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g Virgin Vinyl
日本 東洋化成 Pressing
Digital Remastered By Yejeon(22년)
음반수집가들의 표적이 된 희귀한 이문세 앨범
1983년 최초 발매된 이문세의 독집이다. 최근 변함없는 그의 인기에 힘입어 이 음반의 가격은 상상을 뛰어넘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고가의 희귀음반이란 명성에 걸맞게 이 음반은 무려 세 가지 버전이 혼재해 수집가들에 흥미로운 표적이 되고 있다. 데뷔시절 가수보다 입담 좋은 방송인으로 더 유명했던 이문세는 이 앨범에 수록된 <나는 행복한 사람>의 히트로 가수로서도 처음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문세의 데뷔 과정
1959년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난 이문세는 초등학생 시절에 큰누나 친구들의 손을 잡고 고고장에 놀러갔다가 실내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손님들의 폭소와 환호에 신이 난 그는 누나가 강제로 끌어내릴 때까지 정신없이 춤을 추며 무대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만능 엔터테이너로 불리는 그가 지금도 라이브 무대에서 전력을 다하는 것은 이처럼 타고난 끼 때문이다. 광성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특유의 재담으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고, 특히 스키, 테니스, 수영, 탁구, 배드민턴, 축구 등 각종 스포츠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명지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서울 명륜동에 소재했던 카페 돌샘에서 노래를 부르는 무명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고 김정호가 운영한 무교동의 라이브 카페 꽃잎에도 진출했다. 그곳에서 친해진 개그맨 전유성의 주선으로 1979년 기독교방송 「세븐틴」에 이야기 손님으로 출연했다. 입담 좋고 노래까지 잘 불렀던 그는 방송의 고정 출연자가 되었고, 양희은의 뒤를 이어 DJ로 기용되었다.
처음으로 가수로 주목을 받게 한 음반
방송 진행자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이문세는 1983년 서라벌레코드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을 발매했다. 이 음반에는 오동식, 조진원, 김희갑, 이수인, 임택수, 양동희, 김욱 등 무려 7명의 작곡가에게 받은 다양한 분위기의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방송을 진행하며 얻은 인맥으로 여러 작곡가의 곡을 받았지만, 이는 자신만의 개성적인 보컬을 구축하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됐다. 총 12곡(건전가요 제외)의 수록곡 중 오동식이 작사 작곡한 <나는 행복한 사람>과 <파랑새>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8천 장이 넘는 판매 기록을 세운 이 음반은 이문세에게 처음 가수로도 존재가치를 부여했다. 또한 그는 직접 작사 작곡한 <그대 내 품에>로 송라이터로서의 가능성까지 보여주었다.
수록곡과 라벨이 다른 세 가지 버전이 공존
이 음반은 수록곡과 라벨이 다른 세 가지 버전이 복잡하게 공존한다. 초반과 재반 그리고 삼반은 재킷 뒷면의 이문세 사진과 수록곡이 다르기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초반의 재킷 뒷면을 장식한 이문세 사진은 모자를 착용하고 있고 재반 부터는 탈모한 사진으로 변경되었다. 초반과 재반 공히 가사지에는 노란면, 파란면으로 음반의 앞뒷면을 표기했지만 라벨에서는 A면과 B면으로 다르게 인쇄했다. 또한 초반 B면 마지막 곡으로 수록된 건전가요 <시장에 가면>은 재반에서는 A면 마지막 곡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재반 버전으로 제작된 이번 재발매 음반은 네 번째 버전으로 건전가요가 삭제되었다.
