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코복음.16,1-7 1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2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 3 그들은 “누가 그 돌을 무덤 입구에서 굴려 내 줄까요?” 하고 서로 말하였다. 4 그러고는 눈을 들어 바라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그것은 매우 큰 돌이었다. 5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웬 젊은이가 하얗고 긴 겉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깜짝 놀랐다. 6 젊은이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놀라지 마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7 그러니 가서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렇게 일러라.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주님의 날인 주일이 한 주간의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오늘은 전례 주년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과 악의 세력을 이겨내신 주님의 부활을 통해 우리 역시 부활하리라는 큰 희망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큰 기쁨으로 오늘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강론을 시작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져 보고 싶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불행을 함께하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성공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일까요?”
불행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과 함께해 주는 것은 큰 위로와 힘이 됨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불행을 함께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성공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랫동안 일이 풀리지 않아 고생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변의 친구들은 힘들어하는 친구와 함께하면서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대박이 난 것입니다. 사업이 잘 풀리면서 경제적 여유와 안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변에 함께해 준 친구들보다 훨씬 더 잘살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친구들이 그의 곁에서 떨어져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 친구가 돈 벌더니 변했어.”
친구들에게 고마워서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친구는 “너 돈 자랑하는 거니?” 하면서 인상을 쓰더라는 것입니다.
불행을 함께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공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기란 정말 힘듭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우월성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더 우월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 시기와 질투가 작동하면서 함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행보다 성공을 진정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함께 기뻐합니다. 그렇다면 이 기쁨에 함께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냥 무시해야 할까요? 주님의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이날에 더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부활의 기쁨을 나의 이웃들에게도 알려야 하고, 진정으로 기뻐하는 삶을 스스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따로, 나 따로 삶을 살면 어떨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지, 내가 부활한 것인가?’라면서 자기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주님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은 함께 기뻐해야 하는 날입니다. 그 기쁨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날입니다. 주님의 진정한 친구라면 말입니다. |
첫댓글 부활 축하합니다^*^
부활의기쁨을 함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