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불난 집과 같다. 이 삶을 있는 그대로 아는 순간 즉각 변형이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기만적인 술수를 쓰고 있다. 집에 불이 났는데도 우리는 그 집을 화려한 꽃으로 치장하고 있다. 우리의 손은 사슬에 묶여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슬을 황금으로 도금하고 있다. 우리는 황금에 눈이 멀어 사슬을 사슬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상처투성이면서 그 상처들을 화려한 색깔의 반창고로 가리고 있다. 우리는 그 화려한 색깔을 볼 뿐 그 뒤에 가려진 상처를 보지 못한다. 이런 기만이 너무나 뿌리 깊고 광범위하게 퍼져있기 때문에 우리는 평생을 허비하고도 변형의 순간을 맞지 못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그 순간을 연기延期한다. 결국, 죽음이 찾아올 뿐 연기된 그 순간은 오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우리는 변화되지 않는다. 사실, 변형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 사하자 요가는 이렇게 말한다.
“있는 그대로 살아라. 그러면 변형이 일어날 것이다.”
변화를 일으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진리 자체가 변화를 일으킨다.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구원하리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모른다. 우리는 거짓과 허위 속에 살아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 거짓과 허위를 있는 그대로 살기보다는 화려하게 치장하려고만 한다. 거짓은 속박을 가져다주고, 진리는 그대를 해방시킨다.
기쁨을 주는 거짓보다는 고통스러운 진리가 더 낫다. 기쁨을 주는 거짓은 매우 위험하다. 이 거짓이 그대를 속박한다. 진리는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해방을 가져다준다. 고통마저 그대를 해방시킨다. 그러니 고통스러운 진리와 함께 살아라. 아무리 기쁨을 준다 해도 거짓의 항구에 정박하지 말라. 이것이 사하자 요가의 전부이다. 이것이 삼매三昧를 가져올 것이다. 삼매를 추구할 필요가 없다. 삼매는 스스로 찾아온다.
울고 싶을 때에는 울어라. 웃고 싶을 때에는 웃어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대로 일어나게 허용하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라.
- 오쇼의 <생명의 에너지를 일깨워라> 중에서
첫댓글 진리를 품고 산다는건 고통의 연속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