초반의 B면 네 번째 트랙으로 수록된 <파랑새>는 재반에서는 삭제되었고, 양동희 작사 작곡의 <그대>가 같은 면 세 번째 트랙으로 추가되었다. 예상을 뒤엎고 음반판매가 호조를 보이면서 이듬해인 1984년 7월 20일 한국음반에서 삼반까지 발매했다. 초반과 재반의 재킷에 표기된 4곡 리스트에는 없던 <나는 행복한 사람>의 뒤늦은 히트로 삼반에서는 타이틀곡이 <나는 행복한 사람>과 <그대>로 변경되어 이문세의 초기 대표곡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변경된 사실이 또 있다. 삼반은 가사지가 없는 대신 재킷 뒷면에 트랙과 가사 정보가 새롭게 추가된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데뷔 무렵의 이문세는 여중생부터 여대생에 이르기까지 유독 여학생 팬 층이 두터웠다. 타고난 부드러운 미성도 어필했지만, 178cm의 훤칠한 키와 단정한 용모도 그의 인기에 한몫 했다. 이문세의 특별함은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과 친구처럼 편한 분위기에 있었다. 이 음반에서 가수로서의 존재가치를 보여준 그는 이후 필생의 음악 콤비인 작곡가 이영훈을 만나 가수 인생에서 중대한 전환기를 맞게 된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양희은-차돌이 내 몸 10월 13일 입고 예정 가격/44,500원
Side. 1
1. 보고 싶은 마음
2. 밤은 가고
3. 차돌이 내몸
4. 잃어버린 말
5. 가난한 마음
Side. 2
1.빗속을 둘이서
2.누가 알게 될까
3.가려 마
4.나의 친구
5.세월이 가면
6.빈자리
180g Virgin Vinyl
日本 東洋化成 Pressing
인서트, 스티커, 브로마이드 포함
Digital Remastered By Yejeon(22년)
실물 확인조차 힘들었던 희귀앨범
한국 포크의 대모 양희은은 히트곡을 양산하며 수많은 베스트셀러 음반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도 금지의 아픔으로 인해 쉽게 만날 수 없는 희귀음반들이 있어 음반수집가들의 매력적인 수집 아이템이 되어 있다. 소위 ‘차돌이 음반’으로 불리는 이 앨범은 그동안 실물 확인조차 힘들었던 양희은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희귀한 앨범으로 손꼽힌다. 70년대 최고의 포크작곡가인 김민기, 김정호, 김광희와 이수만이 참여한 이 앨범은 한국 포크의 전설인 김민기가 창작한 2곡이 앨범 발매이후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 음반이 매장에서 회수 폐기되면서 이 음반의 운명은 비극적으로 갈무리되었다. 그로인해 금지된 2곡이 수록된 이 앨범의 초반은 일반대중에게는 한동안 알려지지 못했고, 입으로만 전해지면서 음반수집가들이 탐내는 표적이 되었다.
매력적인 김민기와 양희은 조합
김민기의 음악을 가장 잘 이해하고 표현해낸 가수가 양희은이다. YWCA 청개구리 홀에서 이뤄진 두 포크 거장의 운명적인 만남은 언더그라운드 음악활동을 함께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의 재능을 알아본 주변의 도움으로 1971년 가을 두 달 간격으로 양희은의 첫 앨범 ‘고운노래모음’과 김민기의 첫 독집이 발표되었다. 전작의 성공에 이어 이듬해 발표된 양희은의 ‘고운노래모음 2집’에 수록된 7곡은 김민기가 만든 창작곡들이다. 김민기의 서정적인 노랫말과 양희은의 청량한 음색이 잘 어우러진 2집은 김민기와 양희은 조합이 지닌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특별한 음악적 기교 없이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시원하게 뻗어내는 양희은의 노래는 듣는 이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김민기의 중저음의 목소리로 얹혀진 신선한 노랫말들은 동시대 청년문화세대들에게 이전의 대중가요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꽃피우는 아이’와 ‘작은 연못’ 그리고 시련
자유로움을 전제한 청년문화는 10월 유신으로 종신집권을 꿈꾸는 정권으로서는 달가운 현상이 아니었다. 그 중심에 있다고 여겨지는 김민기를 고운 눈으로 볼 수는 없었다. 1972년 봄 서울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부른 세 곡이 문제가 되어 김민기는 경찰로 연행되었고 <꽃 피우는 아이>는 방송 금지되면서 시중에 남아 있던 김민기의 독집은 전량 압수되었다. 이 사건으로 김민기는 요주의 인물이 되었다. 1972년 유신이 선포된 후 양희은 2집에서 <작은 연못>도 방송 금지되었다. 잇따른 처분에 위축된 탓인지 1973년 양희은 3집에는 김민기의 노래가 실리지 않았고, 대신 평소 친분이 있었던 심의에 문제가 없었던 <친구>와 <잘 가오>가 윤지영의 노래로 실었다.
