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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만지는 일은 흔한 일이기때문에 화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봉지속의 쓰레기를 신문지에다 모두 쏟아놓았다. 쓰레기는 서로 섞이지 않도록 장소에 따라 세무더기로 나뉘여졌다. 그리고 종류별로 분류되였다.
병호는 우선 ①번쓰레기를 꼼꼼이 살펴보았다. 휴지는 펴서 앞뒤면을 찬찬히 살폈다. 껌껍질도 펴서 무슨 껌인지 일일이 체크해 나갔고 담배꽁초도 그것이 무슨 담배꽁초인지 주의깊게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①번에서 ③번까지의 쓰레기를 살펴본후 담배를 한대 피워물고 누군가가 먼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만일 주목할만한 사실이 발견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어쩌면 단서가 될지 모른다. 비록 그것이 실날같은 단서일지라도.
“먼저 ①번 쓰레기를 검토해보죠. 백산부인과 병원앞은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쓰러기가 별로 없습니다. 보다싶이 담배꽁초가 아홉개, 주스캔이 한개, 휴지쪼각이 두개 있습니다. 휴지는 코를 풀어서 버린것들이라 고려해볼 가치가 없습니다.”
왕반장은 찌그러진 주스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캔에는 지문이 묻어있을지 모르기때문에 검사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담배꽁초는 88라이트가 단연 많습니다. 88라이트는 모두 4개이고 엑스포 골드가 1개, 한라산이 1개, 하나로가 1개, 글로리가 1개, 그 다음 카멜이1개입니다.”
“카멜은 양담배가 아닌가?”
“네, 그렇습니다. 락타그림이 그려진 아주 오래된 미국담배죠.”
“카멜은 여기도 있는데요.”하고 ②번 쓰레기를 정리하던 문형사가 말했다.
“여기도 있어.” 병호는 ③번 쓰레기에서 담배꽁초를 하나 집어들었다.
그들은 잠시 시선을 주고받은 다음 다시 쓰레기를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병호는 ①번 휴지를 살펴보았다. 모두 세개가 있었는데 하나같이 젖어있었다. 그중 두개는 코를 풀어서 버린것 같았고 나머지 하나는 신문지 쪼각이였는데 피가 조금 묻어있었다.
“이 종이들은 버리지 말고 검사를 시켜보는게 좋겠어.”
“모두 젖었는데 지문이 나오겠습니까?”
“피가 묻어있잔아.”
“그건 코를 풀다가 나온것 같은데요?”
“코물도 검사대상이 될수 있잔아.”
구경군들은 그 이상한 벽보를 보면서 담배를 피우다가 그 아래에다 담배꽁초를 버린것 같았다. ②번쓰레기에도 담배꽁초가 단연 많았다.
“이 지저분한것들속에서 범인을 찾으려니 벌써부터 구역질이 나는데요.’
문형사가 껌을 요란스럽게 씹어대면서 말했다.
“하수구속으로 안들어간것만도 다행으로 알아.”
왕반장이 눈을 흘겼다.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것 같아요.”
그 말에 병호만 빼놓고 모두가 웃었다. 그큰 카멜 꽁초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②번 쓰레기의 종류는 다음과 같았다.
담배꽁초:14개(88라이트 4, 글로리 3, 하나로 2, 88디럭스마일드 2, 말보로 1, 메리트 1, 카멜 1).
종이류: 8개(휴지 2, 비행기표 1, 령수증 1, 껌껍질 2, 약봉지 1, 명함 1).
기타: 3개(OB 맥주캔 2, 볼펜 1).
③번 쓰레기는 ①과 ②에 비해 훨씬 많았다. 뒤골목의 으슥한 곳이라 사람들이 함부로 쓰레기를 버렸기때문인것 같았다.
담배꽁초: 35개(88라이트 9, 그로리 7, 하나로 4, 88디럭스마일드 4, 엑스포 마일드 2, 한라산 2, 던힐 1, 마일드 세븐 2, 켄트 1, 위스턴 1, 카멜 1, 살렘 1).
종이류: 24개(휴지 6, 과자봉지 1, 복권 1, 선전물 4, 명함 2, 우유팩 1, 껌껍질 4, 사탕포장지 2, 종이컵 3).
병호는 세개의 카멜꽁초에다 펜으로 조그맣게 ①②③이라고 적었다. 많은 쓰레기들 가운데서 카멜꽁초가 유난히 그의 시선을 끌었던것이다.
“만일 범인이 세곳에다 벽보를 붙이면서 무엇인가를 흘렸다면 이 쓰레기들 속에 그것이 섞여있을 가능성이 있어. 그걸 우리는 찾아내야 해. 단서가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놈이 과연 현장에다 그런걸 남겼을가요? 놈은 아주 치밀한것 같은데…”
왕반장은 조그마한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봐. 놈은 대담하기만 할뿐 치밀하지는 못해. 놈은 시작부터 많은것을 보여주고 있어. 자신은 아주 그럴듯하게 선전포고를 했다고 자부하고 있겠지만 말이야. 내가 보기엔 처음부터 많은 실수를 하고 있어.”
