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인력 확보하려면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 한민구
지식기반사회가 도래하면서 종래의 경제발전 동력이었던 토지ㆍ설비ㆍ자본 등 유형적인 요인보다는 인력ㆍ기술ㆍ시스템 등 무형적인 요인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전환기에 우리나라가 동북아 중심국가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전략적 대응과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첨단과학기술 경쟁력 확보의 핵심은 과학기술 인력 확보와 직결되고 있으나 최근 이공계 기피현상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국가발전의 핵심자원인 우수인력의 이공계 선호도를 나타내는 대학수학능력시험 통계를 살펴보면 자연계 지원자 수가 지난 97년 34만5,000명에서 2002년에는 19만5,000명으로 불과 5년 사이에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양적인 감소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최우수급의 자연계 학생들이 이공계 대학보다는 의대ㆍ치대ㆍ한의대 등을 선호하는 현상이다.
우리 정부가 이공계 기피현상을 심각한 문제로 파악하고 다양한 이공계 지원정책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는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정부는 2003년부터 이공계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신설하고 수학능력시험에서 일정한 등급을 받은 학생들에게 4년 동안 등록금 전액과 100만원 상당의 교재구입비 등 선진국에서도 찾기 어려운 파격적 지원을 하고 있다. 또한 이공계 전공자들의 공직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4급 이상 기술직 비율을 오는 2008년까지 30%로, 5급 신규 채용시 2008년까지 40% 이상으로 각각 확대한다는 획기적인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중소기업 연구인력 고용지원사업, 신진 연구자 연수지원사업 등 다양한 취업지원을 하고 있어 이공계 학생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은 이공계 진학 학생들 수를 늘리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공계 인력의 양적 부족뿐만 아니라 질적 저하와 기술 분야별 수급문제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명의 유능한 과학기술자가 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지식기반사회에서 이공계 지원정책의 상당 부분은 인력의 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산업자원부가 마련한 2006년부터 2010년까지의 주력산업 이공계 인력 수급전망을 보면 가장 취업전망이 좋다는 반도체 및 전자 부문에서도 학사과정의 공급인력 수는 기업의 수요를 이미 초과하고 있다. 조선ㆍ섬유ㆍ철강ㆍ화학ㆍ에너지 등 기계 및 자동차를 제외한 모든 주력 기간산업에서 학사급 인력은 공급과잉 상태다. 반면 석사 및 박사급은 공급인력의 수가 기업 수요인력을 훨씬 밑돌고 있다.
우리 산업구조는 종래의 제조업 운영 방식에서 탈피해 연구개발 및 설계 등 고급기술개발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이행하고 있다. 따라서 고급 인적 자원을 양성하는 대학원에 보다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현행 장학금을 포함한 우리나라 대학지원정책의 대부분은 학부과정에 집중되고 있으나 향후에는 대학원 과정의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
이공계 대학원에 유능한 인력을 끌어들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병역특례제도의 확대 실시와 의무복무기간 단축이다. 참여정부는 의무복무기간을 종래 5년에서 4년으로 단축했고 최근에는 3년으로 더 단축하는 파격적이며 획기적인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다. 지속적인 병역특례제도의 보완과 확대가 기대된다.
이공계 대학원의 여성인력 비율은 15% 내외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30~40%)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유능한 여성인력의 이공계 진출 유도는 우리나라 인력수급계획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공공기관에서의 여성 과학인력 채용목표제, 우수 이공계 여학생에 대한 장학금 지원계획은 실효성이 기대되나 단기책이다. 수요가 많은 민간 부문에서 여성 과학기술인력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각종 세제혜택은 물론 출산 및 육아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지원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창의적이고 유능한 여성 과학기술인력 확보와 이공계 대학원의 활성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2004-05-31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