윤지영 1집이 문제없이 넘어간 후 1974년 5월 발매된 윤지영 2집에도 김민기의 7곡이 실렸다. 심의 과정에서 노래 제목이나 가사를 수정하는 등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음반은 공식적으로 출반되지 못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김민기는 1974년 8월 양희은의 독집(보고싶은 마음/빗속을 둘이서)을 발표했지만 금지곡 처분으로 인해 전량 수거 폐기된다. 48년 만에 극적으로 재발매된 바로 이 앨범이다. 그리고 김민기는 1974년 10월 군 입대와 함께 3년의 짧고 강렬했던 공식적인 음악활동을 접었다. 군 입대 전에 발표한 마지막 앨범인 이 음반에 수록된 두 곡 <잃어버린 말>과 <차돌이 내몸>은 그렇게 봉인되어 버렸다.
초반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여러 재반들
금지처분 2개월 후인 1974년 10월, 김기웅 작곡가가 만든 2곡으로 대체된 재반이 출시되었다. 김기웅 또한 당대에 폭넓은 장르를 아우르는 탁월한 작곡가로 명성이 높았다. 음반에 수록된 양희은의 노래는 각 작곡가의 원곡들을 포함하고 있기에 재반이 지닌 음악적 가치도 금지된 초반에 비해 모자람이 없다. 재반은 발매된 지 8개월이 지난 1975년 6월 18일에는 같은 재킷 디자인에 타이틀곡의 글자와 후면 사진을 달리한 3반까지 발매되며 판매에 호조를 보였다. 초반과 재반은 모두 유니버셜레코드 음반사 표기가 되어 있고 전통적인 오렌지 라벨로 제작되었다. 3반은 제작사 표기가 삭제되었고 라벨도 비공식적으로 제작한 '파란색 UNI'로 수정되었다. 또한 3반의 라벨은 앞뒷면이 모두 'side 2'로 잘못 인쇄된 오류버전까지 확인되었다. 심지어 1975년 이후에 제작된 4반까지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음반은 모든 버전이 다 희귀하다. 그 이유는 초반이후 타이틀곡이 된 김정호 곡 <빗속을 둘이서>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활동 금지된 작곡가로 인해 추가로 방송금지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풍문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김민기의 두 가지 금지곡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제작된 재반들의 출현은 음반수집가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초반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며 김민기의 금지곡들에 대한 궁금증을 부풀렸다. 1993년 출시된 김민기 전집에 이 앨범에서 금지된 2곡이 수록되면서 창작자 김민기의 노래로는 청음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미처 회수되지 못한 이 음반의 초반을 어렵게 구한 사람이 아니라면 최초로 노래한 양희은의 <차돌 이내몸>과 <잃어버린 말> 2곡의 오리지널 버전은 어디서도 들을 기회가 없었다. 익숙했던 김민기의 여타 곡들과는 달리 제목부터가 생소한 두 곡의 노랫말도 수수께끼처럼 쉽사리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비록 인터뷰를 극히 꺼리는 김민기의 입을 통해서는 그 노래들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 곡들이 발표된 1974년 당시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살펴보면 금지 이유와 의미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두 곡에 대한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다.
잃어버린 말
김민기가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고 있던 1971년 겨울 무렵 시인 김지하를 만난다. 그를 통해 문인, 학자, 화가, 음악인과 영화인들의 정기모임 폰트라(Pontra: Poem on Trash, 쓰레기 위의 시)에 참여하였다. 그때 대화의 주제 가운데에는 '말의 오염'과 '오염되지 않은 말의 회복'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잃어버린 말>은 그 주제를 김민기의 언어로 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로 정국이 점차 어두워지는 상황에서 김민기는 본인이 만든 노래가 본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답답함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1971년 아름다운 노랫말로 ‘서울시 건전가요 문화상’을 수상했던 <아침 이슬>이 1975년 금지곡으로 지정되는 황당한 일까지 발생했다.
차돌 이내몸
이 앨범의 화두인 <차돌이 내몸>의 제목은 표기에 대한 논란이 있다. 이 앨범에는 <차돌이 내몸>, 김민기 전집 2집에서는 <차돌 이내몸>으로 각기 다르게 표기되어 있어 조금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이 곡은 유신정권이 요주의 인물로 떠오른 김민기를 감시하면서 그의 노래가 자의적인 해석의 잣대에 의해 끊임없는 차단되는 현실의 벽 앞에서 자신이 가야할 길을 스스로 다짐하는 노래라 할 수 있다. 점차 강하게 조여 오는 회유와 압박에 타협이나 굴복은 그의 인생에 대한 부정이었기에 거부했다. 동시대에 다른 이들이 보였던 비겁한 자기합리화를 경계하며 스스로에게 ‘깨진 듯이 외쳐라’ 라고 던졌던 선언 같았다. 자학성이 내포된 다소 공격적인 노랫말에서 김민기의 결기가 느껴진다. 1993년 김민기 전집을 제작할 때 미처 기억하지 못해 실리지 못했던 이 노래의 2절을 오직 이 음반에서 들을 수 있다는 점도 대단히 의미 있고 매력적이다.
