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미크론의 ‘법문’ ■
배연국 소확행아카데미 원장
코로나바이러스 오미크론의 확산세가 여간 심상치 않다. 하루 감염자가 3만명을 웃돌고 재택 치료 환자가 1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나의 지인 중에도 양성 반응자와 밀촉 접촉자들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일반인의 우려와는 달리 전문가들은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이러스 확산 사태를 지켜본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앞으로 두세 달 동안 폭발적인 확진자 발생을 경험하고 나면 면역을 가진 인구비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오미크론이 참 반갑다. 전파력이 강해진다는 것은 끝나간다는 걸 의미한다”고 되레 반겼다.
전문가들의 진단을 종합하면 아무리 좋은 치료제나 면역 백신이 개발될지라도 코로나 사태가 완전 종식되려면 인간 스스로 바이러스에 견딜 수 있는 자체 면역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대다수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걸려야 한다. 바이러스에서 해방된 낙원에 이르기 위해선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지옥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삶이 그렇다.새봄을 맞으려면 고난의 겨울을 통과해야 한다. 고난은 위장된 축복과도 같다. 축복을 뜻하는 영어 단어 blessing은 프랑스어 blesser에서 나왔다. 이 단어는 ‘상처를 입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축복이란 고통을 거친 뒤에 오고, 그런 과정을 이겨낸 사람만이 누릴 자격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말 통쾌(痛快)의 의미도 이와 유사하다. 단어의 구성을 보면 ‘快(기쁨)’ 앞에 ‘痛(아픔)’이 있다. 가슴이 뻥 뚫리는 유쾌함을 누리려면 고통이라는 대가를 먼저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고난은 절대 무가치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위대한 품성은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길러진다.
인류가 존경하는 성인들은 모두 그런 고난의 시험을 훌륭하게 통과한 분들이다. 석가는 그 시험을 치르기 위해 왕자의 자리를 내던지고 거친 광야로 나갔다. 예수는 마구간에서 태어났고, 공자 역시 야합(野合)으로 출생해 갖은 고생을 했다. 야합은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들판에서 사랑을 나눈다는 뜻이다.
그 이치를 깨우친 맹자는 일찍이 이렇게 설파했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뼈마디가 꺾이는 고통을 주고, 그의 배를 곯게 하고, 그의 몸을 가난에 찌들게 하여,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게 하나니, 그것은 마음을 단련시켜 능히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이다."
삶이 아픈가? 코로나가 힘든가? 낙원은 지옥 너머에 있다. 그러니 고난의 지옥을 통과해야 기쁨의 낙원에 닿을 수 있다. 그것이 생명체의 최말단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만물의 영장에게 전하는 ‘진리의 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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