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단상(468호)☆2023.7.2.(주일 아침)
*섬김 받는 삶에서 섬기는 삶으로*
/정옥성
오래 전 일본의 어느 대학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곳에서는 영국, 독일, 프랑스, 한국, 일본,
미국 등 나라별로 화장실을 사용했는데,
중국인이 사용하는 화장실이 가장 더러웠습니다.
그래서 매주 실시하는 검사에서
중국인 화장실이 늘 지적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해인 1907년이 되자,
놀랍게도 중국인 화장실이 제일 깨끗해졌습니다.
어느 늦은 밤이었다.
총장이 학교를 둘러보게 되었는데,
어둠 속에서 불이 켜져 있는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불이 켜진 방을 보면서 총장은 ‘늦은 밤까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 방문이 열리면서 한 학생이
대야에 걸레와 비누, 수건을 담아 중국인
화장실 쪽으로 가더니 열심히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총장이 학생을 불렀습니다
“학생!”
“예! 총장님.”
“학생이 매일 밤마다 청소하는가?”
“예.”
“훌륭하네, 헌데 공부할 시간도 모자라는
학생이 어찌 청소까지 하나?”
“저는 중국인 신입생인데, 우리나라 화장실이
가장 더러워서 매일 청소를 하는 겁니다.
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제 이름은 장개석입니다.”
“장개석이라…”
총장은 그의 이름을 수첩에 적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장개석은 특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할 수 있었고, 훗날 중국의 총통이 되었습니다.
장개석은 남이 제일 하기 싫어하는 화장실
청소를 통해 총통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섬김은 사람의 마음을 얻고,
사람들을 따르게 하며,
존경을 낳기에 결국 성공의 자리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민족주의자요,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조만식 장로의 일화도 유명합니다.
그는 청년시절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비록 머슴살이를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매일같이 주인의 요강을 깨끗이 닦았습니다.
성실하게 일하는 머슴을 본 주인은 이 청년이
머슴살이를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평양에 있는 숭실학교로 보내 공부를 시켰습니다.
마침내 그는 숭실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오산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조만식은 제자들이 성공의 비결을 물을 때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거든 요강을 닦는
사람이 되십시오.”라고 일러주었다고 합니다
섬김은 능력이고 성공의 첩경입니다.
성경을 보면(마태복음20:20-28)초창기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섬김을 받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하여
예수님이 혁명을 일으켜 지상에 메시아 왕국을
건설되면 자신들의 지위를 보장받고 싶어 했습니다.
권력을 잡고 싶었습니다.
섬김을 받는 자리에 오르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청탁을 하였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내 아들 최고로 만들고 싶어하는 어머니 마음입니다.
이분은 육신적으로는 예수님의 이모입니다.
그러니까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이종 사촌간입니다.
부자입니다.
단순한 어부가 아니라 선주로 많은
직원을 둔 사람입니다.
집이 두 채나 있습니다.
시골에도 있고 예루살렘에도 있습니다.
이층집입니다.
제자들이 모여 기도한 집입니다.
120명 정도가 모일 수 있는 다락방이 있는
큰 집 부자집니다.
최고의 가정을 지향하는 집이었습니다.
아들들을 대리고 예수님께 요구합니다.
그날따라 절을 하며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상하여 무엇을 요구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요구합니다.
즉,예수님이 왕이 되면 우의정 좌의정으로
삼아달라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총리와 국회의장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이것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의 청만은 아니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가 직접 간구하였습니다(막10:35)
이것을 지켜본 제자들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마태 20:24절에 보니 열두 제자가 듣고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목적이 우의정 좌의정에
있었다는 속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섬김 받기를 좋아합니다.
이룬 성과와 업적으로 끝없이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출세하는 것도 섬김을 받으려고,
지방 자치단체 장이나 의원이 되는 것도 섬김을 받으려고,
교회를 건축하고 부흥시키는 것도 섬김을 받으려고,
사업을 크게 하는 것도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섬김받는 자리에 오르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한 때 유행어였던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이 함께 쓴
'승자독식사회’에 의하면 사람들은 몇 달러
혹은 몇 십 달러를 더 내는 한이 있더라도
최고 가수 음반을 구입하지 보통 이상의 재능을 보이는
가수 음반은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최고로 예쁘고 잘생기고 재능 있는
연예인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됩니다.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만 모든 관심이 집중됩니다.
올림픽에서 은메달, 동메달도 대단한 것인데
금메달 못 땄다고 눈물을 흘립니다.
기업도 그 분야에서 최고만 알아주고
책도 베스트셀러만, 심지어는 교회마저
최고의 교회만 찾고 있습니다.
결국 왜 그렇습니까?
그 최고의 자리가 최고로 섬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승자 독식 사회가 행복합니까?
95%는 루저가 되고 5%로만 살맛나는
세상이 아릅답습니까?
성경은 오늘날 결혼한 목적, 정치하는 목적,
교회 다니는 목적, 사업을 하는 목적,
정치를 하는 목적, 공부 열심히 하는 목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해본다면.
바로 섬기는데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계속 우리를 유혹합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최고가 되라고 말합니다.
