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경제사-마지막 회
남방세계는 성장했으나 북방세계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2020년대 초 기준 중국보다 잘 사는 남미의 나라는 칠레와 파나마뿐이며, 멕시코, 코스타리카, 브라질은 중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아프리카는 보츠와나뿐이다. 아시아의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일본은 물론, 말레이시아와 태국도 중국보다 높다. 중국과 북방세계의 격차는 약 3.5배이다. 2차 대전 직후 아르헨티나는 혼합경제의 방향을 잘못 설정했다. 수출이 급감하자 경기변동이 강타하여 수출 농산품의 가격이 내려가자, 공급량도 줄어들었다. 정부는 과도한 약속을 남발하고 정치인의 무능과 잔인한 군인 사이에 오락가락했다.
1938년부터 1973년까지 세계 경제는 도약했다. G7이라 불리는 국가들, 미, 영, 프, 카, 일, 독, 이 나라는 앞다퉈 치고 나갔다. 제일 가난했던 일본이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 이 시기를 프랑스는 사회민주주의와 영광의 30년이라 부른다.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볼 때, 이것은 근대적 경제성장 시대에 세상이 작동하는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방식이었다. 미국의 1946년 고용법은 “자유로운 경쟁 기업과 보편적인 후생을 육성하고 증진하며,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으며 실제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고용 기회가 제공되는 환경을 조성하고, 고용과 생산과 구매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연방정부가 사용하고 조종하는 정책이자 책임이라고 선언했다.
사회민주주의는 민주주의였기에 어느 정도의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받아들일 것이냐를 투표로 선택할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빈곤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재분배가 바람직하다는 전제 위에 세워졌다. 최대 이익이라는 공리주의 목표를 전력으로 추구하면서, 작은 액수라도 소득재분배로 돌리는 프로그램들을 위해 분투했다. 궁극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 자체의 몰락 그리고 훗날 ’신자유주의‘라도 알려지는 것의 발호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해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적 주장은 당혹스럽다. 정부들은 단순히 가격과 품질을 요구하거나 분배하거나 규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생산에 관여했다.
1972년 석유파동이 왔다. 중동 4차 전쟁으로 세계 유가가 세 배가 되었고, 1979년 이란 혁명으로 다시 세 배가 올랐다. 동시에 산유국 회의 OPEC은 자신들이 가진 시장 권력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 쇼크는 성찰 없는 미국 외교정책의 결과로 기인한다. 1976년 ’카터‘ 선거운동에 쓸, ’험프리-호킨스‘ 법안은 인플레이션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제안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지만, 묘하게도 운율은 맞물려 있다. 1973년 북방세계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한 세대 전, 그들의 부모님에 비해 두 배에서 네 배 정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다. OPEC은 중동전쟁 여파로 미국과 네덜란드(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에 석유 수출을 금지했다. 이로 산유국은 시장지배력에 눈을 뜨고, 고유가로 세계경제에 큰 불황에 빠트렸다. 세 배로 뛴 유가의 충격은 파도처럼 밀려왔고, 거듭해서 충격을 가했다. 물가 상승은 일시적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 상승을 만들었다.
인플레이션으로 소득은 줄고 경기침체와 사회적 혼란 소득 정체가 나타났다. 여기에 미국은 베트남 전재에 발목이 잡혀있었다. 북베트남이 통일하여 중국계 베트남인을 인종 청소를 시작했다. 닉슨은 전쟁으로 미국이 분열되는 것이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득이 된다고 여겼다. 우파들이 보기에는 사회민주주의에 문제점이 있다. 사민주의 정부는 한마디로 너무 많은 것들을 하려고 들었다. 그들의 시도 중, 대다수가 전문가의 시각에서 보면 어리석고 성공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카터‘는 후임자를 지명하지 않은 채 재무장관을 해고하려다 보좌관의 반대에 연준의장을 재무장관으로 옮기고 연방준비은행 총재 ’폴 볼커‘를 연준의장으로 임명했다. ’볼커‘는 임명되자 인플레이션과 맞서 싸우는 것이 중앙은행의 책무라 믿었다. 그리고 급속한 금리 인상을 밀어붙였다.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실행되었지만, 인플레이션을 줄인 것 이외는 사민주의보다 더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1980년 말이 되자 사민주의가 실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사민주의가 밀어내려 했던 신자유주의 프로젝트 또한 영광의 30년 동안 높아진 기대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했음이 분명해졌다. ’클린턴‘이 아닌 ’오바마‘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긴축을 요구했다.
