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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9 "그러므로 아그립바 임금님, 나는 하늘로부터 받은 환상을 거역하지 않고,
26:20 먼저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으로 온 유대 지방 사람들에게, 나아가서는 이방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전하였습니다.
26:21 이런 일들 때문에, 유대 사람들이 성전에서 나를 붙잡아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26:22 그러나 내가 이 날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낮은 사람에게나 높은 사람에게나 이렇게 서서 증언하고 있는데, 예언자들과 모세가 장차 그렇게 되리라고 한 것밖에는 말한 것이 없습니다.
26:23 그것은 곧, 그리스도는 고난을 당하셔야 한다는 것과,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부활하신 분이 되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사람들에게 빛을 선포하시리라는 것입니다."
26:24 바울이 이렇게 변호하니, 베스도가 큰소리로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 하고 말하였다.
26:25 그 때에 바울이 대답하였다. "베스도 총독님,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참말을 하고 있습니다.
26:26 임금님께서는 이 일을 잘 알고 계시므로, 내가 임금님께 거리낌없이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므로, 임금님께서는 그 어느 사실 하나라도 모르실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26:27 아그립바 임금님, 예언자들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압니다."
26:28 그러자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짧은 말로 나를 설복해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하는가!"
26:29 바울이 대답하였다. "짧거나 길거나 간에, 나는 임금님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
26:30 왕과 총독과 버니게 및 그들과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 일어났다.
26:31 그들은 물러가서 서로 말하였다. "그 사람은 사형을 당하거나, 갇힐 만한 일을 한 것이 하나도 없소."
26:32 그 때에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에게 말하였다. "그 사람이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으면, 석방될 수 있었을 것이오.“
◈ 주해
1. 베스도 총독의 재판에서 바울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가이사께 상소하였는데, 이것이 주님이 말씀대로 이끄시는 방법이었다.
1)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은 자신의 목적대로 바울을 부르지만, 바울은 주님의 뜻대로 주의 이름을 그들에게 전한다.
2)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재판을 받는다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그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전한다.
2. 바울도 기독교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하여 지독한 열심을 가지고 성도들을 핍박하였다.
1)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고 죽임을 당할 때에 찬동하였다. 각 지역의 회당마다 찾아가서 여러 번 성도들에게 형벌을 가하였고, 강제로 신앙을 부인하게 하려고 하였었다.
2) 그래도 “분노가 극도에 달한” 그는 외국의 여러 도시에 가서 박해하기로 하고 그 첫 도시가 다메섹이었다.
3) 핍박 받는 주님은 더 극한 분노로 바울을 핍박하고 책망하는 대신에 “너만 아프게 하는 고생”이라면서 긍휼로 찾아오신다.
4) 그리고는 자신을 박해하는 바울을 일꾼과 증인 삼으려고 나타나셨다고 하신다.
행 26:16 자, 일어나서, 발을 딛고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목적은, 너를 일꾼으로 삼아서, 네가 나를 본 것과 내가 장차 네게 보여 줄 일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5) 바울은 자신이 핍박하던 예수가 부활하신 주 하나님인 것과 주님을 박해하는 자신을 “일꾼과 증인”으로 부르신 사랑으로 인하여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3. 바울은 자신이 만난 주님과 그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역하지 않고 전하였다.
행 26:19 "그러므로 아그립바 임금님, 나는 하늘로부터 받은 환상을 거역하지 않고,
26:20 먼저 다마스쿠스와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으로 온 유대 지방 사람들에게, 나아가서는 이방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전하였습니다.
4. 유대인들은 자신을 핍박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오늘까지 구약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 즉 전승된 복음을 전하고 있다면서 말을 마친다.
행 26:22 그러나 내가 이 날까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서, 낮은 사람에게나 높은 사람에게나 이렇게 서서 증언하고 있는데, 예언자들과 모세가 장차 그렇게 되리라고 한 것밖에는 말한 것이 없습니다.
26:23 그것은 곧, 그리스도는 고난을 당하셔야 한다는 것과,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부활하신 분이 되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사람들에게 빛을 선포하시리라는 것입니다."
