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6 모처럼만에 고향 친구들과 영화 한편을 보기로 했습니다.
오후 4시에 강남역 부근에서 '동주'라는 영화를 보고 간단히 저녁이나 먹으며 막걸리나 한 잔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나 강남역 부근에 영화관이 두군데나 있다는 걸 몰랐던 탓에 CGV에서 한참 헤메다가 매가박스로 뛰어가는 바람에 영화 첫머리
2,3분은 놓치고 말았습니다.
본 영화 시작 전에 느긋이 예고편 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인데, 도중에 들어가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데다 영화 자체가
흑백이어서, 우선 무겁고 가라앉은 분위기가 작은 영화관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시인 윤동주의 이미지는, 6촌인가 친척이 된다는 가수 윤형주와 겹쳐지는 부분이 제 개인적으로는 있어서, 왠지 세련되고 고생도
안한 깔끔한 도련님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섬세하고도 감수성이 묻어나는 서정적인 아름다운 작품이 주는 선입견이었던가 봅니다.
윤동주 일가는 파평윤씨로 일찌기 생각이 깨여 크리스쳔이었던 조부 때 만주의 용정으로 이주하여, 동주가 유청소년기를 보낼 때
까지는 비교적 무난한 삶을 살았으나, 그의 자의식이 커가고 일제의 식민정책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어둡고 무거운 현실에 대한
고뇌와 좌절과 무력감에 아파하며 쓰여진 시였음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 처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요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 했다 / (서시)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 바람이 부는데 /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 (바람이 불어)
동주의 절절한 고뇌와 아픔으로 그의 가슴에서 나온 주옥같은 시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긴 하지만, 영화의 묵직한 줄거리를
끌고 가는 것은 동주의 친구이자 고종사촌간인 독립운동가 송몽규였습니다.
영화를 보기 이틀 전, 한수회 산행은 세검정 북한산으로 통하는 자하문 못미처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을 들렀다가 인왕산을 타고
넘어가 서대문형무소 역사박물관 탐방코스였습니다.
서대문형무소박물관은 독립운동에 관한 전시가 당연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월하순인데도 감방동은 한기가 매서웠고, 갖가지 고문도구에다 신음소리(녹음)는 한동안 발길을 붙잡았는데, 영화에서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 송몽규의 모습과 오버랩되어 가히 충격적으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송몽규는 동아알보 신춘문예에 산문으로 입선할 정도의 글쏨씨와 교토제국대학에 붙을 정도의 두뇌에다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는
행동력을 가져, 유학생 저항운동을 이끌었던 진정한 사색과 고뇌와 행동을 보였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왜 한국인들을 이렇게 잔학하게 탄압했을까요?
저는 한국인들이 일본의 다른 어느 식민지 국가보다 격렬하게 저항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머리 좋은 한국인들은 일본의 일류 제국대학에 들어가 마음만 먹으면 일본사람보다 더 일본말도 잘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사상의
허구성을 금방 간파하고, 지정학적으로 많은 침략을 겪으면서도 지켜온 투철한 민족의식이 남달랐습니다.
흔히, 같은 식민경험을 한 한국과 대만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비교되곤 하는데, 대만은 원래 1624년 부터 네델란드의 지배를
받다가 명나라 장수 정성공이 청나라에 밀려 도망와 3대에 걸쳐 지배했고, 그 후 200여년 청나라의 통치를 받다가, 청일전쟁에서
패하자 1895년 청나라 이홍장이 이또히로부미에게 항복하면서 대만을 일본에 양도해 1945년까지 일본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대만은 일본이 아니더라도 이전부터 쭉 누군가의 통치를 받아왔던터라 일본으로 바뀌어도 그냥 시큰둥한 정도였을 것이어서,
처음으로 나라를 빼앗겨 치를 떨던 우리와는 달랐습니다.
그래서 대만은 우리와는 달리 일본문화가 오래전부터 거부감없이 뿌리내렸고 오히려 일제시대가 다른 통치 때보다 좋았다는 사랍도
있습니다.
반면 일본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대만과는 달리 과거 문화 문명의 뿌리였고 자존심 강한 전통의 유교국가 조선은 다른 어느 곳보다
탐이났고 더 철저히 동화시키고 싶었으나, 조선은 어느 나라보다 강하게 격렬히 저항했습니다.
중국도 일본으로부터 남경대학살 등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지만, 아시아침탈의 심장 이토히로부미를 죽인 것도 조선인 안중근
이었고, 상해에서 일어난 윤봉길의사의 의거에는 장개석이 크게 감명받아 그 후 임시정부를 도와주는 계기가 됩니다.
중국땅에서 감행된 이런 의거가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에 의해 치밀하게 행동으로 옮겨지고 성공했던 것입니다.
아름다운 청년 윤동주 송몽규는 교토에서 잡혀 후쿠오카 형무소로 옮겨진 뒤 갖은 취조와 생체실험 주사를 맞고 2년 뒤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옥사합니다.
불과 해방을 몇 달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삼일절을 하루 앞 둔 오늘, 가족도, 사랑하는 애인도, 출세도, 심지어 목숨까지도, 끝없는 고통을 견더가며 기꺼이 바친
서대문 형무소 벽에 빽빽히 붙어있던 알아보기조차 힘든 수감자 사진의 주인공들을 생각해 봅니다.
HJ
첫댓글 내일 97번째 삼일절 기념일인데 시기 적절하게 "동주"라는 영화를 보게되어 감동적이네요.
다양한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 내용이 너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또 다른면에서 설명하는 그 자체가 돋 보이고요.
영화평과 글 잘 읽었습니다.
호재씨의 글 솜씨 시원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여러 환경처럼 3월인데도 군데군데 흰눈이 쌓여있고 날씨가 매섭습니다.
이번주 토요일이면 절기로 경칩입니다.
우리 경제에도 정치에도, 남북관계에도, 이웃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계에도 따뜻한 봄기운이 찾아오길 기대해 봅니다.
일본인의 어느 단체에서 윤동주 추모 모임을 가진 보도를 시청하게 되어 뭉클 하였습니다. 때 맞추어 숭고한 얼을 느껴보는
일 또한 보람있는 일상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