“그게 뭐죠?”
회시가 물었고 모두가 궁금하다는듯 오경감을 쳐다보았다.
병호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거기에다 불을 붙였다.
“바로 이거야.”
그들은 오경감이 얇은 고무장갑을 낀 손바닥으로 두드리는것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석장의 벽보였다.
“이런것을 손수 만들어 벽에다 부친것 자체가 큰 실수를 한거야. 범인은 너무 큰 흔적을 남긴거야. 놈은 지금쯤 의기양양해 있겠지만 바로 여기에 단서가 있어. 여기서 우리는 단서를 찾아야 하고 찾을수가 있을거야.”
“기대를 걸고 그를 쳐다보았던 수사관들이 실망한듯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약속한듯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벽시계르르 쳐다보기도 했다. 시계는 오후 2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3시간 남짓 지나면 날이 어두워진다. 그때부터 범인의 녀자사냥이 시작될것이다. 아니면 이미 한 녀자가 타켓으로 지정되여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밤 사이에, 아니, 자정이 되기전에 한 녀자가 참혹하게 살해된다. 그리고 날이 새면 한쪽 귀가 없는 녀자시체가 발견되고 신문과 방송은 기다렸다는듯이 그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할것이다. 경감나리, 3시간 남짓한 시간을 범인을 체포할수 있습니까?”
병호는 부하들의 침묵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들은 그에게 이 불가해하고 불가능한 수사에 대해 말하고싶은것이다. 그러나 그는 부하들에게 그리고 누구보다도 범인에게 굴복하고싶지 않았다.
긴 한숨소리와 함께 담배연기가 높이 펴져올라갔다.
“난 범인에게 끌려다니고싶지 않아. 질질 끌려다니면서 허둥거리는 수사는 하고싶지 않아. 그건 놈이 바라고 있는바야. 난 오히려 놈을 당황하게 해주고싶어.”
실내는 찬물을 끼얹은것처럼 조용했다. 담배를 피우며 말하고 있는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기때문에 그의 부하들 역시 바짝 긴장해 있었던것이다. 그외 그와 같은 표정은 바로 그의 결의가 이미 돌이킬수 없는것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와 함께 오래동안 일해온 그의 부하들은 그의 그와같은 표정의 의미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병호는 담배를 비벼끈 다음 세개의 카멜꽁초를 집어들었다.
“이 담배, 많이들 피우나?”
“여기서 그런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양담배는 유형사 혼자 피웁니다.”
문형사는 말을 마치고 화시를 쳐다보았다. 화시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넙적한 담배갑에서 보란듯이 담배를 한개비 꺼내 입으로 가져갔다.
“전 던힐만 피워요.”
담배를 끼고 있는 가늘고 긴 손가락이 어쩐지 퇴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일반 사람들을 말하는거야. 일반인들이 카멜담배를 많이들 피우냐 말이야?”
그들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양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꽤 있는것 같은데 카멜 피우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병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보면 담배꽁초가 많이 있는데 보다싶이 국산담배꽁초가 단연 많아요. 양담배가 없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국산담배를 많이 피우고 있음을 알수가 있어요. 이렇게 국산담배를 많이 피우기때문에 ①②③에는 공통되는 국산담배가 상당수 있음을 알수 있어요. 88라이트만 보더라도 ①②③에 모두 있어. 하나로와 글리로도 ①②③ 모두 들어있어. 그런데 이 카멜은 흔하게 피우는 담배가 아니란 말이야.”
“양담배가운데 흔하게 피우는건 말보로와 마일드 세븐입니다.”하고 문형사가 말했다.
“마일드 세븐은 일본담배야.”
왕반장이 그의 말을 정정했다.
병호는 카멜꽁초에다 코끝을 갖다대고 킁킁거렸다.
“냄새가 괜찮은데 그래. 여기에 있는 양담배꽁초를 살펴보면 카멜과 마일드 세븐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개씩밖에 없어. 카멜은 세개 있고 마일드 세븐은 두개가 있어. 하지만 마일드 세븐 두개는 ③번 쓰레기에만 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한사람이 또는 두 사람이 옥천탕 뒤쪽벽에 붙어있는 벽보를 보면서 마일드 세븐을 피우다가 꽁초를 버렸을거야. 한사람이 마일드 세븐을 련달아 두대나 피웠을수도 있고 두 사람이 한대씩 나누어 피웠을수도 있는게 그 경우 그 두 사람은 동료이거나 했겠지.”
“카멜은 ①②③에서 모두 나왔군요.”하고 화시가 말했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 던힐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멋지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거침없이 담배를 피워대는 그녀를 남자들은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마일드 세븐은 두개 다 ③번에만 있었는데 카멜은 ①②③에 모두 한개씩 있었어.”
병호는 세개의 카멜꽁초를 책상우에 나란히 놓았다.
“그걸 범인이 피웠다는것입니까?”
왕반장의 주먹코가 씰룩거렸다.