차돌 이내몸 2절
웃음아 담배야 냉막걸리야 이 내 마음 달래지 마라. 작은 섬에 귀양살이 보내려는구나.
(후렴) 산산이 부서져라, 차돌 이내몸 깨뜨리고 깨진 듯이 외쳐라
김민기는 <차돌 이내몸>의 발표를 예정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앨범에 앞서 김민기는 1972년 발표된 조영남의 ‘애창곡집’에 수록된 뜬금없는 대사 낭송 <작은 별>을 발표한다. 그 일부를 보면
‘일이 뜻대로 안될 때,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매사가 벅차게 느껴질 때, 웃어보고 싶지만 한숨부터 나올 때, 근심 걱정으로 풀이 죽어 있을 때, 그 때는 쉬어야겠지요. 그러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삶이란 우리 모두가 때때로 깨닫듯이 어려운 고비가 있는 법입니다. 그리고 많은 고비를 꾹 참고 견디어 냈을 때, 비로소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일이 더디게 되어간다고 여겨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른 곳에서 또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이 낭송은 스물 한 살의 청년이 세상을 향해 훈계하는 메시지가 결코 아니다. 흔들릴 수 있는 자신의 마음을 다잡기 위한 스스로를 향한 메시지이다. 그 결과로 탄생한 노래가 <차돌이 내몸>이라 할 수 있다. 1974년 10월 군 입대로 우리의 곁은 떠났던 김민기는 이후 전혀 다른 모습인 <상록수>로, <공장의 불빛>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대중으로부터 철저하게 봉인되었던 양희은이 노래한 <차돌 이내몸>과 <잃어버린 말>도 다시 돌아왔다. /김명중 음반수집가
김추자 -무인도 LP 10월 13일 입고 예정 가격/44,500원
Side. 1
1. 무인도
2. 아침
3. 너와 내가
4. 못난이
5. 꿈나라
6. 무인도(경음악)
Side. 2
1. 하늘을 바라보소
2. 그리고
3. 아까시아 길
4. 헤어져 살면
5. 님은 먼곳에(경음악)
6. Summer time(경음악)
180g Virgin Vinyl
日本 東洋化成 Pressing
인서트, 스티커, 브로마이드 포함
Digital Remastered By Yejeon(22년)
절정의 순간을 상징하는 ‘엑스터시(ecstasy)’ 음반으로 회자
앨범 재킷을 장식한 파격적이고 선정적인 김추자의 사진으로 인해 발매 당시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70년대의 문제작이다. 신중현사단에서 벗어나 당대의 인기작곡가 이봉조와 김희갑과 작업했던 김추자의 최전성기에 발표된 음반이다. 방송과 언론 홍보용으로 1974년 5월 21일 소량 제작된 초반은 질감이 느껴지는 두둘두둘한 엠보싱 재킷에 유니버샬레코드의 전통적인 오렌지색 라벨로 제작되었다. 작곡가이자 색소폰 연주가인 이봉조가 적극적으로 제작에 참여한 이 앨범은 발매 즉시 뜨거운 화제몰이를 했다.
