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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동상 건립에 대하여
현상
2024년 3월 1일 홍준표 대구시장이 SNS에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박 전 대통령 기념사업 추진을 언급했다. 이후 입법예고, 조례안 제출, 시의회 통과까지 진행되었다. 홍 시장이 운을 띄운 지 63일 만에 동대구역과 미군 기지 반환 부지에 건립 중인 박정희 공원 등 2곳에 14억 5천만을 들여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우고, 광장과 공원 명칭에 ‘박정희’ 이름을 붙이는 기념사업 추진은 법적 근거를 갖췄다.
대구에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을 건립하는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조례가 추진되는 과정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조례안은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지만, 찬반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5천 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산업화 추진 정신은 위대한 업적”이라며 동상 건립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대구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독재자’의 동상 건립은 안 된다면서 강력반발하고 있다. 반대 단체에서는 조례 폐지를 요청할 방침이다. 반면 민간 차원에서 박 전 대통령 동상 건립을 추진해 온 단체는 더 필요하다며 경북에도 추진할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고 있다. 반대 단체들은 박 전 대통령을 동상까지 세워서 기념하는 데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임성종 박정희 우상화 반대 범시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60·70년대 암울했던 우리 시대, 독재와 반민주의 시대, 그 시대를 지금 소환하고, 그것을 통해서 개인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말살되어야 했던 그런 시대를 다시 한번 과거로 돌아가는 과거 회귀적인 발상이 아닌가”라며 지탄했다.
하지만 민간 차원에서 먼저 박 전 대통령 동상 건립을 추진했던 측은 경제 발전의 공이 큰 점을 평가하면서 동상 건립 자체를 적극적으로 찬성한다고 했다. 김형기 박정희 대통령 동상 건립추진위 단장은 “비록 군사 쿠데타라는 형식으로 결국 헌정을 중단시키고 사회를 혁명적으로 개혁해 나갔는데, 어쨌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대한민국을 부국강병 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그 역사를 우리 후세대가 알아야 해요”라고 했다.
이에 임성종 박정희 우상화 반대 범시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추진위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내용으로 회의를 진행했는지 이런 것들을 정보 공개를 통해서 낱낱이 다 기록하고 후세대에 남겨서 그들의 그런 행적들을 반드시 알게 할 것이고 또, 우리는 나름대로 동상 건립의 근거가 되는 조례의 폐지 청구에 대한 서명 운동을 범시민적으로 벌이겠다”고 항변했다.
한편 경상북도 산하 경북문화관광공사가 경주 보문단지 내 관광역사공원을 개장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과 조형물 등이 설치된 것과 관련하여 시민단체가 “박정희 우상화공원을 즉각 철거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경주지역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박정희 우상화 사업 반대 경주 범시민운동본부는 2024년 5월 16일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북문화관광공사의 역사 왜곡 행위를 규탄하고 박정희 동상을 즉각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기공식 당시만 하더라도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어 박정희 우상화공원이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며 “경북문화관광공사의 눈속임에 경주시민은 뒤통수 맞은 꼴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상화의 대상 박정희는 이미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평가되어 있는 군부독재자”라며 “이런 독재자에게 보문단지를 만든 장본인이라는 이유로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칭송과 미화적 내용으로 우상화하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범시민운동본부는 “박정희 우상화공원을 추진함으로써 4.19정신을 담은 헌법을 부정하였을 뿐 아니라 역사 왜곡을 넘어 국민적 갈등을 유발한 심각한 범죄행위”라며 “엄중한 경고와 항의를 한다”고 밝혔다.
대구시 중구는 건립 7년 만인 2024년 4월 22일 순종 황제 동상을 철거했다. 2017년 달성공원 진입로에 5.5m 높이의 동상을 세웠으나 결국 순종 황제 어가길 조형물 철거를 결정했다. 순종의 남순행은 일제가 반일 감정 무마를 위해 순종을 앞세워 대구·부산 등으로 끌고 다닌 치욕의 역사라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김성해 대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동상은 단순한 상징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방향을 정하는 등대와 같다”며 “동상 설립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구성원의 충분한 논의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동상이 한 집단에 의해 특정 장소에 건립되는 것은 동상이 지역성을 획득하는 일임을 뜻한다. 더욱이 건립되는 동상의 대상 인물이 사회적으로 첨예한 논란을 유발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광장과 동상
윤석열 정부 들어 역사적 인물들의 조형물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있고 몇몇 지자체에서 이와 관련된 작업을 모색하는 중에 대구시가 일거에 처리한 동상 건립 건은 대구 지역의 특수성을 여실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국민의힘’ 단체장일지라도 다른 지자체에서는 언감생심 추진하기 쉽지 않은 동상 건립을 대구시장과 대구시 의회는 전격적으로 의결·처리함으로써 대구의 독보적인 지역성을 대내외적으로 현시하였다.
