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 화가 탐방
문화가를 배회하는 벗들과 노 화가 강록사 님을 찾아뵈었다.
지난 5월 인사동 아리수갤러리에서의 작품전에서 뵌 일도 있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자택을 전격 방문하기로 했던 것이다.
예정된 시각에 전철역으로 친히 나와 일행을 맞아주셨으니
첫 번째의 친절인 셈이었다.
댁에 도착하니 작업실이며 작품보관실 등 가릴 것 없이
모두 열어두시고 둘러보라시니, 두 번째의 친절이었다.
연전의 화제작이었던 수월관음도 앞에 모여들자
한참이나 작업 과정을 설명해주셨으니
이건 세 번째의 친절이었다.
준비해간 다과를 늘어놓고 환담을 나누던 중
방문자들의 실명을 적어달라시더니
작품 도록에 일일이 이름과 낙관을 찍어 나눠주셨으니
네 번째의 친절이요 고마움이었다.
이 때 돌덩이일 뿐인 낙관을 들어보이시며
이 안에 부처가 들어 있다 하시니
모두는 어리둥절 할 수밖에 더 있으랴.
이태리 피렌체에 가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이 있다.
그게 르네상스 시대의 최대 걸작이라고도 한다.
당대의 조각가 두초가 예언자를 조각하려던 대리석을
석질이 좋지 않다고 버려두자
미켈란젤로가 이걸 주워 다비드 상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인즉 어떤 재료든 그 속에는 걸작이 숨어 있다는 것이요
그걸 감싸고 있는 쓸모없는 더께들을
덜어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니
노 화백의 말씀은 육신에 달라 붙은 오욕들을 씻어 내면
불성(佛性)이 드러난다는 게 아니던가.
그런 마음으로 길고도 어려운 고려 불화 재현작업을 했을 테니
노 화백의 얼굴이 환해 보이는 게 아닐까싶었다.
나는 이 순간에 강석경의 <미불(米佛)>을 통해
나를 반추해보았다.
미불(米佛)
'위대한 예술가의 참다운 운명은 일의 운명이다.'
강석경의 소설 <미불(米佛)> 은
책의 앞쪽 날개에서 이렇게 시작한다.
삶의 강렬한 근거로서 에로티즘을 추구하는 노화가 이평조.
칠순에도 정염을 끊지 못하고
몸의 진실을 따르는 벌거숭이 인간이지만
화폭 앞에선 구도(構圖)로서 제왕처럼 완전을 지향하고
고통 속에 도약하는 미불.
이 소설 속엔 완전과 불완전, 미와 추, 예술가와 범인 등
물음이 녹아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어떤 삶의 고난도 진정한 예술혼을 꺾을 수는 없다는 것이
작가의 믿음이라 말하기도 한다.
‘진아는 초록 이불 위에 누워 두 무릎을 세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젊은 여자의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늘어진 젖가슴과
체액으로 헝클어진 무성한 숲이 아침 빛살 아래
상처 입은 고깃덩어리처럼 드러나 있다.
갈라지는 쇳소리의 교성도 엿가락처럼 눌어붙어 방안에 녹아있고
아까부터 돌아다니는 파리 한 마리도 벽에 정물처럼 붙어있다.’
정사 뒤의 정적이다.
이평조는 성장의 길목에 멈추어 서서 방황하던
진아를 정인(情人)으로 맞아들여
삶의 활력을 얻는 한편 화가로서의 예술혼을 불살라간다.
‘ ……전통적 회화양식, 하면 으레 수묵화만 전부인 것처럼 여기지만
고구려 고분벽화, 고려불화, 민화의 자유분방한 색채를 봐요.
단청들은 날고기 같이 생생하지.
왜 젊은이들이 무궁무진한 색채의 세계를 탐구하려 하지 않고
수묵을 답습하려고만 할까. ……난 젊은 사람들이
여백이니 뭐니 하는 것도 기분 나빠.
기존의 것을 흉내 내고 남들과 맞추려고 하지 말고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야 해.
남이 싫어하는 개성적인 그림을 …….’
이평조는 바로 살아 꿈틀거리는
강렬한 진채색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화풍에 따라 신라의 혼을 담아
가사를 걸친 승려가 엎드려 삼배하고
천의를 날리는 두 비천이 만다라에 에워싸인 화면 위아래에
극락조 세 마리도 비천을 따라 날아다니는데
꽃잎들은 허공에 흩어져있고
종에 쓰인 명문대로
‘형상은 산이 솟은 듯하고 소리는 용의 소리가 날 듯’
장중하게 에밀레종 전설을 방바닥을 가득 채운
4백호의 화폭에 그려나간다.
