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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서 누군가가 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일어섰다. 그녀가 이야기를 하고 있던 맞
은편에는 이미 한참 전에 마취된 40대 여자 환자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그녀는 마취
기계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간호사들이 들어와 능숙하고 빠르게 수술 준비를 했다. 초록색의 수술복을 입은 의사들
도 하나 둘씩 드러와 환자를 둘러쌌다.
40대 여자 환자의 수술은 네 시간이 걸렸다.
수술 시간 동안 지수는 다른 때와는 달리 안절부절 못하고 왔다갔다 하거나 내리 한숨을
쉬어서 집도를 하는 의사에게 주의를 받았다. 지수는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자신답지 않
은 자신에게 화가 났다.
수술을 끝낸 의사들이 방을 가가기가 무섭게 그녀는 인터폰 쪽으로 가서 버튼을 누르려다
멈칫했다. 그러고는 수화기를 그냥 내려놓았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수술실을 나갔
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채로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자기 차를 향해 걸어가다가 주차된 차들
사이에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다가가 보았다. 새연이었다. 축 처진 채로 바
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놀라서 달려갔다. 새연을 부축해 일으키려고 해보았지만 헛일이었다. 새연의 얼
굴은 몹시 창백해져 있었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지수는 혼자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응급실로 뛰어들어갔다.
그녀는 아무한테나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응급 환자예요! 이쪽이에요!"
인턴 두 사람이 스트레치카를 들고 달려왔다.
새연은 스트레치카에 눕혀진 채로 수술실로 급히 옮겨졌다. 그때 숨이 턱까지 차 오른
지민이 나타났다. 그는 헉헉거리며 수술실로 뛰어들어 갔따.
곧이어 이 과장이 바로 수술로 들어갔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극도의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수술이 진행되었다. 실내는 환자의 상태를 체크해 주는
소리 이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취과 과장과 지수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두 사람의 간호사들이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지만 재빠르게 이 과장이 주문하는 수술 도
구를 건네 주고 있었다.
대형 현미경에는 두 쌍의 아이피스가 붙어 있었다. 집도를 하는 중간 아이피스는 이 과
장이 들여다 보고 있었고 오른쪽에 나 있는 아이피스에는 지민이 눈을 대고 있었다. 지민
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스코프의 몸체에서 연결된 선을 따라가자 수술실 구석에 3대의 모니터가 켜져 있었고 현
수와 호동이 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모니터 안에는 얇은 뇌막을 벗겨 내고 조심스럽게
탐침을 넣고 있는 이 과장의 손끝이 보였다.
지수는 긴장한 눈으로 심전도계와 뇌파 측정기 등을 비롯한 각종 계기판을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뇌 속 깊숙히 파들어 가자 조그만 혈관들이 터지며 피가 흘렀고 지민의 손이 재빨리 석션
기를 갖다 댔다. 이 과장의 눈이 파르르 떨리는 듯싶더니 드디어 모니터 화면 속에 사고로
생긴 듯한 혈정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석명은 능숙하고 조심스럽게 석션기를 집어 넣어 혈정을 뽑아냈다. 그는 다시금 조심
스럽게 뇌의 구조물 속을 헤치고 들어갔다.
지민은 조심스럽게 수술실을 나왔다. 그는 벽에 기대어 서서 한곳을 응시했다. 자신에게
수술을 부탁하던 새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 그는 코에서 뭔가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세면대로 가서 거울을 보았다.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번뜩이는 눈은 충혈되어 자신의 얼굴인데도 섬뜩함이 느껴졌다.
수술실에 걸린 시계는 3시를 넘기고 있었다. 다른 혈정 하나를 더 제거한 이 과장이 아
이피스에서 눈을 떼자 모두들 그를 쳐다보았다. 지수는 개스 밸브를 잡더니 천천히 개스를
주입시켰다.
모니터의 숨골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박동이 포착되고 흑갈색의 종양이 모습을 드러냈
다. 수술실의 스탭들은 일제히 모니터를 쳐다보고 그 크기에 놀라서 서로 마주 보았다. 이
과장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다.
이 과장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시야 좀 확보해 줘!"
현수가 간호사에게 건네받은 바늘이 없는 주사기로 조직 사이에 식염수를 뿌리자 핏물이
엷어졌다. 현수는 손에 석션기를 들고서 엷어진 핏물을 빨아들였다.
