이들은 틈만 나면 고대 로마를 침략하여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죠.
그래서 기원전 시절의 고대 게르만족은 켈트족에게 완전히 밀려나, 눈치나 슬슬 보며 근근이 사는 신세였습니다.
켈트족 개개인의 능력치나 전투력은 타민족을 압도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합'이 잘 안된다는 것이었죠.
켈트족은 B.C. 290년에 소아시아를 점령하려다가 단합 문제로 연패를 거듭했고, 결국 나락행 열차에 탑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열차 티켓에는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로마의 일부가 되거라!"
인류 역사에서 영원한 강자란 있을 수 없습니다. 제 아무리 잘나갔더라도, 한 순간에 상황이 역전되어 민족 정체성 자체를 모두 잃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죠.
켈트인이 바로 그 예입니다. 이들은 고대 로마 제국 입장에서는 매우 골칫덩어리였지만, 나중에는 로마에 완전히 동화되어 로마의 부흥기를 이끌게 됩니다.
그러나 3세기에 들어, 잘 나가던 로마 제국도 큰 위기를 맞게 됩니다. 바로 '게르만족'과 '페르시아 제국' 때문이었죠.
로마의 부하 왈
: "전능하신 황제여. 아뢰올 것이 있나이다. 지금 게르만족이 서쪽 방어선을 돌파했다는 전갈이.."
로마 황제 데키우스 왈
: "뭐? 게르만족이 또 쳐들어왔다고? 그렇지 않아도 페르시아 때문에 동쪽도 위험한데, 큰일이군."
서기 251년, 급기야 게르만족의 한 일파인 '고트족'은 로마 황제인 데키우스를 살해하고 발칸 반도를 황폐화시키죠.
설상가상으로 260년에는 페르시아군에게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생포되어, 로마 황제가 페르시아 황제에게 무릎을 꿇는 사건이 발생하죠.
원래 악재는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요? 그 외에도 로마 제국 내에 천연두가 발생하여 토네이도처럼 전국을 휩쓸고 지나가 상당수의 주민들이 사망했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친다는 로마제국의 명성은 옛말이 되고 말죠.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347 ~ 395) 왈
: "로마제국 전역은 이제 아웃 오브 컨트롤임. 일단 동과 서로 나눠서 따로 통치하자."
그래서 서기 395년, 로마제국은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완전히 분열됩니다.
더구나 로마 황제에게는 실권이 없고, 실질적인 지배는 게르만족의 군인들이 하게 되었죠.
찬란했던 고대 로마문명이 한낱 이민족들의 놀이터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암울한 현실에서,
만약 게르만족이 서로마제국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나라를 세울 궁리를 했다면 로마제국은 일찍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게르만족은 로마의 파괴가 아닌 '로마와 동화'되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이는 이미 망국 테크트리를 탄 로마제국의 시한부 인생을 조금 더 늘려준 수준밖에 되지 않았죠.
한편 로마인들은 게르만족을 야만인으로 무시하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게르만족 대부분은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촌스러워 보였을 뿐만 아니라 문맹이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게르만족은 서로마제국의 군대에 소속되어 용감하게 이민족들과 전투를 치르며 공적을 쌓았고,
때로는 서로마제국의 유능한 금속 세공사로 명성을 떨치면서 로마인들에게 '신뢰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적립해 나갔습니다.
또한 게르만족의 외모도 한몫 했습니다. 게르만족은 외모적으로 로마인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이 더욱 로마 사회에 융화되기에 유리했죠.
▣ 서로마제국의 멸망
: 로마제국의 심장에 비수를 꽂다.
게르만족과 서로마제국의 협동 모드는 얼마간 잘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던 4세기 후반.. 아시아에서 웬 '듣보잡'이 나타나, 로마 제국 동쪽 국경 지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들은 바로 동방에서 온 공포의 '훈족'이었습니다.
혜성과 같이 등장한 훈족은 무서운 기세로 게르만족 중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고트족을 무찌르며 간담을 서늘하게 만듭니다.
그러자 서로마제국 동쪽 라인에 살았던 게르만족(고트족, 반달족, 프랑크족 등)이 서로마 제국 내부로 물밀듯이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말이 피난이지, 실상은 서로마제국 입장에서 '침략'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로마 시에 있는 식량이건 토지건 메뚜기떼처럼 휩쓸고 지나갔죠.