이봉조가 창작한 명곡 <무인도>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재킷 앞면과 뒷면을 장식한 김추자의 파격적인 사진이 일으킨 영향력은 무시무시했다. 학생층에서 성행위의 황홀한 절정 순간을 상징하는 일명 ‘엑스터시(ecstasy)’ 음반으로 회자된 이 앨범은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갔다. 요즘 말로 발매 즉시 ‘순삭’된 이 음반은 초반이 발매된 지 불과 11일이 지난 6월 2일에 재반,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7월 10일에 3반, 해가 바뀐 1975년 1월 11일에 4반까지 제작되었다. 8개월 동안 이어진 재발매 퍼레이드로 인해 김추자 열풍이 다시금 뜨거웠다. 1975년 발매된 4반까지는 모두 엠보싱 재킷으로 제작되었다. 다만 4반은 엠보싱과 더불어 평면 재킷까지 공존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음반매장 판매대에서의 강제퇴장
화제의 중심이었던 김추자의 선정적인 사진과 더불어 명곡 <무인도>와 <아침>의 빅히트로 인해 조기 품절된 이 음반은 불황의 음반시장에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작곡가 이봉조는 자신의 페르소나였던 현미와 정훈희가 아닌 제 3의 가수인 김추자와 새로운 황금콤비를 구축해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발매 이후 1년 넘게 절찬리에 스테디셀러로 활기찬 생명력을 이어갔던 이 앨범은 소위 가요정화운동으로 불리는 1975년 대마초파동의 거센 흐름에 발목이 잡혔다. 선정적인 재킷 사진들과 더불어 여가수와 작곡가의 스캔들까지 터지는 핫 이슈로 인해 판매금지를 당했다. 그로인해 없어서 팔지 못했던 이 히트앨범은 갑작스럽게 전국의 음반매장 판매대에서 강제퇴장을 당했다.
판매금지조치 이후 ‘야한 사진’에 대한 입소문이 더욱 불타올랐다. 1976년 4월 8일 비밀리에 제작된 빽판이 어둠의 경로를 통해 절찬리에 지하시장을 통해 은밀하게 유통되며 부활했다. 빽판의 라벨은 정품과는 달리 하늘색 바탕에 녹색으로 디자인되었고 제작사와 음반고유번호 ‘KLS-100’도 삭제되었다. 현재 이 앨범은 빽판이 정품보다 개체수가 훨씬 많이 남겨져 있다. 정품과 빽판의 음질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두 버전의 소장 가치는 차별되니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음반은 해빙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1980년 서라벌레코드에서 음반고유번호가 ‘K-8010’로 수정되고 커버 앞면에 김추자 영문의 위치와 크기가 다른 디자인으로 제작된 6번째 버전까지 제작되었다. 여러 버전 중에서 1974년 초반과 1980년 6판은 상대적으로 매우 희귀한 상태이다. 모든 버전의 수록곡은 동일하지만 서라벌레코드 버전은 연주곡 <님은 먼곳에>가 빠지고 군가 <충성을 다하라>로 교체되었다. 당시는 발표되는 모든 앨범에 의무적으로 건전가요를 넣어야 했던 시절이 연출한 슬픈 자화상이다.
김추자와 이봉조의 매력적인 앙상블
앨범에 수록된 총 12곡 중에서 대다수인 10곡이 이봉조가 만든 작품이다. 연주와 더불어 편곡 능력이 탁월했던 이봉조는 이 앨범에서는 연주에 전념하기 위해 김용선과 복기호에게 편곡 작업을 맡긴 점이 흥미롭다. 앨범의 문을 여는 공동 타이틀곡 <무인도>와 <아침>은 당대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히트곡들이다. 신중현과의 작업 때와는 달리 김추자의 시원한 음색과 풍성한 가창은 이봉조가 주도하는 색소폰 연주가 진두지휘하는 화려한 브라스 세션과 매력적인 화학작용을 일으켜 감칠맛을 낸다. 가요질감이 선명한 드라마 주제곡인 <너와 내가>, 트로트 필이 느껴지는 <하늘을 바라보소>, 그리고 <못난이>, <꿈나무>, <그리고>, <아카시아 길>, <헤어져 살면> 등은 널리 알려진 히트곡은 아니다. 모든 곡에는 전성기 시절 무대 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육감적인 몸매와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구사했던 김추자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미끈하게 전개되는 그녀의 음색과 적절하게 섞어진 비음은 선정적인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히트곡들 외에 거의 모든 곡은 이 앨범에서만 청음이 가능하다. 다만 <아카시아 길>은 정훈희가 3개월 후에 다시 취입했고 인순이는 1991년 발표한 자신의 10집에서 리메이크했다. 인순이는 <아카시아 길>에 이어 <하늘을 바라보소>까지 1997년 자신의 13집에서 연속해서 다시 불렀다. 수록될 곡이 부족해 추가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인도>, <아침>, <헤어져 살면> 등 세 곡의 연주곡도 록 마니아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펑키한 느낌이 전달된다. 러닝타임 4분 25초의 <무인도>의 보컬곡과는 달리 이 앨범에 수록된 연주버전은 1분 39초의 축약버전이다. 짧긴 하지만 중반 이후 스피디하게 전개되다 장엄하는 마무리되는 임팩트가 상당하다. 원곡과는 달리 타악기를 이용한 독특한 분위기의 인트로와 시종 이어지는 여성코러스들의 허밍이 어우러져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재즈풍의 신중현곡 <님은 먼곳에>는 리듬악기로서 효과를 발휘하는 피아노와 혼 세션 연주가 돋보인다. 스탠더드 재즈의 고전인 은 이봉조의 끈적끈적한 색소폰 연주와 뒤를 받쳐주는 피아노 연주의 깔끔한 앙상블만으로도 편안하게 감상의 재미를 제공한다.
