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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상 함께 산행을 자주 못하기도 하지만, 글발도 없는 사람이 산행기를 쓰려하니 괜히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봉화대”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회장님이 “오랜만에 나온 네가 쓰지!”라는 말을 하기 전까진 산행기를 쓰게 되리란 상상 못했습니다. 계속 다른 사람들보다 뒤처져 후반부에는 거의 혼자 산행을 해서 함께 공감할 만한 이야기 거리를 끄집어 내기도 뭐하구요. 그리고 오랜만이 아니라 처음이다 보니 어색하구요. 늦게 올린 것 까지 너그러이 양해 바랍니다.
암튼, 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 종일산행이나 숙박산행은 큰 작심을 해야 하는 사정이 있기에 이번 산행을 위해서 최저시급 1/30에도 못미치는 시급200원짜리 국방부 계약직 공무원을 휴가까지 나오게 한 산행입니다. 그래서 더 즐산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시작한 산행이었습니다.
산행 전날 오랜만에 배낭을 준비하니 작은 아들녀석이 네이버 “날씨”에서 내일은 비가 저녁부터 오니 아빠의 산행이 걱정이 없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그러면서 가는 곳이 어디인지를 검색창에 입력하라고 합니다. [장봉도]를 입력해 주니 산이 아니라 배 타고 섬에 가는 것이 의아한 가 봅니다. 한참을 설명하다 “제주도에 한라산이 있듯이 장봉도에는 국사봉이 있단다”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그리고 국사봉이 151m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실 제주도에 가 본 이래로 섬 트래킹이 처음입니다. 어떤 산행이 될지 가늠도 잘 안됩니다. 다만 전주에 카톡에 올려진 아일랜드 형의 철쭉사진 말고는....
8시 40분 AREX 김포공항역 플랫폼 1통 1반(학교다닐 때 친구들과 접선시 이렇게 불렀던 것 같습니다)에 도착하니 피플러버 회장님, 아톰, 멍게가 먼저 도착해 있네요. 조금 있다가 노들강이 나타나구요. 여기에 아직 전철에 타고 있는 희망과 용기형을 포함해서 오늘의 산행은 여섯명입니다. 제가 함께 한 산행중 가장 단촐하네요. 간만에 나온 김에 여러사람 보고 싶었는데...
몇 분 후 희ㆍ용형이 먼저 타고 오는 전철 1통 1반에 올라 희ㆍ용형에게는 눈인사만 건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우리말고도 산행차림의 사람들이 몇몇 있습니다.
운서역 광장 건너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점심은 간단히 하자고 김밥을 사려고 보니 주변의 김밥집이 폐업을 했네요. 장봉도도 사람사는 곳인데 설마 가보면 김밥 파는데 있겠지가 모두의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전철에서는 산행차림의 사람이 많지 않은 듯 하던데 정류장의 줄선 꼬리가 제법 길어집니다. 삼목항 매표소에 도착하니 제법 많은 게 아니라 인산인해입니다. 북새통에 멍게가 신분증을 모아서 단체로 티켓팅을 하고 10시 10분에 출항하는 장봉도 직항 [세종7호]에 올랐습니다.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은 아톰은 카톡으로 신분증을 전송받아 놓았다고 합니다. it강국이라는데 그보다는 편법강국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에 올라 희ㆍ용형이 앞서서 신문을 깔고 자리를 잡고 앉고 모두들 둘러 앉아 배낭에서 새우깡, 초콜릿 등 간단한 요깃거리를 내놓습니다. 처음엔 뭐하러 자리를 잡지?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들 좌판을 펴고 있습니다. 그제야 희ㆍ용형의 경륜(?)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배가 출항하니 온통 사방이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받아 먹겠다고 난리네요. 거지갈매기라는 희ㆍ용형의 말에 공감이 갑니다. 새우깡에 길들여진 저들은 고기를 낚을 수 있을까요?