호남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동상이 곳곳에 있는데 대구·경북에는 왜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이 없는가라는 홍준표 시장의 발언에서 시작된 동상 건립 건은 시의회의 전적인 동의를 거쳐 일사천리로 결의되었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공과(功過)를 논해야 하고 과(過)만 보는 것은 옳지 않은데다 대구는 박정희 동상이 꼭 필요한 도시’라는 홍준표 시장의 논리는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사안을 지극히 단순하고 협애화하는 그의 정치적 논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구는 박정희 동상이 꼭 필요한 도시”라는 그의 발언은 매우 엄중한 내용이어서 시민단체의 반발을 유발시키고 있다.
홍준표 시장의 발상과 대구시의회의 전격적인 처리는 최근 한국 사회의 시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사회적 연대와 공감을 완전히 거스르는 반시대적인 행태라는 점에서 매우 엄중한 사안이다. 박정희의 통치 기간 중에 벌어진 치명적인 인권 침해 사례는 두 손과 두 발을 모두 동원하더라도 부족하지만, 그 대표적인 사안 중 하나가 인민혁명당재건위(인혁당) 사건이다. 1975년 4월 8일에 인혁당 관련자들의 항고를 기각함으로써 8명의 사건 관련자들에게 사형을 확정하고, 그로부터 불과 18시간 뒤인 4월 9일 새벽 4시에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재심 청구권마저 박탈한 ‘사법살인’이자 ‘기획살인’이었던 인혁당 사건의 8인 희생자 모두 영남 출신이었다.
더욱이 유족 중 상당수가 여전히 대구·경북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홍준표 시장과 대구의 정치인들은 모를 리 없을 터인데 어찌 또다시 그 유족들을 참혹한 고통 속에 몰아넣을 일을 그렇게 쉽게 처리할 수 있단 말인가. 저들에게는 수십 년 동안 참담한 지옥 속에 견디어 왔을 유족들의 고통과 아픔은 전혀 감안할 대상이 아닌가. 참고로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협회는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정했으며,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재건위 사건 재심 선고공판에서 인혁당 사형수 8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1956년 일제강점기에 남산의 조선신궁과 경성신사가 있던 자리에 살아있는 이승만의 동상이 건립되었다. 김구, 안중근 등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우국지사의 동상 건립을 통해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는 논의와 작업이 무성했지만 모두 무산되고, 1956년 8월 15일 오후 4시 이승만 대통령의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동상 건립 제막식이 대통령 본인을 비롯하여 3부 요인과 각국의 외교사절이 참석한 가운데 남산에서 거행되었다. 물론, 그러나 놀랍게도 살아있는 대통령의 동상이었다. 기단 17.6m, 본체 7m로 모두 합하면 높이 25m가 되는 거대한 조형물이 일제강점기 조선신궁이 있던 자리에 건립된 것이었다. 연인원 7만여 명이 동원되었고 10개월 동안 무려 2억 600만 환이 소요된 거대한 공사였다. 그 돈은 당시 2만여 명의 1개월 치 식량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 동상은 4년 뒤인 1960년 4월 혁명 때 파괴되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직후인 1968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를 통해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현재 위치인 세종로 광화문에 건립함으로써 동상의 정치를 시작하였다.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의 첫 번째 대상 인물은 이순신 장군, 두 번째는 세종대왕이었으며, 이순신 장군의 동상 건립비용은 박정희가, 세종대왕의 경우는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이 헌납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박정희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통해 구국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 투영하고자 하였지만, 재임 중에 자신의 동상을 세우지는 않았다.
누군가를 기념하고 어떤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조형물은 지나간 시간을 현재에 고착화하는 작업이다. 동상은 그것이 놓인 장소를 교육의 공간으로 만들고, 과거를 특정한 방향으로 기억하게 한다.
