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여울 문화마을
개요
피난민들의 애잔한 삶이 시작된 곳이자 현재는 마을주민과 함께하는 문화마을공동체 흰여울 문화마을이 자리한 곳이다. 부산의 대표적인 원도심 흰여울길은 봉래산 기슭에서 굽이쳐 내리는 물줄기가 마치 흰 눈이 내리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 2011년 12월, 낡은 가옥을 리모델링하면서 현재는 영도의 생활을 느낄 수 있는 독창적인 문화예술마을로 거듭났다.
이용안내
이용시간
안내소 운영시간 : 09:00 ~ 17:00
주차시설
절영해안산책로 입구 공영 주차장 (유료)
문의및안내 : 051-419-4067
흰여울 문화마을
부산 가볼 만한 곳으로 꼽히는 '흰여울 문화 마을'은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등 수많은 작품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흰여울 문화 마을'의 흰여울길은 예전에 봉래산 기슭에서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림으로써 마치 흰눈이 내리는 듯 빠른 물살의 모습과 같다하여 흰여울길이라 이름이 붙었다.
흰여울길은 마을의 앞마당이자 버스가 다니는 절영로가 생기기 전까지 영도다리 쪽에서 태종대로 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어 '부산 흰여울 문화 마을'의 탄생은 2011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폐가를 리모델링해 지역 예술가의 창작의욕을 북돋우고, 영도 구민들로 하여금 생활 속 문화를 만나게 하는 독창적인 문화․예술 마을로 거듭났기 때문.
'부산 흰여울 문화마을' 절영로에서 흰여울길 사이에는 세로로 14개의 골목이 나있다. 전체로 보면 여러 갈래의 샛길들이 미로처럼 얽혀있다. '부산 흰여울 문화마을' 가볼 만한 곳으로는 절영해안산책로가 대표적이다. 이밖에 '부산 흰여울 문화 마을'에는 △맏머리 계단 △꼬막집 계단 △무지개 계단 △피아노 계단 △도돌이 계단 등이 눈길을 끈다.
흰여울문화마을이라는 거짓 /황경민
국제신문 기사 입력일 : 2021-08-29
이번 칼럼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필자의 탯자리를 밝혀야 한다. 나는 영도에서 태어났다. 영선동 4가 124번지가 내 탯자리고, 초중고등학교를 영도에서 나왔다. 이 배경 아래서 내 졸시를 내가 인용하는 무례를 용서해주시길 바란다.
“판잣집과 판잣집이 잇달아서 / 이웃이 되고 원수가 됐다네 / 판잣집과 판잣집이 잇달아서 / 식구가 되고 자매간이 됐다네 / 담벼락이 없어서, / 대문 따위 없어서 / 모짝 드러난 살림살이 한솥밥이 됐다네 // 판잣집이 잇달아서 / 골목은 마당이 되고 / 평상은 술상이 되고 / 구멍가게는 사랑방이 됐다네 // 판잣집이 잇달아서 / 비탈 위에 비스듬히 서 있어도 / 넘어지지 않았다네 / 태풍이 불어와도 날아가지 않았다네 / 쌀이 떨어져도, / 술에 취해 자빠져도 쓰러지진 않았다네 // 판잣집이 잇달아서 / 판잣집이 판잣집을 세웠다네 / 판잣집이 판잣집에 기댔다네 / 오글오글 바글바글 / 판잣집을 갉아먹고 새끼들이 자랐다네.” ‘산복도로 전문’
이것이 산복도로가 있는 신선동, 청학동, 봉래동, 그리고 벼랑 위에 서 있는 ‘영선2동-흰여울문화마을’ 사람의 삶이었다. 날마다 굶었고, 날마다 울었고, 날마다 마셨고, 날마다 싸웠고, 결국은 날마다 살아냈던 영도 사람들의 삶이었다.
그 가파른 삶의 가장 내몰린 자리, 그 벼랑 끝이 지금 ‘흰여울문화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영도를 떠났다가 35년 만에 돌아와 나는 매일 걸어서, 혹은 버스를 타고 소위 ‘흰여울문화마을’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불리는 그곳을 지나간다. 깎아지른 절벽 위의 가난한 마을을 날마다 지나가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곳을 기웃거린 적이 없다. 구경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곳은 지금은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가난한 내 친구들의 집이었고, 이제는 내 친구들의 늙은 부모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거기 살아서 찾아가는 길이라면 몰라도 나는 여전히 그곳을 구경할 생각이 없다. 그곳은 구경하는 시선으로, 스마트폰의 시선으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곳이고, 볼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 가난한 친구의 동네는 지금 ‘흰여울’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문화’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풍경을 팔아먹으며 관광과 투기를 조장하는 부산의 대표적 관광명소가 됐다.
날마다 젊은이들이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들고, 풍경과 추억을 한 장의 인생샷으로 남기기 위해 오가는 ‘동물원’ 아니, ‘인간원’이 됐다. 오로지 사적 이익을 위해 외부인이 들어와 카페를 여는 투기 장소가 됐다. 관광객이 걸어다니는 골목길과 접한 하꼬방이 평당 2800만 원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투기지역이 됐다. 원주민과 상인들 간의 다툼이 끊이질 않는 동네가 돼버렸다.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지역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팔아먹으려는 자치단체와 자치단체의 요구를 반성 없이, 비판 없이, 회의 없이 안일하게 받아들인 도시기획자, 문화기획자, 문화예술인들에게 있다. 개발과 확장, 발전과 상품화에만 방점을 둔 도시재생사업 자체에 있다. 그러면 이곳의 풍경은 어떻게 관광상품이 됐는가. 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선 마을이 관광상품이 된 까닭은 단 하나 이곳에 내몰린 사람들이 50년, 60년이 넘도록 이곳을 지키고 살았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지나가는 그 골목길을 마당으로 삼고, 놀이터로 삼아 서로 기대고 싸우며 살아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사진으로 담는 저 푸른 바다와 거친 파도, 깎아지른 벼랑이 바로 그들 삶의 모습이고, 역사고, 삶 자체였기 때문이다. 자치단체의 기획과 예산과 한 몫 잡아보겠다는 당신의 투자금 때문이 아니라 이 각박한 터전을 지켜온 원주민의 삶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흰여울문화마을’이란 이름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 ‘흰여울’이란 말은 맑고 깨끗한 여울이 아니라 백발의 주름진 마을사람의 얼굴이란 말이고, ‘문화’란 관의 머릿속에서 나온 기획이 아니라 그곳을 살아낸 사람들의 삶이란 말이고, ‘마을’이란 팔아먹는 상품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상호부조하는 공동체란 말이다. ‘흰여울문화마을’ 자체인 원주민의 삶을 존중하고 돌보지 않는 모든 관점을 폐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흰여울 문화마을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