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초파일과 석가 탄신일
석가모니 탄신일은 지금까지도 정확히 알 수 없어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탄생일을 모르는 것과 같다. 음력으로 2월8일과 4월8일, 4월15일, 12월8일, 양력 5월15일 이밖에 베사카 달(태양력의 5월쯤)의 제8일 또는 15일 등 알려진 것만도 여러 설이 있으나 그 어느 것도 정설로 인정된 것이 없다.
정확한 탄신일 몰라 추측만 무성
당나라 태상(太常)이던 하성식이 저술한 ‘유양잡조전집(酉陽雜俎前集)’과 ‘정이교론(正二敎論)’,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AD.1662~1735) 38년에 장계종(張繼宗)이 편저한 ‘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에는 가빌라국 정반왕의 왕비인 마야부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다 22년만인 계축년에 낮잠을 자다 태몽을 꾼 날이 음력 4월8일이라 했다. 즉, 하얀 코끼리 이빨 16개가 입속으로 퍼져 들어오는 것을 삼켰는데 왼손을 든 어린아이가 오른쪽 갈비뼈를 가르고 나타나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서 사자 같은 울음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天上天下唯我獨尊)’.
여기서 각종 문헌을 근거로 잉태는 2월8일이고 탄생은 이로 부터 10개월 후인 12월8일, 득도는 33세(또는 35세) 을유년(乙酉年) 되던 해 2월8일 묘시(卯時: 오전5시~7시)라는 연구가의 제시도 있다.
상좌부(테라바다) 불교권인 태국은 석탄일을 ‘웨삭’ 또는 ‘웨사크’ 라고 하며 영어로 풀문데이(Full Moon Day)라고 하는데 음력 4월15일이다. 인도차이나 지역 불교권과 스리랑카, 인도 등이 모두 이날에 봉축 한다.
불교경전(經?論)에는 석탄일을 2월8일 또는 4월8일이라 했다. 자월(子月: 지금의 음력11월)을 정월로 치던 때의 4월8일은 곧 인월(寅月: 지금의 정월)을 정월로 치는 음력 2월8일에 해당되므로 2월8일도 일리는 있다.
이렇듯 석가모니 탄신일이 서로 달라 각각 지내게 됨에 따라 일어나는 혼돈을 막고 공통된 기념일을 제정한 회의가 1956년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도(WFB)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양력 5월15일을 세계불교도들이 공통으로 기념하는 석가탄신일로 결정한 것이다. 또 이 대회에서는 불교연대를 불멸후 2500년을 서기 1956년으로 결정 했다(운허 지음, ‘불교사전’). 그러니까 금년은 불기 2554년이다.
이렇듯 4월8일이 사실상 석가의 탄신일과는 무관함에도 한국·중국·일본 동양 3국은 오랜 옛적부터 4월 초파일(일본은 양력)에 연등을 밝히고 봉축해 왔다. 우리 동이족은 왜 하필이면 이날을 기리는가.
환단고기 '북부여기 상(上)'에 보면
"해모수 단군은 임술(BCE 239)년 4월 8일에 즉위 하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본래 해모수의 북부여 건국 축일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역사일감(歷史日鑑, 1947)’에서 “옛날부터 있어 온 1년 중의 명절이 대게 어른들을 위하는 날이었으나 딱 한번 아동을 위하는 명절이 4월8일, 보통 ‘파일’이라고 부르는 날 이었다”며 ‘파일’이라 이름 하여 기리는 명절이 오랜 옛적부터 있었음을 말했다. 그는 또 “서기전 59년 4월 초8일에 해모수(解慕漱)가 요(遼)의 땅 흘승골성(訖升骨城)에다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이름을 북부여(北扶餘)라 했다. 스스로 천제자(天帝子)라 일컬었다”고 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북부여기(北扶餘記), 단군세기(檀君世紀), 조대기(朝代記) 등에는 47세 단군 고열가(古列加) 57년 임술 년 4월 초8일에 해모수가 웅심산(熊心山)에 하강하여 북부여를 세우고 천제자의 자리에 즉위 했다고 전한다. 고열가 단군을 끝으로 단군조선은 막을 내리고 해모수 단군에 의해 북부여로 계승 된다. 이날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행사로 관등경축(觀燈慶祝)이 거국적으로 펼쳐졌다고 한다.
4월 8일은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천제자인 해모수 단군의 하강 건국기념일로서 본래 부터 등을 달고 경축해 왔던 민족적인 대축제일 이었던 것이다. 해마다 이날에 있었던 전통적인 민족축제가 부여를 계승한 고구려에 까지 이어 졌으나 불교가 들어와 세력화 하면서 점차 석가모니 탄신일로 바뀌고 말았다는 것이 민족사상 연구가들의 주장이다.
오탁악세(汚濁惡世)의 사바(娑婆)에 허우적거리는 무명 중생을 건지려 몸을 나투신 이 경사스런 날을 봉축함은 마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월 초파일’이 있게 된 민족사적 의미를 더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