홍준표 시장은 “대구는 박정희 동상이 꼭 필요한 도시”라고 강조하였다. 박정희 동상이 동대구역 광장에 건립되는 것은 동상의 상징성이 대구의 지역성을 획득하는 일이며, 이는 단순히 과거의 인물을 기리는 일을 넘어 대구의 미래를 기획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사회적 의제들에 대한 논의를 만들어가야 하는 광장(廣場)에 동상을 세우는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대 대통령인 박정희가 건설하고자 했던 대한민국을 목도하면서 유신시대의 이청준이 제기했던 질문 ‘우리들은 어떤 공동체를 세울 것인가?’하는 질문이 다시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인 듯하다.
광장의 역사는 권력자와 시민 사이에 뺏고 빼앗기는 광장 쟁탈전으로 점철됐다. 파리를 예로 들면 바스티유광장, 방돔광장, 콩코르드광장에서 시민과 권력자의 군대가 맞부딪혀 많은 피를 흘린 뒤 끝내 시민이 광장의 주인이 됐다. 권력과 이념의 광장으로 남아 군사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곳으로는 모스크바 붉은광장, 베이징 천안문광장, 평양 김일성광장이 있다. 그 광장에는 권력의 이념적 표상으로 레닌과 마오쩌둥의 거대한 무덤, 그리고 김일성-김정일의 거대한 초상화가 광장을 굽어본다.
그러나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이 조성된 뒤에는 2002년 미군장갑차 여중생 압사 규탄 시위와 보수단체 친미 시위, 2004년 노무현 탄핵 거부 시위, 2008년 촛불 시위, 2016년 박근혜 탄핵 찬반 시위 등으로 광장은 충돌과 화해가 교차했다. 이런 광장의 역사를 두려워한 수구 정권은 광장을 차벽으로 둘러싸는 등 광장공포증(agoraphobia)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이승만기념관을 열린송현광장에, 박정희동상을 동대구역광장에 세우려는 것은 전혀 새로운 국면 전개다. 붉은광장이나 천안문광장과 같은 이념의 광장을 핵심 공공장소에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경복궁 동쪽 노른자위 땅인 송현광장에 관해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승만기념관) 건립 장소로 가능성이 제일 높게 논의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이건희 미술관도 들어설 예정이어서 이승만기념관까지 건립되면 도심 녹지공간으로서의 쓸모는 사라지고 독재 권력과 경제 권력의 두 상징 건물이 들어서는 셈이다. 4.19혁명 때 경무대로 향하던 청년 학생들이 경찰의 일제사격으로 대거 숨진 곳이 경복궁 주변 길인데, 영령이 있다면 무어라 생각할까?
이승만은 공에 견주어 과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다른 실정은 접어두고, 너무 많은 국민을 죽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부는커녕 대통령기념관을 세우거나 동상을 세워서는 안 될 인물이다. 제주 4.3항쟁, 여수·순천항쟁, 보도연맹 학살사건, 한국전쟁 중 형무소 학살, 서울 수복 후 부역자 학살, 4.19혁명 학살 등으로 줄잡아 100만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도 해방 직후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욕을 좀 내려놓고 남북분단을 피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내전이었다. 이승만은 진보당수 조봉암, 친일 경찰 청산을 외친 최능진 등 정적도 법이라는 이름을 빌려 사법살인을 자행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신도 좋게 나오는 영화 <건국전쟁>을 본 뒤 이승만을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게 된 중요한 결정을 적시에 제대로 하신 분”이라고 평가함으로써 스스로 무지와 무사유를 드러냈다.
박정희 역시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점에서 이승만 다음 가는 인물이다. 대표적인 살인은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을 처형한 것이다. ‘8명 사법살인’ 등 숫자로만 남은 기억을 되살리려고 「한라산」의 시인 이산하는 2021년 10월 6일 김정희가 국악곡을 붙여 연주된 <46년 만의 초혼(招魂), 여덟 송이 동백꽃> ‘서시’에서 한 생명이 꺼져 가는 순간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홍 시장은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는 공과를 함께 논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진심이라면 박정희의 과오들도 동상에 새겨 넣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은 ‘닉슨 대통령 도서관 겸 박물관’을 세웠지만, 기록관 성격이어서 워터게이트 사건 등 그의 과오를 낱낱이 드러내 놓았다. 홍 시장은 광주의 김대중 대통령과 비교하며 박정희동상 건립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의 공과론을 따르더라도 김대중이 사람 죽인 과오가 있는가?
대구를 비롯한 보수성향이 강한 지역에서는 박정희 동상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다니 홍 시장은 박정희를 이용해 보수 세력의 환심을 사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인가?
