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구별되었는데 롬1:2 (이 복음은 그분께서 자신의 대언자들을 통하여 거룩한 성경 기록들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롬1:3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에 관한 것이라.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다윗의 씨에서 나셨고 롬1:4 거룩함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권능 있게 밝히 드러나셨느니라. 롬1:5 그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직을 받아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믿음에 순종하게 하였나니 롬1:6 너희도 그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왜 예수님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낮아지심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요?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의 대표자가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표자가 되셔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그 일이란 바로 우리 사람이 해결 할 수 없는 세가지 문제 1.죄의 문제 우리는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인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이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믿음의 내용입니다. 즉 “복음(福音, Good News)”라고 합니다.
복음은 인간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3가지 근본문제와 거기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인생 해답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첫 째, 인간의 시작은 하나님의 축복받은 창조물임을 성경은 말씀합니다.(창세기1:27-28) 물고기가 물을 떠날 때, 나무가 땅속에서 뿌리가 뽑히는 순간 불행이 시작되듯이,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인간의 선택과 상관없이 불행은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원래 인간의 축복을 회복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바로 복음입니다.
둘 째,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원죄(原罪)로부터 인간의 모든 자범죄와 가문에 흐르는 조상의 죄가 생겨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인간은 사주팔자와 운명에 매여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저주와 재앙을 단번에 해결하는 길이 바로 복음입니다.
셋째, 하나님 떠난 인간은 자신의 노력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사탄(귀신)이라고 하는 흑암세력의 영향과 지옥 배경속에서 일생을 불행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거 기에서 빠져나오는 길이 바로 복음입니다. 성경은 이 복음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말씀합니다. 인간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근본문제와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문제를 단번에 끝내 버리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 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3-6)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요한복음 19:30) 아무런 조건 없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 사랑, 그 사랑을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먼저 시작되었다고 말씀합니다.
“하 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한일서 4:9-10)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누구든지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인생의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9-10)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왜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는지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천사의 형체로 오시거나, 사람과 다른 뭔가 특별한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텐데, 왜 예수님은 사람의 형체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예수님은 왜 사람이 되셨을까요?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립보서 2장 5-8절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종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종의 형체’라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의미합니다. 사실 ‘종의 형체’라는 표현도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성육신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럼에도 종의 형체라고 표현한 이유는 엄청난 신분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자유인과 종은 신분에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자유인인 주인이 자신의 소유인 종을 죽여도 별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고대 사회에서 스스로 종이 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자유인인 주인과 그의 소유인 종은 본질적으로 둘 다 사람입니다. 본질상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도무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자신을 낮추신 일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상상한다 해도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유한한 수와 무한한 수를 비교할 수 없듯이 사람과 하나님을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낮아지심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요? 예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우리의 대표자가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표자가 되셔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그 일이란 바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보다 강하다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우리는 죄보다 약합니다. 죄보다 강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르십니다. 죄보다 강하시고, 죄의 결과인 사망의 권세보다 강하십니다. 그리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틈타서 우리를 시험하는 사탄보다 강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 곧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이시고, 그 일을 이루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신다면,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실 필요 없이 “너희의 죄를 사하노라. 또한 너희를 죽지 않고 영원히 살도록 해주겠노라” 이렇게 말씀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니까 아주 간단히 해결하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이런 생각은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公義)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 말입니다.
우리는 앞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배웠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무질서한 사랑이 아니라 공의로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의로우며, 공의를 잃지 않습니다.
공의란 무엇일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공의는 ‘옳은 것’입니다. 그 옳음의 기준은 누가 세웁니까? 유일한 절대선(絶對善)이신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심판의 잣대까지 정하시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불공정을 막기 위해 입법부와 사법부와 행정부가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의심하거나 우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공의로운 존재는 없으며,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만이 온전한 공의의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의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죄는 벌을 받고, 의는 상을 받는다.”
하나님의 공의에 따르면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 죄에는 반드시 응당한 대가가 따릅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단순히 몸의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죽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영원히 단절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판단하기에 아무리 작은 죄라 할지라도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대표자가 되셔서 이 영원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르셨을까요?
바로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죄의 대가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대신 치르셨습니다.
- 가장 귀한 선물, 강성운
가장 귀한 선물 바른 신앙과 건강한 교회 생활의 안내서 규장강성운
†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요한복음 14:6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