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반영한 권력ㆍ문화의 산물
을유(乙酉)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은 누구에게나 각별하지만, 천문학적으로는 여느 날과 다를 것이 없다. 새해의 시작은 우리가 만든 달력에만 존재할 뿐이다. 오늘날 생활의 필수품이 된 달력에는 과학적 원리 보다는 오랜 사회적 전통과 정치와 종교 권력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다.
지구의 계절 변화는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자전 축의 북극쪽이 태양에서 먼 쪽을 향하면 우리에게는 겨울이 된다. 하지만 자전축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계절을 알아내는 데는 천문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저녁에 해가 진 서쪽의 하늘에 `양' 자리의 별이 걸려있으면 춘분이라는 뜻이다. 그런 사실을 처음 알아낸 사람들은 자연에 대해 남다른 관찰력과 기억력을 가졌던 주술사들이었다. 오늘날의 과학자들과는 달리 과거의 주술사들은 그런 비밀을 함부로 알려주는 대신 그것을 이용해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계절의 변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달력이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6000년 무렵의 이집트였다. 그 이후로 달력은 언제나 계절 변화 이외에도 종교 행사를 치르고, 이웃의 약한 나라를 지배하는 좋은 수단으로 활용됐다. 1442년 세종대왕이 `칠정산'을 펴내기 전까지 우리도 어렵게 얻은 중국의 달력을 쓸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는 천문기술을 갖지 못한 나라는 진정한 독립국이 될 수 없었다.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는 언제나 1억5000만km로 일정하게 유지된다. 지난 45억 년 동안 거의 변함 없이 똑같은 원형의 공전 궤도를 유지해 왔다. 둥근 원의 경우가 그렇듯이 지구의 공전 궤도에는 특별한 출발점이 없다. 이는 새해 첫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를 명확히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달력이 오래전부터 과학 보다는 전통을 반영해서 만들어진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달력에서 새해가 시작되는 첫날은 지역, 문화, 종교에 따라 달랐고,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춘분이나 추분에 가장 가까운 음력 초하루, 이집트에서는 추분, 그리스와 인도 사람들에게는 동지가 새해 첫날이었다.
고대 유대인의 설날은 9월과 10월 사이에 있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3월1일이 설날이었고, 유럽의 초기 그리스도교 국가에서는 3월25일이 한 해의 시작이었다.
오늘날의 양력 설날은 기원전 45년에 만들어진 `율리우스 달력'에서 비롯됐다. 당시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당시의 11월1일에 새 달력을 공포하면서, 그 날을 새해 첫날로 선포했다. 하지만 달의 이름은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11번째 달이었던 `야누아리우스'(januarius)가 오늘날의 `1월'이 돼버렸다. 지금의 `2월'이 28일이 된 것도 당시의 `페브루아리우스'(februarius)가 한 해의 마지막 달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 달력'은 1582년에 만들어졌다. 당시의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한 해를 365.2422일 대신 365.25일로 했던 율리우스 달력의 오차를 바로 잡기 위해 10월4일 다음날을 10월 15일로 바꾸고, 새로운 윤년의 규칙을 도입했다. 그레고리 달력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달력이 됐고, 우리도 1895년부터 그레고리 달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주의 해'(anno Domini, AD)를 뜻하는 `서기'(西紀)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서기 532년에 교황 성 요한네스 1세의 요청으로 부활절의 정확한 계산법을 찾던 이탈리아의 수도사 디오니시우스가 그리스도가 탄생했던 해를 추산해서 결정했을 뿐이다. 물론 그런 추산에 대한 이견도 있다. 유럽에서 서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1세기부터였다. 새해의 `첫날'이 임의적이듯이, `첫해'의 시작도 우리의 관습에 불과할 따름이다.
한 해를 12달로 나누고, 7일 주기의 요일을 사용하는 것도 모두 인위적인 사회적 약속일 뿐이다. 그래서 올해가 `2005년'이나 `닭의 해'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도 없고, 그런 것을 근거로 운명을 점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협동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