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이 생색내는 일에 치중하는 것도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홍 시장은 동상 건립에 반대하는 대구 시민단체들을 향해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반대한다고 해서 유권자에게 그런 말을 하는 심리의 근저에는 시민을 개돼지로 아는 오만이 깔려 있다.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니까.
박정희광장과 박정희공원에서 어린이들은 어떤 가치관을 배우게 될까?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독재를 해도 된다? 출세를 위해서는 기회주의로 살아도 된다? 동대구역광장은 대구시민만 오가는 곳이 아니다. 타지역 사람들은 대구의 관문을 드나들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마침 동대구역과 시내를 연결하는 도로에는 박정희가 좋아해서 심었다는 히말라야시다가 줄지어 서 있다. 박정희가 그 나무를 좋아한 이유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서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홍준표 시장의 동상 건립은 대구시민은 물론 박정희에게도 욕 먹이는 일이 될 수 있다. 논란이 많은 인물의 동상을 세우는 일은 그의 과오를 부각시키기 때문이다. 페인트 등으로 낙서를 하거나 시절이 바뀌면 철거될 가능성도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 시절 돈에 제 얼굴을 새기고 서울 남산과 탑골공원에 동상을 세웠으나, 동상은 4.19혁명 때 부서졌다. 스탈린과 레닌 동상도 격하 운동이 일어나 끌어내려졌다.
박정희의 동상에 과오를 함께 새겨 넣을 수 없다면, 대구의 시민단체들이 모금해서 박정희 시대 노동·인권 탄압의 상징탑을 박정희 동상 맞은 편에 세울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바로 전태일 열사의 동상을 말한다. 전태일 열사는 박정희 시대 노동 탄압의 상징적인 인물인데, 그의 대구 옛 주거지 복원도 시청이 외면해 사단법인 ‘전태일의 친구들’이 시민 모금으로 추진하고 있다.
송필경 ‘전태일의 친구들’ 이사장은 “박정희 시대 경제성장이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졌다는 평가도 있다”며 동대구역 광장에 전태일 동상을 세우고 그가 분신하기 석 달 전인 1970년 8월 9일 일기장에 쓴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겨 넣기를 바란다.
-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理想)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生)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 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 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느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그는 “박정희 동상을 세우려는 의도는 권위주의 독재의 향수를 뿌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홍준표 시장이 대권욕에서 박정희를 천박하게 이용하는 짓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억울한 죽음을 초래한 자들의 동상은 끝내 훼손되는 운명을 맞는 사례가 너무나 흔하다. 인권 의식이 높아지고 2020년부터는 인종차별 저항운동이 확산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동상들이 수모를 겪고 있다. 미국 보스턴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콜롬버스 동상의 목이 잘렸고,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는 식민지를 개척한 제임스 쿡 선장의 동상이 발목부터 잘려 내팽개쳐졌다.
시장이 시민의 휴식과 여론 수렴의 공간인 광장을 더 많이 확보하지는 못할망정 있는 공간마저 문제의 인물을 기리려 드는 건 역사에 무지하고 생각이 모자란 탓이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안에도 거대한 신상이 있었다. 그런 신전이나 신상 같은 것을 21세기 현대도시에 세우려 드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북한이 금수산태양궁전을 짓고 거대한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세웠는데, 그것마저 따라 하겠다는 건가?
『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E. H. 카의 증손녀이자 같은 역사학자인 헬렌 카는 『지금,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에서 역사를 잘못 이해하고 심지어 악용하는 자들에게 경고한다. ‘우리가 얼룩진 과거를 무비판적으로 고집할 때, 우리는 계속해서 현재를 더럽힌다.’ 시민의 광장이 정치인의 권력욕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 그들은 모두 대통령을 꿈꾸는 거물 정치인이기에 역사에 관한 무지는 물론 무사유도 용서받을 수 없다.
첫댓글 순수 문학의 장에 정치색 짙은 글에 댓글을 단다는 것이 유쾌하지 않지만,
김대중이 북한에 퍼준 돈으로 핵을 만들어 대한민국을 위협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터,
그런 과오에도 광주에 김대중 동상이 있다면 대구에도 당연히 박정희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지는 일에
반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견이지만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정치와 종교의 주장들은 우리 까페의 작품란에 올리는 것을 지양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예, 저도 읽으며
전체의 공과를 논하지 않고,
작가가 바라보는 쪽만 논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아무튼
정치적인 내용을 카페에 올리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