1) 바울은 충성되이 복음을 전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다메섹에서부터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모든 것은 주님의 도움 때문이다.
2) 그러면서 그는 간략하지만 그가 선교할 때마다 전한 그 복음을 아그립바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한다.
3) 즉 모든 선지자들과 모세가 증거한 것, 곧 성경대로 고난 받는 그리스도와 성경대로 부활하신 복음을 전한다. 그분은 이스라엘과 이방 사람들의 빛이 되신다.
4) 비록 법정이지만 마음껏 변론할 기회가 되자, 바울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로 죄사함을 주시고 빛이 되시는 주님을 전한다(26: 18, 23).
5. 바울은 자신의 억울함을 풀거나, 무죄와 석방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는다.
1) 지금 바울의 변론을 듣는 자들은 모두 복음과 바울에 대하여 부정적이다. 그러기에 자신도 기독교를 박해하던 자이지만 지금은 성경이 증거하는 복음을 믿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2) 안타깝게도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일관되게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 하나님이 바울을 세우셨고, 바울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생명 주는 복음을 전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그 복음을 믿어 생명 얻는 자들은 나타나지 않는다.
6. 가장 먼저 베스도 총독이 바울에게 큰 소리로 외친다.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24절).
1) 베스도는 바울의 변론이 매우 박식하고 논리적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면서 복음을 무시한다.
2) 이에 대해 바울은 “베스도 총독님, 나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나는 맑은 정신으로 참말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제고해 줄 것을 요청한다.
3) 바울은 그에게 “내 말을 참되고 이성적이다”라고 하였다.
“What I am saying is true and reasonable”(25절, NIV).
7. 바울은 유대교와 구약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아그립바 왕에게 말한다.
“임금님께서는 이 일을 잘 알고 계시므로, 내가 임금님께 거리낌 없이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한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므로, 임금님께서는 그 어느 사실 하나라도 모르실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26절).
1) 그러면서 바울은 아그립바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아그립바 임금님, 예언자들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는 줄 압니다”(27절).
2)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였다(행 3:18; 벧전 1:10-11). 그러므로 만약 아그립바가 선지자들을 믿는다면, 복음을 믿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8. 아그립바는 바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대답한다.
“그대가 짧은 말로 나를 설복해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하는가!”(28절).
1) 아그립바의 말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2) 바울의 복음 증거는 아그립바에게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렸으나, 그는 헤롯가의 왕이고 지금 바울을 판단하는 위치에 있음으로 바울을 반박하지 않지만 동의하지도 않는다.
9. 바울은 아그립바의 말을 능숙하게 받아서 비슷한 방식으로 대답한다.
“짧거나 길거나 간에, 나는 임금님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결박을 당한 것 외에는, 꼭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빕니다”(29절).
1) 바울은 항상 그랬듯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다할 뿐, 그 열매는 하나님께 맡긴다.
- 그는 복음을 짧게 전해야 할 때던, 길게 전할 수 있을 때던 상관없이 기회가 닿는 대로 전한다.
2)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제안한 베스도 총독을 비롯하여, 자신을 판단하는 자로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빈다”는 말로 변론을 마친다.
3) 이로써 바울은 자신을 핍박하거나, 정치적 입장으로 구금하거나 재판하는 이들, 바울에게 미쳤다고 하는 베스도 등의 사람들을 향해 분노하거나 적대감을 갖지 않고, 그들도 믿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전한다.
10. 바울의 말이 끝나자,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과 버니게와 고위 관리들은 함께 바울이 무죄라는 결론을 내린다.
1) 바울은 사형이나 갇힐 만한 일이 하나도 없다(31절).
2)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황제에게 상소하지 않았으면, 석방될 수 있었을 것이오”(32절).
3) 그러나 아그립바는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바울을 구금하거나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려던 것을 모르고 한 말이다.
11. 인간적으로 바울은 무죄한데 석방되지 못하고, 죄수로 로마로 가야한다.
1) 그러나 바울은 주의 말씀대로 로마로 가는 것이다.