배는 고작 10여분 탄 것 같습니다. 버스정류장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어찌타나 걱정하는데 멍게가 걸어간다고 합니다. 저 정도면 2시간이상 기다려야 한다고...도대체 오늘 얼마나 걸을려고 처음부터 걷는다고 합니다.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일단 점심요기용 먹거리를 사기로 했습니다. “김밥파는 사람”정도는 있으리라는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기껏 호떡과 오뎅 파는 리어카 뿐입니다.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난 먹을거라곤 커피하고 집에서 먹던 “차”한병 담아 온게 전부인데다 아침도 안먹었는데...
선착장 매점에서 멍게가 옥수수를 삽니다. 막걸리는 얼음 맥주가져 왔다고 두병만 사잡니다. 점심대용으로 더 사고 싶은데...살짝 구운 계란을 매대에 올려 놓았습니다. 추가로 건빵도 하나 샀습니다.
사람들이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톰이 좌판에서 “삶은 소라”를 살까?라고 합니다. 말은 먹고 싶으면 사자고 했습니다. 사실 배고픈 내 맘을 알아준 것 같아 친구 아톰에게 고마웠습니다.
날씨가 정말 화창합니다. 아톰과 산행하기 참 좋은 날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뒤처져 걷고 있는데, 앞서가던 일행이 갑자기 산으로 올라갑니다. 입구가 등산로 같지도 않게 생겼습니다. 오늘 길도 없는데로 막 가려는 건가? 옆에 있는 낡아빠진 등산안내도를 보니 글씨도 잘 안보이는데 대충 장봉도의 남쪽 끝인 것 같습니다. 이때가 대략 10시 40분경인 것 같습니다.
피플러버 회장님, 희ㆍ용형, 멍게, 노들강이 먼저 가고 산에서 한 4년만에 만난 아톰과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뒤따라 갑니다. 아톰이 같은 동네에 살땐 뒷산(안산)등산을 가끔했었는데 아톰이 이사간 후론 처음 함께 한 산행입니다. 오늘 산이 (아직) 어렵지는 않습니다. 내 수준에 맞는 것도 같습니다. 이 페이스대로 가면 힘들지 않고 즐산할 것 같습니다.
희ㆍ용형의 말마따나 봉우리들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장봉도”랍니다. 봉우리 봉우리마다 전망대 겸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팔각정과 밴치를 만들어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섬트래킹이 처음이지만 장봉도는 능선을 오르내리면서 지천에 깔린 진달래가 보기 좋습니다. 능선에 섰을 때 양 옆으로 펼쳐진 서해바다와 이름모를 섬들도...구름다리를 건너 이산저산으로 옮겨가고 그리고 산길에서 내려와 마을길을 걷고 다시 산길로 접어들 수 있는 것이 장봉도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다 보니 마을의 멍멍이도 짖지도 않고 우리를 보고도 멀뚱멀뚱 바라만 보내요. 산에는 진달래, 도로에는 벚꽃이 장봉도의 꽃을 대표하는 것 같습니다. 마침 가족걷기축제와 겹쳐져 장봉도에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12시경 국사봉 정상 정자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을 간단히 했습니다. 멍게가 얼음맥주, 찐 계란 등을 내어 놓고, 누군가는 떡도 내어 놓고, 매점에서 산 막걸리에 오징어, 건빵, 소라까지, 옥수수는 1인당 하나씩 배당되었네요. 제법 푸짐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슬쩍 집어 넣은 구운 계란이 없습니다. 멍게가 찐 계란이 있어서 빼 벼렸답니다. 살짝 부족해서 멍게 옥수수인줄 알고 조금 가져다 먹었는데, 아톰거랍니다. 아톰 미안하다.
자리잡았으니 반드시 뒤따르는 희ㆍ용형의 입담, 형 이야기는 항상 즐겁습니다. 점심먹으면 한 이야기는 건봉사 진신사리 이야기 밖에 기억이 안나요. 내 몸이 너무 힘들어서요.
