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육신의 죽음은 결코 아주 죽은 것이 아님을 주님께서 천명하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고 이를 비통히 여기는 사람들이 애곡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아이에게 가셔서 애곡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잔다는 말은 잠시 후에 다시 깨어날 것을 확증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썩어지고 쇠하여질지라도 주님의 때에 다시 부활할 것을 믿기에 주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신불신(信不信)간에 부활합니다.
하지만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요 5:29).
선한 일과 악한 일은 결코 윤리적 도덕적 선함과 악함이 아니라 아들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판단하실 것인데 죄는 곧 아들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요 16:9).
이제 우리의 사고와 믿음의 범위를 쇠락의 법칙이 적용되는 이 세상 만물 안에서만 한정짓지 말게 하시고 우리의 진짜 현실인 하나님 나라로 확장시킬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옛 사람으로 행하려는 자기주장의지는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이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연약한 자임을 고백하며 이 하루도 오직 주의 은혜로 살기 원하오니 주를 믿는 자녀들을 불쌍히 여기사 긍휼을 베푸소서.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5:1-14
제목 :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깨끗하게 되었더라.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 환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5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10달란트와 금 6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 나의 묵상
(골 3:12-4)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또한 아버지의 사랑 받는 자로 삼으셨다.
그래서 아들은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그리고 오래 참음의 옷을 입고 죄 가운데 죽어 있는 우리를 용납하시며 사랑으로 하나되게 묶으셨다.
옷은 나를 보호하는 역할도 하지만, 또한 그 사람의 태도를 결정하기도 한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됨됨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양복을 입은 신사는 그 옷에 걸맞게 걸음걸이나 행동거지를 조심스럽게 한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예비군 훈련을 받을 때는 예비군복을 입는다.
그런데 양복을 입었던 신사도 예비군복만 입혀 놓으면 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예비군복을 입고 술주정을 하고, 개처럼 아무데서나 소변을 본다.
때로는 겉옷은 벗어서 어깨에 걸치고 군화끈은 풀어 헤쳤으며 속옷 차림으로 고성방가 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만큼 자기가 어떤 옷을 입었느냐가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는 의미이다.
나아만의 집에 잡혀온 이스라엘의 어린 소녀는 남의 나라에 끌려와서 식모살이를 하는 처지이다.
그는 비록 입은 옷이 남루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사랑을 흘려보내는 자이다.
그는 진심으로 그가 모시는 주인을 사랑했고 특히 바깥주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함께 느끼는 자였다.
그는 이스라엘에 있을 때 엘리사의 소문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안주인에게 말하였다.
“나의 고국 이스라엘에 엘리사라고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 가면 바깥주인의 나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안주인은 자기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고 남편은 그 이야기를 자기가 모시는 왕에게 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좀 황당한 이야기다.
남의 나라에 잡혀와 노예처럼 식모살이를 하는 어린 소녀는 사실 인격도 생각도 존재감도 없이 살아가는 자이다.
그런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군대 장관의 부인은 귀담아 들었고 그 이야기를 또한 나아만이 듣고 자기 왕에게 전했다는 사실이다.
이 소녀는 단순히 그의 안주인에게 좋은 소식을 전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사랑의 옷을 입고 그 사랑을 흘려보냈다는 것이다.
그가 입은 사랑의 옷은 무엇인가?
성실과 인내,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의 옷이다.
이것들 위에 사랑의 띠로 묶어서 온전하게 하였다.
그 소녀에게서 그리스도의 형상과 성품을 본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다.
그는 창세전부터 아버지께 복종함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셨다.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창세전부터 하나님이 아들을 사랑하시므로 아들에게 영광을 주신 것은 다름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심으로 받은 사랑을 말한다.
아들이 아버지께 복종하심으로 받은 사랑은 곧 택하심과 거룩하심, 그리고 사랑 받은 자로서 긍휼과 자비, 온유와 겸손 그리고 오래 참음의 옷을 입으신 것이다.
주님은 그 사랑을 또한 우리에게 그대로 흘려보내셨다.