불평등의 심화는 더 커졌다. 상위 1%의 소득은 평균 8~17배 늘었으나 나머지는 오히려 줄었다. 필자는 ’레이 건‘이 냉전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가 지속되었다고 믿는다. ’레이건‘ 대통령 임기가 끝나자마자 냉전이 종식된 덕분에 그가 그 공을 가져갔기 때문이라고 믿는단다. 그리고 우파는 사상의 쇼윈도우에 내놓았던 자기들의 아이디어가 명백히 실패했다는 사실을 슬쩍 뒤로 돌렸다. 누구도 1980년대 말 철의 장막이 무너졌을 때, 스탈린(’호찌민‘, 김일성, ’카스트로‘) 의 군대가 진군했던 나라들이 그들이 정복하지 못한 바로 옆 나라에 비해 물질적으로 5분의 1밖에 번영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하지 못했다. 철의 장막이 무너지자, 소련과 그 위성국들은 정말 가난한 나라라는 게 드러났다. 소비재 배분에서의 끔찍한 비효율을 가져왔고, 자동화된 공장이 들어서야 할 땅에 공장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세계는 2000년대에 신자유주의 전환이 거의 완성되었다. 더 많은 투자, 기업가 정신의 확대, 더 빠른 생산성 상승, 중산층의 임금과 소득 성장의 회복을 가져오지 못했다. 이것이 수수께끼다. 제 세계화와 기술 변화, 0과 1로 이루어진 정보기술이 세계를 정복하고, 상호 작용하는 힘의 세계화로 바뀌었다.
반도체 제조사 TSMC는 네덜란드의 ASML에서 사들인 노광장비로 전류 및 제어 경로가 연결된 130억 개의 ’솔리드스테이트‘ 스위치를 가로세로 작 0.4인치 정도의 실리콘 ’칩‘이 될 한 장의 웨이퍼 위에 새기고 있다. 130억 개의 스위치들이 새겨진 후 초당 32억 번 정확하게 동기를 맞춰 커지고 꺼지는 검사를 통과하면 그 칩은 ’트랜지스터‘라 불리는 도핑된 실리콘 결정체의 미세한 스위치들로 이루어진 최대 규모 집적회로인 ’애플 M1마이크로프로세서‘가 될 것이다.
정보기술이 확산하면서 노동의 성격도 바뀌었다. 등과 허벅지 힘에서 정교한 손가락으로 입과 귀를 조작할 두뇌로 바뀌었다. 브레인스토밍, 일상적인 회계와 정보 생산 및 유통 등 두뇌가 해야 하는, 엄청난 작업이 마이크로컨트롤러가 필요했고, 인간 두뇌는 가장 우수한 컨크롤러였다. 그래서 기술은 노동을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해 왔다. 인터넷 등장은 지리적으로 집중할 필요가 없어졌다. 더 이상 사무공간이나 공장에 자동차로 출근할 필요가 없어졌다. 1980년대 그림을 그려서 팩스로 전송하였으나, 1990년대는 이메일로 보냈고, 2000년대는 수 메가바이트 데이터 파일을 전송한다. 비행기로 오갈 일이 없어졌다. 그러자 북방세계의 제조업이 남방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글로벌 첨단제조업은 한국으로 갔고, 한국과 대만, 일본은 북방세계의 정회원이 되었다. 제조업은 중국의 일부 지역들 주강 삼각주의 거대 도시들로 해안지대로 이동했다. 중국은 제조업자들이 벌어들인 달러는 중국 금융 시스템을 통해 다시 미국에 투자되었고, 그 돈은 주택 건설로 투입되었다, 불르칼라 조립라인 일자리는 상대적 숫자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유통과 건설의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늘어났다.
2007년 최소한 미국의 현명한 이들조차 미국 예외주의의 장기 20세기가 이미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핵심 기술인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연산 능력을 3년마다 두 배로 높이며 여전히 바쁘게 돌아갔고, 이전 10년 동안의 경제 전반의 생산성 상승률은 2차 대전 이후의 황금시대 수준에 근접했다. 미국이 북방세계 ’서방 동맹‘의 신뢰할 수 있는 리더였던 시대는 2003년에 막을 내렸다.
첨단 기술 발전이 북방세계의 생산성을 현저히 높이던 시대는 2007년에 끝났다. 인텔은 넘어설 수 없는 기술적 장벽에 부딪혔다. 2007년 이전에는 부품을 절반 크기로 축소하면 발생하는 열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키면서 두 배로 빠른 속도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07년 이후가 되면 트라지 스타가 너무 작아지다 보니 전류 누출이 늘어나 이 ’데너드 스케일링‘(소자의 크기가 줄면 전력 소요도 줄어든다는 개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트럼프‘ 정부에 세계관이라는 게 있다면, 이는 의심의 세계관이다. 즉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 영어를 쓰지 않는 비백인들이 자유와 기회라는 미국의 가치를 이용해 먹고 있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정책은 부자를 위한 감세, 다음은 기후변화의 부정, 테크로크라트들의 비용-편익 계산 따위는 무시한 마구잡이 규제 철폐다. (2016년의 선거 때의 필자 주장이니 이번 2024년의 선거가 어찌 되나?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준비를 하자) 하지만 2010년 이후 미국은 되려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서유럽도 더 나을 것이 없었다. 소생의 가능성은 종언을 고했다. 이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거대 내러티브가 필요한 새로운 스토리가 시작되었다고 필자는 주장하며 700여 쪽의 글을 마친다.
2024.10.13.
20세기 경제사-마지막
브래드퍼트 들롱 지음
홍기빈 옮김
생각의힘 간행
첫댓글 잘 탐독하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무일야로님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