“아직 단정은 할수 없지만 다음과 같은 가능성은 얼마든지 생각해볼수 있겠지. 즉 누군가 한사람이 세군데 벽보앞에다 카멜꽁초를 버린거야. 구경군이 우연히 지나다가 벽보를 보면서 카멜을 피우다가 꽁초를 버렸을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구경군은 어떻게 해서 나머지 두개의 벽보까지 보게 되였을가?”
“그렇다면 구경군일리가 없지요. 세곳을 모두 보았을리가 없잖아요.”
말상이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병호는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 내 생각도 그래.”
“카멜을 각각 다른 세 사람이 피웠을수도 있잖습니까?”
안형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지. 그 경우도 생각해볼수 있지. 그 경우 그들은 지나가던 사람들이였겠지.”
“세 사람의 각기 다른 사람들이 세군데 벽보밑에 제각기 카멜꽁초를 하나씩 버리고 갔다… 말은 되지만 좀 어색한데요. 자연스럽지가 못해요. 카멜꽁초가 하나나 두개정도라면 몰라도 세개가 하나씩 ①②③에 있었다는건 어쩐지 좀 특별한 느낌이 드는데요.”
화시가 피우던 담배를 비벼끄면서 말했다.
“나도 그런 느낌이 들어. 더구나 ①번을 보면 꽁초가 보두 9개인데 그중 8개가 국산담배이고 양담배는 카멜뿐이야. 국산담배속에 유일하게 섞여있는 이 카멜꽁초가 유난히 시선을 끄는 리유는 무언가 강한 느낌으로 와닿기때문이야. 다시말해 강한 암시를 던져주고 있단말이야. 지나가던 행인이 버린것이라면 왜 ②에도 그리고 ③에도 이게 있었을가? 그것도 하나씩 말이야. 그리고 또 하나 간과해서는 안되는 점이 있어.”
교수는 카멜꽁초 세개를 다른 사람들이 잘 볼수 있게 나란히 모아쥐였다.
“이 세개의 꽁초를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적인 특징이 있어. 뭔지 아나?”
“꽁초가 유난히 길군요.”하고 안형사가 말했다.
“그래, 바로 그 점이야.”
병호는 주머니속에서 아직 뜯지 않은 담배갑을 꺼냈다. 그것은 카멜담배였다.
수사관들은 신기한듯이 그것을 쳐다보았다. 교수가 어느새 저것을 사왔을가 하고 그들의 눈은 묻고 있었다.
오경감은 담배갑을 뜯은 다음 안에서 담배 한개비를 꺼내 꽁초옆에 나란히 놓았다.
“잘들 보라구. 이 꽁초는 절반도 안피우고 버린거야. 다른 두개도 비슷해. 세개의 길이가 거의 비슷하단 말이야. 세 사람이 제각기 피우다 버렸으면 이렇게 길이가 비슷할수가 없지. 이건 모두 같은 사람이 피우다가 버린것 같단말이야.”
“그랬으면 정말 좋겠군요.”하고 왕반장이 말했다.
침묵이 실내를 감싸기 시작했다
경감은 부하들의 반응을 기다리는듯 카멜에 불을 붙인 다음 그것을 빨아대고 있었다.
‘만일 한사람이 피운다면 구경군은 아니겠군요?”
화시가 침묵을 깨고 물었다.
“구경군일리가 없지.”
문형사가 대꾸했다.
“구경군 한명이 세군데 벽보를 모두 돌아보고 그 앞에다 카멜꽁초를 버렸다는건 말이 안되잖아. 벽보 석장이 마치 선거벽보처럼 가까이 붙어있었다면 몰라도.”
“그럼 범인이 피우다 버린걸가요?”
“일단 그렇게 보고 이 세개의 꽁초를 감정해야겠지. 타액이 말라붙기에 이걸 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서 감정을 의뢰하라구. 범인은 줄담배를 피우는지도 몰라.”
“그런데말이예요…”
그때까지 얌전하게 듣고만 있던 고동자가 찐빵같은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선배 형사들을 쳐다보았다.
“교수님 말씀은… 어머 죄송합니다.”
얼결에 오경감의 별명을 부른 그녀는 얼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바람에 형사들은 킬킬거리고 웃었다. 병호도 미소를 지으면서 가만히 끄덕였다.
“아픈 가슴을 찔러주는군. 내 꿈이 교수가 되는것이였는데… 이렇게 형사나부랭이가 되고말았지.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아. 계속해봐요 찐빵아가씨.”
와아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녀는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허리를 틀었다.
잠시후 그녀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하지만 경감님도 너무 하셨어요.”
“미안해.’
“괜찮아요. 제가 말씀드리려고 한것은 경감님이 말씀하시는 카멜꽁초건은 범인이 한명일 경우를 가정해 말씀하신게 아닌가요?”
“그, 그렇지. 그러고 보니까…”
그녀의 지적에 병호는 조금 당황해서 말끝을 흐렸다.
“제 생각에는 범인이 두명이상일수도 있을것 같아요. 그리고 그들이 몯 담배를 피운다면 카멜꽁초외에 다른 꽁초도 버렸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다른 꽁초도 모두 검사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자신의 말이 혹시 선배들에게 건방지게 들리지나 않을가 념려하듯 조심스럽게 그들의 눈치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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