3시가 채 못되어 우리의 종점 가막머리전망대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저는 봉화대를 지나오면서 부터는 즐산이 아니라 고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신발은 안맞아 조여오지, 다리는 풀렸지, 초반보다 좀 더 험한 산길이지, 사람들은 앞서 가버리지 그저 터벅이로 걸었습니다. 내 기억으론 봉화대를 조금 더 가서 멍게가 사람들에게 삼거리 길에서 가막머리로 갈지, 내려가서 해안둘레길(나중에 보니 대충 윤옥골 부근으로 내려가는 지점 같습니다)로 갈지를 묻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해안둘레길이 그저 제주도 올레길 같을 거라는 막연한 상상은 가막머리까지 가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이건 나를 고행의 길로 안내하는 시발점이었습니다.
너무 힘든 길이었으나 그래도 가막머리에서 윤옥골까지의 해안둘레길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장봉도의 기암절벽과 바다를 감상하는 것은 처음 접해 본 섬트랙킹의 색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우리가 걸은 해안둘레길은 대략 3km쯤 인 것 같은데, 해안둘레길 끝자락 350m남기고 멍게가 걱정을 합니다. 길이 없는 것 같다고... 설마 했는데 정말 길이 없습니다. 아마 해변길인데 밀물에 길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다시 올라가야 합니다. 다내려와서 올라가는 길, 대략 봉화대 방향인데 거기까지 올라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부터 앞서면서 151m라고 무시한 것에 대한 답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조금 올라갔다가 윤옥골로 내려왔습니다. 이때가 대략 4시경입니다. 윤옥골 해변도 파도소리 외에는 참 조용하고 좋습니다. 해안둘레길 주변의 해변은 기회가 된다면 텐트치고 조용히 며칠 쉬어가고 싶은 곳입니다.
나중에 안내 지도를 살펴보니 우리의 산행은 선착장이 있는 섬 동남쪽의 장봉1리 선착장 부근에서 북서쪽 끄트머리 장봉4리의 가막머리전망대까지 섬의 가장 긴거리를 종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막머리에서 윤옥골 해안둘레길까지...계산은 안해봤지만 10시 40분부터 4시까지 10km이상을 걸은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함께하고 처음 경험한 섬트랙킹이기에 더 설래고 기대되었는데, 후반부에 조금은 힘들었지만 탁트인 바다를 바라볼 수 있고, 파도소리를 들으며 산행하는 것의 즐거움을, 봄산의 진달래의 정취를 느낄수 있었던 장봉도 트래킹이었습니다.
이제 버스를 타야 하는 장봉4리로 시멘트길을 걸어갑니다. 고개마루에서 내려오면서 보니 버스가 이미 출발했습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멍게가 콜밴에 전화를 합니다. 연결이 안됩니다.
막연히 버스를 기다릴 때, 역시 회장님의 노련함이 돋보이는 한 수! 마을 아저씨에게 선착장 빨리 가는 방법을 묻습니다. 그 아저씨 콜밴에 전화해서 빨리 오라고 합니다. 곧 온다고 말하자 말자 스타렉스가 도착! 세상이 이렇게 빠른 콜은 처음입니다. 아무래도 그 아저씨 회장님의 미인계에 넘어간 것은 아닐까요?
콜밴아저씨도 화끈하네요. 5시 10분 배 타야한다고 하니, 5시 10분 이전에 도착시켜줍니다. 그렇지만 5시 10분 배 못탔습니다. 만원사례랍니다. 세월호 전이라면 사람들이 막 탔을텐데, 줄서있던 사람들 안된다는 선사 직원들의 말을 잘 따르네요.
5시 40분경 장봉도를 떠난 배는 신도를 거치는 완행이이었습니다. 대충 30분가량 탄 것 같습니다.