섬김받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한 번 사는 세상인데 멋지게 권력과 돈을 쥐고
섬김받으며 살으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지배당하는 것보다
지배하고 사는 삶이 훨씬 가치있다고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라고
말했듯이 인간은 정치적이며 그 밑바닥에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있습니다.
니체는 "권력의 의지가 존재의 가장 심오한 본질이며
삶의 근본 충동이라"고 하였습니다.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모든 인간의 삶의 모든 단계,
즉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인간의 본성은 바로 우월함에
대한 열망이다."라고 했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권력을 차지하고자 하는
사람의 욕구는 대단합니다.
그래서 신성하다는 교회에서도
세상 원리를 가지고 교회 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구나 섬기는 것보다 섬김을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최고가 되기를 원하고 최고를 좋아합니다.
자신을 대접하지 않으면
얼마나 불쾌하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
교회의 직분을 서열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내가 목회하며 섬기던 교회에서
여름 성경학교를 앞두고 교사 헌신 예배가 있었는데
그 교회에서 가장 먼저 된 장로님을 순서에
넣지 않았습니다.
예배가 다 끝나고 사무실에 내려와
노발대발을 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이 교회를 움직이고 누가 교회를
이끌어 가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 섭섭한 것입니다.
알아서 섬겨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 더 이야기 하겠습니다
권사때 겸손하게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을
장로를 세웠습니다
얼마를 지나서 같이 권사를 지내든 친구가
"어이,아무개 장로"라고 불렀답니다
감히 위대한 장로님을 친구처럼 불렀다고,
이렇게 장로를 무시하는 교회를 다닐 수 없다고
교회를 떠나가는 인간 이하의 X장로도 봤습니다
교회도 완장을 채워주니 완장질이 세상 못지 않습니다
신학교을 같이 다녔고 나이도 동년배인 동창이
현직에 있을때 감독을 지냈습니다
은퇴후에 만남이 이어져서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지내는 가운데 가벼운 농담을 하였더니
불같이 화를 내며 달려드는 것이 아닙니까?
요지는 감독에게 싸가지 없이 농담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힙니다
뭐 이런 덜 떨어진 인간이 있나 싶어서
그길로 칼같이 절연했습니다
감리교 교리와 장정에는 연회감독은
감독의 임기(2년)가 끝나면 목사로 불리게 됩니다
따라서 감독 복장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예우상 감독이라고 불러도
감독 호칭을 사양해야 합니다
그러나 감독을 지나고도 감독의 명칭이나
예우를 사양하는 겸손한 목사님은 딱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니 사양은 고사하고 감독으로 존경해 주지
않는다고 달려드는 쪼다가(쪼다는 화장터에서
뼈를 고르는 사람을 가르키는 것으로 하층 인간을
말하는 일본어 입니다)가 수두룩 빽뻑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초창기에는 섬김을 받으려는
욕구가 넘쳐 흘렀습니다
그러다가 사도행전의 오순절을 지나면서
완전히 섬김의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오순절을 지나오지 못한 인간들이
목사니,장로니,감독이니 하며 거들먹거리며
교단을 어지럽히고 완장질을 해대니
교회의 미래가 암담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의 비전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섬김을 받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당연히 우리는 예수님처럼
인생의 목적을 섬김에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의 원리가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좋은 세상, 행복한 세상은 섬김의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사람도, 세상도 왜 이렇게 힘들고 살기가 복잡합니까?
섬김의 원리가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의사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농부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섬기는 비전을 가지고 일하면 됩니다.
우리 정치가 왜 이렇게 낙후되어 있습니까?
섬김의 정치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정치도 섬김의 정치로 거듭나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용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섬김은 섬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섬김을 위하여 또 다른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에게 준 건강, 나에게 준 지식, 나에게 준 미모
나에게 준 경제, 나에게 준 달란트를 가지고
참으로 멋지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겨보고
가겠다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세계를 품고 섬겨야하겠다는 비전 말입니다.
어려움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품고 섬겨야 하겠다는 비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섬겨야 하겠다는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섬기면 손해되고 박탈되며
없어지는 것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도 서비스가 우수한 회사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최상의 서비스"라는 책을 쓴 발 지(Val Gee)는
"고객의 68%가 단골이 되지 않는 오직 한 가지
이유는 나쁜 서비스 때문이다.
한 사람의 불만 고객이 10-20 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불평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서비스도 상품이다 "를 쓴 칼 알브레히트는
"우수한 제품을 미흡한 서비스로 제공하느니,
차라리 평범한 상품을 우수한 서비스로 제공하는
편이 더 낫다."라고 말합니다.
서비스의 황금률은
"당신이 고객일 때 받고 싶은 대접 그대로
고객들을 대접하라"고 말합니다.
섬김은 결코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섬기는 회사가 잘되고 섬기는 가정이 행복하고,
섬기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이고
섬기는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1등만이 기억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닙니다.
1등도 다 잃어 버립니다.
그러나 섬기는 자들은 오래 도록 기억됩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차를 모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태워 주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사는 집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당신이 어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남에게 무엇을 베푸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신을 친구로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당신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얼마나 좋은 동네에
사느냐가 아니라 당신이 이웃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것이다”
주어진 인생 섬기지 않아도 썩게 되어 있습니다.
나도,우리도 살아 있는 동안 후회 없이
섬기는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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