12. 2년 이상 전승된 복음을 전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바울이, 조금만 기회가 주어지자 다시 구약 성경이 증거하던 복음,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전한다.
1) 벨릭스 총독에게도 전했겠지만 그는 바울에게 돈을 원하고,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였다.
2) 그리고 다시 아그립바 왕 앞에서, 이전의 자신처럼 기독교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이들이 성경이 증거하는 그리스도를 믿어 죄사함을 받고 빛을 얻기를 바라며 복음을 전한다.
3) 주의 도우심을 받아 복음을 전해온 바울은, 그 결과를 주께 맡기며 기도할 뿐이다.
4) 이번에도 믿는 자는 없다. 바울은 미쳤다는 말을 듣고, 아그립바의 애매한 대답을 듣는다.
13. 바울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복음을 전하는 본을 보여 주어서 감사하다.
1) 바울은 전승된 복음을 전하되, 매우 지혜롭고 겸손하게 전한다.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복음을 전하지만 사람들에게 무례하거나 거슬리게 전하지 않는다.
2) 지금 복음을 듣는 자들의 문화, 입장, 태도를 모두 고려하여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데도 지혜로우면서도 겸손하게 전한다.
3) 그렇지만 그는 결과에 매이지 않는다. 자신이 비방을 받던, 믿는 자들이 있던 없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께서 일하시기를 기도하고 원한다.
14. 보통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존경스러우나 무례하고 자만한 경우가 많다.
1) 마치 우월한 자인 것처럼, 선심 쓰는 것처럼 복음을 전하여, 믿는 자들은 유익을 얻어 감사하나, 그렇지 않은 자들은 그의 태도와 언어에 반감을 가지게 된다.
2) 반면, 대다수의 성도들은 소심하다. 베스도처럼 미쳤다고 하거나, 믿는 자가 없을까봐 바울과 같은 처지, 즉 주변 사람들은 판단하는 자고 자신은 죄인이라는 불리한 처지에서는 감히 복음을 전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3) 그런데 바울은 담대하면서도 지혜롭고 겸손하다. 결과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신 복음을 그들의 입장에서 전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할 뿐이다.
4) 상대방의 정치적인 야심과 교만을 알면서도 비판적이지 않고,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한다고 하면서 반감이 아니라 사랑으로 다가간다.
15. 바울이 이렇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다메섹에서 자신을 찾아오신 주님 때문일 것이다.
1) 그가 말한 대로, 자신은 주님과 성도들에게 극에 달할 정도로 분노하며 박해하였으나 주님은 자신을 긍휼로 찾아오시고 일꾼과 증인으로 삼아주셨다.
2) 주님은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하심으로 그의 잘못을 정확히 지적하시되, 긍휼을 베푸셨다.
3) 바울도 담대하게 복음을 정확히 전하되, 긍휼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한다.
4)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이 자신들과 주를 본받았다며 칭찬하였다.
- 바울이 주를 본받아 복음을 전하듯이, 우리도 주와 바울을 본받기를 원한다.
5) 내안에 그리스도가 사실 때, 주님이 나의 생명되면 담대하면서도 온유하고 겸손하다.
◈ 나의 묵상
바울에게는 강한 이미지가 있다. 나도 그렇게 바울을 기억한다. 그런데 사도행전, 특히 예루살렘에서 잡히면서부터의 바울을 보니, 바울이 정말 세밀하고, 배려하고, 소통하는데 있어서 지혜롭고 겸손함을 본다. 어떻게 저렇게 담대한데, 어떻게 저렇게 단어 하나하나까지 세심한 배려와 소통으로 복음을 전할까?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바울이다. 예수님도 얼마나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였는가? 얼마나 담대하게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고 진리를 선포하였는가? 그러나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시고, 얼마나 세심한 사랑으로 한센병자를 만지며 치유하였는가?
나는 소심한 성격이어서 길을 몰라도 길을 물어보는 것조차 힘들어 한다. 쇼핑을 해도 판매원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전전긍긍한다. 그리고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이들에 대한 상처가 있다. 그들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담대함은 부러운데 너무 무례하다. 배려보다는 우월감과 무례함을 많이 보아서 더욱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나에게 복음을 전하겠다고 다가오면 내가 싫어하다 보니,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렵다.