6시가 넘어 삼목항에 도착해서 좌석버스를 줄서 기다리다 콜밴에 연락했습니다. 최대 5명이 탈수 있는 콜밴에 6명이 탔습니다. 사정했더니 태워주겠답니다. 누군가 한명은 좌석이 아닌 화물칸에 탔습니다. 운서역 앞 먹자골목에서 식사를 하고 헤어지기로 했습니다. 멍게가 단박에 찾아낸 식당이름은 “우선막회집”! 우선 잘 찾았고, 우선 맛있었고(서해 영종도 낙지 처음 먹었는데 정말 맛있어서 더 시켰더니 벌써 떨어졌더라구요), 우선 1차 후 몇몇이서 공덕동에 와서 3차까지 마치고 헤어졌습니다. 마지막 3차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희ㆍ용형에게 연락해서 우선 확인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첫댓글 일뜽.... 형,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따가 자세히 읽고 다시 댓글 쓸게요...ㅎ
와우! 목을 빼고 기다린 보람이 있네. 잘 썼다. 마지막 3차가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한 집이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고? 현장 검증을 해야 하나? 나도 노들강이랑 4차까지 기어이 하고 가니 가물가물하다. 모두 애쓰셨습니다.
섬 해안선 일주라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인데. . . 신랑이 웬수가 되는 순간!
5월엔 또 어딜 가시나요, 저는 가족모임이 있는데... 저 없을 때만 좋은 델 가시는 것 같아요. ㅠ.ㅠ
자세하게 써 주셨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돌아오는 배를 타면서 던지신 희용이형의 마지막 개그가 기억 나요.
인천 앞바다의 반대말은? 아시는 분!! ㅋㅋ
그보다는 운서역 막회집에서 새우를 집으면서 희용형 왈 "남자에게 좋은거라고... 세우잖아" ㅋㅋ
아브믈형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구요.
그날 술은 정말 오래도록 마셨습니다. 2차 을지로골뱅이, 3차 가장 많은 비용을지출한 집.
그리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에 아톰형과 아브믈형이 택시를 타고 출발한 순간
그렇게 마시고도 조금 모자라신 희용형님께서 제 팔을 잡으시고 오뎅탕에 한잔 더 하자고 하셔서...
근처 이자까야에서 4차를 하고 택시를 탄 시간이 02:01... ㅎㅎ
일요일 오전내내 엎어져 있었습니다.
짧지는 않았지만 간단한 산행에 긴 뒷풀이.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아이구, 우는 소리 해쌌더니 산행기를 길게도 썼다. 이렇게 쓰려니 부담이 되지. 어쨌든 재미나게 잘 읽었네. 나도 그날의 날씨와 전혀 둘레길 같지 않았던 해안길이 기억나네. 근데 가장 압권은 역시 양쪽으로 바다를 보면서 걷던 능선 길. 기를 많이 받아 온 것 같혀. 또 하나, 이것들이 선배가 없다고 뒤풀이를 이렇게 길게 해!!! 역시 희용의 근거지로 보내는 게 아니었음. 멍게야. 넌 살았네. ㅋ
하하, 재밌게 읽었네, 하루가 영원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추억'이기 때문이겠지, 좋은 추억을 만든 산행이었고, 술자리가 길어진 것은 옥의 티였던 것 같습니다..긴 산행 짧은 뒤풀이가 산악회가 오래 가는 길입니다요..
장봉도가 손바닥만한 섬이지만, 그래도 종주는 종주라, 애들 썼네요. 그런데 그렇게 얻은 서해바다의 좋은 봄기운을 술하고 아낌없이 바꿔들 드셨구만. 술맛은 좋았겠다.
아브믈 형은 말씀도 조곤조곤 하시는 스타일이신데 글맛도 참 정겨워요.^^
맨 후미에서 걸으셔서 글소재가 적다는 말씀에 절대 공감입니다. 함께 발을 맞추며 걸어야 이야깃거리가 퐁퐁 샘솟을 텐데요, 제가 늘 같은 처지인지라....ㅎ
엄마 기일과 밀려 있는 일 등으로 (손 들었다가) 이번에 함께 못했는데, 장봉도는 언제 한 번 꼭 가보고 싶어요.^^
이제야 스위스 몽트뢰에서 산행기 너무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아브믈 형답게 쓴. 정성이 가득 담긴 글이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