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최광식장관,정몽준의원,이재호의원,박지원의원,조혜진의원,예술계 김성희,신구,박정자,안성기,박상원,김성녀,박중훈,김혜수,김영철,이서진,윤소정,김세환, 임권택,윤호진.이윤택,황석영,박명선,윤순영,하용부.김동호,박동준,장사익,손숙,손경찬 등)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뜻하는 인간관계는 개개인마다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바쁜 것도 없었다면 없었고, 엄청 바빴다면 바빴던 나에게 스스로 결심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일요일에는 등산을 하면서 심신을 다진다는 게 작년 내가 세운 새로운 목표다. 그래서 그동안 일요일마다 지인들과 가까이 혹은 멀리의 산들을 다녀왔는데 벌써 50회가 넘었고, 올해 들어서도 금산의 진악산, 괴산군의 박달산 등 명산을 다녀왔다.
그동안 산을 타면서 동행인들과 많은 대화도 나누지만 자연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다보니 등산 행사 날이 가까워지면 산이 부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도 하는데 지난 2월 첫 주 일요일 등산행사에는 부득이하게 빠졌다. 서두에 말했지만 인간사에서 나는 인간관계를 매우 중요시하는데, 마침 그 날이 평소 존경하는 원로 연극인 손숙 선생님의 연기인생 50주년 행사로 서울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어머니’ 공연이 계획된 날이다.
손숙 선생님과 인연은 그럭저럭 20년이나 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강산이 두 번 변하는 장기간동안 끊임없이 소식을 주고받으며 격려를 받아왔으니 개인적으로는 행복한 일이다. 손 선생님은 밀양 태생으로 1963년 <삼각모자>에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무대에 첫발을 내디뎠으니 올해로써 연기인생 50주년을 맞는 해이다.
또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어머니’ 작품은 1999년 서울 정동극장의 공연무대에 올려지고 나서 지금까지 14년째를 맞고 있는데, 이 시대의 우리나라의 숭고한 어머니상이 담겨진 작품이다. 어머니에 대한 소회가 남다른 나는 이 작품을 열 몇 차례 보면서 볼 때마다 눈물을 흘렀다. 비교적 강하다는 내가 어머니란 단어 앞에서는 꼼짝 못하게 된 것은 어머니의 정이 한 없이 그립기 때문이다.
이 연극에서 어머니는 일제 강점기에 가난한 우리나라의 딸로서, 바람기 많은 남편의 어쩔 수 없는 아내로서, 홀시어머니의 며느리로서, 아이를 먼저 보내는 어머니의 아픔과 6.25전쟁 등 한계적인 상황이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고생 많았던, 그러나 훌륭한 어머니 상이다. 그런 어머니상을 칠순의 나이에도 뛰어난 연기력으로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손 선생님의 연기는 눈물과 회한으로 살았던 한 여인의 한풀이 같은 연극을 절제 있게 표현하여 14년간이나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어머니 연극을 보면, 마치 어린 시절 내 원망의 절대적 대상이었던 어머니에 대한 치기(稚氣)를 뒤늦게 아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원망이지만 나이가 든 이제는 이 연극을 보면서 모정에 대한 벅차오르는 감회를 감출 길 없다. 그런 마음에서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고서 손숙 선생님의 ‘어머니’ 공연과 함께 연기인생 50주년을 맞이한데 대하여 축하할 겸으로 어쭙잖은 실력으로 시를 빚어보았다.
『어머니,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 손숙 선생님의 연기인생 50주년을 축하드리며 -
시간은 느릿느릿 다가와
고단한 삶의 연못에 작은 파문 하나 만들어놓고
아침 햇살 비출 때 안개 사라지듯
저 멀리로 달아난다.
그래서 추억이란 이름의 인생 역정은
달거나 혹은 쓰게 맴도는 것.
살아온 시간의 깊이를 되새기면
자신을 미안하게 만들거나
때로는 소중히 가꾸게 만든 건
언제나 어머니의 존재였다.
가진 게 없어도 궁색함을 내보이지 않았던
당신의 올곧은 사랑 덕분이었다.
무대에 서면 늘 그랬다.
까마득해지거나 혼미한 기억의 저 너머에서
한 없이 초라하여 추락하고
자신이 무너져내리 때
그곳은 이음을 맺게 하고
불꽃같은 마음의 정열을 솟구치게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감성의 소녀에서 칠순을 맞이한
연기인생 반백년의 오늘은
이미 할머니가 되어버린 자신의 굳건한 신앙 같은
어쩌면 어머니의 한이요, 눈물이었으니
이젠 사모곡(思母曲)을 향한 정성 받들다.
‘호미도 날이지마는
낫과 같이 잘 들 리 없지요.
아버님도 부모님이시지만
어머님과 같이 사랑하실 분이 없지요.
아, 님이시여!
어머님과 같이 사랑하실 분이 없지요’
두 눈을 살포시 감노라면
사모곡의 지고지순한 어머니 사랑이
영혼을 울리는 맑은 가락처럼 감싸지요.
