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달샘:
의지가
자신의 삶을 결정합니다.
많은 이들이 여기에 동의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성격의 세계관이 숨어있습니다.
첫째는
인본주의와 개인주의 세계관으로
'자기'라는 인간 개체를
가치나 의미 판단의 정점에 두는
견해입니다.
우선
자신이 존재하기에
비로소
세상에 가치가 있고
의미를 발생시킨다 여깁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소멸은
모든 가치의 소멸과 동일합니다.
세상은
자신의 힘으로 개척하거나
정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가장 신뢰하는 대상은 자신이며
자신이
삶을 만드는 결정권자입니다.
최종 권위는
자신의 의지에 있지요.
반면
또 많은 이들이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는데
연기법을 알고 있는 이들입니다.
연기법에 의하면
현상은
인연의 결과물입니다.
인간현상 또한 그 소산이며
큰 흐름의 한 부분이지요.
여기에서
개인의 가치와 의미는
더 큰 규모의 가치에
언제든 귀속될 수 있습니다.
정확히는
작은 의미가 큰 의미로
끊임없이 확장하는 과정이
인간현상의 목적이라
봅니다.
개인을 지속적으로 소멸시키며
현상의 의미만을 확장하고
넓어진 안목에 합류하며
개체가 아닌
새로운 존재 양식에 진입하는 것입니다.
존재의 규모가 바뀌기에
개인 의지는
큰 위상을 지니지 못하고
여러 인연 요소의 하나가
되지요.
연기법에선 개인이 아닌
확장된 존재의
관계성에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개인 의지의 요소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 부분에서
의지의 두번째 성격이 드러납니다.
연기법에서 사건은
무수한 인연 요소의 복합물입니다.
크든 작든 각 요소는
각자의 역할이 있으며
어느 하나가 결핍되면
현상의 발현으로 나타나지 못합니다.
사건의 프로젝트가 해체되든지
모든 요소가
모일 때까지 지연이 발생하지요.
연기법을 이해하는 이들이
기다림을 중요시하는 이유입니다.
그 기다림은
불확실성에 떠는 막연한 혼돈이 아닌
이미 다가온 인연들에서
비전을 읽고
다가오고 있는 인연을 맞을
준비를 하는 기간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나자렛 청년은
'신랑을 기다리는 열처녀'의 비유를
언급했습니다.
현상의 사건은
갑자기 나타나지 않습니다.
나팔을 불며 자신의 행차를 알리고
자신의 진입을
봉화를 피워 연기로 알려줍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듣고 볼 귀와 눈이 없기에
사건은 항상 갑작스럽게
나타나지요.
예고 없음은
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구조입니다.
개인의 의지는
사건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입니다.
물론
시간의 마지막을 가리키지 않지요.
시간적으론
인연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초기나
중간의
어느 지점에 있습니다.
'마지막'의 의미는
'키맨'에 가깝습니다.
의지는
인연을 현상의 사건 속으로 불러오는
키맨입니다.
물론 우리는
대부분의 일상 사건에서
자신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깊은 의식과 저 너머의 차원에선
빠짐없이 작용하고 있지요.
그리고
이제 남는 문제는
의지의 강도입니다.
의지의 강약에 의해
사건의 성격과 방향이 바뀝니다.
인간에게 부여되는
자유와 책임의 여지가 이곳에서
발생하지요.
인간은 분명
인연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건의 최종 모습은
자신에게서 나옵니다.
의지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못하며
그리고
의지없이 아무것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단호히 기다려온 긴 흔적
열린 공간 지척 놓였건만
붉은 의지 뒤에 망설이니
사건은 홀로 침묵에 서네.
..241115小野
카페 게시글
소야小野의 옹달샘
의지와 인연의 상관관계
소야(小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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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5 11:50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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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나무아미타불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