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모교 교장선생님과 술자리에서 덕담과 추억을 듬쁙 담아 마시다보니 '과연 내일 새벽에 마라톤대회에 참가가 가능할까?' 걱정도 됐다.
실제로 5시30분 알람에 일어난 뒤로 한참을 헤매다가 채비를 갖춰 담양으로 차를 몰아 가는데 일단 준비된 복장부터가 대회 참가하는 자세를 대변한다. 레이싱용 싱글렛이 아닌 흔한 반팔티를 챙긴 것.
대회장을 찾아가는 동안 안선생님과의 대화도 걸작.
준비가 잘 된 상태에서 욕심을 내면 기록이 나오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욕심을 내면 사고가 나온다.
담양추성경기장은 담빛예술창고에 주차를 한 뒤 관방제 뚝방을 넘어가는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그 분위기가 독특하다.
트랙은 제대로 8레인이 있지만 관람석이나 시설은 주변경치에 맞춰 소박하고 아늑하게 만들어진 듯.
담양마라톤클럽에서 주관하는 소규모대회라는데 참가자수가 20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 10Km와 하프가 함께 출발한단다.
워밍업 삼아 주변을 돌면서 군의회 건물에 가서 볼일을 보고 관방제 뚝방길을 둘러보는데 놀랍게도 이 뚝방의 흙길이 대회의 코스라고... 하지만 나중에 뛸 때 보니 그저 흙길만 있는게 아니고 자갈길, 투수콘길, 나무다리...아스팔트는 기본에 주차장의 잔디블럭까지 지나야했다.
계단과 징검다리를 건너는 전주부부마라톤대회 보다는 낫지만 이 정도면 코스 노면의 다양성으론 어디다 내놔도 손색(?)이 없을 듯.
9시10분에 출발을 해서 그 다양한 길들을 돌아서 전진을 하는데 평평한 아스팔트 도로가 나와서 좀 달릴만 할때 5Km지점이 나오고 주변에서 달리던 대부분의 주자들이 반환을 해 돌아가버리고 하프를 뛰는 사람들은 저만치 앞에 띄엄띄엄 몇 명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얼마후, 오르막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급수대 이후 7.5Km 무렵부터 급경사 오르막이 시작되어 근 2Km쯤은 계속되는 것 같다.
처음부터 기록은 아에 생각지도 않고 최적의 안정된 페이스로만 이어가고 있었기에 그나마 이런 극한경사로에선 상대적으로 덜 죽어난다.
앞서가던 사람들을 하나둘씩 잡아가며 오르막의 정점에 이르니 이번에는 반환점까지 계속 급경사 내리막이...
경사도가 어지간해야 오르막에서 까진것이 내리막에서 만회가 되는데 이건 뭐 그냥 떨어지듯 내려가기에도 부담스러운 수준이라 매번 브레이크가 걸린다.
어쩌려고 이런코스를 잡아놨는지...
5Km 21:40
10Km 23:00 [44:40]
정말 넉넉하게 뛰었다.
반환점에서 순위가 22번째 쯤 된 것 같은데 이후로 다시 시작된 험악한 오르막, 그리고 최정점에서부터 내리꼳는 내리막길에서 거리를 좁혀나가다 평지가 시작된 이후론 그간 시야에 들어왔던 4명을 모두 넘어섰다.
전반과 달리 속도는 오를수 있는 데까지 올라간 기분인데 일부러 시계는 보질않고 그냥 자세만 바로 잡고 다리만 재촉한다.
그 결과 마지막 5Km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듯 괜찮은 랩타임이 남았다.
-5Km 26:44 [1:11:25]
Finish 20:40 [1:32:06]
33분대를 뛰면 선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목표는 초과달성을 했고 무엇보다도 취권으로 험한 코스를 무사히 잘 주파한것이 다행 중 다행.
오른발에는 물집이 잡혀 터졌고 왼쪽은 무릎 슬개골 아랫쪽이 불편하다.
아마도 노면에서의 불편함과 내리막에서 받은 충격이 그 원인인 듯.
대회장에서 추어탕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담양온천에 가서 노천탕의 호사까지 누리며 낮시간을 보냈다.
대회가 토요일에 있다보니 시간을 활용하는덴 이만한게 없을 정도로 여유가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