주인이 바뀐 국제가요제 수상곡 <무인도>
앨범의 최대 히트곡은 명곡 <무인도>이다. 과거 고려대학교의 응원가로도 불리어졌던 이 노래의 원곡이 수록된 이 앨범은 오리지널 가수가 정훈희가 아닌 김추자라는 사실도 증언한다. 사실 <무인도>는 1975년 칠레가요제 본선에 진출했던 정훈희-이봉조 콤비가 입상하며 국위를 선양했던 곡으로 한국 대중의 기억에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해외 국제가요제에서 최초로 입상한 국내 가수로 기록된 정훈희는 도쿄, 그리스, 칠레 등 세계 유수의 국제가요제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우수성을 알렸던 국가대표 가수였다. 넘치는 인기만큼 전성기에 수많은 구설수에 휘청거렸던 정훈희에게 국제가요제는 늘 슬럼프나 스캔들 같은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극적인 터닝 포인트였다.
작곡가 이봉조와의 스캔들로 인해 핫 이슈가 되었던 김추자를 대신해 정훈희는 <무인도>를 연습해 1975년 남미의 칠레국제가요제에 도전했다. 치열한 경합무대에서 끝도 없이 올라가는 고음의 향연을 유감없이 펼쳐낸 정훈희는 인기 가수상과 더불어 3위에 입상했고, 작곡가 이봉조도 편곡상을 동반 수상했다. 대회 종료 후 전국에 방송된 칠레가요제 실황 공연에서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대통령이 정훈희에게 보낸 화환도 화제가 되었다. 김추자를 대신해 불렀던 <무인도>의 국제가요제 입상으로 화려하게 재기한 정훈희는 1976년 대마초 가수로 처벌받았다. 하지만 당국에서는 ‘국위를 선양한 대마초 연예인에 대해서는 선처를 베풀겠다.’는 입장을 표명해 위기를 모면했었다.
<무인도>의 김추자 원곡과 정훈희 버전은 음색과 창법이 확연하게 다른 두 여가수의 질감처럼 ‘같은 노래 다른 매력’이 선명하다. 이 앨범에 수록된 원곡에서 들려주는 김추자의 파워풀한 음색에는 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강력한 흡입력을 지니고 있다. 김추자의 <무인도>는 지금 들어도 웅장한 대곡의 기운을 전달하는 명곡으로 손색이 없다. 무려 48년 만에 재발매된 이 앨범은 수많은 버전 중 금지되어 개체수가 매우 희귀한 오리지널 초반 버전으로 제작되어 의미를 더한다. /최규성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대중가요자료 수집연구가
|
첫댓글 이문세 양희은 김추자
각1장씩 예약입니다
입고되었습니다.
이문세 1장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이문세 양희은 김추자
각1장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이문세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이문세 양희은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예약이요.
입고되었습니다.
양희은 추가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모두 예약
입고되었습니다.
이문세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모두 예약 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이문세, 양희은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양희은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전선위의 곰 감사합니다
입금했습니다
@hanmin 월요일 발송하고 발송번호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선위의 곰 아직도 다음메일 주소록에 접속이 불가능해서 발송을 못하고있습니다.주소,전화번호 성함 쪽지 한번 부탁드립니다.
본의아니게 지연되어 죄송합니다.
@전선위의 곰 잠시후 발송하고 발송번호 메일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05.18 17:3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2.10.14 17:07
이문세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양희은 예약
입고되었습니다.
이문세 양희은 김추자
각1매씩 예약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양희은 1장 예약 합니다.
입고되었습니다.
예약
입고되었습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892-21 3층
예테크 이용범입니다
010-6223-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