이와 같은 강렬한 예술에의 집념과 본능에의 갈망은
인도 기행을 통해 심화되어
작품성은 더더욱 빛을 내고 정염은 불탄다.
' 우리 선조들은 성에 대해 시끄럽게 왈가왈부했지만
인도인들은 생존원리로 생각했다.
이미 2,500년 전 전적으로 사랑의 드라마를 탐구하고
성의 지침서 카마 수트라의 모태가 된 경전을 논술하여
성을 해방시켰다.
카마(性愛)는 고대 인도 귀족사회의 일원들이
교양으로 학습해야 할 세 가지 지혜 중의 하나였다.
쾌락을 고양시키는 생에 대한 수용력이야말로
지혜가 아닌가.
힌두 신화에서도 신은 이렇게 긍정했다.
나는 인간 삶의 목표
(감각의 충족, 번영의 추구, 성스러운 임무의 경건한 성취)는
초월하지만
이들 세 가지 목표를 이승에서의 본연의 임무라고 지적한다.’
이평조는 바로 본능을,
예술혼을 불사르기 위한 에너지로 생각하고 있음이다.
이런 기미는 그의 독백에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요
한 예술가의 작품과 그 사생활의 관계는
아이를 분만하는 여자와
거기서 태어나는 아기와의 관계와 같다고.
태어난 아기는 관찰해도 좋지만
여자의 치맛자락을 들치고서 피가 묻었나 보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건 야비한 짓이니까."
그러나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
노화가는 체력이 소진하여 마침내 식도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고
불타던 정염도 시들해지고 만다.
이럴 즈음 진아의 집에 들려보는 순간
진아의 젊은 정인과 눈이 마주치면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떨구고 만다.
“ 진아도 이젠 나를 찾지 말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해야지”
그러나 진아는 순순히 물러나질 않는다.
청춘에 대한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니
이평조는 돌변하는 정인 진아의 태도 앞에 할말을 잃고 만다.
마침내 이평조가 생명의 마지막을 정리하게 되는 엄숙한 순간에
진아는 이평조의 가재도구에 대해 가압류를 하게 된다.
바로 사실혼 부당 파기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의 일환이다.
이로 인해 집달리에 의해 미완성의 작품들조차
압류의 딱지가 붙게 된다.
이평조는 마지막 독백을 토하며
그리다 만 피에로의 화폭에 토하는 피를 받아
마지막으로 붉은 색칠을 해나간다.
'기침이 나온다. 나를 토하고 싶다
의식도 태풍에 쓸린 듯 뒤엉켜 아무것도 모르겠다
무엇이 선(善)이고 무엇이 악(惡)인지 모르겠다"
'무엇이 미(美)이고 무엇이 추(醜)인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뿐
이 모멸을 어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것뿐'
'신(神)이 있다면 가르쳐줄까?
미약한 우리 인간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신을 찾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묻지 않겠다.'
'그러나 고통도 신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껴안으리라.
나의 자업자득을 멍든 가슴으로 포옹하리라.'
오라, 고통이여! 나는 너의 피까지 삼키리니.'
이렇게 소설 미불(米佛)은 끝을 맺는다.
책의 앞날개에 있는
‘예술가의 참다운 운명은 일의 운명’이라는 말이
주인공 이평조의 일생을 변호하는 듯 하다.
그러나 이는 예술지상주의의 편견이 아니던가.
인간이 신 앞에 설 때
그 도리는 예술지상주의가 아닌
인간지상주의가 되어야하지 않겠는가말이다.
그렇다면 진아의 삶도 남겨놓아야 하는 게 아니던가.
그렇더라도 위대한 예술가의 참다운 운명은
그 일이나 작품일 수도 있으리라.
마치 신이 인간을 창조하듯
예술가는 불멸의 예술을 창조하니 말이다.
하여 동일한 행위를 두고도 하나는 로맨스요
다른 하나는 불륜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불가(佛家)에선 흔히 길에 흩어진 돌멩이에도,
쌀 한 톨에도 불성(佛性)이 깃들어있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소신이라거나 사명감이라는 이름 아래
자기 이외의 많은 것들을 희생해가며 무한에 집착함을 보는데
때가 되면 모든 걸 다 놓고 가는 모습은 어떨까?
추진하다 만 소신뿐만 아니라
그리다 만 작품뿐만 아니라
정인에 대한 서운함도, 재산도, 혈육에 대한 집착도…,
그래야만 쌀알만큼의 불성(佛性)이 깃든
미불(米佛)이라도 되는 게 아닐까싶은 것이다.