화면에 깨끗한 뇌조직이 드러났다. 이 과장은 끝이 아주 미세하고 구부러진 핀셋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그는 핀셋을 도로 간호사에게 주었다.
"글러브!"
옆에 있던 간호사가 재빨리 그가 낀 장갑을 벗기고 선반에서 새 장갑을 꺼내어 끼워 주었
다. 간호사는 이 과장의 손에 다시 그 핀셋을 놓아 주었다.
이 과장은 바늘 같은 핀셋의 끝으로 연두부 같은 뇌의 조직 사이를 지나갔다. 드디어 핀
셋의 끝이 종양덩어리에 닿았다. 다들 마른 침을 삼켰다.
이 과장의 손끝이 잠시 떨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규칙적으로 울려 대던 신호음이 요란하고
불규칙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초긴장 상태였다.
지수가 긴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트레이트가 떨어집니다."
마취과장이 말했다.
"상태가 너무 나빠요. 잠깐 중단해 주세요."
이 과장은 더 이상 손대지 않은 채 서 있었고 지수와 마취과장은 강심제를 투약하고 산소
의 양을 늘려 주었다. 그러나 신호음은 더욱 불규칙하게 울리고 있을 뿐, 호전될 기미가 보
이지 않았다.
이 과장이 지수를 쳐다보았다.
"Sa02가 거의 바닥입니다. 혈압도 너무 낮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마취과장을 쳐다보았다. 그 역시 고개를 가로젓고 말았다. 지수와 마취과
장이 다시 한 번 약물을 투입하고 개스관을 조절했다.
그때 갑자기 심전도에서 삐- 하는 소리가 났다.
지수의 당황한 목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이런! 심장이 멈췄어요!"
마취과장이 환자 가까이 다가갔다. 현수가 스코프를 치워 주었다. 지수가 새연을 덮고
있는 선반과 수술 도구를 치워 버렸다. 옆에 서 있던 간호사가 밀려 내려가고 새연의 얼굴
이 드러났다. 그녀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새하얘져 있었다. 마취과장이 그녀의 가슴을 쳤
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가 진땀을 흘리며 외쳤다.
"제세동기!"
지수에게서 제세동기를 건네 받은 그가 다급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물러서!"
모두가 뒤로 물러나자 새연의 가슴에 양극을 갖다댄 마취과장이 버튼을 눌렀다. 퍽! 하
는 소리와 함께 새연의 몸이 튀는가 싶더니 다시 삐-삐- 하는 일정한 신호음이 떨어졌다.
그가 지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뇌파 측정기의 시그널을 보고는 가망이 없음을 알고 고개
를 떨구었다.
그때였다.
수술실 안으로 지민이 들어왔다. 그는 이 과장과 눈이 마주쳤다. 지민의 호소하는 듯한
눈길에 이 과장이 고개를 끄덕이고 수술실을 나가 버렸다.
수술대 쪽으로 다가온 지민은 새연을 내려다보았다. 마취에 취한 그녀의 모습은 마치 평
화롭게 잠들어 있는 모습 같았다. 마스크속에서 지민의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그가 지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가 무얼 하려는지 알고 그의 눈길을 피해 버렸다. 그러나 그는 목석처럼 움직
이지 않은 채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허락이 꼭 필
요한 사람처럼... .
그의 눈은 너무나 다급하면서도 슬픔이 가득했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체념하는 표정이
된 그녀에게 그가 다가왔따. 서로 마주 보며 섰다.
그녀가 그를 보던 눈길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체념하듯 픽 웃었다.
"강 선생... 내가 왜 널 좋아하는지 아니?"
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 대꾸가 없었다.
"넌 아마 내가 새연이었더라도 네 목숨하고 맞바꾸는 짓을 할 인간이야... ."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그를 올려다보는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하고 싶은 대로 해... . 넌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의사잖아!"
그도 눈에 물기가 어린 채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 과장은 수술실에서 나가 수술복도 벗지 않은 채 곧장 자기 방으로 갔다. 그리고 의자
에 앉아 몸을 뒤로 제꼈다. 온몸에 물이 젖은 솜처럼 축축 늘어졌다. 그는 그렇게 꼼짝을
않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모니터에 불이 들어오고 빠른 속도로 윈도우 화면이 떴다. 그이 손길대로 커서가 움직이
더니 문서 파일이 보였다.