그리고 당시 서로마제국은 고트족에게 훈족의 침공에 대비해, 전투에 필요한 식량과 보급품을 지급해주기로 약속했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378년 고트족은 로마에 반란을 일으킵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동로마황제 발렌스가 전사했고, 새 황제로 테오도시우스 대제가 즉위하죠.
그러나 테오도시우스도 파리 목숨인건 매한가지였습니다. 당시 동로마 황제는 로마를 접수한 고트족에게 은밀한 서신을 전달합니다.
동로마 황제 왈
: "고트족인지 요트족인지 헷갈리지만 잘 들어. 지금 서로마제국을 파괴해야 할 때임. 당장 로마를 공격하는 게 어때?"
동로마 황제의 세치 혀에 넘어간 고트족은 즉각 군사를 일으켜 로마 시내로 향합니다. 즉 동로마 황제에 의해 고트족이 매수된 것이죠.
결국 5세기에 들어, 410년 고트족이 로마를 침공했고, 얼마 뒤에 455년에는 반달족이 로마 시내를 침공하여, 마지막 황제인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키는데 이릅니다.
이로써 서로마제국은 이탈리아 반도를 200년도 채 통치하지 못하고 멸망에 이르게 되죠.
서로마제국의 멸망에 대해 학자들은 여러 가설을 내놓고 있는데요. 그 유럭한 가설 가운데에는 로마제국 내부의 썩은 '정치적 문제'가 있습니다.
예컨대 오늘날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이 서거하면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긴 하겠지만, 적어도 다음 대통령 선거가 있을 거라는 향후 예측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서로마제국은 애초부터 '황제 계승'에 대해 전혀 예측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적 문제가 심각한 지경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내란으로 국가 자체의 존망이 심하게 흔들렸던 시점이었고, 로마제국의 세종대왕급 황제인 아우구스투스는 대단한 업적을 남겼지만 왕위 계승에 대한 적절한 선례를 만들어 두지 않았죠.
즉 누가 황제로 즉위하더라도 국민들은 전혀 존경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서로마제국 내부에는 늘 정치적 반란이나 모의가 끊이지 않을 수 밖에 없었죠.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전염병과 이민족이 출현하니, 어떤 현명한 황제가 와도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서로마제국은 서기 480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은 끝까지 살아남아 1453년까지 약 1100년 동안 존속했죠.
그러면 동로마제국은 어떻게 5세기에 벌어진 훈족과 게르만족의 침공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까요?
일단 동로마는 서로마보다 부유했습니다. 그래서 서로마보다 좀 더 군사력을 키울 수 있었죠.
또한 동로마에는 대도시나 교역도시가 즐비했습니다. 따라서 좀 더 많은 시민들이 세금을 낼 수 있엇고, 이는 곧 서로마와의 '국력의 차이'를 의미했죠.
당시 콘스탄티노플(오늘날의 이스탄불)에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일컬어지는 '삼중 구조의 성벽'이 있었습니다.
이 성벽은 동로마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제작했습니다. 이후 수많은 나라가 콘스탄티노플을 침공하지만, 결국 이 성벽에 무너지며 그 꿈을 접었죠.
지금은 지진이나 재해로 대부분 붕괴되었지만, 잔존 성벽만 봐도 얼마나 '넘사벽 급'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 게르만족이나 훈족 등은 이런 크기의 성벽을 무너뜨릴 만한 공성기나 공성전 능력이 없었습니다.
어쨌든 동로마제국은 이 성벽의 도움에 군사력, 자금력이 합해져 나라를 지킬 수 있었죠. 그렇다면 로마제국은 서양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인류 고대사를 통틀어 '로마 문명'처럼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문명은 없습니다. 로마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유럽은 아마 존재하지 못했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까요.
또한 비록 로마제국은 멸망했지만, 로마 문명의 흔적은 오늘날까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미국 정부의 많은 건물들의 디자인은 아직도 로마 전통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고,
고대 로마인들이 만든 법률, 서적 등은 중세 이후 나타나는 국가들부터 현대 국가에 이르기까지 매우 많은 영향을 주었죠. 즉 후대인들에게 로마는 영원한 '롤 모델'이 된 셈입니다.
ps. 위 출처에서 가져온 자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