그 사랑이 넘치고 대륙으로 뻗어
러시아 타캉가 극장무대에서 울러 퍼진
마마(MAMA)’의 외침은 어머니의 환생
고단한 여정의 살아온 시간 속에서
한 번도 잊지 않은 죄송스런 딸로 자리한
연기인생 50주년을 맞이한 오늘 이때까지
후회 없는 삶의 피와 살이 되어주신
인생의 든든한 주춧돌인 어머니,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 졸시, 『어머니, 당신을 영원히 사랑합니다』 전문
손숙 선생님의 어머니 작품에 대해서 할 말은 많다. 어쩌면 아픈 세월을 살다간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말하지만 나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치 내 어머니 같은 느낌이 강하게 남는다. 희생과 봉사로 자식을 걱정하는 이의 첫째는 누가 뭐라 해도 ‘어머니’인 것이다. 이 같이 연극계의 어머니 역할을 한 분 또한 손 선생님인데, 1부 연극이 끝난 후에 별도로 마련한 자리에서 연극인 추상미 씨의 사회로 2부행사로 이어졌고, 정계ㆍ관계ㆍ문화계 인사 등 250여명이 참석하여 일대 성황을 이루었다.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몽준 의원, 이재오 의원, 박지원 의원,조혜진 의원, 모습이 보였고, 예술계 인사로는 원로 연극배우 김성희 씨, 신구 씨, 배우 박정자, 안성기, 박상원, 김성녀, 박중훈, 김혜수,김영철, 이서진.윤소정,김세환, 임권택, 감독 연출가 윤호진,이윤택, 씨 소설가 황석영, 씨 박명성, 대표 윤순영, 중구청장 박동준, 디자이너 부산 국제영화제 김동호 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축하공연시간에는 장사익 씨가 나서서 <봄날은 간다>를 열창하고, 영원한 춤꾼 하용부 씨가 그 노래에 맞춰 얼씨구 춤사위를 곁들여 한층 의미가 있었고, 손숙 선생님의 연기인생 50주년 행사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축하해주었고 성공리에 끝이 났다.
손 선생님도 눈물을 글썽이면서 잔잔한 말로 감사함을 내빈들에게 전하였고, 능력과 체력이 되는 한 무대에 서겠다는 다짐을 하여 큰 박수를 받았다. 연극계 큰 별의 행사를 지켜보면서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이 없으면 안 되는 일임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인간관계도 큰 몫을 자리하는 것을 알았다. 대한민국 연극사에 길이 빛날 멋진 손숙 선생님 축하행사에 하늘마저 눈이 뿌리면서 축하해주었다. 나는 감격에 겨워 대구로 내려오는 내내 ‘예술은 영원하고 위대하다’는 말을 다시한번 새겨보았다.
수필가, 대구예총 예술소비운동(공연) 본부장 손경찬
첫댓글 어머니는 인류의 영원한 고향이자 향수 입니다. 백만 장자로 사는 아들이 어머니가 살아 게실 때는 어쩔수 없는 형편이라며 요양원에 모셨다가 돌아가시고 나니 호화분묘를 만들어 놓고 통곡을 하던 모습을 본적이 있습니다. 반면에 가세도 넉넉지 않은 막내이면서 거동 못하는 어머니의 병수발을 서른세평 아파트에서 10년 이상하고는 돌아가시자 분묘도 없이 깨끗하게 보내드린 친구도 보았습니다. 그 두 사람을 가까이서 본 나는 어느 쪽을 택할 아들인가를 생각하면서 참으로 고민이 많습니다. 어쩔수 없다는 현실파가 될 것인지, 내 업무를 줄이고 대소변도 못가리는 엄마 목욕시켜주면서 같이 잠을 자는 아들이 될 것인지.
그런데 말입니다. 자당님께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마지막 숨을 모으시더니 아들이 아닌 막내며느리 손을 꼭 잡고는 "고맙다"라는 말을 하시고는 눈을 감으시더랍니다. 그 말을 들은 며느리가 시어머니 손을 놓지 못하고 한없이 울더라고 합니다. 고맙다는 단 세마디의 작별인사에 그렇게 깊은 감정이 전달 될 줄은 그 이야기를 든는 나도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더랬습니다. 나는 나의 댓글에서 효를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친구가 착한 사람이란 말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진실한 감정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거짓없는 진실은 무엇입니까? 왜 막내며느리라고 , 막내 아들이라고 요양병원에 모시고 싶지 않았겠
습니까. 아무리 호화 시설이라고 하더라도 요양원은 한번 들어가면 죽는 날만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피붙이로부터 격리되는 외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고맙다"는 말씀 속에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그걸 헤아려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살을 부비며 함께 살아준 아들, 아들보다 며느리의 그 속깊은 정에 대한 "참 고마움"이 담긴 것이지요. 제가 백만장자의 통곡소리 보다 어머니를 보내고 환하게 웃는 친구의 얼굴에서 더 진한 눈물을 흘리고 온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엇을 것입니다, 그걸 아는 나는 내 어머니를 어떻게 모실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최소한 요양병원이 내가 사는 아파트 안에 있어야 하겠다는 현실적인 대안도 생각하면서-,
그러면 혐오시설이라고 아파트 주민들이 설치 반대 대모를 할란가?
어머니란 말 생각만해도 가슴 먹먹해 집니다.
모두의 마음에 함께사는 어머니 불러도 불러도 아득합니다.
손회장님 글 읽으며 米壽를 사시다 가신 내 어머니를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