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에서 불교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나라는 고구려 였다.
(백제 서산 마애 삼존불)
그러나 삼국의 불교 승인이 모두 쉽지는 않았다.
신라의 법흥왕은 불교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귀족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고구려와 백제가 불교를 받아들인지 150년이 지났지만 신라는 귀족들의 반대에 불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귀족들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통신앙과 조상신의 숭배를 고집하고 있었다.
이 때 이차돈은 법흥왕에게 자신이 불교의 승인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고 한다.
이차돈은 천경림이라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성스러운 숲에가서 절을 지으려고 나무를 베어낸다.
귀족들은 화가나서 법흥왕에게 몰려갔고 의심하며 책임을 요구했다.
하여 법흥왕은 이차돈의 목을 베니 목에서는 붉은 피가 아닌 흰 피가 솟아오르고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법흥왕은 왕을 의심하고 모욕한 죄를 물어 모두 처형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귀족들이 모두 잘못을 빌었다.
(이차돈 순교비)
법흥왕은 청경림에 절을 지어 이차돈은 혼을 위로 했다.
귀족들과 왕의 줄다리기에서 이차돈의 희생으로 신라의 불교가 공인 되었다.
이차돈은 불교을 위한 순교자라기 보다는 왕을 위해 목숨을 바친 신하였다고 할 수 있다.
삼국의 불교 특징은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서 왕실에 의해 발전되는 불교였다.
조선시대 천주교가 들어왔을 때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이 화근이 되어 엄청난
억압을 받는다.
그러나 삼국의 불교는 전통신앙과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했다.
지금도 절의 대웅전 뒤쪽이나 옆쪽에 산신각이나 칠성각이 있는데 이는 산신이나
칠성 숭배로 옛날 부터 내려오는 신앙이다.
(경주 남산 칠불암 마애불상)
일본 오사카 나라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호류사가 있다.
일본의 쇼토쿠 태가가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었는데 이를 지은 기술자들은
백제, 고구려, 신라 사람들 이였다.
삼국의 불교을 보면 일본에 가장 많이 영향을 준 나라는 백제다.
백제가 교류한 왜국의 수도는 아스카로 왜국을 다스린 사람은 쇼도쿠 태자 였다.
쇼도쿠 태자가 다스렸던 때 왜국은 백제의 문화를 받아들여 크게 발전했는데 이를
아스카 문화라고 한다.
(신라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일본 고류사의 목조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삼국의 불교 금동 미륵 보살 반가 사유상과 일본 고류사의 목조 미륵 보살 반가 사유상은
쌍동이 처럼 닮아있다.
가늘게 뜬 눈 부드러운 미소 얼굴 근처의 손과 자연 스럽게 흘러내려오는 주름까지
또 일본의 목조 미륵 보살 반가 사유상을 만든 목재가 적송나무 인데 이는 일본에는 자라지
않는 나무로 우리 나라에서 만들어 가져 갔거나 일본에서 우리의 재료를 가지고 삼국의
기술자가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경제나 문화의 면에서 일본 보다 뒤지고 있지만 역사는 돌고 도는법 어느 순간에는
다시 일본을 앞지를 수 있는 날도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