그 중에서 'Dr.K'라고 쓰여진 곳을 클릭했다. 파일이 열리자 영어로 잔뜩 쓰여진 문서가
화면 가득 빽빽했다.
맨 첫 페이지로 가니 영어 제목으로 <기에 의한 치료 행위의 대체의학으로서의 가능성과
그 사례 연구>라고 쓰여 잇고 몇 줄 아래에 다시 <Dr.K>라는 소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그는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커서를 움직여 '모두 선
택'을 눌렀다. 다시 커서를 움직여 '지우기'를 눌렀다.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클릭을
하자 파일 전체가 삭제되었다.
그는 컴퓨터를 끄고는 의자 깊숙히 뒤로 기댔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민의 양손이 새연의 두개골을 감쌌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고
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 푸르스름한 빛이 반사되었따. 이와 동시에 수술실의
전원이 사그라들어 전등이 곧 나갈 것 처럼 깜박였다. 계기판에서는 불규칙한 신호음이 발
생되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스탭들이 뒤로 물러섰다.
지민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하다가 갑자기 푸른 빛이 팍! 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그는 다시 상체를 구부리고 온몸의 에너지를 모아 새연의 머리
에 빛을 주입했다. 또다시 그녀의 머리 주위로 파란 불빛이 이는가 싶더니 곧 사그라 들고
말았다. 지수도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의 귀에 가날픈 새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그러자 마세요."
그러나 지민은 마스크를 풀고 모자를 벗어 버렸다. 머리카락이 거의 반백이 되어 있었다.
모두 그의 머리를 보고 뒤로 넘어질 것 처럼 놀라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새
연의 머리에 손을 갖다 댔다. 기도를 하듯 이를 악물고 마지막 힘을 모아 보는 그의 손에
서는 심한 경련이 일어나기만 할 뿐 아무런 빛도 내지 못했다.
새연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 저, 괜찮아요. 전 세상에서 꼭 필요한 것은 가지고 가니까요."
그의 몸이 온통 땀으로 젖고 말았다. 그는 싸우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두 눈을 부릅뜬 채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보았다. 그의 눈앞에 쓰러져 죽어 있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누구든 죽게 내버려 둘 수 없게 마드는 힘은 몰론 그의 휴머니즘에서이기도 하지만 근
본적으로 동생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동생을 떠나 보내지 않고 가슴에 묻어 둔 그의 잘못이었
다.
그는 나지막히 기도하는 음성으로 외쳤다.
"정민아!... 마지막이야!"
있는 힘을 다해 기를 모으는 그의 손바닥에 파란 불꽃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내 불꽃은
사그라들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그는 스르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지수와 스탭들
이 놀라서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누워 있는 새연에게서 그녀의 영이 일어났다. 환자복을 입고 머리가 긴 모습이었다.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새연은 파란 입술을 한 채 그대로인데 영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
럼 수술대를 내려왔다.
지수는 몸을 일으켰다가 그것을 보고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몰랐다. 그녀는 영의
눈과 마주쳤다. 새연이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지수는 얼어붙은 채 벽에 붙어 서 있
었다.
새연의 영이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잇는 지민에게 가다갔다. 지수는 영에게서 눈을 뗄 줄
을 몰랐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지민을 둘러싸
고 응급처치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영은 애처로운 눈길로 한참 동안 지민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서서히 그에게로 몸을 굽
히더니 그의 파랗게 질린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영은 그 자세 그대로 엎드리며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몸에서 약간의 경련이 일
어났다. 그러나 이내 잠잠해지고 그의 몸속으로 들어갔던 영이 몸을 일으켰다. 영은 갓난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아기는 지민의 환상 속으로 항상 찾아들었던, 고름을 흘리며 죽어 있던 동생의 모습 그대
로였다. 지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
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새연도, 갓난아이도 모두 지민의 마음을 지배하던
사람들 아닌가.
아기를 안은 새연의 영이 다시 한 번 지수와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
였다. 지수는 마스크를 풀었다. 그녀에게 뭔가 한 마디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침내 영이 지민을 슬픈 눈으로 내려다보며 방에서 떠나려 했다. 서서히 입구 쪽으로
가는가 햇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벽을 통과해 사라졌다.
벽으로 사라져 가면서 마지막으로 지민에게 눈길을 보내는 영의 눈가에 반짝하고 이슬이
맺혔다.
지수는 눈을 감고 말았다.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새연의 슬픈 눈을 보았
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그녀의 온몸에 마비된 듯싶었다.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귀에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마치 다른 세상의 소리인 양 아
득하게 들렸다.
