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해남 산이로 이사를 했다.
금요일 저녁에 바보랑 짐 챙기러 풍양으로 오면서 대서 목련식당에서 시작한
친구들과의 술이 조성까지 이어졌다.
나중에 우릴 데리러 와 한 애기로는 난 술이 취해
한 애길 또하고 또 하고 했다고 한다.
이삿짐 옮기며 책 때문에 힘이 더 들었는데 그 책을 제대로 정리해 둘'공간에 대해 내 자신이
많이 못마땅했었다.
왜 고흥으로 갔냐고 물으면 어머님 핑계를 대기도 했지만 사실은 작은 집이라도 마련하고자
했었는데, 항 상 실행치 못하는 내 자신이 더 싫었던 거다.
아침에 풍양에 도착해 난 게으름을 피우고
등짝이 아픈 바보가 고생을 많이 한다.
벌교 매제가 와 작은 차에 짐을 옹색하게 싣는다.
염소에게 물을 주러 온 송주사님이 도와 줘 그나마
예정된 11시 무렵 출발했다.
빗방울이 가끔 떨어져 비닐을 덮었는데 전문 이사꾼이 아닌지라 하얀 비닐이
휘날려 두번을 쉬어 단속한다.
해남읍에서도 20여분을 더 달려 산이에 도착하니 1시가 넘었다.
사택문 열쇠를 받고 밖에 나가 점심을 먹고 짐을 내린다.
짐을 대충 정리해 주고 가며 박서방은 바보에게
囚자를 두번 써 주고 있다.
엿본 나는 웃으며 나의 평생 감옥 아니었냐고 하니
박서방은 형님 그게 아니에요 한다.
난 웃으며 그게 그거지 하며 웃고 보낸다.
산이에서 광주로 돌아오는 길은 새로운 길을 조사한다고
미암으로 들르는데 차는 해남 4차로로 들어선다.
영암 못 미쳐 장암정 쪽으로 들어서 금정을 지난다.
금정 농협마트에서 삼겹살을 사 와 집에서 꿔 먹는다.
일요일은 빈둥댄다.
오전 빈둥거렸을 뿐인데 몸이 쑤셔 오후에 무등을 가자고 한다.
아프고 피곤한 바보는 사양하며 금당산에 다녀오라고 한다.
아이들 만날 시각을 예상하고 금당산을 걷는다.
가을이 다 왔다.
정상을 지나 삼흥정 너머 황새정이 내려다보는 바윗길 위에 서 있다가 돌아온다.
한강이는 나보다는 훨씬 더 크고, 한결이보다 더 컸다.
팔씨름을 하려다 추석에 집에서 하자고 하고
돼지갈비를 먹고 헤어진다.
한결이는 취업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며
젊은이들이 민주당 권리당원으로 참여해 대표선거에 참여한 듯하다고 한다.
자기도 권리당원이라고 한다.
우리 자식들이 사는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펼쳐 준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정치적이게 했을까?
나는 정치에 이 세상의 변화에 어떤 자세로 참여하고 있는 걸까
돌아오며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부모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어디 세상의 문제만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