허나 나는 무엇에 집착하며
손을 꼭 거머쥐고 혀를 날름대는지 모르겠다.
온화하고도 화사한 수월관음과 노 화가 화동님의 환한 얼굴,
그걸 번갈아 올려보다가 현관문을 나왔지만
이 밤, 좌뇌의 한 구석에 숨겨둔
나의 정인(情人)을 생각하며
로맨스인지 불륜인지 가려봐야겠다.
강록사 화백
평생 유화 작업을 해오던 강록사 화백은
1900년대 말에, 사라져가는 불화를 유화기법으로 재현할 꿈을 꾼다.
하루 10시간씩 4년에 걸쳐 유화 28 점을 100호 화판에 재현하고
2003년 4월에 전국을 순회하며 전시를 했다.
그의 작품 성가는 1호당 백만원이라는데
그러면 백호 짜리 작품 28 점에 시가가 28억원이 된다.
작품기간 중에 어려움이 무엇이었느냐고 물으니
웬 불화냐고 하면서 아내가 나무라더란다.
더 나아가 큐레이터, 여제자들과 늘 함께 하니
그게 불륜으로 비화되어 별거하게 되었다 한다.
사실이야 알 수 없지만, 지금 일산에서 혼자 머물고 있다.
전시회 끝나면 작품을 어찌 할거냐고 물으니
영구보관할 사람을 찾는 중이고
인수자가 나타나면 가까운 친구들과 세계여행 하다가
삶을 끝내련다고 하더라.
지난해에 인수자가 나타나 작품은 인계되었고
이제 어찌 하실 거냐고 물으니
여행 떠날 친구들이 모두 타계해 꿈이 없다고 한다.
나는 노화백을 찾아뵐 때면 으레 여사친을 대동하는데
맨날 어디서 그렇게 젊고 예뿐 여자들을 데리고 오느냐고 하더라.
식사와 빨래는 어찌 하느냐고 물으니
도우미가 한 주에 두 번 들린다고 한다.
나보다 열 살 위이니 91 살인데
매일 카톡을 보내면서, 또 들리라 한다.
소설 '미불' 에서 이야기한 대로
인간의 운명은 일의 운명인 게 맞는 것 같다.
일을 놓은 마당엔 가까운 이웃들과 어울리는 것 말고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불륜도 헛소리요
그저 선심이나 쓰는 것 말고는 무엇을 하랴.
미불이 되기 위해선 그것 밖엔 없으리라.
나도 그를 모델로 소설 한 편 써봐야겠다.
첫댓글 소설인듯 소설이 아닌듯
그때 받은 도록에 선명하게 날짜와 실명이 쓰여진 채로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지나간 한 페이지죠.
그때 페이지 여사에게 돈이 많을 팔자라 했는데, 기억 나나요?
한번 더 찾아가면 반가워 할텐데~
그랬었나요?
수줍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사주풀이 관상?
을 말씀해주실때
제대로 못들었었는데요,
한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경제 활동을 했으니
아쉬운 소리는
안하고 살았습니다.
그때 수박 조각을 가지고 같이 방문했던
수묵화선배님
흰꽃선배님
다들 뭉쳐서
한번 찾아 뵙고 싶네요.
더위가 물러가고
찬바람 불면요^^
9년이라는 세월이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군요.
변한 모습을
알아나 보실런지요.
@페이지 그러고보니 아홉해가 지났군요.
내가 별 신통치도 않은 사람인데 이렇게 토라지지않고 서로 소통하는게 고맙기만 하네요.
소설 미불 오래전에 읽은 듯
소설에 이어 강록사 화백님의 삶을 대비 하셨나 봅니다
언제 소설로 만드실 겁니까 기다리겠습니다
그랬군요.
제가 무슨 소설을~
그저 마음 속에 썼다 지웠다 하는거죠.
심오한 진리를 깨우쳐주시어 많은것을 배우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유종의 미가 중요한거 같아요.
좋을땐 한없이 좋지만요.
강록사님을 모델로
소설을 쓰실 생각이 드시나 봅니다.
그림을 맡아 줄 사람은 생겼다 할지라도
함께 여행할 친구는 가시고 없다는 말씀에,
인생은 미완성에서 끝이 나는 가 생각해 봅니다.
미완성에서 끝날지라도,
뭔가 손 놓지 말고 죽는 날까지 하면서 가야겠네요.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요.
석촌님께서도 米佛이 되는 꿈을
꾸시겠습니다.
삶은 연극이라 하지요.
사실 무대에 올라가 역할이 없다면 죽은 목숨이겠지요.
긴 글 읽고 갑니다.
석촌 형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