새연의 시신은 영안실로 옮겨지고 지민은 정신을 한 번 차리고도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지수는 지민의 머리맡을 떠나지 않았다. 그동안 죽은 동생을 가슴에 안고 사느라 지치고
힘들었을 그가 가여웠다.
어린 시절부터 동생의 죽음을 가슴에 묻어 두고 결국은 동생 같은 어린아이들을 살려 낸
그에게 이제는 평화가 찾아들게 되었으니 다시는 그로 하여금 메스를 들지 못하게 하고 싶
었다.
그와 그녀에게 안식을 선물한 새연에게 감사하고 싶었다. 아마 그도 이제는 동생 대신
새연을 가슴 한켠에 묻어 두고 살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질투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연은 그녀에게 사랑을 되찾게 해 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틀 동안 내리 잠만 자던 지민이 눈을 떴을 때 지수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
다. 다시는 못 볼지도 몰랐던 그를 보고 있자니 설움이 복받쳤다.
혼자 애태우며 그를 지켜보았던 10년이라는 세월이 그녀를 짓눌러 울음이 그치지 않았다.
그는 새연에 대해서는 물어 보지 않았다. 어쩌면 긴 잠을 자는 동안 그녀를 만나고 온
것일지 모른다. 평온해 보였다. 지수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그가 그녀의 손을 들어
자기의 입술에 가져갔다.
"고맙다."
그 말을 들은 그녀는 그를 잡은 손에 힘을 꼭 주었다.
새연의 장례식을 조촐하게 치러졌다. 조문객도 별로 없었고 누구 하나 제대로 울어 두는
이도 없었다. 지민은 아직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어 휠체어를 탄 채로 잠깐 참석했다가
바로 병원으로 돌아갔다. 지수는 끝까지 지켜보며 그녀의 명복을 빌었다.
퇴원하는 날 밤, 그는 짐을 땡겨 주는 지수를 뒤에서 꼭 껴안았다.
"이제 남은 인생은 너와 함께 하고 싶어."
그녀는 자신의 허리를 둘러 안고 있는 그의 팔을 꼭 잡았다. 그대로 창 밖을 보고선 그
녀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새연이 그녀에게 미소짓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에필로그
의과대학 강의실에서 영사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의실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
고 영사기가 비춰지는 곳만 환했다. 잠시후, 영사기가 멈추고 창가에 앉은 학생들이 검은
커튼을 열어 젖히자 따스한 봄햇살이 강의실 안을 가득 메웠다.
교단에는 강지민이 서 있었고 아직 스크린에는 MRI사진이 한장 비추어지고 있었다. 그
가 스위치를 누르자 그림자가 사라졌다.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웅성거리는 학생들
에게 그가 밝고 건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간고사는 모두 슬라이드로 땡시험을 칠 거니까 알아서들 준비하기 바랍니다."
학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다.
"총 몇장이나 됩니까?"
"500장 중에서 열 장만 고를 거니까... 열심히들 공부해."
학생들이 우와! 소리지르며 엄살을 피웠다.
지민이 슬라이드를 챙기면서 물었다.
"다른 질문들... 없죠."
이때 한 학생이 짧게 외쳤다.
"어, 나비다!"
지민이 고개를 들자 교실에 조그만 노랑나비가 한 마리 들어와 있는게 보였다. 지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조그만 노랑나비는 팔랑거리며 학생들의 머리 위를 지나 지민에게
로 날아갔다. 그는 나비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그가 복도를 걸어 나가는데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수가 웃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물었다.
"왜?"
"새연이가 왔어."
지민의 말에 지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노랑나비는 아직까지도 지민의 주위를 맴돌며
팔랑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지수가 잔잔한 미수를 띠었다.
"정말이네... ."
나비가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지나 밖으로 날아갔다. 이를 쳐다보고 있던 그가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 닥터 임이 뭐래?"
지수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응... 4주째래."
그가 다정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어깨를 안았다.
"그래? 가자, 내가 맛있는거 사줄게."
두 사람은 나란히 현관을 걸어나갔다.
현관 처마 끝에 앉아 있던 노랑나비가 그들을 축하해 주려는 듯 다시 날갯짓을 하며 하늘
로 올랐다. 대학 건물을 벗어나 큰길가로 접어들 때까지 나비는 그들을 따라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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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