죽기에만 합당한 나, 나도 용납할 수 없는 나를 용납하시고 사랑의 보혈로 나를 덮으셨다.
끝까지 참으시면서 무한한 긍휼과 자비의 광선을 발하셔서 나를 추적하시고 그 사랑으로 나를 부르신다.
“종수야~ 종수야~ 네가 어디 있느냐?”
내 영혼의 주소를 바르게 찾기를 소원하시는 주님의 안타까운 목소리를 나는 지금 듣고 있다.
주님의 품을 떠나 나의 뜻대로 떠나버린 나를 찾아 헤매신다.
주님의 품에서 떠난 나로 인하여 뻥 뚫려버린 먹먹한 가슴을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으신 주님은 그 텅 빈 가슴을 피 묻은 손으로 부여잡고 나를 추적해 오신다.
죄와 허물로 얼룩진 나, 돼지 똥냄새로 역겨운 나를 주님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주저하지 않으시고 끌어안으신다.
그리고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으시며 감히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나에게 당신은 나의 아들아! 하고 불러 주신다.
노여움과 분함으로 주의 말씀을 거역하고 돌아서는 나아만은 영락없는 나의 모습이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런 취급을 해?’
자신을 얕잡아 보는 것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는 나아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노함과 분노와 불평으로 돌아섰던 내가 바로 나아만이다.
온통 자기 자랑과 아집으로 가득 찼던 나는 그렇게 주님의 말씀 앞에서 돌아서 떠나갔다.
그런 나에게 찾아온 것은 환난과 곤고 뿐...
(롬 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자기 연민에 빠져서 말씀 앞에 쉐마하지 못하던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무덤에 들어가는 환난과 곤고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환난과 곤고는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요 사랑의 거친 손길이었다.
무엇을 해도 만족이 없고 모래알을 씹는 것만 같았던 나에게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은 옛 사람으로 살아 왔던 지난날의 모든 삶을 돌아보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은 옳습니다.”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과 함께 연합된 자로 그 무덤 안에서 주님과 함께 성소를 지으며 말씀 앞에 선다.
나아만이 종들의 말을 듣고 다시금 요단강으로 돌아간 것처럼 나 역시 심판의 무덤에서 주님 앞으로 돌아 섰다.
나아만이 일곱 번 몸을 담그므로 그의 살결이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된 것처럼,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그의 품에서 교제할 때 나의 영혼의 살결이 어린아이와 같아진 것이다.
내 영혼이 어디서 이런 은총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씻어도 안 되고, 빌어도 안 되었던 영혼의 환난과 곤고가 무덤 속에서 주님과 연합됨으로 성소에서 깊은 교제와 사귐으로 인하여 얻게 된 것이다.
보혈의 능력이 나를 씻었으며 말씀과 성령이 나를 살리셨다.
나를 살리신 주님을 찬양한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영광을 보는 이 영생의 자리가 최고의 기쁨인줄 알면서도 어찌 그리 이 자리에 나오는 것이 힘이 드는지요.
매일 순간마다 내 자신을 쳐서 말씀 앞에 복종하지 않으면 나는 끊임없이 주님을 멀리하려고 하나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보았던 그 영광을 보면서도 나의 육신의 소욕은 나를 끌고 자꾸만 세상으로 향하나이다.
그곳은 환난과 곤고만이 기다리는 자리임을 알면서도 또 그곳을 연모하나이다.
주여, 나의 이 속됨을 하감하옵시고 육신의 소욕을 죽여 주옵소서.
오직 성령으로 내 영을 채우소서.
주님의 품속이 나의 놀이터가 되게 하소서.
주님이 입으신 긍휼과 자비, 온유와 겸손 그리고 오래 참음의 옷을 덧입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이제는 냄새나는 세상의 옷이 아니라 주님의 옷을 입기 원하나이다.
말씀에 쉐마 하는 자리에 주의 평강이 임하오니 나로 하여금 말씀에 순종하여 평화와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나의 영혼의 살결이 어린아이와 같이 깨끗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