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107]같은 고교와 같은 대학을 나온 인연?
같은 고교와 같은 대학을 나온 인연으로 간헐적으로 만나는 모임이 있습니다. 15회도 더 넘게 기수基數 차이가 난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모임 명칭의 논란도 있습니다만(‘성전회’: 성균관대-전라고출신 모임, ‘전성시대’: 전라고-성균관대 출신 모임),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개인적으론 고등학교를 먼저 앞세우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재경지역에서 활동하는 멤버 8명이 내 고향 임실을 1박2일로 방문했습니다. 제법 낯이 익은 친구도, 아주 낯선 친구도 있었지만, 그것 또한 무슨 대수겠습니까? 6회인 소생을 비롯해 20회까지 10명이 모인 상반기 단합대회라고나 할까요? 관촌 호수정이라는 맛집에서 수인사를 나누고 메기매운탕과 닭볶음탕으로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이런 모임은 참 희한한 것이 초면인데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기수별로 선후배 호칭이 딱 정해진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점심 후 인근 세계조각공원과 사선대의 상징인 운서정雲棲亭에 올라 오원강을 전망하고, 일제강점기 지역 우국지사들이 이곳에 모여 울분을 삭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구한말 승지를 지낸 부친(김양근)을 위해 아들(김승희)이 6년에 걸쳐 쌀 300석을 들여 지었다더군요.
곧바로 옥정호 출렁다리를 건너 붕어섬 트래킹을 한시간여 했습니다. 기화요초琪花瑤草까지는 아니어도 온갖 꽃들의 공원은 우리의 눈을 호사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겨우내 내린 많은 비로 호수의 키가 높아져 보기에도 좋은 임실의 명소입니다. 이무러운 선후배끼리 이런저런 생활이야기와 모교(고교-대학)의 추억을 화제 삼아 사부작사부작 소요逍遙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붕어섬은 섬의 모양이 아가미 부분과 꼬리쪽 지느러미 등이 영락없이 한 마리 화려한 황금금붕어를 닮았습니다. 사계절 대표 사진을 봐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군郡에서는 국사봉에서 섬까지 가로지르는 케이블카를 개설한다는데, 꼭 그래야만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기초자치단체에서 각종 축제나 출렁다리, 짚라인 등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혈안이 되어 ‘살 길’을 찾는 게 바람직한지 말입니다.
아무튼, 국사봉 전망대에도 오른 후 임실군 소재지에서 장보기를 한 후 ‘치즈마을 사랑채 펜션’에서 다시 뭉친 게 6시. 숙소 한데(야외)에서 바비큐 파티가 시작됐습니다. 밤이 이슥해질수록 바로 옆 물댄 논에서 독경讀經을 외워대는 개구리들의 합창이 요란하지만, 싫은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10시가 넘어서야 방으로 돌아와 ‘동양화 그림공부’를 새벽 2시반까지 화기애애한 가운데 했습니다. 이것 또한 색다른 추억이라 하겠습니다. 바지런하고 다이내믹한 회장(14회)은 다음 모임에 대해 머리를 짜기 바쁘고, 그보다 아래 기수는 라면을 끓이는 등 시다바리에 바빴습니다. 전주에서 이 모임의 성격을 알고, 처음으로 참석한 친구(11회)는 사뭇 감격스러운 모양입니다. 그동안 동문同門들의 모임 소식을 들은 적이 없어 변방에서 왕따를 당하나, 생각했다니 그럴만도 합니다. 일괄 쏘겠다는 것을 고참의 힘으로 막아냈습니다. 즐거운 초여름밤의 추억을 쌓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일) 소생이 어쩌다 보니 최고 고참인지라, 현대옥 콩나물국밥을 쏘았습니다. 그게 선배의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인근 성수산聖壽山(해발 876m) 정상 부근에 자리한 상이암上耳庵이라는 유서깊은 암자를 가보자 제안했습니다. 암자로 가는 길은 임실군에서 역점사업으로 조성한 <왕의 숲>이어서 트래킹코스로도 좋겠더군요. 딱 요맘 때쯤은 산에 오르는 게 환상적입니다. 햇빛에 비치는 야리야리한 연초록 나뭇잎들을 보신 적이 있지요? 황홀하게 좋은 빛깔입니다. 상이암은 고려와 조선과 인연이 깊다고 합니다. 도선국사의 권유로 왕건이, 무학대사의 권유로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한 후에 왕조를 열었으니까요. 태조의 친필이라는 <삼청동三淸洞> 비각이 있고, 왕건이 기쁨에 겨워 새겼다는 <환희담歡喜潭>이라는 낡은 석비가 있었습니다. 오전 산책코스로는 최고였던 것같습니다. 친구들이 모두 좋아해 다행이었습니다.