나의 경험에 기반한 것은 무엇이나 예수 생명이 아님을 본다. 배려한답시고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미루는 것이나, 복음을 전한답시고 무례한 것과 결과에 매이는 것은 모두 육신적이다. 그래서 언제나 결론은 복음을 통하여 생명을 얻고,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다. 오직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만이 사랑과 담대함을 동시에 가진다. 지혜와 온유함과 힘이 있다. 소명대로 충성하되 결과에 매이지 않는다. 상대하고 싶지 않은 자들에게 반감을 가지지도 않는다.
나의 신앙생활과 복음 증거나 옛사람(병든 자아)와 상처와 경험에 기반하지 않고, 오직 복음과 예수 생명에 기반 하기를 기도한다. 자기 경험을 초월하여 생명을 주는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정말 희귀하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바울이 다메섹에서 만난 그 경험에 기반한 복음은 체험에 기반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성경적이고 주님을 따른다. 주님을 온전히 만나면 그 체험이 복음을 가리지 않고 도리어 더 풍성하게 한다.
나도 바울처럼 전승된 복음을 만나되,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을 만나길 원한다. 그래서 전승된 복음을 전하되 겸손하길 원한다. 탁월하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의 대다수가 어느 정도 교만하고 자만하고 판단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계시가 크다는 이유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전부인 것처럼 여긴다. 그리고 다른 곳에는 이런 복음이 없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면서도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자만한 태도를 알지 못한다. 뭔가 소중한 것을 알게 되면 자만한 것은 인간으로서는 자연스럽지만 예수생명이 아니다.
나는 반대다. 소심한 성격 탓에 담대하지 못하고 너무 눈치를 살핀다. 이 또한 예수생명이 아니다. 그래서 주의 긍휼을 구한다. 바울이 만난 그 복음으로 인한 담대함과 주님의 긍휼로 인한 겸손을 배우기를 원한다. 내 안에 사시는 주님은 담대하면서 겸손하고 온유하다. 세리와 죄인을 배려하는 섬세함과 함께 강하고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하신다.
구속의 은총을 힘입어 주께로 나아간다.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가 나의 왕이며 나의 주이며, 나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내 마음의 보좌, 내 모든 생각에 좌정하사 다스려야 한다. 주님께 기도한다. 내 영혼육의 보좌에 앉으사 왕으로 통치하시기를 간구한다. 주님의 생명으로 호홉하고 기동하면서, 담대하되 겸손과 배려로 복음을 전하는 마음과 지혜 주시길 기도한다. 주님의 도움으로만 가능하다. 바울도 주의 도우심으로 복음을 전하였으니, 나는 더욱 그러하다. 이 죄인에게 생명 주시고, 하나님께로부터 나게 하시고, 내 안에 사시는 주님의 인자와 신실함을 찬양한다.
◈ 묵상 기도
주님, 바울이 만난 주님을 저도 만나게 하여 주십시오. 모든 사람들이 체험에 근거하여 복음을 알고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의 체험은 너무나 성경적이고, 주님을 바로 아는 체험임을 봅니다. 주님, 탁월하게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배려와 겸손과 연합을 알게 하여 주시고, 저처럼 소심한 이들에게는 주님의 생명으로 담대하게 복음을 지혜롭게 전하게 하여 주십시오. 또한 결과에 매이지 않고, 주님께 맡기는 믿음도 주십시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오늘까지 복음을 전하게 하여 주십시오. 주님이 내 안에 사시고, 주님과 바울 같은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게 하여 주십시오. 하지만 주님은 각 지체들에게 은사와 은혜를 주시고, 몸으로 연합하여 교회됨을 이루고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하지 못해도, 각자 지체들에게 주신 은사와 은혜가 하나가 되어 생명주는 복음이 증거되고, 주님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분량 이상을 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이 주신 은혜대로 행하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담대하면서도 지혜롭고 겸손하게 복음의 증인들로 서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오늘 하루도 주 성령께서 영과 마음과 몸을 주관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