일행(자동차 3대)은 곧바로 소생의 고향집으로 향했습니다. 원두커피(에티오피아 예가초프)를 한 잔씩 내려주겠다고 하니, 온 김에 선배의 집을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 한 것입니다. 장독대에 마구마구 익어가는 앵두 따기에 바쁘더군요. 실제로 앵두를 직접 따 입에 넣기는 얼마만이겠습니까? 모두 마냥 시골 정취에 즐거워 하더군요. 뒷산 저수지에서 잡은 새우를 말려 종이컵에 담아 하나씩 선물했습니다. 물론 졸저 <어머니>도 친절하게 사인을 해 주었지요. 어제밤 어렵게 내려왔는데도, 처가모임으로 올라간 친구(17회), 김제에 홀로 계신 모친을 뵙고 가겠다는 친구(9회)가 끝까지 자리를 못해 유감이었습니다.
화제는 쉼없이 이어집니다. 공공기관에서 임원을 지낸 한 친구(8회)는 총기가 정말로 대단했습니다. 붕어섬 정자에서 잠깐 쉬는 사이에 정극인의 <상춘곡>과 정철의 <장진주사>를 맛깔스럽게 처음부터 끝까지 외어대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대단한 암기능력이었습니다. 국문학의 고전세계를 펼쳐줘 고맙기도 했습니다. 재담가였습니다. 한 친구(9회)는 주말농장에서 수확한 땅콩을 구워 가져왔고, 또 한 친구(15회)는 구워 먹는 임실치즈 한 박스와 직접 담근 매실주를. 또 한 친구(20회)는 와인 두 병과 복분자를 가져왔습니다. 서로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마음씨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학교를 좋은 데 나와 그렇다”며, 자리를 마무리하면서 고교 교가와 대학교 교가를 합창했습니다. 고교 교가야 모두 자신있게 불렀습니다만, 한번도 생각하거나 불러본 적 없던 대학 교가를 여럿이 부르니 가사가 생각나더군요. 신기한 일입니다. 혹시 성균관대의 응원가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킹고 킹고 에스카라킹고/훌라훌라 에스케이케이/빅토리, 빅토리, 성대, 야!” 개구리가 떼로 합창을 하는 논 가운데 펜션의 밤은 좋았습니다. 이런 기회는 자주자주 있는 게 좋겠지요. 다음 모임에는 더 많은 친구들이 참석하도록 노력하자고 했습니다. 전라고-성균관대 화이팅입니닷!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이 모두 떠나고 12시반쯤 홀로 햇반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엄습하는 이 쓸쓸함과 외로움은 무슨 연유인지요? 귀향하여 5년 동안 아내를 비롯한 숱한 사람들과 숱한 이별(헤어짐)을 했어도, 이런 고적한 기분이 든 적은 별로 없었거든요. 그것은 아마도 집안에 '사람 훈김(훈짐)'이 없어졌기 때문일 듯합니다. 두어 달 전 아버지가 요양원에 들어가시기 전까진 그래도 둘이 '버티고' 있었는데, 지금은 진짜로 혼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구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졸문을 줄입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